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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과학 - 비단벌레 날개를 보호하라!

Gijuzzang Dream 2011. 7. 29. 11:05

 

 

 

 

 

 

 

 

 비단벌레 날개를 보호하라!

 

 

 

 

1973년 경주 황남대총 남분 무덤 발굴 조사가 한창인 어느 날,

고고학자는 금동의 맞새김판 아래에 영롱한 빛을 드러내는 하나의 유물에 매료돼 그 손길을 멈추고 말았다.

이 유물은 신라왕의 부장품인 말안장 가리개로 1,600년 만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영롱한 빛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단벌레의 날개였다.


비단벌레 날개는 신라시대 왕릉급 무덤인 황남대총, 금관총과 같은 큰 무덤에서 출토된

말안장 가리개, 발걸이, 허리띠꾸미개 등의 유물에서도 발견됐다.

이러한 유물들은 신라시대 최상위의 계층만이 사용한 장식품이다.

 

왕실은 왜 이토록 비단벌레를 사랑했을까?

그 이유는 황금빛의 금동판과 비단벌레 특유의 색이 화려하게 서로 어울리는 최상의 공예품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단벌레는 왕실의 곤충으로 불렸다.


 


 


[그림 1]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가리개(좌)와 발걸이(우). 사진 제공 : 국립경주박물관


 

 

비단벌레는 딱정벌레목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우리나라에는 해남, 완도 등 남부 해안에서 일부 서식하고 있다. 개체수가 적어 멸종위기 곤충으로 분류되며 역사적,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문화재청에서 2008년에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했다.

 

 [그림 2] 비단벌레 박제품.

 사진 제공 : 국립경주박물관

비단벌레 날개는 초록빛으로 화려한 광택이 난다.

어떻게 이런 빛깔이 가능한 것일까?

비단벌레 날개의 성분은 키틴(chitin)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키틴은 아미노당으로 이루어진 다당류로 딱정벌레, 새우, 게 등 절지동물의 딱딱한 피부나 껍데기의 골격을 만드는 성분이다.

비단벌레 날개는 15~30개 사슬의 키틴 구조체를 중심축으로 6개의 단백질분자가 나선 공유결합을 형성해 박막을 이루고 있다. 이 박막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유지하면서 층층이 쌓여있는 적층구조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키틴과 단백질이 이루는 키틴나선 적층 구조가 비단벌레 날개 특유의 탄력과 강인함을 갖게 한다.

비단벌레 표피층에는 구리, 철, 마그네슘 등의 금속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 성분들은 적층구조와 잘 어울려 빛을 받으면 반사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낸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날개의 색깔은 녹색의 금속성 광택을 띠며 중간 부분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빛이 없고 습도가 높은 무덤 안에서 금속은 산화되고 유기물은 미생물에 의한 분해로 열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나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와 발걸이, 말띠꾸미개는 색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림 3]키틴의 분자구조와 키틴-단백질 결합구조 개념도


 

 

벌레 날개는 표면층의 금속이온이 산소와 만나고 빛에 오랫동안 노출되거나 건조한 상태가 되면 검게 변한다. 때문에 발굴 후 바로 고순도의 글리세린(glycerin) 용액에 넣어 빛을 차단시키고 항온항습(온도 섭씨 10도 이하, 습도 50%) 보관장에 보관, 관리하고 있다. 글리세린은 공기를 차단하고 비단벌레 표면에 밀착해 보습을 유지시켜 주어 건조함이나 미생물에 의한 분해를 막아준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010년 12월 ‘황남대총-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 특별전을 개최할 때는 까다로운 비단벌레의 보존 특성 상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유물 보호를 위해 36년 만에 처음으로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 있는 상태 그대로 선보였으며 강한 빛을 피하기 위해 조도를 80럭스 이하로 낮추고 단 3일 동안만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80럭스 이하의 조도는 국제박물관협회에서 정한 국제 규격으로, 전시 품목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참고로 일반적인 실내조명은 500~700럭스 정도다.


 


 


[그림 4]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가리개 전시 모습. 사진 제공 : 국립경주박물관


 

 

황남대총 비단벌레 날개 장식은 현재까지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화재다.

지난 특별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된 후 다시 보관장으로 옮겨졌다.

대신 국립경주박물관은 복원품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은 화학약품처리법과 진공동결건조처리방법 등 다양한 처리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화학약품처리법은 폴리에틸렌글리콜 등 보존처리에 많이 사용하는 화학약품을 유물에 침투시켜 보존처리하는 방법이다.

진공동결건조처리방법은 고체에서 기체가 되는 승화원리를 이용해 진공상태에서 유물을 섭씨 영하 40도로 냉동하고 건조시켜 유물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보존방법도 비단벌레 날개를 완벽하게 보호하지는 못 한다.

비단벌레 날개의 변색 원인은 복합적이라 아직까지 확실한 보존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과학팀은 정확한 변색 원인을 밝히고 확실한 보존법을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품을 다시 선보이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림 5]왼쪽부터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가리개, 발걸이, 말띠 꾸미개 복원품.

사진 제공 : 국립경주박물관


 


- 신용비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과학팀

- 동아사이언스, [KISTI의 과학향기] 제 1373 호/ 2011-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