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 ‘중국 불교조각 1500년 - 불상, 지혜와 자비의 몸’ | |
전시 장소 |
서울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
전시 기간 |
2007년 10월 17일 - 12월 22일 |
일, 공휴일 휴관 (02-880-5333) |
중국 남북조~청대까지 4세기 이후 1500년 동안 제작된 불상 60여 점을
대만 국립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타이베이 내의 사설미술관 및 개인 소장품 58건, 61점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1500년 중국불상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대만 국보급문화재가 대거 한국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500년 중국 불교조각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수준 높은 전시회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1992년 국교 단절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와
대학 박물관이라는 한계로 인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관람객 나종현(27·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씨는
“그냥 큰 기대 없이 왔는데 문화재의 수준이 너무 높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해도 충분한 작품들이 대학 박물관에 있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송기호 서울대 박물관장은
“대만 문화재의 경우 92년 국교 단절 이후
정부나 중앙박물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반입하기 어렵고 실제로 전시된 적도 없다”며
“대만 문화재는 직접 대만에 가지 않는 한 다시 보기 힘든 만큼
많은 국민들이 수준 높은 문화를 감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희정 서울대박물관 객원연구원은
“대만의 개인 소장가들이 문화교류 차원에서 지니고 있던 작품을 흔쾌히 출품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 불상의 독특한 개성과
다채로운 조형 역량의 발전 경로를 한눈에 더듬어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대박물관 진준현 학예연구관은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은 중국 불교조각사 전 흐름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개별 작품의 수준 또한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면서
“특히 중국 불상과 중국 불상에 영향을 받은 한국 불상의 사진을 함께 제시하여
인도와 중국,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계획,
한편 대만 국립역사박물관과 국내 전문가가 작품 감정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불상의 기원은 부처님 열반 후 500년경 간다라와 마투라 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양식의 차이는 현저히 구분된다.
간다라불상은 인체비례에 충실하게 유려한 복식의 주름을 선보인 반면
마투라 불상은 인도의 신앙이 적극 반영돼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관능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불상 양식의 양분화는
굽타왕조를 거치며 서서히 통일되기 시작해 불상의 모양도 다시한번 재정립된다.
중국은 한나라(기원전 206∼서기 220년) 후기, 명제 때인 기원후 1세기경에 불교가 전해졌지만,
불상이 예배대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육조시대인 4세기에 들어선 이후로 알려진다.
인도 불상을 서툴게 모방하는 초기 단계에서
본격적인 불교조각의 시대가 열리는 5세기 북위시대에 이르면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이 생겨나면서 겉옷인 대의(大衣)가 황제의 곤룡포와 같은
포복식으로 바뀌는 등 중국화된 불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포복식 옷주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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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자형 옷주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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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육조시대 초기 불상부터 수나라, 당나라를 거쳐 청나라 시대에 이르는
중국 불교조각사의 전 흐름을 관통한다.
이번 전시는 중국 불상의 변화와 한국 불상의 변천사를 비교하며 감상하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불교 역시 중국의 불교문화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불상의 변천사는 우리나라 불상의 변화와도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출품작 가운데는
(1) 북위시대(北魏, 386-534)
석회암으로 제작한 아난두(阿難頭, 아난존자의 머리 조각)는 제작 시기가 이른 작품에 속한다.
허난성 뤄양(洛陽)의 룽먼석굴(龍門石窟) 중 연화동 유출품으로 알려졌다.
6세기 초에 조성된 용문석굴 연화동의 주존 옆에 시립했던 아난의 머리 부분으로 추정된다.
아난은 부처의 가장 젊은 제자인 까닭에 불교조각에서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보통 나타나며,
이는 지혜 제일로 알려진 가섭이 노회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점과 대비된다.
이번 아난두 역시 주름살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이국적인 외모가 인상적이다.
인도사람이 가진 이목구비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불상 제작 초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2)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두 쪽으로 세포 분열해 성립한 왕조 중 하나인 동위시대(東魏, 534-550)
작품으로 불입상(佛立像, 석회암, 높이 92cm)은 불상과 대좌의 일부만 남아 있고
광배가 모두 파손됐지만, 넓은 어깨와 당당한 체구는 6세기 중엽의 조각임을 알려준다.
머리에는 작은 나발을 촘촘히 표현했고 온화한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돋보이는 출품작이다.
동위 시대(534-550) 불입상. 92㎝.
(3) 북제시대(北濟, 550~579)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이 주목된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에서도 국보 78호와 83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모태가 되는 석회암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높이 65cm)’은
인체 비례와 자세가 균형이 잡혀있고,
앉아있는 상태의 인체가 차지하는 공간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엿보인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 어떻게 우리 스타일로 재창조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다.
가늘게 뜬 눈, 날렵하게 뻗은 콧날, 입가의 옅은 미소, 넓게 각이 진 턱선
그리고 전체적인 자세를 보면
우리의 국보 118호 고구려 금동반가사유상(6∼7세기, 평양 출토, 리움미술관 소장)과 매우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북제의 반가상은 돌로 만들어졌고 목걸이와 구슬을 걸치고 있는 반면
국보 118호 반가상은 금동으로 만들어졌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점.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이
북제의 이 같은 반가사유상 양식을 받아들여 발전해 나갔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4) 북주시대(557~581) 불입상
경주 배리삼존불입상(보물 83호)에 영향을 준 북주관음보살입상은
중국 불교조각이 한국에 끼친 영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5) 수나라 의 관음입상도 관심거리다.
(6) 당대 백대리석으로 만든 십일면관음두(十一面觀音頭, 높이 48cm)
당대(618-907) 십일면관음 청대(1644-1911) 지장보살좌상, 20㎝
(7) 금나라(1115~1234) - 나무로 만든 128㎝짜리 보살좌상.
(8) 원ㆍ명 교체기 목재 나한좌상(羅漢坐像, 높이 117cm) 등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9) 중국 불상 및 보살상과 더불어 전시되는 천왕상과 나한상 등은
중국 불교미술에 구현된 역동적이고 색다른 조형미와 함께
‘신성(神性)’을 ‘인체(人體)’로 담아낸 중국적 미적 감각의 흐름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경향, 연합뉴스, 문화, 동아, 조선, 법보신문 등의 기사 정리, 기주짱 Dream.
****************************** 참고
불상의 육계(상투머리 → 나발) | |
2세기 전기 |
상투 구슬이 표현된 곱슬머리 |
| |
2세기 전기 |
주나라계의 소라상투 |
| |
2세기 중기 |
상투 끈만 표현된 상투머리 |
| |
2세기 후기 |
상투 끈조차 사라진 곱슬머리 |
| |
2세기 후기 |
소라상투의 양식화 |
| |
3세기 전기 |
깎은 머리모양의 육계 |
| |
3세기 중기 |
가로띠에 세로금 낸 머리칼 |
| |
3세기 중기, 말기 |
육계의 ‘나발’로 진전 |
3세기 후기 |
‘나발’의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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