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한국은행 본점(옛 조선은행 본점)

Gijuzzang Dream 2010. 11. 12. 18:27

 

 

 

 

 

 

 

 한반도와 만주 경제 장악하기 위한 일제의 포석

한국은행 본관...옛 조선은행 본점

 

 

 

본관 2층에 화폐금융박물관 운영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사신 분들이라면 기억나겠지만

한때 한국은행 발행 100원권(1965년 발행)과 5,000원권(1972년 발행) 뒷면에는 한국은행 본관 건물이 있다.

 

서울 중심인 명동 입구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구태여 화폐에 게재된 건물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도 매우 낯익은 건물 중의 하나다.

1912년 경성에 세워진 이래 근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서울 도심의 랜드마크로 삼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 권위와 위상은 해가 갈수록 공고히 하고 있다.

위치하고 있는 곳 자체가 도심의 최고 번화가인 명동과 충무로 지역이며,

은행, 백화점, 관공서 등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의 1번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본관은 옛 조선은행의 본점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본제일은행 경성지점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1908년 11월 일본의 건축가 다쯔노 깅꼬(辰野金吾, 1854~1919)의 설계로 짓기 시작하였으나,

공사 도중인 1909년 10월에 한국은행이 창설되었기 때문에

건물이 완성되면 한국은행 건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911년에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어,

이듬해 1912년 1월에 건물이 완성되자 조선은행 본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건평 2,409㎡, 연면적 6,719㎡의 석조 건축이다.

해방 이후 1950년 <한국은행법>에 의해 다시 한국은행으로 바뀌어

이 건물도 다시 한국은행의 본점으로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중구 남대문로3가 110번지에 있으며, 1981년 사적 제 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을 설계한 다쯔노는 동경대 출신으로

1896년 일본 동경의 제일은행 본점 건물 설계를 주도한 일본 건축계의 대부로서,

한국은행 설계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행 건축조사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 본 건축은 구미제국의 최근 은행 건축을 참조해 본토 및 조선의 관습 및 사정을 고려하고

오로지 실용적이고 견고하게 짓는데 주안을 두었으며,

아름답게 곡선이 돌아가는 윤환(輪環)의 미를 추구하였다. (중략)

건물 곳곳에 탑을 높이 솟게 하여 장대한 모습을 보이도록 하였다.

양식은 르네상스식이며 지하 1층 지상 2층, 총 3층으로 건물의 세 부분 구석에 탑 모양으로

역시 세 개 층을 갖도록 하였다. (중략)

본 건축의 특색은 거대한 석재를 사용해 공중이 모이는 홀을 광대하게 조성한 것에 있다.

동양에서 이같이 뛰어난 건물은 없을 것이다. -

 

당시 일제는 다쯔노에게 위엄있는 석조 건물을 주문하고 있었다.

한반도와 만주의 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포석으로 일본 제국의 권위를 만천하에 표방하고 싶었던 것이다.

건물의 외벽은 화강석을 다듬어 붙이고 지붕은 철골로, 바닥판은 철골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었다.

외벽재료인 화강석은 동대문 밖에서 채석하였으며, 벽돌은 관립 연와제작소의 것을 사용하였다.

철재류는 미국 카네기사 제품과 영국, 일본 제품을 같이 썼다.

겉모습은 H자 형태의 평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현관 좌우 모서리에는 원형의 돔을 얹어 프랑스 성곽풍의 르네상스 양식을 이루고 있고,

1층 바깥벽은 화강석의 수평대를 돌출시켰다.

 

평면은 정(井)자형 장방형이다. 그 중앙에는 약 530㎡의 객장이 있으며,

1,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하에는 당시 최대의 대형 금고를 설치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 폭격 등으로 건물의 내외부가 모두 불탔으나

1958년에 원래 상태로 고치고, 1989년 5월에는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의 1층은 2000년 12월까지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2001년 6월 내부를 바꾸는 공사를 하였으며,

본관 2층은 1990년부터 화폐금융박물관을 열어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 본점 건물에 대한 기사나 이야깃거리는 전하지 않는다.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일체의 언급이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간헐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1938년에 간행된 『경성명소 이야기(京城名所物語)』에

‘남대문을 통과하여 아카시아 가로수의 보도를 따라 ‘조선은행 앞 광장(鮮銀前廣場)’으로 향했다.

2천 평 쯤 될까,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삼각형에 가까운 광장이었다.

정면의 한 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지나가면서도 보이는데,

메이지 분위기[明治色]가 강한 빨간 벽돌의 중앙우편국이다.

좌측 한 끝은 커다란 화강암을 쌓아 올린 장중한 영국풍의 조선은행 본점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1930년대 근대도시 경성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모더니즘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인공 구보씨는 할 일 없이 시내를 돌아보다가

종래는 조선은행 본점 앞에서 전차를 내려

본정(本町, 명동)쪽의 다방과 번화가를 기웃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 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교육홍보과장)

2010.10.14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

 

 

 

 

 

 

 

 

 

'찾아 떠나고(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성곽  (0) 2010.11.12
서대문형무소  (0) 2010.11.12
배재학당  (0) 2010.11.12
서울성곽길~북한산 둘레길  (0) 2010.11.05
진천 농다리(鎭川籠橋)  (0) 201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