(16)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Ⅲ (16)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Ⅲ 2007-04-25 1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명 조정이 왕세자로 승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광해군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604년, 명나라 제독주사(提督主事) 섭운한(雲翰)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온 조..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5)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Ⅱ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Ⅱ 2007-04-18 1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광해군은 성공적인 분조 활동을 통해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부왕 선조의 견제 때문이었다. 왜란 초반,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의주까지 파천하기에 급급했던 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4)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Ⅰ 2007-04-11 1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4월 부산진 전투를 170년 뒤인 숙종때 화가 변박이 다시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Ⅴ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Ⅴ 2007-04-04 17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2)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Ⅳ (12)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Ⅳ 2007-03-29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1618년 4월15일 푸순성을 포위한 누르하치는 성주 이영방(李永芳)에게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이영방이 망설이자 후금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상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영방은 항복했다. 푸순..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2007-03-22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覇者)로 등장하기 전까지, 명이 상대하기에 가장 버겁고 까다롭게 여긴 대상은 예허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르하치가 하다, 호이파, 울라를 멸망시킴으..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0)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Ⅱ (10)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Ⅱ 2007-03-15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9)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Ⅰ (9)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Ⅰ 2007-03-08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명의 지배 아래 있던 여진족은 크게 건주, 해서, 야인의 세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했던 종족은 해서여진이었다. 해서여진은 다시 예허부(葉赫部), 하다부(..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8)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Ⅱ (8)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Ⅱ 2007-03-01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만선사관(滿鮮史觀)의 등장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대륙 침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만선사가였던 이나바 이와기치는 1937년 자신의 회갑..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7)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Ⅰ (7)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Ⅰ 2007-02-22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병자호란은 조선 사회와 민중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대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학계의 병자호란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