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통도사성보박물관 관장 현근스님의 <박물관 둘러보기>

Gijuzzang Dream 2010. 10. 22. 12:45

 

 

 

 

 

 <통도사성보박물관 둘러보기>

 

 

 

1. 구하스님  

 

 

 

卽心卽佛眉拖地(즉심즉불미타지)

非心非佛雙眼橫(비심비불쌍안횡)

蝴蝶夢中家萬里(호접몽중가만리)

子規枝上月三更(자규지상월삼경)

 

마음이니 부처니 눈썹은 아래로 쳐져있고

마음도 부처도 아니니 두눈은 가로로 놓여 있네

나비는 꿈속에 만리를 가고

두견새 우는 삼경의 그 소식은...

- 축산 구하(鷲山 九河, 1872-1965)


 

창건 이래 산중을 거쳐간 큰스님들의 부도밭을 걷습니다.

그 중, 근현대의 큰 획을 그어 놓으신 구하스님께서 84세 때인 1955년, 단청장이셨던 혜각 스님께 주신 글, 그림입니다.


구하스님은 저의 은사스님의 은사스님에 은사스님이십니다.

 

 

 

따로 나누어 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눈썹이 쳐진거나, 눈이 가로로 누워있는 건 있을 게 있을 곳에

그냥 있을 뿐이라는...아무 생각없이 살지좀 말라는 준엄한 경고.


묻습니다. 자규(子規)가 두견새인지 소쩍새인지...

 

불자님, 지금 서 계신 그 곳은

정녕 불자님이 계셔야 할 자리가 맞습니까?

혹 남의 자리에 있거나

내 자리를 남에게 내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2010-07-12
 

 

 

 

 

 

 

 

 

 

 

 

 

 

 

 

 

 

 

2. 香聲 

 


香聲

贈 圓明智宗闍梨원광 경봉(圓光 鏡峰, 1892-1982)

 

 

향(香), 향기에서 소리가 난답니다.


어릴 적 어른 스님들께서 법당에 들어오시면서 혼잣말로 “거-참 향소리 좋-다”는 그 말씀.

그 의미를 알기까지 한참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향에 향기가 좋다 또는 냄새가 좋다는 표현보다 향소리가 좋다는 은유적 말씀.


다정한 그 말이 한결 정감이 있습니다.

생전 경봉 노스님의 큰절 행차 뒤에는 꼬맹이 스님들의 몫이 따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밀어라, 밀어. 극락에 다 왔다... 허허!”

극락암 초입의 가파른 언덕배기 오르실 적, 당신 등을 밀고있는 저희에게 주신 법문입니다.

 

지금쯤 진짜 극락에 가 계시겠죠?


피어오르는 향연(香煙)을 보고

코로 향기를 맡기보다 귀로 향기를 들을 정도의 불자님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 글씨는 큰스님 말년에, 현재 영축총림의 방장이신 상좌 원명 지종(圓明 智宗)스님께 주신 글입니다.


 

 

 

 

3. 기려귀가(寄驢歸家 : 말 타고 집에 오다) 

 


不知驢背吟詩客(불지려배음시객) 나귀 탄 시인은 알바 아니고
料理淸愁許我看(요리청수허아간) 그 사이 시름은 날아가고
- 남농(南農, 1908-1987)

 


늘어진 노송 밑으로 나귀를 탄 필부(匹夫)의 귀가.
여름
가져갈 게 없으니 울타리는 두었으되 사립은 두지 않는다.

 


청한묵객(淸閑墨客)의 나들이 길인 듯...

 

가만히 보자. 나귀머리로는 분명 돌아오는 길이 맞기는 맞는데...
영판 길 나서다 심사 뒤틀린 나귀등에 탄 모습같이 보인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어디쯤에선 되돌리고도 싶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말년엔 귀가 어두워 더욱 편안해 보였다는 화가.
누가 칭찬을 하던, 헐뜯던... 애먼 표정으로 열정의 화업(畵業)만을 마음에 두고 하루하루를 보냈다는데...


지금,

불자님의 귀는 무엇을 듣고, 입으로는 무엇을 말하고 계시온지...

