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페르시아인들의 신라 이주 - 쿠쉬나메(아랍권 11세기 서사시) 발굴

Gijuzzang Dream 2010. 12. 7. 05:05

 

 

 

 

 '페르시아인들 新羅 이주' 담은 古代 이야기 찾았다

 

 

아랍권 11세기 서사시 <쿠쉬나메(Kush -nameh)> 발굴

필사본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신라 공주와 결혼' 내용도… 당대 모습 밝혀줄 희귀 자료

 

 

아랍군의 공격으로 멸망한 페르시아 왕국의 유민들이 신라로 이주해

그 지도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한다는 내용의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가 발굴돼 주목을 끌고 있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문화인류학)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 · 쿠쉬 이야기)>를 발굴해 한국이슬람학회논총에 발표했다.

아랍권에서 '서사시의 전성시대'로 불리는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져 구전(口傳)되다가

14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쿠쉬나메의 필사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이란에서 1998년 인쇄본이 출간됐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 국립박물관 큐레이터 다르유시 아크바르제데(Daryoosh Akbarzadeh) 박사에게서

<쿠쉬나메>에 대해 전해듣고 지난 7월 이란을 방문해 인쇄본을 입수했다.

 

<쿠쉬나메>는 전체 1만129절(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며,

이중 2011~5925절이 신라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신라[Shilla]' 또는 '바실라[Bashilla]'에 관한 내용은

아랍 문헌에선 신라를 '알신라[Alshilla]', 페르시아 문헌에선 '베실라[Beshilla]' 등으로 표기하는데,

지금까지 아랍 · 페르시아권에서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신라 관련 서술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신라 역사를 외국인의 서사시로 통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또 서사시는 신라 도시의 아름다움, 도로와 골목 풍경, 정원의 새까지 세세히 묘사했다.

 

<쿠쉬나메>의 내용이 신라 관련이 맞을 경우,

고대 신라의 생활상과 신라 · 페르시아 관계사를 밝혀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가 해석되면 처용의 아랍인설이나 괘릉에 세워진 아랍계 무인석상,

고대 신라 무덤에서 나온 페르시아계 유리그릇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끈다.


 

 

<쿠쉬나메>의 줄거리

쿠쉬나메는 쿠쉬라는 무서운 영웅의 전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시대배경은 사산왕조 페르시아(226~651)가 아랍의 공격으로 멸망한 이후이고,

페르시아 주민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피신한 쿠쉬가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신라 관련 부분은 쿠쉬의 어린 시절 후견인인 아비틴(Abtin)에 집중돼 있다.

산중에 버려진 쿠쉬를 거둬 키워준 페르시아 유민 지도자 아비틴은

위기에 몰리자 중국의 변방국가인 마친(Machin) 왕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직접 도움을 주는 대신 이웃의 신라 왕인 타이후르(Tayhur)를 추천해준다.

그러면서 신라는 낙원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침략을 받지 않은 나라라고 알려주며 추천 편지를 써준다.

배를 타고 신라에 도착한 페르시아 사람들은

마친 왕의 편지를 신라 왕에게 전달하고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일부만 번역된 서사시에 따르면 이란 유민과 아비틴은 중국을 거쳐 신라에 기항했으며,

기항지에서 신라왕 타이후르(Tayhur)의 왕자 가람(Karam)의 영접을 받는 것으로 기술돼 있다.

여기서 제시된 기항지가 반구동 유적으로 발굴된 울산항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라와 페르시아가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로마 양식의 유리그릇과 황금보검.

신라에 정착한 아비틴은 신라 왕과 함께 폴로(격구)와 사냥을 다니고 국정의 조언자로 활동한다.

아비틴은 신라 공주인 프라랑(Frarang)과의 결혼을 요청한다.

신라 왕은 프라랑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아비틴 앞에 비슷한 모습의 처녀 10명을 놓고 찾아보라 말한다.

아비틴이 정확히 공주를 지목하자 왕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다.

공주가 임신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항해에 능숙한 신라인의 안내로 페르시아로 향하던 중 프라랑 공주는 왕자를 출산한다.

왕자 파리둔(Faridun)는 훗날 아랍군을 물리치고 이란 유민들의 원수를 갚는다.

