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한일 강제병합 100주년특별전 - 붓 길, 역사의 길

Gijuzzang Dream 2010. 7. 22. 15:06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특별전-붓 길, 역사의 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010년 7월 23일 - 8월 31일까지 

  전시시간 - 11:00-20:00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만방의 모범이 된다'고 하였다.

임금이 바르면 바르지 않음이 없으니, 이제 '정(正)'으로 호를 내려주어 힘쓰라는 뜻을 붙인다."

고종 황제가 아들 순종에게 정헌(正軒)이라는 호를 내려주며 쓴 글이다.

강하고 곧은 필체로 두껍게 먹이 밴 글씨가 '바름'이라는 고종의 뜻과 잘 어울린다.

 

고종이 이 글을 쓴 것은 대한제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1907년 겨울이다.

'임금이 바르면 바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은

이 시기 그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서 같은 해 6월 고종이 일제의 강요로 맺은 을사늑약(1905)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네덜란드 헤이그에 이준 열사를 밀사로 파견했음을 떠올리면

고종이 순종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정헌이라는 호를 내렸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고종과 순종이 일제의 강압에 마지막까지 항거했음을 밝힌 최근의 연구결과와도 관련이 있을 대목이다. 


이번 전시는 망국(亡國) 전후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 쓴 필적(筆跡)을 통해

왜 나라가 망했으며 어떻게 나라를 되찾았는지를 되짚어보려는 의도로 기획됐다.

가장 상징적인 전시품은.

이토 히로부미가 쓴 한시와 이 시의 운을 따서 조중응, 박제순 등 당시 친일 행위에 앞장선 친일파와

이 당시 한일병합늑약 조인에 참여했던 김윤식 등이 쓴 한시이다.

 

이토 히로부미 의 7언절구 한시에서 운(韻)을 따서

김윤식(金允植)조중응(趙重應), 박제순(朴齊純) 등이 지은 차운시(次韻詩)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시에서

"뭇 사람들과 헤어지자니 더욱더 아쉬워 /

고운 얼굴에 흰 머리는 바로 신선들이다 /

교린(交隣)의 기월이 맹단(盟壇)에 남아있으니 /

양국에 화기(和氣)가 오랫동안 맴돌리라"라고 읊었다.

여기에 김윤식은

"흰 수염 원로들이 숲속을 찾아와 /

푸른 연못가에 앉아 연꽃을 감상하네"라고,

 

조중응은

"동풍에 돛을 달아 귀국하시고 나서도 /

큰 꿈이 이따금 우리나라에서 뒤척이시리라"라고,

 

박제순은

"세상에 우뚝 선 풍모는 스스로 탁월하셔서 /

물러나 쉬는 즐거운 곳에서 신선이 되시었네"라고

이토에게 아부하는 시를 여백에 적어넣은 것이다.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의 한시도 전시된다.


"피로써 이름을 다툼은 도리어 어리석으니 /

정성을 미루어 대중에 미쳤으니 무엇을 의심하랴 /

당당한 신무는 천추의 사업이니 /

바로 공명을 이룸이 이때에 있다네"

 

그의 시 역시 지금의 시각에서는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이완용이 쓴 7언절구 한시는

피를 흘리면서 이름을 다투는 것은 어리석다는 내용이다.

이완용의 '칠언절구'(맨 왼쪽)와 을사오적의 '차운시'

 

 

백범 김구 선생이 '헌신조국(獻身祖國)'이라고 쓴 글씨,


 

 

그리고 만해 한용운이 쓴 7언율시도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1879∼1910)가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액자(보물 569-22호)도 있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는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근배(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 : 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크기는 가로 38.2㎝, 세로 149㎝.

 

이 유묵은 32세의 안중근 의사가 일본 사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대표적인 유묵 중 하나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순종 융희 4) 3월 여순 옥중에서

자신의 취조를 담당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죽기 직전 그의 장녀 우에노(上野俊子)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뒤 동경 국제한국연구원(國際韓國硏究院)의 최서면(崔書勉) 원장을 통하여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이다.

  

 

 

 

 

 

 서울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의 '국가안위 노심초사'

 

 

 

흥선대원군 그린 묵란도 에는 조식송과 오아회의 시가 함께 쓰여 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