 


 

 


4. 道峰夏景(도봉산의 여름) - 황염수(1917-2008) 



 

깜짝, 박물관 하면 캐캐묵은 골동품만 있는 줄 아셨죠.

평양 출신인 작가는 40여 년을 오직 장미만 그렸다네요.
그리하여 별명이 "장미화가" 였을 정도로 장미에 홀딱 반한 작가는
꽃에서 향기가 떠나지 못하게 그려야 제대로 그린 장미라고 말했답니다.

도봉산.
추가령에서 백두대간을 이별하고 줄기차게 내달은 뒤 마지막의 정열을 불사른 듯한 산,
한북정맥의 맨 끝 낭떠러지 도봉산.

정면에서 마주본 듯 그리는 정직함.
그리고 산둘레를 파란색으로 선을 입혀 도드라지게 한 기법(그의 장미 그림이 다 그렇듯) 등등
그만의 특유한 편안함과 아늑함.

어진 이는 산을 좋아 한답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요수 인자요산 : 아는 이는 물을,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

- 論語 雍也章 논어 제6편 옹야장)

 

푸근한 마음을 지닌 산처럼 남을 대하시기를...
너는?... 나는 빼고요...


황염수 작가의 장미그림입니다.(본 박물관 소장품은 아닙니다.)


 

 

 

 

5. 차 한 잔 올립니다. 

 - 다완(茶碗) 14세기

 


고색(古色)이 가득한 찻 사발.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꺼리, 얼마쯤 할까? -제 수준으로요-
전혀 엉뚱한 생각으로 잠시 더위를 날립니다.

 

어저께는 은사스님 입적 32주기였습니다.
지천명(知天命 : 50세)의 수(壽)도 누리지 못하고 먼저가신 스님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무너지는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이 만큼의 세월이 갔는데도요...
차 한잔 올립니다.

 

그 해,
당신 손으로 빡빡 깎아 놓은 내 머리가 겸연쩍으셨던지 “참고 살제이--” 하셨는데...
그 머릴 골백번도 더 깎은 지금까지도 참고 살지를 못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더운 여름 땡볕에 풀 매는 것보다 더 하겠느냐는 한 마디에

덥다는 말을 잘라 먹은 좌복위의 그 스님은 아실랑가?...


다시 한 잔,,, 더위에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께 차 한 잔을 올립니다.
“참고 살제이--” 라는 말과 함께요.


 

 

 

 

6. 화채 한 사발 

 



- 푼주(南宋 官窯, 12세기 말)


콩죽 같은 땀, 정말 덥다.
계곡에 발 담그고 다정한 이와 수박화채 한 그릇. 얼음 둥둥 띄워서...
나눠 먹을 수 있는 큰 그릇. 푼주.

 

선가(禪家)의 법문에 “추우면 추운 곳으로, 더우면 더 더운 곳으로 가라” 라는...
피해 다니면 쫓아다니는 게 사바의 이치,
가난. 고통. 절망. 애증. 이별 등도 마찬가지...
어디라고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사바인 것을...

 

“이 세상 어디엔들 상처 받지 않은 영혼이 있으랴”


이제 며칠 지나지 않으면 오늘이 그리워 질 겁니다.
인생은 늘 지난 걸 그리워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지금 불자님 곁의 모든 이에게 화채 한 그릇 쯤의 추억을 만들어 보시길...

 

주지스님, 스님의 왕 아끼는 기증품임을 난 밝혔어요. 분명히...
참, 스님하고 친하게 지내신 앙선생이 영면(永眠)에 드셨네요.
판타스틱(fantastic)을 참 퐝~타~스틱하게 발음하셨는데...ㅎㅎ


 

 

 

 

7. 그대 거기 가려는가... 

 

 

(부분 ; 위 점선 부분 확대)

- 감로탱(甘露幀, 光武 4년, 1900년)


섣부르게 껍죽대다간 딱 요모양 요꼴이 됨.

