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서울성곽

Gijuzzang Dream 2010. 11. 12. 19:07

 

 

 

 

 

 

 

 서울성곽 - 걷고 보고...성곽따라 18km

 

 

 

 

 

 

 

 

 

서울성곽 
빌딩숲 속에 파묻혀 있으면 서울이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임을 쉽게 잊는다.

놀라운 속도로 변화해 온 서울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곳.

서울성곽 길을 따라 걷노라면, 시간을 거슬러 옛 도읍지 한양의 모습이 발길 아래 펼쳐지는 듯하다.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도심이 팽창하면서,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잃어왔던 서울성곽.

최근 걷기 열풍이 불면서 내사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서울성곽 길은

도심 트래킹 코스로 인기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나? 성곽 길 여행은 굽이굽이 놀라운 발견이다.

 

 

 

서울성곽은 서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으로 사적 제 10호.

내사산인 북악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총 길이 18.2 km의 성곽이다.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한양 천도 이후 축조를 시작해

세종 4년(1422) 골격을 갖추고 1704년 숙종 때 대대적인 정비를 거쳤다.

시기마다 축조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쉽게 구분된다.

태조 때의 것은 네모꼴의 작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았고,

세종 때는 아래 부분은 비교적 큰 돌로, 윗부분은 작은 돌로 쌓았으며,

숙종 당시는 정방형 돌을 정연하게 쌓아 간격도 일정하고 벽면도 수직이다.

 

공사는 구역마다 책임자를 두어 성벽에 관직과 축성한 고을의 이름을 새겨 넣는 등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서울성곽은 급속히 훼손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근대 도시 발전을 저해한다는 명목으로 성곽을 철거, 현재 평지 성곽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서울성곽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걷기 열풍이 불면서 서울성곽의 역사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 받으며

성곽 길을 찾는 이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북악산 성곽길

북악산 성곽 길을 오르려면, 세 가지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숙정문 안내소나 와룡공원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발해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으로 향하는 2개의 코스와

반대로 창의문에서 출발해 숙정문으로 향하는 코스 등 총 3개의 코스가 있다.
숙정문에서 오르는 코스를 선택해야 완만한 경사를 따라 산책할 수 있고,

반대편 창의문 출발 코스는 급경사 계단을 올라야 하므로 조금 힘겹다.

북악산 성곽 길은 약 3.7km 구간으로 2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탐방객 입장시간
- 11월~2월_ 오전 10시~오후 3시 / 3월~10월_ 오전 9시~오후 3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

문화유산해설 프로그램
- 매일 오전 10시 30분 (3월~10월 오전 10시), 오후 2시

 

 

서울성곽 길 중 가장 사랑받는 구간은 북악산 성곽 길이다.

성곽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 도심 풍경도 으뜸으로 아름답다.

북악산 성곽 길은 40여 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인근을 경비하는 군인들만이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2007년 4월 비로소 전면개방 된 후,

서울의 보물 같은 산책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까닭인지, 울창한 소나무 숲은 물론

사슴들도 종종 출몰한다는 북악산의 자연은 도심 속 별 세계인 듯 느껴진다.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안내소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나무계단이 나온다. 이곳은 서울시 선정 조망명소.

멀리 북한산과 성북동 일대, 오른쪽으로는 낙산공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미리 사진을 많이 찍어두자. 나무계단 위는 바로 말바위 안내소.

이곳에서 출입신청서를 쓰고 입산을 시작한다.

반드시 신분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며,

이곳을 지나면 군사보호지역이라 마음대로 사진촬영도 할 수 없다.

5분 정도 걸으면 서울성곽의 북대문인 숙정문이 나온다.

삼청각과 성북동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시원스럽다.


본격적인 성곽 탐험은 이곳 숙정문에서 시작한다.

이어 촛대바위와 곡장, 1.21 사태 당시 총탄의 상흔이 남아있는 1.21 소나무를 지나면

북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에 다다른다.

발 아래로 경복궁의 웅장한 모습과 광화문광장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불타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관악산의 산세와

북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북한산 봉우리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백악마루 지나서는 내리막길. 상당히 가파르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과 종종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부암동을 바라보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성곽 길을 다 내려오면 비로소 북소문인 창의문을 만난다.

서울의 사소문(四小門)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창의문을 나서면

북악산 성곽 탐방은 끝난다.

 

 

 

 

 

 


인왕산 성곽길

인왕산 등산코스 중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는 사직터널을 출발해 부암동으로 하산하는 코스.
청와대 앞길과 연결돼 있다. 북악산과 마찬가지로 월요일은 입산이 통제되므로 유의하자.

(월요일이 휴일일 경우 화요일 입산 통제)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인왕산을 직접 올라본 이가 얼마나 될까?

도심에서 늘 올려다 볼 수 있는 인왕산은 한 2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쉽게 종주할 수 있는 산행코스다. 군사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입산이 금지되어오다가 1993년 일반 산행객들에게 개방됐다.

인왕산 등산로는 여러 곳이 있지만, 성곽 길을 따라 산행을 나서려면

일단 북악산 창의문 앞에서 길을 건넌다.

