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종로 展 '종로 엘레지'

Gijuzzang Dream 2010. 8. 13. 19:37

 

 

 

 

 

 

 

 

 

 

 

 

전시기간

2010-08-13 ~ 2010-10-03

전시장소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반세기종합전>

 

 「종로 엘레지」특별전 

 

 

 

 

- 600년 서울의 중심, '종로'를 통해 서울의 근현대사 재조명
- 60년대 르네쌍스다방, 창신동 봉제공장 등 서울 성장과정 재현
- 종로의 상가, 기업, 종로 관련 자료 개인 소장자 등 전시 참여

 

 

 

 

 

◆ 서울역사박물관은 6·25전쟁 60주년, 4·19혁명 50주년, 강남개발 40년을 맞아

서울반세기를 정리하고 종합하는 차원에서

600여 년 동안 서울의 중심으로 자리하여 온 종로를 주제로 한 '종로 엘레지' 전을

8. 13(금)부터10. 3(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시계는 벌써 11시 반이나 되었다.

종로 네거리에는 전차 차장이 두어 사람 서 있고,
빨간 불을 켜놓은 순사 주재소 앞에는

검은 복장을 입은 순사가 뚜벅뚜벅 왔다갔다할 뿐이요 아주 조용하다.

영철은 재판소 앞 대서소 많이 있는 골목을 꿰뚫어 청진동으로 들어섰다.
- 나도향 <환희>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 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 하던 노동자 하나가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생략)
- 신동엽 <종로 오가>

 

 

 

 

600년 서울의 중심, '종로'를 통해 서울의 근현대사 재조명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2.8km의 종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로 종루(鐘樓)가 있어 '종로'라고 하였다.


 

△ 종로는

조선시대 종루와 운종가 시전이 있던 생활의 중심지로,

개화기에는 전차가 다니는 신문물의 1번지로,

일제강점기에는 탑골공원에서 3·1독립운동을 한 민족저항의 중심지로,

해방 이후 1960, 70년대에는 다방, 극장, 선술집, 출판사, 서점 등이 즐비한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하여 왔다.


△ 1970년대 서울의 시역이 급속히 확장되고 1980년대 들어 강남이 부상하면서

종로는 더 이상 전성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구매력을 가진 고객은 강남으로 떠나고, 젊은이들은 신촌 등지로 분산되었다.

화신백화점, 르네쌍스다방, 종로서적은 사라지고,

학원과 출판사들도 강남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하여 종로는 서울의 유일한 도심에서 여러 도심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 그러나 지금도 서울사람들은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시작하고 마무리 한다.

그런 점에서 종로는 유일한 도심은 아니지만,

여전히 서울의 중심으로서 역사성과 상징성이 짙게 배어 있다.


△ 따라서 종로의 변화과정이나 각각의 장소에 대한 탐구는

서울의 역사에 대한 이해로 확장될 수 있다.

 

*** 서울반세기종합전의 첫 번째 전시로 '종로'를 주제로 한 것은

서울의 중심, 종로를 통하여 서울의 성장과정을 조명하기 위함이다.

 

 

종로의 명소 르네쌍스다방, 청일집, 세운상가, 보령약국 등 복원

◆ '종로 엘레지'전은

종로의 변화과정과 각각의 장소가 갖는 역사성과 공간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종로 거리와 주요 장소를 전시실에 재현하고,

세트, 영상, 사진, 생활자료 등 다양한 연출 방법을 동원하여 전시하였다.


 

△ 해방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당시 문인, 예술가, 젊은이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였던

'르네쌍스다방', 관철동 주단거리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종로양복점'과 '보신&준(옛 보신주단)',

종로 3가 피카디리극장 앞 유명 영화배우들의 핸드 프린팅 동판이 설치되어 있었던 '스타광장',

우리나라 전자산업, 오락게임의 메카 '세운상가', 종로 5가 약국거리의 대명사 '보령약국'

그리고 종로의 배후지라고 할 수 있는 '창신동 봉제공장'이 1960,70년대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 60년 이상 청진동 골목을 지켜오다 재개발의 열풍에 밀려 올해 2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청진동 선술집의 대명사 '청일집'은 옮기기 직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시실에 복원되었다.