 

백중. 절집에서는 이날을 '우란분절'이라고 부릅니다.
우란분(盂蘭盆)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라는 의미의 말.
목련(木連; 부처님 십대제자. 신통제일)어미가 전생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된

거꾸로 매달려있어야 하는 과보. 지극한 고통,


혹 먼저가신 울엄마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49일 치성을 올림.
그 회향이 바로 오늘(음 7월 15일).


해년마다 또 한 번의 엉뚱생각
빌어줄 자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좋겄다.
살으니 상투가, 죽으니 무덤이 있기를 하나...?


불자님, 우리 불자님들은 가고난 뒤 자손들께 이런 번거로움을 줄 일을 만들지 마소.
저승에 가거들랑 폰을 하소. 내 올데로 왔으니까 너나 잘 살라고, ...요


아무튼 복더위에 무던한 기도, 근념들 하셨습니다.

 

 

 

 

 

8. 존재, 그로 하여금... 

 

 

 - 수막새 기와(8세기)

  

기와 지붕 추녀의 날렵함.
...에 가려 정작 막새의 조밀함은 생각지도 못함.

얼마전 그랬다.
있을 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던 막새 하나가 빠진 노전채의 허무함이란,,,
고작 수막새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감춰진듯 하면서도 도저히 감출 수 없는,
빼먹을 수 없는 존재. 절대 필요존재...

삶에서의 이치가 또한 그러함.
없는듯 함의 장중한 존재감의 확보

불자님, 입으로 나의 존재를 외치지 마시고, 없어서는 도저히 안되는 나만의 존재 이유를 확보 하십시오.
막새기와의 절대 존재감 같은 이유를 말입니다.

 

 

 

 

 

9. 자연, 그 스사로움이여 



 


- 부도밭 건너 다정각 왼쪽 개울가

우선 한 마디
산중엔 한 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일러주지 않으면 평생가도 모를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끔씩,

 

밑에서 보면...
세상에나-- 가지 하나가 우산처럼 나무 둥치를 감싸고 돕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고 나는 당신만 쳐다봅니다 라고 하는 듯,,,


나는 지금 누구의 우산이 되고 있는가?.

 

자연의 신비,
그래서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자연을 기댄다
(地法天 天法道 法道自然; 老子)라고...

 

좀 떨어져 보면,
부러진 윗 둥치 끝엔 자신을 거름삼아 6,7년생의 손자에 손자뻘쯤 되는 나무를 기릅니다.


자연만이 가능한 장중한 오케스트라,
불자님, 그 소릴 들을 만큼의 귀를 준비하심이...


  

 

 

 

10. 숙옹(肅雝

 


- 석불 정기호(石佛 鄭基浩, 1899-1989). 80세 작

 

전각장(篆刻匠) 1호.

석불의 화(和)와 경(敬)의 뜻을 담은 전서체(篆書體) 글씨.

이웃과 화합하고, 세상을 공경하며 사는 겸허함.
(於穆淸廟 肅雝顯相 : 묘를 깨끗이하고 제를 올리듯... 詩經 시경)


 

매꾸러기 같던 여름. 가뭇한 시간
이제 그 지겹던 폭염도 고갤 떨굽니다.
널부러진 마음새, 그리고 몸새... 단정하게 하시자고...

 

그리고 또, 소원했던 자기 내면과의 화해, 그리고 보듬음...
그리하여

손톱달 만큼씩의 성숙함으로 자신 그리고 남을 대하시라고...


다시 거둠과 감춤의 계절이 성큼.
내어놓은 말, 생각들을 잘 거둬들임으로...

 

불자님. 자기를 잘 거둠이 남을 잘 거둬들임 입니다.


 

 

 

 

 

 

 

 

 

 

 

 

 

 

11. 도저히, 도저히 

 

 

- 복숭아 연적(硯滴 : 먹을  갈때 필요한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도구), 19세기 후반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벼루. 먹)의 곁다리. 일명 수승(水丞).
왈칵 쏟아져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찔끔거려도 안되는...
꼭 그만큼 씩만 나와야 되는...


