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국대학 본관 일제가 서울에 세운 종합관립대학
민립대학 설립운동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자는 차원 넘어선 한국인의 문명운동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쳐주는 곳이 서울대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영재들이 모이는 곳이며 입시생과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 서울대가 지금은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1972년까지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대학로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구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건물이 바로 구 서울대학교 본관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겠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하 경성제대) 본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일 수 있다. 지금으로 보면 빛바랜 낡은 건물이 그 옛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본관이라고 한다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할 수도 있겠다. 구 서울대학교 본관은 원래 일제가 만든 관립 경성제대 본관 건물이다. 1919년 3 ․ 1 운동이 일어난 후인 1922년 11월 일제의 민족 차별교육정책에 반발한 이상재 등의 민족지도자들은 고등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길러내고자 조선교육협회(1920년 설립)를 통해 조선민립대학 기성회를 결성하였다. 여기서 제기된 구상안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합쳐 평양, 황해 경기 강원 충청도를 합하여 서울, 영남과 호남을 합쳐 대구에 각각 대학을 설립하자는 의견이었다. 당시 교육자 대부분은 식민지 고등교육을 받은 일본인이나 한국인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충원되고 있어서 무엇보다 민족교육을 담당할 한국인 교사 양성이 시급한 문제였고, 특히 「조선교육령」에 규정한 최고 교육기관이 일제에 의하여 설립된다면, 한국의 청년자제들은 일제의 도구로 양성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다. 민립대학 설립운동은 단순히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자는 차원을 넘어선 한국인의 문명운동 일환이었다. 1923년 3월 29일 기독교 청년회관(YMCA)에서 발기인 총회가 열리는 등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경성제대 개교를 추진하여 1924년 5월에 「경성제국대학관제」 법령을 공포하고 동시에 예과를 개설하였으며, 1926년에는 법문학부와 의학부 신입생을 모집함으로써, 경성제대 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민간에 의해 주도된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경성제대는 일제가 서울에 설치한 종합관립대학으로 그 당시 한반도에서 유일한 4년제 대학이었다.
대학 캠퍼스, 최종적으로 동숭동과 연건동 일대 결정 이 대학의 캠퍼스로 영등포, 노량진, 청량리 등이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동숭동, 연건동 일대로 결정되었다. 연건동에는 이미 총독부 병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성제대 초기 법문학부, 의학부가 설치되었는데, 법문학부는 동숭동에, 의학부는 연건동에 자리 잡았다. 1930년대 말에 설립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양주군 공릉리(현재 노원구 공릉동 서울산업대 캠퍼스)에 자리 잡았다. 수업연한은 법문학부 3년, 의학부 4년으로 하였다. 대학예과는 대학의 예비교육을 위하여 설치하여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수업연한은 2년으로 하였다. 예과의 완성년도인 1925년 5월 현재 학급수는 8학급으로 학생수는 한국인 91명, 일본인이 223명이었으며, 직원수는 일본인 22명과 외국인 1명이었다. 경성제대 캠퍼스의 배치와 교사(校舍)의 설계는 조선총독부가 주도했으며, 시공은 일본인이 하였다. 1926년 법문학부 동숭동 교사, 청량리 예과 건물이 완공되고, 1927년 의학부 별관과 본관이 연건동에, 1931년 10월에 본관이 동숭동에 준공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경성제대는 서울대학으로 개편한 후 1946년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에 의거,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여 국립 서울대학교가 되었다. 1972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구 신림동으로 옮겨 가자, 이 건물 이외의 학교 건물 대부분이 헐려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은 3층의 이 본관 건물과 도서관 터, 문리대 본관 등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는 과거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 중앙도서관이 자리하였고, 지금 이화동의 서울대 사범대 부속초교에는 법과대학과 미술대학이 있었으며, 건너편 연건동에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종로구 동숭동 1번지 130호의 경성제대 본관이자 구 서울대학교 본관은 건립된 지 50년만인 1981년 사적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불현듯 예전 동숭동 서울대학교에서 경찰과 학생이 대치하여 학생들이 데모를 일으키고 이에 맞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던 장면이 스친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한마디씩 한다. “부모가 고생해서 대학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한다고” 이제 대학로는 주 통행과 이용 계층은 젊은이 그대로이지만 학문의 중심지보다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 2010.12.02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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