△ 또한 전자상가의 대명사 '세운상가' 코너에서는 개인용 게임기의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40여종의 게임기와 만화가 김수정의 '쩔그렁 쩔그렁 요요'의 원화 등도 전시되었다.


△ 이외에도 '종로'하면 빠질 수 없는 화신백화점, YMCA, 낙원상가,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광장시장, 동대문시장, 지하철 1호선에 관한 설계도면, 관련 자료,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종묘광장 문화유적 조사과정에서 떠온 3.6M 높이의 토층은

다른 근현대 전시물과 함께 종로의 깊은 역사를 보여준다.

 

 

종로의 상가, 기업, 종로 관련 자료 개인소장자, 전시에 참여

◆ 한편, 이번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종로에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 온 상가와 기업들,

그리고 종로의 역사를 간직하고 기록하고 있는 개인과 기관의 협업을 통해 전시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청일집의 경우 청진동 시절의 옛 물건들을 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또 종로양복점, 보신&준, 보령제약에서는 각 기업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이번 전시에 출품하였으며,

귀금속상가의 공방에서는 보석제작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들을 출품하였다.

그 외 국립예술자료원에서는 '르네쌍스다방' 과 관련된 자료를 일괄제공하였으며,

시민단체 '문화우리'에서는 그동안 기록한 낙원상가, 세운상가의 사진자료를 제공하였다.

 

판화가 김상구씨는 르네쌍스다방을 담은 판화 한 점을 출품하였고,

전국재씨(전택부 전 YMCA사무총장의 유족)는 YMCA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자료를 출품하였으며,

아기공룡둘리의 만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만화가 김수정은 '쩔그렁 쩔그렁 요요' 만화 원화를,

그리고 개인수집가 홍순욱은 40여종의 게임기를 출품하였다.

이외에도 이번 전시는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서울 근현대사 정리, '가까운 과거'에 대한 소중함 깨닫는 계기로

◆ 이번 '종로 엘레지'전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는 종로에 대한 오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학생들에게는 종로의 역사와 가치, 아울러 서울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서울시민들과 함께 서울반세기를 되돌아보고,

우리의 '가까운 과거'에 대한 소중함과 이에 대한 보존과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전시는 8월 13일(금)부터 10월 3일(일)까지 공개되며,

지난 7월 15일부터 시행된 서울역사박물관 입장료 폐지에 따라 전시 관람료는 무료이다.
※ 기타 관람문의 : 박물관 안내데스크 724-0274~6, 다산콜센터 120번

 

 

 

 

◆◆ '종로 엘레지' 특별전 주요 전시내용


 

△(1)르네쌍스 다방
르네쌍스다방은 박용찬씨가 1951년 대구 향촌동에서 개업,

전쟁 이후 1959년 서울 종로 1가 영안빌딩 4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87년 운영난으로 폐업할 때까지 문인,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주인 故 박용찬은 1만3천여 종에 달하는 각종 음반과 오디오기기 등을 국립예술자료원에 기증했다.

  

 

 

- 르네쌍스다방 간판

- 김상구 作, <NO 101 음악실> 르네쌍스다방

- 르네쌍스다방 재현모습(전시실)

 

 

 

 

△(2)청일집
피맛길(避馬道)은 종로와 평행을 이루는 종로의 뒷골목을 말한다.

원래 '피마(避馬)'란 지체 낮은 관리가 말을 타고 가다가 고관의 행차를 만났을 때

뒷골목으로 피해 다니는 것을 말한다.

해방 이후 청진동 일대 피맛길은 설렁탕집, 선술집 등이 밀집해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 재개발로 인하여 거의 사라졌다.