좋은 계절. 성글성글한 명절,
불자님께 제가 젤루 좋아하는 복숭아를 올립니다.
저승에선 먹기 힘든 과일. 쏙 빼 닮은 연적


얘기 하나
부처님 전에 복숭아는 끼지를 못함. 귀신을 막는다는 속설로 인하여...
그리하여 집 앞엔 복숭아 나무로 벽사(辟邪 : 귀신쫒음)를,, 아시죠?

 

얘기 둘
양반댁네 며느리 들일 적에 “얘-야, 요것좀...” 하면서 물러터진 복숭아를
그것도 무뎌터진 칼과 함께... 깎게하는 오금박힌 장래 시어머니의 노회한 노림수... 아시죠?

 

사연 많은 복숭아,
불자님 송편 많이 드시고 명절 자-알 보내세요


 

 

 


12. 구름 빗긴 청산이여... 



生涯一片靑山. 老阮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熙,  1786-1856)

 

 

누가 그럽디다. 세월이 폭포수 떨어지듯 한다고...

고향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앞산은 잘 있습디까?
담방대던 갑순이는, 넘성거리던 갑돌이는요?

어릴 적엔 그렇게 높고 넓던 산.  강, 개울...
그저 정겨운 고향길이셨기를 바랍니다.

다시,

추사의 고난한 일생
청산에 빗겨가는 한조각 구름마냥 살고 싶은 심정.
고향을 떠나 어른이 되듯,

유배의 허허로움에 결국 이렇듯한 마음

이제 다시 현실입니다.
때론 비껴서고 싶기도 하겠지만,
보십시오.

청산 옆에 구름이 늘 붙어 있지는 않지 않습디까.
고통이나 절망도 마찬가지

반드시 끝은 있습니다.

불자님,

불끈 힘을 내서 주어진 현실을 같이 헤쳐 나갑시다.
부처님의 계심으로...


 

 

 

 

 

13. 좋은 때로고... 


- 촛대(조선 후기)

 


나를 태워 남을 밝히는 초를 꽂아 놓는...


 

아침 소나무 숲 산책길, 책읽기 참 좋은 계절이네... 문득,
싶었습니다.
독서에 무삼 때를 가리리오마는...


한 가락,
소리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촛불 밝혀 님 그리듯 책을 보십시오.

 

몸소 다 할 수 없기에 남들의 경험, 지식을... 책을 읽습니다.
또한 많은 생각을 - 갖가지보다는 한 가지를 골똘히- 해보는...
그런 보람찬 가을로 먼 훗날 기억되게시리...


불자님, 자신을 분명히 볼 수 있을 때 남을 훤히 볼 수 있습니다.
평생 스스로만 보구 살면 더 좋구요.


 

 

 

 

14. 통도사를 세우셨으니... 


- 자장 스님(1804년, 조선)


 

통도사 창건 1365년.
불자님과 스님들, 또는 신도님들끼리 수도 없는 인연의 시작이 여기 통도사에서 시작 합니다.
통도사만 없었으면 그 사람을 안만났을낀데... 하시는 분도 더러는,
그래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 : 잘만 보면 모두 스승)라 합니다.


초파일에 태어나신 스님
당 청량산 문수보살님께 기도후 귀국,

다섯(봉정암. 상원사. 법흥사. 정암사. 통도사)곳에 보궁을 세우셨으니,

한 분의 어른 스님이 나오심에 만 중생의 귀의처가 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지금의 자장이 되기까지

무려 오백생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청정함으로 일생을 사셨다고 낙성식 때 말씀을 하셨답니다.
무려 오백생의 업보로써, 현생(現生)의...


불자님, 오백생 후를 기약. 정진 합시다.
모든 존재의 가장 편안한 쉼을 위하여 오늘도 자장가를 부르십니다. 자장 자장 자장.

 

 

 

 

 

15. 아... 가을이여 


- 도상봉(1902-1977)

 

삼일운동에 옥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꼿꼿한 절개.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올곧은 필발.

자손대에나 가야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공손수(公孫樹).

은행나무의 우람함에 기죽지 않은 고옥의 조밀함.

담장 아래엔 석류나무도...


이렇듯 정확한 구도의 표본적 작품.


