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유배지에서 보낸 이학규의 편지

Gijuzzang Dream 2011. 6. 27. 17:15

 

 

 

 

 

 

 

 유배지에서 보낸 이학규의 편지

 

 

좌절한 영혼, 일상적 괴로움의 반추(反芻)

 

 

 

 

 

 

 

유배지 삶의 고단함과 좌절의 정서


 

낙하생 이학규(落下生 李學逵, 1770∼1835)는 신유사옥(辛酉邪獄)과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 사건에 연루되어 24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32세에서 50세까지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포부를 펼쳐야 할 시기 모두를 유배지 김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머나 먼 유배지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란 편지를 주고받거나 시문을 창작하는 것이었다. 척박한 유배지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문화 차이와 당장의 끼니마저 걱정해야만 하는 궁핍한 생활, 게다가 이러한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는 상황은 유배객을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애절한 심정은 그의 편지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밥 먹을 때 보리밥을 싫어하고, 술 마실 때 막걸리를 꺼려하는 일이야 귀한 분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네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답니다. 밥그릇을 박박 긁어 먹고, 술 사발에 가득 흘러넘치게 마시는 일이야 우리들은 상관이 없겠지만 귀한 분들은 그럴 수 없겠지요. 아아! 우리들은 참으로 곤궁하고 비천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을 뿐이랍니다. 하루걸러 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할까 걱정하는 형편이니, 어찌 보리밥인들 꺼리며 막걸리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밥그릇을 박박 긁어 먹는 것을 운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술 사발 가득 흘러넘치게 마시는 일은 바라지도 않는 행복이라 여길 것입니다. 오직 이러한 일조차 자주 있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랍니다.

―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答某人〕

 

 

이학규가 어느 지인(知人)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인을 밝혀 놓지 않았다. 유배지에서의 삶이 어떠한 지 눈에 선하다. 그는 척박한 곳에서 겪는 가난과 배고픔, 한 사발의 막걸리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는 곤궁한 처지를 자조적인 어투로 드러내 놓았다. 보리밥과 한 사발의 막걸리만 있어도 운치가 있고 행복하다는 언급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 유배객 이학규의 내면의 참모습 그대로다. 현재의 불우한 처지를 가슴 속에 담고 머나 먼 김해의 진솔한 생활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하다. 흔히 조선조 사대부들은 자신이 겪는 생활상을 편지에 담을 경우 이를 긍정하거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시선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편지 역시 자신을 수양하고 인생을 성찰하는 도구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편지에서도 가난과 배고픔이 주는 고통을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학규는 유배지에서 겪는 참담한 일상과 말 못할 고통을 편지글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는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배지에서 겪는 궁핍함과 외로움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인간의 영혼을 좌절시키며, 삶을 황폐화시키는 지 끊임없이 토로하였다.

 

 

유배지 일상의 반추(反芻)와 삶의 재발견

 

이학규는 자신의 대에서 가문이 풍비박산 난 참담한 심정을 아들에게 전한 바 있다. 이제 유배지에서의 고단한 삶은 일상이 되었다. 주린 배를 참고, 목마름을 견디는 것도 이골이 날 지경이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처지에다 기울어진 가문을 언제나 일으킬지 모르지만, 아들에게만은 결코 좌절하지 말고 사대부의 떳떳한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누차 당부한다. 

주린 배를 참고 타는 목마름을 참는 것은 우리들이 항상 겪는 일이구나. 잘 먹고 잘 입으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가슴 속이 시커멓고 텅 비어 한 조각 의리를 지니지 못한 자들도 있단다. 조금이라도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대신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 겉으로 보는 몸의 모양은 참으로 멋지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진실한 내면의 마음은 실로 텅 비어 있단다. 만약 네가 부지런히 노력하여 날마다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날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공부해 알아간다면, 사흘에 밥 한 끼 만 먹는다 하더라도 그 진실한 마음만으로도 실로 배가 부를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하겠느냐? ― 아들에게 준 편지〔與某人]


 

 

모진 시련과 좌절을 강요하는 유배살이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상이 되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서 대하듯 자신의 심정을 전달한다. 아버지의 부정(父情)이 행간에 진하게 묻어난다. 자신은 오랜 시간 좌절한 영혼으로 말 못할 고통 속에서 살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학규는 덧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무상함에다, 가족조차 만날 수 없는 말 못할 고통을 인내하는 한편, 아들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희망의 끈은 끝내 놓지 않았다. 이제 어떠한 삶이라도 받아들일 뿐, 가난과 고통에 좌절하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아들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학규는 유배객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대부가의 한 아버지였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삶의 순리에 따르되, 공부를 통해 의리를 아는 것이야말로, 험난한 삶에서 구하는 인생의 양식이라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학규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부자 간의 관계를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배지에서 좌절한 영혼이 삶을 반추하면서 전하고자 했던 애틋한 부정(父情)은 아니었을까?

 

- 진재교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2011-06-14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