 

1950년대 후반 개업, 청진동 선술집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졌던 청일집은

6,70년대 지식인들의 담론의 장소였다. 최근 재개발로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청진동에서 쓰던 물건들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던 것을 이번 전시에서 재현하였다.

 

 

 - 청일집(청진동시절) / 복원된 청일집

 

 

 

 

 

△(3)종로양복점
종로는 육의전을 비롯하여 많은 상점들이 분포하였던 상업지역이었다.

보신각에서 종로 2가 사이에는 해방 이전 종로양복점,

해방 이후 보신주단, 한국주단 등 주단가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주단거리가 형성되었고,

1970년대 가장 번성했다.

현재는 관철동과 동대문시장 쪽으로 옮겨졌으며

청계천으로 가는 작은 골목만이 '주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종로양복점은 1916년 보신각 옆에서 개업, 현재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김두한, 초대부통령 이시영 등 당대 명사들이 단골로 이용하였다. 

종로양복점 옛모습

 

 

 

 

△(4)보신&준
1948년 보신상회라는 상호로 개업한 보신&준은

옛 육의전의 명맥을 잇고 있는 관철동 주단거리의 터줏대감이다.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와 육영수 여사도 주고객이었다.

 

 

- 보신주단(현재 보신&준) 옛모습

 

 

 

 

△(5)세운상가
세운상가 일대는 해방 이후 월남민과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들어차 속칭 '종삼(鐘三)'으로 불리는

서울시내 대표적인 슬럼지역이었으나 1967년 도심재개발로 세운상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1967년 준공, 전자상가의 대명사 세운상가는

1970,80년대 국내 전자상가의 대명사로

우리나라 개인컴퓨터의 대표 브랜드였던 삼보컴퓨터의 탄생지이며,

 

만화가 김수정의 '쩔그렁쩔그렁 요요' (1986년 소년경향 창간호에 연재)의 주인공 역시 이곳에서 탄생,

또 전자오락의 원조인 '갤러그' 게임기 등의 개인용 게임기, 불법복제품의 유통지였다.

 

이번 전시에 요요 만화원화와 개인용 게임기 등이 전시되었다.

 

 

 

 - 세운상가가 그려진 요요만화 원본(김수정 作)

 

 

 

△(6)피카디리 스타광장
한국영화사에서 충무로가 영화의 생산지라면, 종로는 소비지였다.

1907년 개관한 국내 최고의 단성사를 비롯해 피카디리, 허리우드, 서울극장, 평화극장 등 많은 영화관들이

종로대로를 따라 자리하고 있었으며, 관람객이 가장 많은 곳 또한 종로였다.

특히 피카디리극장 앞의 스타광장은 종로가 한국영화의 메카였음을 잘 보여주었다.

 

1986년 5월 피카디리극장 앞에 설치되었다가 재개발로 사라진

영화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이 있던 스타광장도 재현되었다.

금봉, 김희갑, 남궁원, 엄앵란 등 원로배우들을 비롯하여 강수연, 박중훈, 故 최진실 등

모두 47명의 스타들이 핸드 프린팅 한 동판이 전시된다. 

그러나 최근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 피카디리극장 앞에 설치되었던 영화배우 핸드 프린팅 동판

- 전시실에 재현된 스타광장

 

 

 

 

△(7)보령약국
종로 4-5가 대로변에는 도매약국들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국삭 약품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수입약품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거뢔되고 있으며, 수입 약품의 판매도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령약국은 1958년 종로 5가에서 개업한 약국거리의 대명사이다.

 

보령약국은 이곳에 약국거리가 형성된 연원이 되었으며,

1960년대 초에는 '종로 5가를 지나는 행인 다섯 중 하나는 보령약국 손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령약국은 '종로 5가 약국거리'를 이끈 발원지이자 종로거리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되었다. 

 

 

 

 

 

 

△(8)창신동 봉제공장
종로 동대문시장의 배후지로 창신동 봉제공장을 재현하였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시다의 꿈'을 키워가던 1960,70년대 여공들의 작업현장을 재현하였다. 