깊어가는 가을, 책갈피에 낙엽 한 두 장 안 끼워본 사람 있는가?

이젠 그 애잔함만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위로함으로,,,


또는 자작나무 숲길, 이파리. 속삭이듯 살랑이던 그 사잇길에 던져놓은 수 많은 언어, 눈빛, 수줍음들...

목마와 숙녀가 어울리는 좋은 계절


불자님, 기어이 대를 걸러서라도 베풀고 마는 은행나무의 배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우리. 전혀 낯 모르는 그들에게 착한 일 하나의 추억.

 

올 가을이면 어떻습니까?

2010-10-18
 

 

 

 

 

16. 난, 아직도... 


-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

 

해장보각 주련(柱聯 : 기둥에 새긴 글)에
 

寶藏聚玉函軸 (보장취옥함축 : 보배로운 부처님 말씀, 옥함에 모셨고) 

集西域譯東土 (집서역역동토 : 인도글을 한문으로 옮겼네) 

鬼神護龍天欽 (귀신호용천흠 : 귀신이 보호하고 천룡이 흠모하니) 

標月指渡海筏 (표월지도해벌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요 고해를 건네는 뗏목이로세) 

 

... 중에서 맨 뒷구절.

달을 보라. 가리키는 손가락은 보지 말고...

 

엄성노인 가을달을 봅니다.

수십년 전 딱 오늘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오늘처럼. 그날도, 그 다음날도 달은 떠 있었습니다. 분명,

 

본질을 떠난 사변(思辨)에 매이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영원한 진리 밖 그 어느 것에도 눈독들이지 말라는,

 

분주다사. 백년도 못 채우는 인생에 천년 살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오늘 달 보기가 부끄러워짐인지도 모릅니다.

 

자족을 멀리 한 허우적거림, 얻지 못할 거에 대한 미련한 기대, 생뚱한 망상...

삶이 정녕 그러해야 함인가에 순간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수 십년이 흐르고 보니 아예 달을 볼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불자님, 달은 마음 속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은 그 마음을 보는 마음입니다.

2010-10-25

 

 

 

 

 

17. 고려불화 참관기 -- 돌아오라소렌토(surriento)로 --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난 것을 나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뚱땡이 파바로티보다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께 한결 나은 노래 떠난 님을 그리워함으로...

“있는 거 만이라도...”의 재 삼청에 할 수 없이 펼쳐진 당신모습..
그렇게 그 앞에 구배, 아홉 번의 절을 받으시고...

“그래 내가 가마”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신듯 그 절(日本 淺草寺) 그 노스님의 허락으로..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오신...
바다를 건너심에 발바닥이 헤진 채로 그래도 나를 낳아준 나라 한국엘,
우리나라를...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가신다니,
잠을 설쳐 가면서 기다린 오늘, 고려 불화를 배관(拜觀)하는 날.
잠시 눈을 부친 차 안에선 수백마리의 나비떼가... 당신, 관음보살의 가슴패기로 달겨드는 꿈을 꾸기도...

정작 우리의 소중한 보물이 남의 나라에 계심으로 구걸하듯 모셔오는 이 지경이 되었으니...

똑똑히 보셨죠? 여러분들의 따스한 손길로 다시는 이러한 허무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그때 그렇게 선연히 들려오던 노래가 귓가를 맴돕니다.
그리고 고조곤히 다가올 나타샤를 기다리는 백석의 심정으로...

그대여 다시 돌아오시라. 우리 대한민국으로. 어여,,,


 

 

 

 

18. 화엄의 바다에 노를 저어 나가세...

 

- 선재동자(18세기, 조선)


 

원개해탈문(願開解脫門) ; 해탈문을 열어 주소서

원리제전도(遠離諸顚倒) ; 잘못된 생각을 버릴수 있게..


이런 원력으로,

쉰 세분의 말씀을 듣고자 53일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기화요초 만발한 화엄세계로의 여행. 기대됩니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아무나 갈 수없는 고행의 길입니다.


동자로 화현(化現)한 부처님의 행로입니다.

그 길을 따라 이제 시작합니다.

