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간송미술관] 2005년 가을 - 蘭竹大展

Gijuzzang Dream 2007. 11. 30. 05:05

 

 간송미술관이 난(蘭)과 죽(竹)만을 소재로 한

 각 시기의 대표작들을 모은 가을 정기전(16-30일까지)에서

 군자의 정신세계와 우리 문화의 변천사를 한자리에 담는다.

 

 조선 500년을 통틀어 묵죽(墨竹)의 최고작가라는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작품부터 시작해

 이후 각 시기를 대표하는 명가들의 작품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이후 현존하는 난죽화(蘭竹畵)를 통해

 선비의 곧은 성품을 상징하는 난(蘭)과 죽(竹) 그림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가려 뽑아 당시의 문화적 성격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정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는"  난초의 곡선미와,

 "홀로 곧고 푸르면서 욕심 없고 기개 드높은"  대나무의 직선미도 한껏 음미할 수 있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69회 정기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는 모두 105점이 선보인다.


 왜적의 칼에 맞아 한 팔을 잃을 뻔한 세종의 4세손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4)부터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 1561-1613), 미수 허목(眉瘦 許穆: 1595-1682),

 위빈 김세록(渭濱 金世祿: 이정의 외손, 1601-1689)과 수운 유덕장(岫雲 柳德章: 1675-1756),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능호관 이인상(凌壺觀 李麟祥: 1710-1760),

 성재 최북(星齋 崔北: 1712- ?),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년경), 풍고 김조순(楓皐 金祖淳: 1765-1832),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1789-1866), 소치 허유(小癡 許維: 1809-1892),

 대원군 이하응(大院君 李昰應: 1820-1898), 소호 김응원(小湖 金應元: 1855-1921),

 운미 민영익(芸楣 閔泳翊: 1860-1914),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

 일주 김진우(一洲 金振宇: 1882-1950), 조옥봉(玉峯: 1913-현재) 등

 37명의 대가들의 묵죽과 묵란이 소개된다.

 

 난(蘭)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지만 꽃향기가 온 산을 진동시키기에,

 자기 절제로 세상을 즐겁게 하는 군자(君子)에 비유된다.

 

 대나무(竹) 역시 속이 비고 껍질이 단단해 군자의 표상이다.

 

 난죽화(蘭竹畵)는 고려 중기 이후 문인화로 각광 받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번창했다.

 난죽(蘭竹) 두 그림은 경사시문(經史詩文)에 정통한 문사들이 여기로 그리는 그림의 주제로

 매화,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일컬어지면서

 고려시대부터 많이 그려졌다는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고려시대 작품은 전해오는 바가 없다.

 

 조선조 들어서도 세종(1397-1450), 선조(1552-1608)의 묵란 솜씨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고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8-1465)과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 1491-1554)의 묵죽이

 으뜸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존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임진왜란 이전의 사군자는 불행히도 흔적이 드물어 단지 탄은 이정 이후 작품부터 전해온다.

 

 이정은 율곡 이이(1536-84)의 조선성리학 이념에 공명한 첫 세대로 이념미가 강하다.

 이번 전시에서 평소 보기 힘든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의 대나무 그림 10여 점이

 한자리에 나온다.

 한국회화 사상 최고의 묵죽화가로 평가받는 그의 출품작인  ‘풍죽(風竹)’ 은 

 그의 묵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바람에 맞선 대나무 네 그루를 화폭에 옮겨 놓은 이 작품은

 바람을 견뎌내는 대나무의 응축된 기세를 표출한 절정의 기량과 최상의 품격이 돋보인다.

 바람 타는 대, 눈 맞는 대, 죽순 나는 대, 다 큰 대 등 이정만큼 대나무의 일생을

 대나무 자신이 되어 표현한 이도 드물었다.

 오죽 빼어났으면,

 '앞에도 이정 만한 이가 없고, 뒤에도 이정 만한 이가 없다' 는 말이 전해올까.


▲ 탄은 이정의  "풍죽(風竹)"
▲ 탄은 이정의  "‘어린 대"

 

 수운 유덕장 역시

 탄은 이정의 묵죽법을 이어받으면서도 대나무의 회화성을 강조해

 진경시대 화단에서 묵죽으로 일세를 풍미한 문인화가로

 철저한 사생으로 생기있고 사실감있게 대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현재 심사정은 남종문인화풍을 적극 수용, 소화해 조선남종화풍을 완성한 사대부 화가다.
 그의 '운근동죽(雲根凍竹, 바위틈에 얼어 있는 대나무)' 은

 눈을 이고 있어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혹독한 겨울을 만나 상처받고 움츠려든 대나무로

 작가 자신의 처지와 심회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 현재 심사정  "운근동죽(雲根凍竹)" - 바위틈에 얼어 있는 대나무(1761년), 38×27 
 
 
 표암 강세황의  ‘청죽함로'(靑竹含露, 푸른 대가 이슬을 머금다)’는

 심사정의 작품과 거의 같은 소재와 구도로 그린 작품이지만

 훨씬 안온하고 청담한 느낌을 준다.

 

 문인보다는 화가에 가까웠던 심사정은 회화적 감각과 흥취를 우선시한 반면,

 화가라기 보다는 문인에 가까웠던 강세황은 서예적 법식을 고수하면서

 안온한 아취나 고상한 격조 등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발생한 차이로 해석된다.

 

 추사 김정희 난법의 요체를 보여주는  ‘적설만산(積雪滿山)’ 과 같은 대표작들과 함께

 추사로부터 묵란을 배웠다는

 생몰연대 미상의 기생 소미(小眉)와 원향(原香)의 묵란도 흥미롭다.
 

 이밖에 추사 김정희의 추상적 이념미를 계승한 흥선대원군 이하응,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추사의 난죽법을 국제화시킨 운미 민영익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일주 김진우를 거쳐 지금의 옥봉 조기순까지 모두 다뤄,

 우리 난죽화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다.

 

 백인산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위원은,

 “난과 죽이 지닌 상징성과 단순 강직하면서 청정한 미감이

 조선왕조를 주도했던 성리학자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관에 맞았기 때문” 이라며

 “특히 탄은의 작품은 간결한 구도, 강인한 필치, 정중동의 기세와

 팽팽한 긴장감을 바탕으로 하면서 서예성과 회화성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중국의 묵죽화와 확연히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 이라며

 "난과 대나무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

 그 그림이 그려지던 시기의 문화성격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고 말했다.

- 2005. 10. 10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국경제 등에서 종합 정리

 

10월 16일(일) - 30일(일)까지 / ☎ (02)762-0442 / 입장료 무료.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6번 출구   - 도보 1.5km

                                              -  버스이용 : 성북초등학교 정문 앞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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