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서울시립미술관] 1. 반 고흐 - 그가 이야기하는 그림들

Gijuzzang Dream 2007. 12. 11. 03:00

 

 

 

                                               반 고흐 - 그가 이야기하는 그림들  

 

 

 
                                                       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1889. 1)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 ~1890)
램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델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 받고 있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깊게 전달하고 있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테오에게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1882년 1월 7~8일    - 반 고흐, 영원의 편지에서 -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된다. 
 
 

                                               

                                                 양배추와 나막신이 있는 정물 (1881. 12)  
 

 
                                                  맥주잔과 과일이 있는 정물 (1881. 12)
 
 
색채와 명암은 얼마나 멋진 것이냐.
그것 앞에서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삶에서 동떨어진 채 지낼 것이다.
모베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가르쳐주었다.
언젠가 너와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1881. 12. 21
 
 

                                               첫걸음마 (1889)  - 밀레 모작(摸作) 
 

                                                        감자를 캐는 두 여자 농부 (1885)
 
 
밀레나 드 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빙정거림에 귀를 기울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한다.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1885. 4. 30
 
 

                                                       밀레(1814~1875)의 이삭줍기 (1857)
 
 
밀레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그는 정말이지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다른 화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인 것이지, 다소 화려한 생활을 한
이스라엘스나 모베같은 사람들은 따르지 않았지만,
밀레는 젊은 화가들이 모든 문제에서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아버지같은 존재다.  
1885. 4.13 
 
 

                                              슬픔 (1882)
 
큰 스케치 두 점을 막 끝냈다. 하나는 전의 것보다 조금 더 크게 그린 '슬픔'으로 
배경없이 인물만 그린 그림이다. 인물의 자세을 약간 바꿨다.
머리카락이 등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흘러내리게 그려서
어께와 목, 등 부분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                                   
1882. 5
 

 

 

반 고흐 '슬픔'의 새끼발가락


 

슬픔에 파묻힌 여인의 몸뚱이… 못생긴 새끼발가락이 더 슬퍼보여
임신한 채 버림받은 세 살 연상의 애인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려낸 듯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반 고흐의 '슬픔',

검은 분필, 44.5×27.0㎝, 1882년.

광기에 사로잡힌 화가,
스스로 자른 귓불, 해바라기, 자화상,
동생 테오, 비극적인 권총 자살,
동시대인들의 몰이해,
수백 통의 편지를 남긴 주인공,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는 생전에 지지리도 복이 없었지만 사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 스타이자 가장 비싼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에 관한 책들이 '갈 봄 여름 없이' 쏟아진다. '반 고흐전'에도 연일 광기어린 그림을 '알현'하려는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룬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광적이다.
 
만약 그가 이런 광경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흐뭇해할까?
아니면 슬픔에 잠길까?
드로잉 화집을 넘기다가 문득 검은색 분필로 스케치한 데생 작품에 눈이 멎었다. 제목이 '슬픔'(1882)이다.

그녀의 배와 못생긴 새끼발가락

벌거벗은 여자가 웅크린 채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가슴에 두 개의 유방이 물주머니처럼 매달려 있고, 불룩한 배와 접힌 뱃살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이던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자세다.
그녀는 지금 슬픔에 잠겨 있다.
만약 타인을 의식했다면 배와 뱃살이 보이지 않게 하고 유방도 가렸을 것이다.
그녀는 슬픔에 젖어서 외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온몸으로 슬퍼하고 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신체 부위가 있다. 바로 복부다. 유난히 불룩하다.
저 정도의 골격이라면 뱃살이 있더라도 저렇게 불룩하지는 않다.
잘못 그렸기 때문일까? 아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체적인 체형이 크게 이상하지 않다. 왜 불룩한 것일까?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부가 불룩하고 유두와 유방이 부풀었다.
그녀는 누구인가?
반 고흐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거리의 여자' 시엔(1850~1904)이다.
얼굴이 얽은 탓에 예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를 그린 데생들을 봐도 외모는 '꽝'이다.
또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반 고흐와 그녀는 화가와 모델 관계로 만났다.
당시 그녀는 33세로 남자에게 버림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어린 딸 한 명 외에도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둥근 배와 부푼 젖가슴, 그리고 고개 숙인 슬픔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슬픔을 강조하는 신체 부위는 또 있다. 그녀의 왼발 새끼발가락이다.
새끼발가락의 표정이 애처롭다. 생기다가 만 것 같은,
그래서 겨우 새끼발가락임을 증명해주는 꼴이 더 그렇다.
이 새끼발가락에 그녀의 생이 압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서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린 운명이
새끼발가락에 담겨 있다고 말이다. 새끼발가락이 못생겨서 더 슬픈 여자!
그렇다. 그녀는 새끼발가락 때문에 더 슬픈 여자다.