 

 

 

- 1970년대 봉제공장 모습

- 창신동 봉제공장 재현모습

 

 

 

 

 

△(9)종묘공원 토층
종로 연변의 종묘광장에는 조선시대 시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1950,60년대에는 '종삼(鐘三: 종로3가)'이라고 하여 대규모의 집창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집창촌들은 60년대 후반 도심재정비과정에서 철거되었으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현재 종묘광장에는 문화유적발굴조사(2008.11~현재 서울역사박물관)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토층은 바로 종묘광장 문화유적 발굴조사 현장에서 떠 온 것으로 높이가 약 3.6m.

발굴조사 결과 깊이 3m 아래에서 태종 때 처음 건설된 시전(市廛: 조선시대 시장 점포)터가 남아 있어 

600년간 퇴적된 종로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종묘공원 발굴토층

 

 

 

 

△(10)지하철1호선 계획도면

 

종로는 우리나라에서 전차가 처음으로 다니던 길이며, 지하철이 처음 운행된 곳이기도 하다.

1898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운행하기 시작하였던 전차는 시설의 노후화, 만성 적자 등의 이유로

1968년 11월30일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사라진 전차를 대신한 대중교통 수단이 바로 지하철이다.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청량리간 7.8km(시설 9.9km)에 걸쳐 계획되었으며, 

1971년 4월 12일 착공하여 1974년 8월 15일 개통되었다.

지하철 1호선은 전차가 다니던 종로의 지하를 다니게 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지하철이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 전에 종로의 명물이요 상징이었다.  

  

 - 지하철1호선 '종로2가 화신백화점, 보신각' 부분

 

 

보신각 :

종각은 '종로'라는 거리 이름의 연원이자 상징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하루는 종각의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다.

오늘날에도 한 해의 시작과 마지막을 종각의 타종식과 함께 한다.

종로가 서울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종각이 있었기 때문이며,

종각이 있는 한 종로는 서울의 중심이다.

보신각은 원래 '종루, 종각'이라 하였으나

1895년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현판을 달면서 '보신각'이라 부르게 되었다.

 

△화신백화점 :

1931년 종로 네거리에 들어선 화신백화점은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이었다.

1937년 증축한 화신백화점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옥상에 전광뉴스판이 걸려 준공되자마자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1955년 신신백화점을 건설하여 규모를 확장함으로써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최신 시설을 갖춘 백화점들의 등장으로

화신백화점의 시대는 바닥으로 기울고, 1987년 도시재개발로 철거되었다.

 

△YMCA :

YMCA 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청년운동단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 YMCA)'를 창립한 이래 근 100년이 넘는 동안

종로에 자리하며, 종교활동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시민사회운동의 장소로 자리하여 왔다.

이상재, 윤치호와 같은 사회운동가들이 활동하였으며,

스포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 땅에 야구, 축구 등 스포츠 도입과 보급을 통하여

근대 사회체육사 발달에 공헌하였다.

 

△탑골공원 :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도시공원이다.

고려 때 창건된 '흥복사'를 조선 초기 1464년(세조10)에 '원각사'라 개칭하고 대사찰로 중창하였으나

연산군 때 폐사되었다.

1897년 고종황제의 명으로 영궁인 맥레비 브라운(Mcleavy Brown)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탑골공원은 황실음악연주회장, 3.1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역사적인 장소로 종로의 상징이 되었다.

공원 내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원각사지10층석탑(국보 제2호),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등 문화재와

3.1운동 관련 기념탑과 벽화, 의암 손병희 동상, 한용운 기념비 등이 있다.

 

△광장시장 :

1905년 당시 고종황제의 비서실장격인 김종한, 궁내부 대신 이봉래, 두산그룹의 설립자 박승직,

거상 홍충현이 출자하여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시장이며, 동대문시장의 모체이기도 하다.

광장시장이 자리한 곳은 조선후기 도성의 3대시장의 하나였던 배오개(梨峴, 이현)시장이 섰던 곳이다.

