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하야시 시헤이는 왜 독도를 '황색' 표시했을까

Gijuzzang Dream 2011. 8. 3. 23:44

 

 

 

 

 

 

 

 

하야시 시헤이는 왜 독도를 '황색' 표시했을까

 

 

 

최근 들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당국의 태도가 무모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독도의 날을 제정하고,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설명하는 역사교과서가 편찬됐다.

심지어 무력에 의한 독도 탈취설까지 나오는가 하면 국방백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2차례에 걸친 침략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상처와 재난을 가져다 준 일본이 또다시 우리의 신성한 영토인 독도에 대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심히 자극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국민들은 독도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독도는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할 뿐 독도가 왜 우리의 땅인지 또 일본이 무슨 근거로 독도를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 주장이 어떻게 황당한지는 잘 모른 채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흥분을 앞세우는 게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재상기하고 일본 당국이 무슨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또 우리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살펴본다.

 

 

독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

 

지난날 우산도, 석도로 불리던 오늘날의 독도는 울릉도에 부속된 섬의 하나로, 조상 대대로 우리 한민족과 함께해 온 우리의 신성한 영토다.

 

삼국시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에 이르는 지역에는 '우산국'이라는 소국이 있었으나 512년 6월 신라가 우산국을 정복했다. 신라에 귀속된 우산국은 신라에 매해 조공으로 토산물을 바쳤으며 이 전통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다. 이후 1032년 울릉도의 명칭은 '우릉'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왜적의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조선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섬을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실시한다. 이 공도정책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지 이 지역에 대한 포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 막부정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탐욕을 나타내자 조선정부는 울릉도에 백성들을 정착시킨다. 

 

조선 말기에는 갑신정변을 주도한 동남제도개척사 겸 포경사 김옥균을 통해 이민장려정책을 실시하기도 한다.

 

물론 17세기 말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야심을 지닌 일본의 막부정부와 약간의 논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조선정부와 민간인 안영복 장군의 노력으로 일본 막부정부가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 어부들의 월경과 고기잡이를 금지한다는 것을 재확인함으로써 논쟁은 완전히 종결됐다.

 

20세기 초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식민통치를 시작한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죽도(일본명 다께시마)로 변경하고 시마네현 토지대장에 기재해 일방적으로 일본영토 합병을 선언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당시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우리는 독도를 포함한 빼앗긴 우리 영토를 반환받을 수 있었다.

 

독도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발행된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軍政編),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뿐 아니라 이후에 발간된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에도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이는 이미 우리 선조들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적 기록에도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인정하는 자료들이 다수 존재한다.

일본 실학파의 최고 학자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1793)는 1785년경에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그는 이 책의 부록 지도인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와 '대일본지도(大日本地圖)'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일본의 색깔인 녹색이 아니라 조선의 색깔인 황색으로 표시해 조선 영토임을 명백히 밝혔다.

 

 ▲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일본의 문헌 자료

왼쪽사진은 1877년 일본태정관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는 서류 

오른쪽 사진은 일본실학파의 대표 학자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발간한 지도

그는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영토인 황색으로 표시하였으며

거기다 다시 ’朝鮮ノ, 持ニ(조선의 것으로)’라고 문자를 적어 넣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거듭해서 강조하였다.

 

 

그는 향후 일본인들이 오늘처럼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것을 염려했는지 그 옆에 다시 '朝鮮ノ, 持ニ(조선의 것으로)'라고 적어 넣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 일본 육군성 참모국이 1875년(메이지 8년)에 편찬한 '조선전도(朝鮮全圖)'에도 울릉도(竹島)와 함께 독도(우산도, 松島)를 조선 영토로 표시했다.

 

1936년 일본 육군참모본부(육지측량부)는 일본제국의 지배영토를 원래의 병탄(倂呑) 구역별로 나누어 표시한 '지도구역일람도(地圖區域一覽圖)'를 발행한다. 

 

이 지도에서도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조선구역'에 넣어 표시했다.

이 지도는 일제 패망(1945년) 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일본제국을 해체하고 강탈한 영토를 원주인에게 돌려줄 때 독도가 한국에 반환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일본측 근거자료의 하나로, 연합국 최고사령부에 의해 사용됐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그 모순점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일본 당국은 집요하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외교부의 홈페이지는 '독도영유권에 관한 우리(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우리(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소위 '독도 문제를 이해하는 10가지 포인트'라는 파일을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올려놓았다.