반 고흐는 세 살 연상의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동거생활은 행복했다.
오래 가지는 못한다. 결혼문제가 걸렸다.
그는 비참한 환경에 처한 그녀를 구하고자 결혼을 추진한다.
집안의 결사반대에 부딪히고, 결혼은 무산된다. 관계에 금이 간다.
슬픔은 조형적인 대비에서도 고조된다. 돋아나는 풀과 슬픔에 잠긴 모습이 그렇다.
생성(풀)과 소멸(슬픔), 상승(풀)과 하강(슬픔)의 이미지가
한 화면에서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슬픔이 깊어진다.

'친일파' 반 고흐의 슬픈 과욕

뿐만 아니다. 그림을 슬프게 하는 요소는 더 있다.
왼쪽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된 나무가 왠지 어색하다. 차라리 없는 것이 깔끔하다.
나무 때문에 머리 쪽 구도가 복잡해졌다. 위치도 부자연스럽다.
그녀가 앉아 있는 나무 밑동과 주변의 풀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정경에 비하면,
이 나무는 외부에서 꺾어다놓은 것처럼 생뚱맞다. 물론 이럴 수도 있다.
생성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꽃망울 진 나무를 일부러 배치했다고 말이다.
꽃 필 무렵의 나무이므로. 이런 시각도 설득력은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이 나무가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어디서였을까? 그렇다.
저 유명한 안도 히로시게의 우키요에 작품 '가메이도의 매화'(1857)와
그것을 베낀 고흐의 '일본예술품-플럼꽃이 피는 나무'(1887)에 등장하는
매화나무가 이 나무와 닮았다. 그렇다면 나무의 수종이 매화나무라는 뜻이 된다.
 
왜 하필 매화나무였을까? 일본에 열광한 반 고흐였다.
우키요에 판화를 그대로 따라 그리거나 그림 곳곳에 배치할 정도로
일본에 미쳐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친일파'임을 이 그림에서도
은근히 티를 낸 것이 아닐까?
하지만 초상집에 화사한 꽃다발을 갖다놓은 것처럼 눈에 거슬린다. '뱀의 다리'다.

시엔과 반 고흐는 1882년 1월께에 만나서 1883년 9월께 헤어진다.
그녀는 60여 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위해 포즈를 취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판화로도 제작한 '슬픔'이다.
이 그림은 시엔의 새끼발가락 때문에 슬픈 그림이지만
매화나무를 배치한 반 고흐의 과욕 때문에, 더 슬픈 그림이다.
-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 국제신문(www.kookje.co.kr), 2008.02.20, [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

 

 

 
 
 

                                     폭풍이 몰아치는 스헤닝겐 해안 (1882. 8)
 
최근 스헤닝겐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폭풍이 거세게 불어오기 직전의 바다는 몹시 인상적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에는
파도를 잘 볼 수가 없고 일렁이는 광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정말 거센 폭풍우였는데, 소리도 별로 내지 않으면서 아주 격렬하고 인상적이였다.
더러운 비누 거품 같은 색으로 일렁이던 바다 끝에 작은 고기잡이배가 하나 있었고
어둠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인물 몇몇이 아주 작게 보였다.
그림 속에는 무한한 뭔가가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자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정말 매혹적인 것이다.
색채들 속에는 조화나 대조가 숨어 있다.
그래서 색들이 저절로 조화를 이룰 때면
그걸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1882. 8
 
 

                                          숲속에 서 있는 흰옷 입은 소녀 (1882.8)
 
숲에서 습작한 다른 그림은, 마른 나뭇잎이 널려 있는 땅 위에 우뚝 솟은
커다란 초록의 너도밤나무 줄기와 흰 옷을 입은 작은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걸 그릴 때 아주 어려웠던 점은,
일정하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는 나무줄기 사이에 적절한 공간을 주면서,
원근법에 따라 변하는 줄기의 형태와 굵기를 그려내는 동시에
그림을 밝게 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숲에서 숨쉬고, 걸어다니고,
나무 냄새를 맡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그리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1882. 8. 20
                                                         