1960년 이후 광장시장은 주단, 양장용 원단 등 의류와 원부자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광장시장은 지금도 광장주식회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오늘날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은 종로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동대문종합시장 :

현재 종로 6가에 위치한 동대문시장은

1760년 조선 영조의 개천준설 때 퍼낸 흙이 쌓여 생긴 가산(假山: 인공으로 만들어진 산)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1898년 전차가 운행되면서 전차차고가 들어섰다.

전차차고는 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0년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지금의 종합상가 건물이 들어섰고,

그 1층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어 전국 상권이 연결되었다.

1985년에는 종로 쪽으로 동대문쇼핑센터가 새로 건립되었다.

 

△흥인지문 :

보물 제1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도성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대문이라고 불렀다.

1397년 도성 축조와 함께 세워진 동대문은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869년(고종 6)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대문은 광하문에서 시작된 종로가 끝나는 지점이며

보신각, 원각사탑, 종묘와 함께 종로의 600년 세월을 지켜온 상징이다. 

 

 

 

 

 청일 집과 피카디리극장 기억나세요?

서울역사박물관 '종로 엘레지' 특별전

 

 

 

 

종로는 서울의 역사가 묻어있는 곳이다. 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의 중심부나 다름없는 곳에 위치한 종로는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서울의 중심이자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600년 서울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종로 엘레지(Jongno Elegy)'는

서울 반세기를 정리하고 종합하는 첫 기획 전시라는 점에서 뜻깊은 특별전이다.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도

종로가 앞으로 이어질 서울 반세기 특별전의 첫번째 선택을 받은 것은

그만큼 서울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네 일상,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기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종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종로 엘레지는 종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바치는 특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이번 전시에는 종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비롯해

그 곳에서 우리가 얼마 전까지 사용하거나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물품, 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늘날에도 종로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신각을 비롯해

현대 종로의 상징과도 같은 종로 타워, 종로의 명물로 자리 잡은 광장시장 등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공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은 사라지거나 재개발로 인해 서서히 옛 맛을 잃어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르네쌍스 다방, 종로 양복점, 피카디리극장과 스타 광장, 세운상가, 창신동 봉제공장, 피맛골 청일집 등

종로의 역사를 담은 공간들이 기획전시실에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그때의 정취를 이번 특별전에서나마 느낄 수 있는 것은

종로에 대한 오랜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머물렀던 것은 

피맛골의 한 곳에 자리 잡아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많은 인기를 끌었던 청일집이 

원형 그대로 복원돼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곳이었다.

일이 끝나고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이거나 주말에 모임을 위해 이 곳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이 곳이

이제는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것에 묘한 느낌을 갖기도 했다.

또 종로5가 약국거리,

종로2가 부근에 있다가 지금은 동대문시장 쪽으로 옮겨진 주단거리 등도 흥미로웠고,

피카디리극장 스타 광장에 새겨져 있던 핸드 프린팅 동판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인상 깊었다.

창신동 봉제공장의 작은 공간에서 소박한 꿈을 꿀 것 같았던 여공들의 모습도,

오토바이에 엄청난 짐을 싣고 어디론가 가는 아저씨들의 모습도,

세운상가와 광장시장, 동대문종합시장의 난잡한 모습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각각의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성과 공간적 특성을 느끼고 보면서 향수를 느끼고

나아가 종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이번 '종로 엘레지' 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어떻게 보면 종로는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들이 양산되면서

다소 혼잡하고 뚜렷한 정체성이 없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로라는 공간 자체가 서울 생활, 문화의 중심지이자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서

다양함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다양함이 오랫동안 이어져 이제는 누구나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된 종로가 특별전 형태로

재조명받는 것은 종로의 가치를 드높이고 새로운 종로를 추구하는 마당에 꼭 필요한 전시회라고 본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종로 엘레지' 전을 통해

우리의 일상, 그리고 공간이 주는 멋을 느껴보자.


 

- 김지한, 2010.09.15 [하이서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