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제 제석사 암막새기와
인동당초문 · 만초문이 아니라 영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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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문을 인동당초문이라 부르는 것은 번개를 보고 반딧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영기문은 무한히 다양하게 성립되므로 일일이 명칭을 붙이기 어려우며, 영기문이란 무늬 일체의 통칭이다.
7년 전 쯤 우연히 책에서 손바닥만한 와당 파편 사진을 보고 놀랐다.
고구려 내리 1호분 벽화의 영기문(도 6)과 느낌이 같았기 때문에
백제의 암막새의 파편이라는 확신은 물론 고구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사원의 지붕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나치는 것 같다. 지붕의 와당 무늬는 한국미술사의 보고이다.
지붕이란 하늘과 닿아있고 우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지붕에 우주와 관련된 조형들이 많지만,
건축 전공자는 와당에 관심이 없고,
기와 전공자는 와당의 무늬에 대하여는 아무런 연구가 없기 때문에 기와 분야는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평와에 드림새가 있고 그 공간에 영기문 압인
중국 신라에 없었던 영기문 암막새기와를 백제가 창조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붕의 미학이 완성’
익산 제석사 출토 암막새 파편을 본 후 소장처인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실견할 수 있어서
사진촬영 하며 흥분했지만 전체 모양을 알 수 없어서 전체가 영기문으로 장엄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1994년에 익산 제석사(帝釋寺) 터 발굴을 했고
그 때 수습한 작품들이 박물관 수장고에 있다는 것을 알고 조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수장고에서 만난 암막새기와는
실은 완형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한 쪽 끝을 자른 것이어서 좌우대칭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모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암막새의 중앙에 있는 추상적 용의 얼굴이었다.(도 4)
내가 파편에서 본 것은 용이 입 양쪽으로 발산하는 영기문의 일부였던 것이다.
앞서 보아온 추녀마루기와나 사래기와의 용면와는
공간이 좁아서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을 길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암막새는 길이가 김으로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 무한히 길게 발산시킬 수 있다.
아, 모든 영기문이란 추상적이건 구상적이건 모두 용의 입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친 것은 요즈음의 일이다.
그런데 원광대학에서 낸 보고서에는 이 와당의 무늬를
귀면(鬼面)과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라 불렀고,
시대도 통일신라시대 것이라 불렀으므로 백제 기와 도록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매우 분노하였다.
이 기념비적인 와당이 숱한 통일신라 암막새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였다.
(도 1) 제석사 수막새. |
나는 분연히 한국기와학회에서 이 기와에 대하여 발표했다.
그런데 기와학회의 반응은 뜻밖에 무덤덤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이 암막새와 함께 나온 한 짝인 수막새는 전형적인 백제 기와(도 1)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통일신라 것이라고 우기는 것일까.
그 학회 때 나는 기와 전공자들이 암막새는 통일신라시대의 창안이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갑자기 백제 암막새의 출현을 주장하자 기왕의 학설을 바로잡기가 싫었던 것이다.
최근 2009년 제석사 발굴에서 마침내 완형의 암막새를 보았다(도 2).
그런데 완형임에도 왜 좌우 끝에 마감이 없는지 수수께끼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바로 양쪽 끝은 수막새기와가 놓임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감을 하지 않고
용도에 따라 자유로이 잘라서 사용한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이처럼 한 세트의 암막새와 수막새가 함께 발굴되었어도 기와전공자들은 적극적으로 조명하지 않았다.
이런 물증이 나왔어도 아직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한국 학자들 대부분과 학생들은
무심히 '인동당초문'이라 부르고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지난 주 마침내 익산 미륵사 기념관에서 한 세트를 전시한 것을 보니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 것이라는 설명을 처음 보았다.(도 3)
그러나 문제는 이 기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학자들이 이해하려면 연구는 이제부터이다.
(도 3) 제석사 암막새와 수막새의 한 세트. |
제석사 출토 암막새기와는 평와에 드림새가 있고
그 드림새의 공간에 영기문을 압인하여 만든 것으로,
백제인은 본격적인 암막새 기와를 세계 최초로 창조였던 것이다.
고구려나 중국에서는 만든 적이 없고,
신라에도 없었던 영기문 암막새기와를 백제가 창조함으로써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붕의 미학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최초의 암막새에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 아로새겨져 있지 않은가.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나온다는 것은 기와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사에서 괄목할 만한,
세계 미술사 역사를 전면적으로 해석을 달리해야 할 가장 독창적이고 중요한 기념비적인 도상이다.
