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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서원(易東書院) 편액의 의미

Gijuzzang Dream 2011. 8. 1. 18:56

 

 

 

 

 

 

 

 역동서원(易東書院) 편액의 의미

 - 뜻이 담긴 현판, 편액

 

 

 

현판(懸板)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판ㆍ종이ㆍ비단에 쓰거나 새겨서 문 위에 거는 액자류를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판은 건물에 거는 모든 목판을 지칭하며,

편액(扁額)은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거는 목판을 일컫는 것으로, 현판보다 좁은 의미로 쓰여진다.

  

우리 선현들은 건물의 공간에다 성현이 남긴 경전이나 유명한 학자들의 글에서 인용하여 명칭을 부여하고, 당대 이름난 사람의 글씨를 받아 목판에 새겨 건물에 게시하였다.

여기에는 선현들의 독특한 현판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몇 글자 안 되는 현판(편액)의 의미를 알면 건물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건물 안에서 생활했던 선현들의 삶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판(편액)의 글씨를 통해 서예사를 복원할 수 있고, 글씨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도 있다. 때문에 선현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대한 참된 의미를 찾으려면 우선 현판(편액)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볼 필요성이 있다. 

  

역동서원뜻이 담긴 현판, 편액-역동서원 편액의 의미(易東書院)는 고려말의 학자 우탁(禹倬 1263∼1342)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67년 예안 부포리 오담(鰲潭) 가에 창건하였다.

특히 이 서원은 안동지역 최초의 서원이자, 퇴계가 행해온 일련의 서원창설운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으로, 직접 제자들과 터를 잡고 건물을 짓고, 그 건물 하나하나에 이름을 명명하였다.

  

 역동서원

  ▶ 역동서원 전경

  

  

사당은 상현(尙賢), 정당(正堂)은 명교(明敎), 정당 왼쪽의 익실(翼室)은 정일(精一), 정당 오른쪽의 익실은 직방(直方), 동재를 사물(四勿), 서재를 삼성(三省), 큰 문을 입도(入道), 건물 전체를 역동서원(易東書院)이라 하였다.


  역동서원

  ▶ 정당 - 역동서원, 명교당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사당과 정당은 서원의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당(祠堂)우탁 선생의 현덕(賢德)을 숭상하여 ‘상현(尙賢)’ 이라고 했고, 정당(正堂)은 오교(五敎: 오륜)를 밝힌다는 뜻으로 ‘명교(明敎)’ 라 했는데 이는 ‘명륜(明倫)’의 뜻이다.

정당 좌우의 협실 중에 ‘정일(精一)’ 은『서경』「대우모(大禹謨)」의 16자 심법 가운데 ‘유정유일(惟精惟一)’에서 가져왔는데, 이는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마음을 전한 법이고, ‘직방’은『주역』「곤괘(坤卦)」문언(文言)에 “군자는 경으로써 안(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일)을 바르게 하니, 경(敬)과 의(義)가 확립되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에서 인용했는데, 이는 주공과 공자가 역에서 곤[坤: 땅]의 덕이 두터움[厚]을 체득한 학문이다.

또한 동재 ‘사물(四勿)’ 은『논어』「안연」의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마음을 동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안자가 인을 행하는 공부 방법이고, 서재 ‘삼성(三省)’ 역시『논어』「학이」의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도모함에 마음을 다하지 못했는가? 벗과 사귐에 미덥지 못했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에서 인용한 것으로, 증자가 덕에 들어간 요체이다.

그리고 건물 전체의 이름을 ‘역동(易東)’ 이라 한 것은 한나라 때 역학에 능통한 정관(丁寬)의 고사에서 ‘역이 이미 동으로 갔다[易已東矣]’는 구절을 들어, 여말 역학에 뛰어난 우탁 선생의 학문을 높이 숭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동서원 편액의 의미를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에서 퇴계의 학문하는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사방으로부터 공부하고자 하는 유생들이 학문의 전당인 서원으로 찾아드는 ‘입도’의 과정, 그리고 동ㆍ서재에 묵으면서 사서(四書)의 학문체계를 익히는 과정, 사서를 바탕으로 당에 올라가 ‘삼경(三經)’을 연마하는 ‘승당(升堂)’의 순서로 되어 있다.

‘절차(切磋)하고 탁마(琢磨)하여 문장(門墻)으로 들어가서 당(堂) 안의 깊은 곳을 엿볼 수 있다’고 한 퇴계의 언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만큼 퇴계는 학문하는 차서(次序)를 강조하였다.

아울러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유생들이 기거하는 서재에다 공자의 수많은 문하생 가운데 학문적 의발(衣鉢)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안자ㆍ증자와 관련된 구절을 취해 명명하였고, 서원의 선생이 기거하는 당 위의 협실에는 공자가 편찬한 삼경의 구절에서 취해 이름을 부여하였다.

이는 서원의 유생들은 공자와 같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학문을 부지런히 연마하여 안자ㆍ증자와 같은 훌륭한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판

  ▶ 익실과 동서재의 현판들

  

이 같은 서원의 명칭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도산서원 건물의 편액 명칭에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일치하고 있다. 퇴계의 평소 가르침이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선현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대한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진정 선현들이 남긴 문화유산의 의미를 알려고 한다면, 우선 현판(편액)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음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선현들이 남긴 현판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공간에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구절을 취해 이름을 부여해 보는 것도 참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글쓴이 : 권진호

  •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자료실장
  • 논문
    • - 「여헌 장현광의 문론 연구」, 2003
    • - 「후산 허유의 문학사상」, 2005
    • - 「한강 정구의 정주학 수용양상」, 2007
    • 저서
      • -『역주 이옥전집』 전3권, 공역, 2001
      • -『안동 무실 마을-문헌의 향기로 남다』,공저, 2008
      • -『국역 상변통고』전10권, 2009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칼럼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