 

기대와 설레임이 반 반, 그러나 좌절은 절대 금물입니다.

선재동자 댓님을 붙잡고라도 끝까지 가셔야 합니다.

그런 다음 세상을 보듯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지난 세월의 어둔한 삶의 반성,

진리에 대한 끝없는 열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얻으셔야 합니다.

부처님을 대신 하여 묻고 대답해 주시는 쉰세분의 중생에 대한 연민.

그 비린청의 무죽스런 말씀 속에서라도,,, 기어코 알아 내시길 기원 합니다.


불자님. 바로 알고, 바로 행하기 위해서라도 요번 회는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시룻번 같은 말도 듣기 나름입니다.

2010-11-08

 

 

 

 

 

19. 청류동천(靑流洞天.. 구하스님글씨)

 

곳곳에 숨어 있어 눈에 잘 안띄는 곳,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 뚝기 가득한 암각자(岩刻字: 바위에 새긴 글씨) 청류동천입니다.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이 되니 눈에 잘띄어 한번쯤 눈여겨 보시라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해인사 십리계곡을 최치원은 홍류동(紅流洞)이라 부르면서 말년을 보내다
짚신만 남겨놓고 홀연히,

계곡을 따라,

동이 트기전 솔잎 가득한 그 길을 걷습니다.

청류동 길 입니다.

이 무슨 천복(天福)인가 하면서요.

 

육신으로의 마지막이 되고 말 이 길. 중 도막에 정토헌이라 이름붙인 화장막이 있음으로...

딱 요맘때가 청류동천을 가까이 하기엔 절호의 기회입니다.

새실거림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함으로...

혼자 한번 이 길을 걸어 보세요...

솔잎이 지천입니다.

  ※청류교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큰 돌에 영축총림이라는 글씨가 보이고

     건너편 계곡. 너럭 바위위에 새겨져 있음

 

 

 

 

 

20. 두루 두루 살피소서.  


- 금강신장(金剛神將. 1736년)


人之誠心(인지성심); 지극한 마음
神而必知(신이필지); 귀신도 움직이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내가 살아 감은 누구의 여투름인가를...

 

깔고 앉은 방석이며, 눈앞의 책이며, 필통의 연필이며, 커피 등...
어느 누가 특별히 날 위하여 만든 건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남을 위한 일을 합니다.
특정한 누구를 위하여는 아니라도,

 

이제 한 열흘이 지나갑니다.
갈똥말똥 망설일 때 도반(道伴)의 도움으로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남에게,
도반... 수행의 동반자입니다.

 

남을 위한 배려를 배우기 위하여 듣는 법문이어야 합니다.

한 분의 뒤처짐도,
금강력사의 옹호를 빌어 오고가심에 아무런 장애가 없으시라고,
그리하여 드디어 회향하는 날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 것을 알 수 있게시리.,, 되었으면.

 

오늘 하루는 남을 위한 기도를 하는 날입니다.
단 하루 오늘 만이라도 말입니다.


 

 

 

21. 잠시 잠을 잠으로... 

 

- 박영선(1910-1994)


쓰렁스런 낮잠이 분명함.

시접된 매무새로 보아 원피스로 추정되는 옷을 입고...

희끗한 머릿결은 중년의 푸석함까지,

 

근현대 한국화가 중에 피부색을 가장 간드러지게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달고 다녔던 화가.

그의 인물화 대부분은 이렇듯 실루엣 살색이 보임... 그로 하여금...

 

아무튼 꿀맛에도 견주기 싫은 낮잠.

법문을 듣다보면,,, 에이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 껄,,,이라고.

훗날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아무날 법문에 졸던데...? 라고 물으면...

그때를 대비하여 절대로 졸지말고...요

 

말년에 자식의 사업실패로 인하여 그림을 남발하는 바람에 값이 좀...

역시 무엇이던 너무 많으면, 자식이던 상좌던...

군자고궁절(君子固窮節; 군자는 가난할 때 품위를 지켜야...)이라커늘

 

얼마 않있으면 실컷, 내내 잘 수 있습니다.

천근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귀를 쫑긋 세우세요.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현근 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