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건물과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병원 세브란스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세브란스 의과대학' 서울시내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 문화유적을 조사한 바 있다. 전문 인력 약 50여 명을 동원된 조사였다. 그 조사 내용을 정리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 종합보고서』를 간행하였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내에 남아있는 세브란스 관련 유적을 보니, 현재 세브란스의 이름을 딴 옛 건물은 구 정신여고 부지에 있는 세브란스관이 유일했다. 물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건물이 있지만 현대식 병원 건물만 있을 뿐이다.
세브란스는 미국인으로 한국에 거액의 기부를 하였고, 그 기부를 받아 지은 건물에 세브란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여기서 세브란스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브란스는 과연 누구인가. 일반인은 잘 모르는 인물이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는 기독교 장로이자 미국인 사업가로 1838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Cleveland, Ohio)에서 출생하였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세브란스는 1864년에 당시 미국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던 석유사업을 시작하였고, 1870년에 그의 친구 존 데이비슨 록펠러(J.D.Rockefeller) 1세와 함께 스탠다드 석유회사(The 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하였다. 록펠러와 세브란스는 친구사이로 클리블랜드 출신이고 석유사업으로 거부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 신자이자 기독교 선교 자선가였다. 이들은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자선의 손길을 뻗쳤는데 록펠러는 중국에, 세브란스는 한국에 뜻을 두었다.
1900년 세브란스는 한국에 2만 5,000$를 기부하여 1904년에 현대식 종합병원 건물을 준공하였고, 다시 3만$를 기부하여 1913년에 의과대학 건물을 완공하였다. 기 부자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과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명명되었는데, 특히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한국 최초의 의과대학이다. 1899년 당시 한국인의 하루 품삯과 장로교회 1년 총 헌금을 미국 달러로 환산해서 30센트와 770달러였을 때 세브란스가 기부한 5만 5천 달러는 엄청난 거금으로 현재 시점으로 1억$, 즉 지금 돈으로 1,30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도시계획에 밀려 모두 사라진 세브란스 건물들
정작 세브란스 자신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아는 한국인도 없었으며,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었던 미지의 나라였지만
단순히 한국에 파견된 자국 선교사의 지원 요청을 받아 들여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즉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인 제중원(濟衆院)의 3대 교장인 선교사 애비슨(Oliver R. Avison)이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가서 교단에 선교 보고를 하였다.
보고서에서 그는 “동양에 조그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우리가 조금만 힘써 고치면 나을 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병원을 지어서 협력하여 진료를 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세브란스는 조선에 기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기독교는 열성적이어서 거의 모든 국가와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는데,
세브란스는 효과적인 선교 수단이 의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브란스의 한국 자선의 형태는 현금과 기금을 제외하면 세브란스 병원과 의과대학의 건물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원래의 건물들은 도시계획에 밀려 모두 사라졌다.
이름만 남은 것이 서울역 앞에 신축된 세브란스 빌딩과 연세대학 의과대학 부속 세브란스 병원이 있다.
특히 1910년 정신여학교에 건물을 기증하였는데 이것이 정신여고 구 본관 건물인 세브란스관이다.
정신여고가 새로운 주소로 이사가면서 이 건물의 주인은 바뀌었다.
이 건물이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세브란스의 이름을 딴 건물이다.
그밖에 새문안교회에 남아있는 파이프 오르간, 남대문교회의 구 예배당건물도 기증하였다.
미국 장로교단의 「세브란스 존 엘. 기금」은 지금도 매년 연세대학교 병원에 이자를 송금한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는 작고한지 90년이 넘었지만 이 기금을 만든 주인공은
그의 외아들 존 롱 세브란스(John Long Severance 1863-1936)이다.
외아들도 이미 별세하였지만 이 기금은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 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교육홍보과장)
- 2010.05.13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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