또 일본역사 교과서에는 독도가 자국영토임을 주장하는 3가지 근거를 요약해 게시하고 있다.

 

그럼 그들이 제시하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근거들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하나하나 반박해 보자.

 

먼저 오늘은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여러 가지 근거 중에서(일본외교부의 소위 '독도문제 이해의 10가지'와 일본교과서에서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3가지 근거)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른 독도영유권 '주장설'을 한번 반박해 보자.

 

일본측 주장에 의하면, 1951년 9월 8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평화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지역으로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정했기 때문으로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것이다.

 

 

다음은 일본 외교부가 올린 '독도문제 이해의 10가지' 중에서 7번째 부분 내용의 원문이다. 

 

 

▲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 선전책자파일 화면(캡쳐)

일본외교부에 올려져 있는 소위 "독도이해의 10가지 포인트"라는 파일자료중 7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마치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정한듯이 주장하고 있다.

 

 

 

7.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기초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도록 요구했습니다만 미국은 독도가 일본의 관할 하에 있다고 해서 이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1) 1951년 9월 서명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일본의 조선독립 승인을 규정하는 동시에, 일본이 포기해야 할 지역으로서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으로 규정했습니다

 

2) 이 부분에 관한 미.영 양국에 의한 초안내용을 알게 된 한국은 같은 해 7월,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로부터 에치슨 미국무장관 앞으로 서한을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은 [한국정부는 제 2조 a 항의 "포기한다"라는 말을](일본 국이) 조선 및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및 파랑도를 포함하는 일본에 의한 조선합병이전에 조선의 일부였던 섬들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1945년 8월 9일에 포기했음을 확인한다"로 바꿀 것을 요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 이 한국측 의견서에 대해 미국은 같은 해 8월 러스크 극동담당 국무차관보로부터 양유찬 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며, 한국측의 주장을 명확하게 부정했습니다.

 

"... 미합중 정부는, 1945년 8월 9일 일본에 의한 포츠담선언 수락이 이 선언에서 취급된 지역에 대한 일본의 정식 내지 최종적인 주권의 포기를 구성한다는 이론을(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취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도 또는 리앙쿠르 암으로 알려진 섬에 관해서는, 통상 무인인 이 바위섬은 우리들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도지청의 관할 하에 있다. 이 섬은 일찍이 조선에 의해 영유권주장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

 

이 내용들을 보면,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 명백합니다.

또한 밴 플리트 대사의 귀국 보고서에서도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며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포기한 섬들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결론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주장을 들어보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마치 독도를 일본의 것으로 인정했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약에서 독도가 빠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일본의 영토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국에서 발견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과정에 유일하게 사용된 지도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독도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는 조약 내용과 달리 당시 조약상 영토지역을 표시하는 서류로 인정할 수 있는 이 지도에는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표기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인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또 일본은 당시 미국 차관보가 한국대사에게 보낸 서한을 근거로 평화조약에서 마치 미국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 1개 국가의 입장일 뿐이지 조약에 참가한 전체 국가의 의견으로 볼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미국이 주도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48개의 연합국 성원국들이 함께 진행한 엄연한 국제조약이다. 미국은 48개 연합국 성원국들 중 한 개 회원국일 뿐이며 미국의 입장이 곧 48개 연합국의 의견은 아니다.

 

독도가 명시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는 달리 1946년 당시의 합법적인 국제기구인 연합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 발표한 명령 제677호를 통해 독도를 원주인인 한국(당시 미군정)에 반환할 것을 결정,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밝혔다.

 

또 그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역영역을 표시하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증명한) 부속 지도를 첨부했다.

 

뿐만 아니라 최고연합사령부는 1946년 6월 22일에 발표한 명령 제1033호에서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은 북위 37도 15분, 동경 131도 53분에 있는 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규정, 또 다시 독도가 한국의 영토와 영해임을 거듭 명확히 재확인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 유력한 근거로 인용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평화조약은 일본을 반공 진영에 편입시키기 위해 상식을 벗어난 관용을 베풀어준 조약이었다. 실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이 조약에 참가하지 못해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었던, 다소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조약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미국이 가쓰라-태프트(Taft-katsura) 비밀협정 체결로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 식민지 침략에 동조한 장본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항목을 이유로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일본 측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다.