북악산을 타고 내려온 성곽이 다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굽이굽이 아름답다.


등산코스 입구에는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 공원이 있다.

청운동 인왕산 자락, 청운아파트를 철거한 자리에 들어선 공원으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언덕이다.

인왕산 자락인 종로구 누상동에 살았던 윤동주 시인은

광화문이나 인사동 등 종로거리를 거닐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인의 언덕 역시 전망이 좋다. 또한 윤동주 시인의‘서시’시비를 비롯,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새겨 넣은 돌계단 등 천천히 거닐며 작품을 음미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인왕산 성곽 길은 여느 등산로와 비슷하다. 성곽 길을 따라 오르면서 인왕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가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듯 자연과 가까운 곳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성곽 바깥으로 난 산길이 나온다.

도시의 소음도 멀어지니,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옛 인왕산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성곽 바깥에서는 성곽의 전체적인 윤곽과 형태가 더 잘 보인다.

 그 옛날 저 돌을 쌓아올렸을 백성들의 노고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인왕상 정상이 가까워지면, 바위로 된 봉우리가 눈앞을 막아선다.

정상에 도착하니 탁 트인 도심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을 지나 하산하다 보면, 통제되는 구간이 있다.

성곽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주변 등산로로 우회해야 한다.

 

 

 

남산성곽길

남산 산책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울 성곽 등 역사문화체험을 위해서는 숭례문에서 출발하거나,

반대로 동대입구역에서 장충공원으로 오르면 된다.

숭례문에서 출발할 경우 성곽길 탐방을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니,

반대방향으로 동선을 잡는 것도 좋다.

남산골 한옥마을까지 함께 둘러본다면, 더 없는 도심 속 역사 체험 여행이 될 듯하다.

 

 

남산은 성곽 길 산책에 외에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함께 부담 없이 나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지만, 역사의 흔적인 성곽 길을 찾아 걷는 것은 색다른 체험이 될 수 있다.

 

이제 서울 평지의 성곽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숭례문에서 남산 가는 길에 일부 성곽의 자취가 보인다.

드높이 솟아 있는 빌딩 옆에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주의해서 보지 않았으면 성곽인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가을빛으로 물든 남산의 풍경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본격적인 성곽 길 탐험은 남산 봉수대까지 오르는 구간이다.

가는 길에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서 잠시 쉰다.

멀리 북한산과 도심 빌딩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계속 성곽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성곽의 안쪽으로 걷는 길이다.

조금 지쳤다 싶을 때쯤, 남산 봉수대가 나온다.

 

봉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해 위급한 사태를 알렸던 통신수단.

조선시대 전국 봉수가 전달되는 중앙 봉수소였던 남산 봉수대에서 기념사진도 한 장 찍는다.

아이와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이라면 역사 공부는 필수!

남산 봉수대 5곳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의 남산 봉수대는‘청구도(靑邱圖)’등의 관련 자료를 참조해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남산 봉수대와 팔각정, N서울타워까지 차례로 구경하고 일정을 마칠 수도 있다.

다시 성곽 길 탐사를 계속하려면 장충동 성곽 길을 찾아가야 한다.

남산 순환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다 보면, 드문드문 성곽을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성곽 길은 자유총 연맹 건물 뒤쪽으로 가면 이어진다.

성곽 밖을 따라 장충체육관까지 내려가는 길에 온전한 성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낙산성곽길
대학로 쪽에서 이화동 예술거리를 지나 낙산공원으로 오르는 것도 특별한 재미가 있다.

성곽 길은 아니지만, 다양한벽화와 공공 미술 작품으로 유명하다.

오밀조밀한 골목길과 계단 등 옛날 주택가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모 TV프로그램에 등장한 날개 벽화 그림은 방송이후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아

인근 주민들의 원성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일화도 있다.

 

 

남산에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구간이 많다.

낙산의 성곽길 탐방은 흥인지문부터 시작한다. 그에 앞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도 한 번 들러본다.

동대문 운동장 구간에서 발굴을 마친 서울성곽을 복원해 놓았는데,

도성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물을 빼기 위한 이간수문(二間水門)과

서울성곽에서 최초로 확인된 방어시설인 치성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낙산은 서울의 내사산 가운데 가장 높이가 낮은 125m의 산이다.

도성의 동쪽에 있어 동산(東山), 산세가 낙타를 닮았다고 해 낙타산(駱駝山)이라 불렸다.

이를 줄여서 낙산(駱山)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서울성곽은 낙산을따라 흥인지문에서 혜화문까지 약 2km 가까이 이어진다.


흥인지문 건너 동대문성곽공원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 낙산공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완만한 산책로가 이어지기 때문에, 연인들이나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추천할 만한 코스.

성곽 바깥 쪽 길은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성곽 옆으로 바로 주택가가 면해 있어 길가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민들,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낙산공원이다.

낙산공원에 마련된 벤치에 잠시 앉아 발 아래 펼쳐지는 동네 풍경을 바라본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점점 자취가 사라져가는 서민 동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아련한 느낌을 준다.