 

                                                                                  모래언덕 (1882. 8)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속의 가을 저녁의 느낌,
신비롭고 소중한 분위기가 스며들기 전에는 떠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인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강하고 흔들림 없는 붓질 몇 번으로
그 특징을 한 번에 다 집어넣으면서 재빨리 그려야 했다.  
1882. 9. 3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4)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황금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둡거나 흐린 배경에는 이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의 내용이 아주 어두운 희색조의 실내를 들어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삶속에서도, 램프가 하얀 벽 위로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림 바깥에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림 전체가 뒤쪽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1885. 4. 30      
 
              

                                                      탕기 영감의 초상 (1877)
 
어제 탕기 영감을 만났다. 그는 내가 막 완성한 그림을 가게 진열장에 걸었단다.
네가 떠난 후 네 점을 완성했고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길고 큰 그림들을 팔기는 어렵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야외의 신선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1887. 여름         
 
                         

                                                복숭아 꽃이 활짝 핀 라 크로 (1889. 4)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1888. 3)
 

 

 

                                                             씨 뿌리는 사람 (1888. 6)
 
 베르나르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은 온통 파헤쳐진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고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힁색이 약간 섞인 황색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1888. 6. 18    
 
       

                                                             라 크로의 추수 (1886. 6) 
 

                                                                                오베르의 밀밭 
 

                                                              별이 빛나는 밤 (1889. 6)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1888. 6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8. 9)
 
언제쯤이면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1888. 6. 18
 
 

                                                                  열네 송이 해바라기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 (1888. 8)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다.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열두 점 정도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그림을 모두 모아놓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겠지.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은 빨리 시들어버리는데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1888.8
                                                                        
 

                               아를의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1888. 9)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와인빛 도는 붉은색과 대비해서,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 지옥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 했다.               
1888. 9. 8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1888. 9)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1888. 9
 
 

                                                 아를의 고흐 집 (노란집) (1888. 9)
 
찬란한 노란색을 얻기 위해 여름 내내 취해 있었다는 고흐 - 
고갱과의 생활을 위해 집을 구해 노란색으로 칠한다.
그리고 고갱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을 그린다. 
 
 

                                       아를에 있는 고흐의 침실(나의 방) (1888. 10)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체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1888. 10. 16
 
 

                                                                            붉은 포도밭 (1888. 11)
 
온통 자주색과 노란색으로 그린 포도밭 그림을 막 완성했다.
작게 그린 인물들은 푸른색과 보라색이고 태양은 노랗다.
내 생각에 몽티셀리의 풍경화와 나란히 걸어두면 좋을 것 같다.     
1888. 11~12월
 
1890년 1월18일 브르셀의 20인전에서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지극히 호의적인 평론이 프랑스 신문에 실린다.
또한 그 전시회에서 '붉은 포도밭'이 400프랑에 팔린다.
그것은 그의 평생에 유일하게 팔린 유화 작품이다.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 (1888. 11) 폴 고갱 作
 
사실 우리 둘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당연히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1888. 12. 23
  
 
고갱이 고흐와의 우정의 표시로 그렸다는 그림
- 시들어버린 해바라기며, 압생트 술에 취하여 눈마져 감겨있는 고흐의 모습이며... 
 
 

                             아를의 밤의 카페(지누부인의 초상) (1890) 폴 고갱 作
 
고흐와 고갱은 지누 부인(드 라가르 카페 주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이 그림으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흐는 탁자에 몇 권의 책이 펼쳐진 지누 부인을 그리지만,
고갱은 싸구려 술(압생트)병과 술잔이 놓여있고,
뒤에는 고흐가 아버지처럼 좋아하고 따르는 우체부 룰랭이
창녀들을 희롱하는 모습을 그린다. (술에 취해 탁자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종종 그림을 같이 그리는 고흐의 친구라고 한다.)  
 