용의 입에서는 무한히 다양하게 조형화한 갖가지 영기문이 발산한다.
용이기 때문에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나온다는 것은, 동양의 우주생성론과 관련이 있다.
이 중대한 진리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의 역사에서 귀면을 용면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한국미술사학의 연구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면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의 도상이 어떤 조형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지 알아보자.
용의 얼굴은 놀라운 솜씨로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도 4)
그리고 양쪽 입가에서 가장 먼저 면(面)으로 된 제1영기싹이 나오고
만물생성의 제1영기싹에서 다시 두 번째 제3영기싹이 나오지만
구조는 본질적으로 첫 번째 제3영기싹과 같은 것이다.(도 5)
그리고 동시에 다시 최초의 제3영기싹이 나오면서 절묘하게 반복하는데,
같은 영기문의 전개를 피하여 조형 상으로 변화를 준 것뿐이다.
이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은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이 된다.
제1영기싹이 만물생성의 근원이라면 제2, 제3영기싹은 자연히 만물생성의 근원이 된다.
자, 이 백제 제석사 암막새의 조형은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법륭사(法隆寺)를 비롯하여 초기의 여러 사찰을 창건할 때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중앙에 용의 얼굴 대신에 용을 상징하는 두 개의 보주를 두고
그 보주 양쪽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의 기본적 구성이 제석사 것과 똑같지 않은가.(도 7, 8)
그러므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원을 창건하였을 때 일본의 와공이 건너간 것이 틀림없다.
용의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무늬를 일본이나 한국 학자들은 ‘당나라 풀’인 '당초문(唐草文)'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만초문(蔓草文)'이라는 용어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100년 동안 당초문이라 부르더니
요즈음 중국 영향으로 만초문이라 쓰기도 하여 혼란이 일고 있다.
당초문이건 만초문이건, 이런 용어들은 줄기, 덩굴, 잎이 얽히고설킨 식물문양에 대한 호칭이다.
연속문양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고
주제식물에 따라 인동당초, 포도당초, 모란당초 등으로 이름 붙여진 외에
양식화되어 식물의 종류를 판별할 수 없는 것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막론하고
건축. 공예. 회화. 조각. 복식 등 조형미술의 모든 분야에 장식문양으로서 세계 각지에서 쓰인다.
그러나 이 모든 무늬는 백제 제석사 암막새 무늬에서 살펴보았듯이 단순한 덩굴풀이 아니라,
놀랍게도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동양의 우주생성론을 반영하는 '영기문'이다.
모두가 제1영기싹과 제2영기싹과 제3영기싹으로 이루어진 영기문이다.
식물이 아니다. 모두 식물로 보이나 결코 식물이 아니고
식물 모양을 빌린 심오한 추상적인 진리, 생명의 무한한 전개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인동당초, 포도당초, 모란당초, 연화당초, 서양의 아칸서스나 아라베스크란 용어들은
모두 올바르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지닌 이 모든 무늬에 올바른 용어를 부여하지 않았으니,
단지 무늬만이 아니라 조형미술의 해석과 개념 정의에까지 치명적 오류를 범하게 되어
역사적으로 쓰여지는 논문들은 대부분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어
연구가 진행되어 갈수록 오류가 엄청나게 축적하기 마련이 아닌가.
그리고 모란이나 연꽃이나 국화 등이 어떻게 덩굴을 이루는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예술은 제멋대로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형미술은 과학 이상으로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다.
나의 해석방법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며,
하나하나 어떤 조형이건 철저히 증명해 나가므로, 허점이 조금도 없다.
영기화생론이란 나의 이론은 결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어서 보편성을 띠운다.
그 영기화생론의 원리로 일체의 당초문의 진실이 풀리며 올바른 조형구성과 상징구조를 밝히게 될 것이다.
내가 세계의 모든 덩굴무늬가 영기문임을 확인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우렁찬 목소리로 사자후했었다.
앞으로 당초문이나 만초문이라 부르는 것은,
생명생성의 과정을 인류가 이루어낸 위대한 상징성을 삭제하는 것이므로 문화적 범죄에 속한다.
내가 명명한 '영기문'이란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안을 제시하여 주기 바란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51호, 2011.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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