 

일본 당국이 독도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독도에 대한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200마일 독점적 경제전관수역을 설정해 이 지역의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일본이 지난 침략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대신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고 처형된 전범자 조상이 만들어 놓은 낡은 침략문서를 근거로 또다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침략적 야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 우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 강경하게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침략행위다.

지난 기간 우리는 독도를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도 문제를 쟁론화하는 것은 일본의 속셈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므로 '신중론'을 기해 왔으며 '조용한 외교'를 통해 독도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집권 초기부터 일본과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라면서 지난 2008년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일본 총리에게 비굴하게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등 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일본의 오만함을 키웠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무력에 의한 '독도 탈취설'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조용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사고는, 일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던 이완용 친일매국노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이 저렇듯 무모하게 나오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신중하고 조용하게 대처해야 할 때는 이미 지났음을 말해 준다. 신중하고 조용한 우리의 대응은 저들의 오만함만을 키워줄 뿐이며 마치 우리가 무엇이 캥겨서 적극적이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저들의 침략행위에 신중을 기하지 말아야 하며 침략자들을 대하는 자세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두 번의 역사 때마다 소위 '조용한 외교'를 표방했던 지금의 현실과 같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독도 문제는 언젠가 반드시 크게 한 번 외교적 분쟁이 일어날 사안이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일본의 독도영유권 문제는 신중하고 조용한 대응이 아니라 일본이 감히 우리의 신성한 영토를 넘볼 수 없도록 강경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항상 일본에 앉아서 당하기만 했다. 이제 우리는 일본이 공격하면 앉아서 방어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대해야 한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원래 우리 땅임을 강력하게 주장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우리 주권에 대한 침략 행위임을 국제사회와 세상 사람들에게 소리높이 알려야 한다.

 

 

2) 다음으로 독도문제를 대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들은 독도 문제는 정부나 사회역사학자의 몫일 뿐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도 언제 어디서 일본사람들이나 외국사람들을 만나도 독도가 왜 우리 영토이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당국의 주장이 왜 헛됐는지 알려 줄 수 있게 지식을 겸비해야 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도 '대마도 영유권'처럼 일본과 꼭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세계 각국에 그들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솔직히 우리 국민들은 독도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흥분이 앞서지만 정작 일본사람이나 세상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3)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는 정부차원이 아니라 민간단체와 사회단체들을 활용한 적극적인 대응방식을 취해야 한다.

 

우리 영토인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는 일본의 주장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또한 일본과 국교를 맺고 있는 국가로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응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본당국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정부보다는 민간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적극 나서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사회역사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 사회역사학자들이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극우익 역사학자들과의 독도 관련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자고 먼저 요구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본학자들이 독도 문제에 떳떳하고 자신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학술토론회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개최하거나 아니면 미국이나 제 3국을 선택해 진행할 수도 있다.

그 토론회를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영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생중계함으로써 새로 일본의 역사를 배우는 일본 학생들에게 일본 당국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어야 한다.

 

만일 독도 관련 학술 토론회를 여는 경우 북한학술단체도 함께 참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독도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범위를 벗어나 한민족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로 당연히 북한도 한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이 공동으로 일본에 대응해 학술토론회에 참가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우선 남북이 공동으로 학술토론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일본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대외적으로 우리는 예로부터 함께 살아온 하나의 민족이며 지금도 역시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이라는 점을 세상사람들에게 인식 시킴으로써 향후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선전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기회를 빌려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라면 덮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전체 한민족의 이익을 따져보면 북한이 학술협회에 공동으로 참가하는 것은 득이 되지 손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 당국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지난 기간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준 죄과에 대해서 용서하였을 뿐 절대로 잊지 않고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우리 민족은 지난날 일본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혀 신음했던 민족이 아니다.

만일 일본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독도영유권을 계속 주장하며 우리민족에 대한 침략행위를 감행한다면 우리만족은 지난 기간 일본이 저질렀던 죄까지 다 합하여 몇 십 배, 몇 백배로 복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당국의 지금과 같은 경솔한 행동은 그 동안 쌓아온 양국 국민들과 기업들의 신뢰를 허무는 길이며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국익에 손해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우리의 신성한 영토인 독도영유권을 당장 포기하여야 한다.

 

- 2011.08.03 최승철 (csc7134)

- 오마이뉴스, [일본으 독도영유권 주장과 그 모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