낙산 성곽 길은 저녁에 걸어도 분위기가 있다. 성곽을 따라 조명시설이 되어 있어 근사하다.

그래서인지 성곽에 올라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연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낙산공원에서 혜화문까지 내려가는 길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주택가 골목을 따라 한성대입구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낙산공원의 끝자락인 동소문로가 7m 높이 옹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

현재 진입로를 공사 중으로 오는 12월이면 낙산공원과 혜화문 성곽 길도 이어진다.

 

- 글, 한해아/ 사진, 나영완

- 서울사랑 11월호

 

 

 

 

 

  ˝성곽문화재의 寶庫, 서울˝

아차산 · 수락산 등 6개 지역 성곽, 연말까지 문화재 지정 추진
'서울은 2천년 전부터 한반도 중심' 입증

 

 

 

서울은 성곽문화재의 보고(寶庫)

서울의 성곽이라고 한다면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도성(都城)이나 삼각산에 있는 북한산성 정도만 떠올리게 된다.
흔히 ‘서울성곽(사적 10호)’으로 불리는 도성은

태조 5년(1396)에 축성된 이래 바로 서울을 상징하게 되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나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도 사실은 도성의 한 부분이었으니,

도성은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도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 도성이 쌓이게 된 것은,

다시 말해서 서울이 서울이 된 것은 다 그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변은 삼국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항쟁하던 치열한 격전지였다.

700년 백제 역사 중 500년간의 도읍이 바로 한성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함락시킨 뒤에는 이곳에 남평양을 두었고,

고려시대에도 이곳에는 남경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서울은 역사적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우리는 곳곳에 남아 있는 성곽유적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성곽에 대한 일제조사, 25개소는 실측 완료

 

서울시 문화재과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올 8월까지 14개월에 걸쳐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모든 성곽들에 대한 일제조사를

서울학연구소와 한신대 박물관과 함께 실시하였다.
이 조사로 서울에 있는 36개소의 성곽 중 확인이 불가능한 성곽 4개소를 제외한

불암산성 등 32개소의 실태가 파악되었으며, 몽촌토성 등 25개소에 대하여는 실측도 완료되었다.
실태가 파악된 32개소의 성곽 중에서 홍련봉 1 · 2보루(시기념물 제21호)를 비롯하여

총 27개소의 성곽이 삼국시대 성곽으로 밝혀져 2000년 고도(古都)로서 서울의 역사성이 증명되었다.

 

삼국시대의 성곽은 대개 산의 능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으므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완전한 훼손을 면할 수는 있었지만,

최근 등산로 정비·시민체육시설 등으로 인하여 유적의 일부가 훼손될 염려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곽은 1970년대 이후 국가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대체로 정비가 잘되어 있는 편이다.
이번조사를 통해서 아직도 복원이 가능한 구간이 잔존해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북한산성의 경우에는 산성과 함께 장대(將臺), 성랑(城廊) 등의 부대시설이

경기도 일원에 걸쳐 소재하므로 국가적 차원의 정비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되었다.

 

 

성곽 보존 위해 문화재 지정 추진


서울시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아차산 보루군, 용마산 및 망우산 보루군, 수락산 보루군,

불암산성, 대모산성, 살곶이 목장성 등 6개 지역 성곽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수락산 보루군은 이미 서울시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된 홍련봉 보루와 더불어

고구려의 토기편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어서

고구려군의 남진 등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항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보루란 소규모 부대가 주둔하는 작은 규모의 성곽을 말한다

 

불암산성은 통일신라시대의 발달된 성곽 석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모산성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토기만 출토되었지만

백제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보호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성백제시대에 처음 축성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살곶이 목장성은 아차산과 배봉산의 주능선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살곶이다리(한양대학교 남쪽) 서남쪽의 평평한 초원지대는 조선시대에 목장이 있었는데,

목장에서 방목한 말이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전장 20km 정도였던 것인데 현재는 742m정도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살곶이 목장 그림을 통해서도 목장 외곽에 성곽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성곽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앞으로 이 곳에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거나 변형하게 될 경우

문화재 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되므로 성곽보존에 만전을 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속적인 학술조사와 훼손방지 노력 기울일터

 

서울시는 2004년부터 서울지역의 삼국시대 성곽에 대하여

정밀조사 및 학술발굴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학술발굴은 이번조사에서 실태가 파악된 32개소 성곽 중

역사적 가치가 높고, 시급히 보존이 필요한 성곽유적에 대하여 실시한다.
현재 대상유적으로는 홍련봉 1·2보루 등 10여개소가 해당되며,

2004년부터 매년 2개소씩 연차적으로 학술발굴을 추진할 것이다.
한편 유적이 소재한 자치구와 협의하여 성곽을 훼손하고 있는 체육시설, 등산로 등은 주변으로 이전하고,

유적 주변에 안전펜스 및 안내판을 설치하여 훼손을 막으면서

시민들에게 유적의 역사적 사실을 알릴 예정이다.


서울은 20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도(古都)이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되는 성곽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돌 한 조각, 풀 한 뿌리에도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서울에 있는 모든 것을 항상 소중히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연갑수(서울시 문화국 문화재관리팀장)

- 20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