 

                             아를의 여인( 지누 부인의 초상) (1890. 2)                                                                                                 
           

                                                                        고갱의 의자 (1888. 12)
 
드한에게 빨강과 초록으로 채색한 빈 의자 그림을 보여줬으면 좋겠구나.
불을 켠 양초와 두 권의 소설(하나는 노란색, 다른 하나는 분홍색)이
놓여있는 고갱의 의자 그림 말이다.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가 놓여 있는 의자 (1888. 12)
 
오늘은 그 그림과 한 쌍을 이룰 다른 그림을 그렸다. 바로 나 자신의 빈 의자이다.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가 놓여 있는 하얀 전나무 의자란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이 두 작업에서 나는 선명한 색을 이용하여
빛의 효과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1889. 1. 17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 (1888. 8)
  

                                                   룰랭 부인의 초상 (1889. 1)
 
네가 '룰랭 부인의 초상'에 대해 한 말이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어떤 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 값싼 그림들로 만족하고 손풍금 소리를 들으며
감동하는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살롱에 드나드는 도시의 신사양반들보다는 더 정직한 감동일 테니까.      
1889. 5. 25
 
 

                                                      아를 요양원의 병실 (1889. 4)
                                                                                                      
이곳으로 오길 잘한 것 같다.
동물원 같은 곳에 갇힌 미친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보노라면,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가 사라진다.
그러면서 정신병도 다른 질병과 같은 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1889. 5
 
 
빈센트 형에게
형이 생레미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니,
그리고 아를에서보다 더 편안한 느낌이라니 정말 기뻐.
하지만 형이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길 원해.
주변에 그렇게 많은 정신이상자들이 있는 게 그리 유쾌하진 않을 테니까.
내가 원하는 건 형의 생활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서 
한편으로 형을 자유롭게 해주는 곳을 찾는 거야.   
1889. 5. 22  테오
 
 

                                                                                 라일락 (1889. 5)
 
요즘은 두 점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라색 붓꽃 그림과 라일락 덤불 그림으로 모두 정원에서 얻은 소재다.    
1889. 5
 
 

                                                        양귀비가 있는 들판 (1889. 6)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1890. 5)
 
고갱에게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사이프러스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
눈에 뜨일락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생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 있네.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지.
아래쪽에는 키 큰 노란색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지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 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랜지색 불빛이 새어나오고,
키가 무척 큰 사이프러스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 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1890. 6  
 
 

                                      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1889. 6)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1889. 6. 25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1890. 2)
 
사랑하는 어머니께
사실 전 태어난 조카(테오의 아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1890. 2.15   고흐
 
 

                                             울고 있는 노인 (1890. 4~5)
 
이곳(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하느님 맙소사! 1년이 넘도록 참아왔으니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지루함과 슬픔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급하다.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1890. 5. 4
 
 

                                                            오베르의 교회 (1890. 6)
 
코발트 블루의 단조로운 하늘과
우뚝 선 교회 건물이 인상적인 이 작품의 무대이며,
고흐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는 파리 교외에 위치해 있다.
 
 

                                                      닥터 가세의 초상 (1890. 6)
 
닥터 가세는 어딘지 아파 보이고 멍해 보인다.
그는 나이가 많은데, 몇 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고 한다.
그는 이 초상화를 아주 좋아해서,
가능하면 똑같은걸 하나 더 그려서 자기에게 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1890. 4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7)
 
고흐의 마지막 작품 무대인 오베르에는,
밀밭이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7월엔
밀이삭을 쪼아 먹기 위해 날아드는 까마귀 떼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자화상 (1889. 9)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왈칵 겁이 난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막상 겪게 되면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나는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살을 시도했는데 물이 너무 찬 걸 깨닫고 강둑으로 기어올라가는 사람처럼....  
1889. 9. 7~8
 
삶은 공정하지 않았다.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나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할 수 없었다.
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1889. 5. 2
 
 

                                                       반 고흐의 묘지
 
1890년 7월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고흐,
'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9. 1. 28.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던 고흐 -
 
 
일요일 성벽 근처 밀밭에서 방아쇠를 당기고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다.
동생 테오도 6개월 후(1891년 1월) 만성 신장염으로 형의 뒤를 따르고
지금은 이곳 형의 곁에서 잠들어 있다.
 
형의 죽음이
저에게 얼마나 큰 슬픔을 안겨주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저는 평생 이 슬픔을 짊어지고 가야만 합니다.
흔한 일이지만 이제와서야 형의 작품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젠 늦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지금, 형은 홀로 밀밭 속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형은 제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형이었습니다.    
-  동생 테오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 -
  [스크랩] 출처 :  은파
 

 
 
 
 
 
 
 
 

 

 

- The Water is Wide / Karla Bon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