그 뒤 외조부 신라 왕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왕은 이미 서거하였으며,

왕위에 오른 태자(외삼촌)와 교류를 이어간다.
이 부분은 처용설화에서 ‘처용이 조정에 와서 급간 벼슬을 받고 미모의 여인과 결혼한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고증과 향후 연구과제

이희수 교수는 "<쿠쉬나메>에 묘사된 시대적 상황은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르시아 멸망 후 그 유민들이 중국 영토로 망명했지만

아랍과 외교관계를 맺은 당(唐)은 이들의 신라 망명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는 “아비틴, 쿠쉬, 타이후르, 프라랑 공주 등의 이름과 시대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서사시도 결국 사실적 배경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과 일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것을 간접 증빙하는 요소로는 신라무덤에서 페르시아 유리제품이 나오고,

<삼국사기>에 사치금지 품목으로 페르시아 양탄자 등이 거론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재는 <쿠쉬나메>의 대강 줄거리만 번역된 상태이지만

완역(完譯)하면 외부 시선으로 본 신라의 모습이 상당히 복원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쿠쉬나메> 필사본의 원본을 확인하고

이란 학자와 국내의 고대사 전공자 등 관련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교수팀은 쿠쉬나메의 번역을 위한 자금을 모금중에 있으며,

울산에서는 삼창기업과 S-OIL이 지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창기업은 아랍에미리트와 건설 및 원전사업 등을 진행중이며,

S-OIL 역시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CEO 수베이 대표가 아랍권 인물이다.

- 2010.12.05 조선일보, 울산제일일보

 

 

 

한 · 이란 관계는 미 · 이란 관계와 다르다

 

중동 최대 시장인 이란과의 경제교류가 중대한 위기국면을 맞았다.

이란의 핵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결의와는 별도로 미국이 강력한 이란 제재에 돌입했고

우리 정부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미국이 요구한 유럽연합(EU) 수준의 제재는 무기 거래는 물론

금융 거래까지 제한돼 사실상 경제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구 7000만 명에 중동의 주요 농산 부국으로 세계 원유 매장량 3위, 천연가스 2위 보유국이다.

한국 최대의 중동 상품 시장으로 연간 교역액이 1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모든 관심의 초점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돼 있지만,

이란과의 문화적 관계는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이란 현지 연구를 마치고 돌아왔다.

벌써 5년째 이란 북부 카스피해 연안에서 고고학 발굴과 고대 문화교류 흔적을 찾기 위한

한 · 이란 공동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신라의 생활상을 담은 <쿠쉬나메>란 800쪽 분량의 고대 페르시아어 서사시가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란 방문의 감동은 무엇보다 이란 국민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평균 시청률이 90%를 웃돌았고,

연이어 방영된 ‘해신’ ‘상도’ ‘주몽’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한류 열풍은 곧바로 시장으로 투영돼 가전 · IT · 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 제품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24시간 코리아 브랜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지독한 한국 사랑이다.

우리 문화를 더욱 가까이 호흡하기 위해 이란국립박물관에서는 신라 유물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제 코리아 브랜드는 이란 국민의 삶 속에 포기할 수 없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적대국가다.

1954년 엘리트 민족주의 정치인인 모사데크 총리를 실각시키고

친미(親美) 성향의 팔레비 왕정을 세우면서 금 가기 시작한 미국 · 이란 관계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거치면서 화합하기 어려운 적대적 이해당사자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핵 위협 구도를 갖추어 가는 이란을 ‘악의 축’ ‘테러지원국’으로 관리하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한 · 미 동맹과 긴밀한 양국 협력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국익이다.

 

그렇지만 한 · 이란 관계는 미 · 이란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제적인 공조와 한 · 미 동맹의 축을 흔들지 않으면서

이란을 관리하고 끌어안는 정교한 선택적 전략은 과연 없는 것인가.

우리 입장에서 글로벌 문화를 호흡하고 실체적 국가 이익에 접근하는 독자적인 세계 전략은 없는 것인가.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진정으로 발휘할 때가 왔다.

 

우선은 이란과의 충분한 교감과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한 대화채널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입장과 노력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한국의 입지를

그들은 이해할 것이다.

