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국립중앙박물관] 아! 아름다운 고려불화 [스크랩]

Gijuzzang Dream 2010. 10. 25. 21:11

 

 

  

 

 

 

 

 《고려 불화 대전-700년만의 해후

: 국립중앙박물관, 2010년10.12-11.21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몇달 전부터, 아니 몇 년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고려불화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2년이 넘는 준비 과정끝에 개최하게 되었다는데, 그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대표적인 고려불화 수작들이 전부 한 자리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 점 보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금생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책과 도록에서만 봤던 작품을 직접 보는 감동은 전시장 처음에 걸린 <비로자나불>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에 꼭 한 번 시간 내서 관람하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혼자도 가고 둘이서도 가고 여러 명이 함께 갈 때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감동은 똑같았습니다. 정치하면서도 색감이 뛰어난 고려불화의 세계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비로자나불>, 비단에 채색, 162×88.2cm,  일본 후도인  

 

  

 

 

물방울처럼 생긴 원형 광배 안에 비로자나불이 한쪽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의 두광(머리둘레의 빛)과 법의(부처님의 옷)는 물론이고 '萬五千佛(만오천불)'이라 써진 윗부분과 화면 하단의 공간에는 수많은 화불이 그려져 있습니다. 세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전같은 원형 안에 울긋불긋하게 그려진 얼굴이 바로 화불입니다. '化佛(화불)'이란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작은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된 형식입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스런 붓질이 들어갔는지 숙연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은 바로 종교예술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능력에 영성적인 성스러움이 깃들일 때 그 작품은 사람의 능력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그렇고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의 천정벽화가 그렇습니다. 그 성스러움을  고려불화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전 우주 어디에서나 빛을 비추는 참된 부처이며 화엄경의 주존불입니다. 세부 그림에서 '만오천불'을 그리고자 했던 화공의 집념과 원력을 확인해 보세요.  

 

 

 

 

 

 

 

<관경십육관변상도>,1323, 비단에 색,224.2×139.1cm, 일본 지온인 소장 

 

이 작품은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극락세계의 열여섯 가지 장엄한 모습을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은 세로로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각 관을 나타내는 부분에는 붉은색 칸을 만들어 금니로 표기를 했습니다. (금니는 고운 금가루를 아교풀로 개어서 만든 안료를 의미하고, 변상도는 경전의 내용을 압축해서 묘사한 그림입니다) 

물과 나무와 연못 등을 배경으로 부처와 보살의 정교한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졌습니다.

 

 

 

 

 

 

 

<미륵하생경변상도>, 비단에 색,171.8×92.1cm,일본 지온인 

 

미륵부처는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하생하여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의좌상(倚坐像: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형식)의 미륵 삼존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위에 제석천, 범천 등의 천신과 십대제자, 십이신장 등이 크기를 달리해서 그려졌습니다. 아래쪽에는 두 용왕과 미륵불에게 귀의하는 왕족, 그리고 하단에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부 그림을 보시면 금니로 정성을 다한 붓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불화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우리가 이런 작품을 만드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 자체가 명작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미타여래>,견본채색,190×87.2cm, 일본 쇼보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이번 전시회를 기다리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보존 상태가 좋아 당당하면서도 균형잡힌 부처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살았을 때 선행과 염불을 많이 한 사람은 임종할 때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로 맞이해간다는 '아미타내영도'입니다.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 혼자 그려지는 독존도가 있고, 아미타불이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거느린 삼존도, 팔대보살과 함께 내영하는 아미타구존내영도 등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모든 형식의 내영도가 전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아미타여래>의  붉은색 가사속에는 금니로 여러가지 연화원문을 세밀하게 그렸으며, 승각기에는 파도문을, 오른팔에 걸친 대의에는 운봉문을 그렸습니다.  

고려 불화는 전세계적으로 약 160여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많은 고려불화가 보존 상태가 매우 나빠서 그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이 많이 손상되었다는 것입니다. 700년의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번 통도사에서 전시된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도>(http://blog.daum.net/sixgardn/15770104)를 보고 다시 이렇게 좋은 <아미타여래도>를 보게 되었으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세부 그림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아미타여래도를 비교해보기 바랍니다.    

