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별똥에서 소리가 났다는 기록이 있다

Gijuzzang Dream 2010. 7. 29. 19:32

 

 

 

 

 

 별똥에서 소리가 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천문현상을 중요시한 우리나라에는 2000년에 걸친
천문관측기록이 남아 있다. 이 속에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천문현상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숨어 있다.

 

 

지난 2009년 4월 1일 오전 8시 무렵 전주 일대에 “꽝”하는 정체불명의 굉음이 발생해 사람들이 놀란 일이 있다. 당시 천둥이나 지진은 없었고 가스폭발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전라북도는 뒤늦게 굉음의 실체가 주한미군 훈련 중 조종사가 실수로 낮은 고도에서 음속비행을 해 일어난 일이라고 발표했지만 한때 그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미국 세티연구소 피터 제니스켄스 박사의 저서 ‘유성우와 그 모혜성’에도 인용된 고려와 송나라의 유성 관측 기록을 분석한 안상현 박사의 자료(아래).

현대 관측장비에서 얻은 그래프(위)와 비슷하다.

“전주에서 들린 굉음은 유성(별똥)이 떨어지면서 생겼다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 국제천체물리센터 안상현 박사의 말이다.

 

유성은 소행성이나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입자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와 마찰돼 발광하는 현상이다.

 

안 박사는 “보통 유성은 모래알 정도 크기지만 때로는 자갈만 한 덩어리가 진입할 때도 있다”며 “이 경우 음속으로 나는 전투기에 필적하는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권에 진입할 때 입자의 속도가 초속 50km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별똥은 보통 고도 50~70km에서 나타나는데, 자갈만 할 경우 1km 상공까지 살아남을 수 있고 지상에서 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처럼 소리가 나는 유성을 우리나라 역사서에서는 천구성(天狗星)이라고 불렀습니다. 현대 천문학용어는 소리별똥(bolide)이죠.”

 

400여 년 전 망원경이 발명돼 천문학의 일대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양의 천문학은 서양보다 뒤지지 않았다.
천문현상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동아시아 나라들은 매일 밤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유성이나 일식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중요한 천문현상이었다.

 


외국 천문학자들도 탐내는 기록 유산

우리나라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처럼 수백 년에 걸친 자료가 남아 있다.

특히 천문현상을 세세히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과거의 천문현상을 밝힐 귀중한 문헌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나라에서 일어난 주요사건과 취급한 문서를 자세히 기록한 일기다.

 

유성을 설명하는 숙종 원년(1661년) 음력 9월 2일자 승정원일기의 한 구절을 보자.

1) 조선 초 제작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됐다.

2) 간의를 작게 만든 소간의 모형.

현재 실제로 작동하는 소간의를 복원하고 있다.



夜二更, 流星出婁星上, 入北方天際, 狀如甁, 尾長五六尺許, 色赤, 光照地, 有聲。
밤 2경(10시 전후)에 별똥이 루성(양자리)의 위에서 나와서 북쪽 지평선으로 들어갔는데, 모양(크기)은 시루만 했고, 꼬리 길이는 5~6척 정도였다. 색깔은 붉은색이었는데, 빛이 땅을 비추고 소리가 났다.


밤하늘의 유성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유성의 ‘소리’까지 기록한 선조들의 세심한 관찰력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안 박사는 이와 같은 유성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 오늘날과 비교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런 기록이 한두 개면 별 의미가 없지만 수백 년에 걸쳐 관측한 자료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안 박사는 ‘고려사’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별똥 관측 기록을 토대로 1년 중 별똥의 출현횟수를 그래프로 그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관측장비로 측정한 그래프와 놀랄 정도로 비슷한 양상을 보임을 확인했다.

 

당시 사람들이 천문현상을 충실하게 기록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가로축을 날짜, 세로축을 기록된 유성 숫자로 놓고 그린 그래프를 보면 전체적으로 사인곡선 같은 굴곡을 보인다. 또 늦여름과 초겨울에 기록된 유성 수가 가장 많다.

“지구는 자전축이 23.5° 기울어진 채 공전하기 때문에 유성 숫자 분포가 1년을 주기로 변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춘분 무렵이 가장 적고 추분 때가 가장 많죠.”

고려와 송나라의 유성기록을 분석한 안 박사의 자료는 유성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세티(SETI)연구소 피터 제니스켄스 박사의 2006년 저서 ‘유성우와 그 모혜성’에도 실렸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양흑점 변화가 잘 기록돼 있어 과거 기후 변화와 흑점 변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처럼 풍부한 관측 기록뿐 아니라 천문지도나 천체관측기기에 대한 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조선 초인 1395년 제작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로 국보 228호다.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그룹 안영숙 박사는 “별자리에 표시된 별의 크기를 등급마다 다르게 만든 상당히 정교한 성도(星圖)”라고 말했다.

천체관측기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복원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관측기구인 간의나 혼천의를 복원했고 현재는 간의를 작게 만든 ‘소간의’를 복원하고 있다.

“세종 때 만든 소간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천체관측기기입니다.

낮에는 해시계로 쓰고 밤에는 혜성이나 행성의 위치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인류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년이 되는 올해,

현대 천문학에는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지만 풍부한 천문학 유산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과학동아, 2009년 07월호 - 우주를 그대 품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