한국 기업의 이란 진출을 위한 숨통 역할을 하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활동 중지에 대비해

이란과의 협의를 통해 두바이나 다른 아랍 은행들을 활용하는 우회창구 개설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개입한다는 인상보다 기업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도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한국이 이란과 갖는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고

제재 수위 완화를 협의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에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 우리가

극단적인 미 · 이란 관계를 완화시키는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는 발상의 전환이 아쉬운 시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맹방으로 親서방정책을 펴는 터키가 최근 이란 핵문제에 관한 절충안을 통해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이란 제재의 예봉을 피해가는 방식도 우리의 전략에 참고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입장에서는 유엔 결의안의 범주에서 국제적 행동에 보조를 맞추되

미국 주도의 포괄적인 이란 제재에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란에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학술 · 문화 · 스포츠 같은 비정치적 교류를

훨씬 확대하면서 이참에 이란을 가까이 이해하고 끌어안는 장기적이고 유연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희수 한양대 교수, 중동학

- 중앙일보 2010. 8. 6.

 

 

 

 

중동에 숨어있는 우리 역사의 비밀

 

외국 교과서에 실린 한국소개가 잘못되었다고 야단법석이다.

과거자료를 토대로 오늘의 발전된 한국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남과 북을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오류도 있다.

심지어 북한과 친한 일부 아랍국가의 교과서에는 아예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확한 내용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즉각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동 교과서에서 한국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잘 간직하면서도

첨단기술과 경제발전에 성공한 모범적인 나라’로 묘사된다. 서구 국가와는 달리 닮고 싶은 모델이다.

최근 중동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과 한국상품 판매급증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알리고 우리도 바로 알아야

그러나 외국의 교과서에 실린 우리 역사왜곡과 문화적 오류에 대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우리 교과서에 실린 제3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술은 공정한 편일까?

중동의 예만 몇 개 들어보자.

일부 중학교 교과서에는 이슬람교에서 그렇게 철저히 금하고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믿고 있는

무함마드의 그림이 버젓이 실려 있다. 외교분쟁감이다.

중동문화와 이슬람 종교의 부정적인 표현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도 우리는 아주 거침이 없다.

걸프해 명칭을 둘러싼 아랍과 이란의 자존심 대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걸프해로 흘러들어가는 수로 영유권 문제로 아랍과 이란은 8년간 전쟁을 치렀다.

아랍에서는 아라비아만으로, 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으로 부른다.

우리 교과서와 지도에는 예외없이 모두 페르시아만이다. 이란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독도라는 무인도를 두고 일본과 첨예하게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의 영토표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과거 이란과 친하던 미국도 페르시아만으로 표기하다가

지금은 중립적인 표현인 걸프해로 바꾸어 쓰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와 벌이는 중동전쟁도 과거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걸프전쟁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이런 잘못을 바로잡고자 외교부나 관련부처들이 나서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특히 한국을 바로 알리기 위해 현지 대학에 한국학과 개설을 지원하고,

한국학 전공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초청해서 장학금을 주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국가 브랜드 사업을 한다고 현지에서 한국문화전시회나 공연으로 현지인의 관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중동 속에 이미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에 관한

오랜 역사적 자료와 풍성한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여 현지 학자들로 하여금 한국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도 요구된다.

중동전역의 박물관, 도서관 고문서국 등에는 신라와 고려에 대해 기술한 귀중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석유 말고, 우리 역사 자료도 있다

지금까지 연구된 것만 봐도 17명의 중동학자가 기술한 22권의 다양한 역사서, 지리서, 백과사전 등에

한반도에 대한 귀중한 고대자료들이 들어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은 훨씬 많을 것이다.

작년에는 한 이란 학자가 페르시아 고대 원전에 소개된 신라 관련 자료목록 30여권을 발표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고, 금년 6월쯤에는 이란의 고대 구전 서사시인 <쿠쉬나메>란 책에서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신라관련 내용이 확인되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해방 이후 60여 년간 우리 학계는 이러한 연구에 매달릴 겨를이 없었다.

우선 필사본으로 되어 있는 어려운 고대 아랍어, 오스만어, 페르시아 원전을 해독하고 분석할

국내 연구자가 거의 없었고,

힘들게 공부해도 장래가 불투명한 학문을 택하는 후학들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 학자를 보내 한국역사와 언어를 교육하는 것과 함께

현지 한국학 전공자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한국 역사와 인문학을 그곳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하는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

중동에는 석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소중한 비밀들이 숨어있다.

- 이희수, 한양대교수, 중동학

- 2010-10-17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