 

 

 

 

 

 

<아미타불도>, 중국 남송, 112,5×48.5cm, 일본 곤렌지소장 

 <아미타내영도>, 일본 가마쿠라 시대, 159.4×84.5cm,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아미타불도>, 견본채색, 163×87cm, 일본 교쿠린인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이 작품도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사실 도판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 작품 앞에 서는 감동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세부 사진을 통해 공부는 할 수 있지만 실제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색감과 크기와 분위기는 역시 직접 대면해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통해 사전공부가 되어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겠지요. 

전시회를 본 후 그 작품에 관한 책과 자료를 찾아 더 자세히 공부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특히 오래되고  좋은 작품일 수록 그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을 흐릿하게 해놓기 때문에 제대로 세세한 부분까지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전시도록을 사서 공부하면 좋겠지요? 

재미있는것은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일본에서 제작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함께 그려져서 세 폭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존도를 보시면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혜허,<수월관음도>, 142×61.5cm, 일본 센소지 소장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전체 작품 중에서 딱 한 작품을 보라고 한다면 이 수월관음도를 지목했을 것입니다. 

수월관음도는 일반적으로 바위 위에 반가부좌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 물방울같은(혹은 촛불이나 버드나무잎같은) 광배 안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대부분의 수월관음도가 전부 암반 위에서 반가부좌한 자세라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독창적인 지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밝혀져 있는 귀한 작품이면서 물방울 무늬를 광배로 한 뛰어난 조형성과 균형잡힌 신체 비례, 정치한 붓질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입니다. 다만 보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원래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라에 가해진 치밀한 붓질... 저거 정말 사람 손으로 칠한 거 맞나요?  

그러나 진정으로 이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대상을 핍진하게 그린 정치함때문만은 아닙니다. 넘쳐나는 손끝의 기교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무심한 상태에서 붓을 들었기 때문에 감동스럽습니다. 잘 그려야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승한 재주를 자랑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램까지 덜어낸 후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칠한 붓질이기 때문입니다. 재주많은 나는 사라지고 대신 드러내고자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은 빛처럼 환하게 보여줄 수 있는 그림.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버린 작품이기에 작가로서 모든 것을 얻은 작품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전부를 얻는 빈자의 미학. 수월관음도를 만든 화공은 단지 그 아름다움만 보여 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인생의 자세까지 가르쳐줍니다.    

 

 

 

 

 

 

 

<지장보살>, 84.5×36.8cm,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기에 충분한 존재이면서도 지옥에 있는 마지막 중생까지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을 하신 보살입니다. 그런 보살이기에 많은 분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을 때 지장보살님께 그 영혼을 부탁드리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 크게 번성했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죽음이 아닐까요? 죽음 너머의 세계로 떠난 사람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49재를 통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장신앙으로 발전했겠지요. 절에 가면 '지장전'이 있는데 지장보살은 이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세부모습에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사라 안으로 금니로 꼼꼼하게 그린 문양을 보면 조금만 힘들어도 앓는 소리하는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지장보살>,106.8×45.5cm, 일본 네즈미술관소장

 

이 작품은 눈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시중에 복사본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장보살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좋고 작품도 짜임새있는데다 보존상태도 그만합니다.

지장보살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처럼 민머리 형태를 한 경우와 위의 작품처럼 두건을 두른 형태가 있습니다.  서 있는 입상일 경우 한손에는 석장을 들고 다른 손에는 보주를 올려놓는 예가 보통입니다. 좌상인 경우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한 삼존도 형식을 취한 경우도 있고 9존도를 그릴 때도 있습니다. 

전시회에 가시면 다양한 형식의 지장보살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장시왕도>, 111.1×60.4cm, 호림박물관, 보물1048호 

 

지금까지는 보존상태가 좋은 작품만 보여드렸는데요. 고려 불화중에는 이 작품처럼 아주 많이 파손된 작품이 더 많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160여점의 작품이 전부 전시되지 못한 것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보존상의 문제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고려 불화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을 살찌워준 불교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작품입니다. 이번 G20 각국 정상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보여줄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고려불화가 선정된 것만 봐도 그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 불화를 보고 있자니 제가 이런 찬란한 문화를 일으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이 뿌듯해졌습니다.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회인만큼 많은 분들이 가셔서 그 아름다운 예술세계를 감상하기 바랍니다. 혹시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가지 않겠다는 그런 편협한 생각을 하신 분들은 없으시겠지요? 종교와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야간에도 개장을 한다는 군요. 좋은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조정육)  

 

 

 

 

<스크랩>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 : http://blog.daum.net/sixgardn/15770325

 

 

 

 

 

 

 

 

V.A. - 라흐마니노프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번호 43 - 18변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