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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4. 용의 입에서 다양한 '영기문'이 나온다.

Gijuzzang Dream 2011. 11. 3. 21:33

 

 

 

 

 

 

 4. 고구려벽화의 조형 분석

 

 

용의 입에서 다양한 영기문이 나온다

 

 

 

 

매주 쓰고 있는 이 연재는 틀린 용어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틀린 해석도 지적하며

올바른 용어와 해석을 제시하며, 올바로 논증하고 있으니 이 글은 논문의 성격을 띤다.

무의미하거나 오류가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용어와 그에 따른 틀린 해석을 모두 올바로 잡아가는 동안,

세계의 그 모든 것이 심오한 사상을 내포한 아름다운 조형미술로 새로 태어난다.

나는 이것을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한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자세히 보는 사람도 없었고, 보이는 적도 없었고,

무엇인지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고,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용의 얼굴을 귀면이라고 부르고 입에서 나오는 것을 당초문이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백제 제석사 출토 암막새기와에서 영기문이 나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면 그 영기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고구려벽화 사신총에서 벽화 전공자들이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라고 부르고

그저 장식이라고 지나쳐왔던 무늬를 해독하면서 나의 학문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구려벽화에서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쳤던 조형은 무려 고구려벽화 전체의 80%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와 관련된 그 이후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의 조형의 80%가 눈에 보이지 않고 상징도 읽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고구려벽화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추상적인 무늬를 '괴운문(怪雲文)'이라 부르고,

무엇인지 모르는 동물모습은 '괴수(怪獸)'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속적인 구상적인 무늬는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당초문(唐草文)'이라 부른다.

 

그러니 결국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나 자신도 그랬었다.

그러나 독학으로 작품조사에 충실했고 조형미술의 모든 장르에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간의 도가사상과 불교사상에 관한 고전들을 평생 지니고 다니고

베게 옆에 두고 읽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기문'이 무엇인지 알려면

고구려벽화 가운데 4세기의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안악 3호분의 괴운문의 정체부터 풀어내야 한다.

그 무늬의 정체는 그 무늬를 보고 처음부터 단번에 해독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고구려벽화의 무엇인지 모르는 조형들을 해독하여 풀어내려는

끈질긴 노력에 대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영기문을 채색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해독할 수 있었다.

고구려벽화를 연구하면서 이미 불상의 광배에 대한 논문을 썼을 때,

제1영기싹의 절대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악 3호분의 영기문의 흐름만은 읽을 수 있었다.(도 1)

 

∽ 모양은 두 개의 제1영기싹이 연결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영기싹 머리에서 작은 제1영기싹이 생긴다는 것도,

다시 거기에서 더 작은 영기싹이 연속적으로 생긴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도처에 있는 반구형 까만 부분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당초문은 틀린 용어

덩굴모양 일체는 우주에 충만한

영기에서 생명이 생성되는 영기문

 

그 다음 삼실총에서 좀 더 구상적인 같은 흐름의 영기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전개의 원리는 안악 1호분의 영기문과 같았으나

역시 도처에 있는 반구형의 모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도 2)

그 다음 사신총 벽화에서 사람들이 인동당초문이라고 부르는 도상을 해독하고는

안악 1호분 영기문의 의문이 완전히 풀렸다. 사신총 영기문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도 3)

 

이 영기문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미술사학 연구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이 영기문의 영기문 줄기의 곳곳에서 돋아나는 제1영기싹의 여러 가지 모양들을 보며

안악 1호분의 영기문의 그 검은 색의 반구형의 모양이

바로 제1영기싹을 단순화시킨 모양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일체의 덩굴모양 영기문의 시원적 조형이다.

영기문 줄기의 갈래 사이에서 만물이 탄생하고, 제1영기싹 전개의 끝에서도 만물이 탄생한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당초문이 바로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기문임을 알았다.

우주에 충만한 영기에서 생명이 생성하는 과정이 놀랍게 당초문의 정체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영기문이 생명생성의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물’임을 확신하고 스스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면서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일체는 물에서 생성한다.

여래나 보살도 영화된 물, 즉 영수(靈水)에서 화생하므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여래의 영수화생(靈水化生)’이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은, 실은 영수에서 영기가 발산하는 것이다.

용은 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니 용 자체가 물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백제 제석사 암막새의 도상이 해독되었으며

이처럼 백제에서 처음 창안된 후,

통일신라시대 암막새기와에서는 초기에는 만들어지지 않고 8세기부터 나타난다.

초기에는 용을 옆으로 표현하여 누구나 용임을 알아볼 수 있다.

8세기부터 만들어지는 용의 정면 모습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은, 백제 것과는 조형이 매우 달라서

불국사 출토 암막새 파편은 오히려 혼돈의 영기문을 절묘하게 표현하여 놀랍다.(도 4)

 

보이지 않는 혼돈의 영기를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는 추상적 영기문으로 나타내어

백제 것처럼 명료하지 않다. 그 파편은 처음 보았을때 보잘 것 없었으나,

백묘를 떠보고 그 절묘한 조형에 깜짝 놀랐다.

입 양쪽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에서 용의 다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채색분석해보면 매우 흥미 있는 조형을 보여주는데, 혼돈 가운데 명료한 조형은 역시 제1영기싹들이다.

 

입에서 길게 뻗어나가는 제1영기싹 영기문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다.(도 5)

참으로 놀라운 조형이다. 어떻게 이러한 용의 조형을 창조했단 말인가.

발톱과 다리가 있으니 영기문에서 용이 화생하는 조형을 이처럼 절묘하게 표한한 것은 과연 독보적이다.

 

 

 

이런 암막새는 고려시대까지 계속한다.

처음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도상을 따르며

용 얼굴양쪽에서 제1영기싹 영기문에서 불꽃모양 영기문이 강력히 발산한다.(도 6)

제1영기싹이 두 개 어울려 태극모양을 이루기도 한다.(도 7)

그러다가 말기에 이르러

추상적인 용 얼굴의 입에서 여래의 정상보주에서 발산하는 것과 똑같은 영기문이 발산한다.(도 8)

마침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극도로 추상화된 암막새가 출현한다.(도 9)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을 나타낸 암막새 가운데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것을 들라면

이 고려 암막새를 들겠다. 용이란 원래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통일신라 암막새 도상들도 귀면과 당초문이라 부르고 있다.

 

 

장려한 궁전과 장엄한 사원

한 순간 화마에 휩쓸려도

오로지

용 연꽃 영기문 와당만은 타지 않고

영원히 시대정신 전해주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52호, 2011. 0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