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각화 훼손 상태 심각
암각화는 원본만으로는 그 모양새를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심하게 마모
되고 있다. 1년 중 절반 이상을 물 속에 잠겨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들은
김형오 의장이 지난 3월14일 울산 반구대를 방문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다. 오른쪽 사진은 암각화 인근에 있는 박물관에 전시된 채색모형
과 학술조사를 위해 재현한 그림이다.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채색모형)
▲ 호랑이
▲ 고래 (왼쪽이 암각화 원본, 오른쪽이 박물관 채색모형)
▲ 작살맞은 고래
(왼쪽이 암각화 원본/ 가운데가 탁본/ 오른쪽이 학술조사를 위해 암각화를 재현한 그림.)
▲ 암각화 지도 (실제 암각화의 위치 및 배열상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 반구대 암각화를 소개하고 있는 외국잡지들. (암각화 박물관에 전시된 잡지들)
한반도에 선사시대 벽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바위 위에 새긴 그림입니다.
호랑이, 표범, 고래, 작살 맞은 고래며 가축들을 새겨놓은 생생한 선사시대 기록입니다.
국보 285호로 지정돼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그러나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수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전해져 온 선조의 유물이 댐건설에 의한 수몰로
불과 40년만에 깎여내리고 뒤틀리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땜질 처방만 내놓고 있습니다.
암각화를 살립시다. 그 실태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이 암각화를 살리는 길입니다.
<편집자 주>
- [반구대 암각화를 살립시다 - 1]
-
수천년 견딘 암각화, 40년만에 위기
- 물고문 당하는 암각화, 당국은 땜질처방만...
세계적 문화유산 반구대암각화가 죽어가고 있다
선사시대, 대한민국 울산은 해양문명의 한복판이었는지 모른다.
국보 285호인 반구대암각화가 그것을 웅변한다.
울산시 대곡리 가로 10m 세로 3m 바위면에 새겨진 그림들은
분명히 당대 문화의 보편성을 지키면서 세계 어떤 암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성을 자랑한다.
이는 당시 국제 교섭이 활발했으며, 반구대 일대가 특히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기가 선사시대 국제 문화의 중심권이었다는 가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어쨌든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아니 한국만의 유산이라 보기에는 너무 특별하다.
그리하여 선사시대 동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암각화 전문가들은 지금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서 속만 끓이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훼손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대책 없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다.
암각화의 훼손 상태는 지체할 수 없이 시급한 상태이다.
한민족이 문화민족의 중심 이었다는 역사의 증거가 그 문화를 이어받은 후손에 의해,
그것도 문화의 가치가 미래를 위한 모색이 되는 시기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발견 당시의 사진과 최근 상태를 비교한 결과
암각화가 새겨진 곳에서만 130여 군데 이상 박락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작년 이후에 새로 발생한 훼손 부위도 10군데, 이상이었다.
암각화가 갈라진 면을 따라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고,
대부분의 그림면이 얇게 닳아져 판독이 어려워져 가는 지경이다.
잘 알려진 호랑이 조각은 얼굴 부위가 사라지고 배 부위도 반 이상 떨어져나갔다.
화면 상단은 원형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박리와 박피가 진행되고,
하단은 전체 바위가 공중에 떠 있는 상황이다.
암각화면을 지지하는 좌우 측면이 뒤틀려 붕괴 위험도 매우 높다.
긴 세월 잘 지내온 반구대 암각화가 우리 시대에 들어 이렇게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 건,
지난 39년 동안 물고문을 당해 골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1965년 울산시민 식수를 위해 사연댐을 축조했고,
이후 1년에 8개월가량 물에 잠기면서 물살과 이끼에 시달려 원형이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벌써 몇 년째, 급한 대로 암각화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도록
사연댐 수위를 51m 이하로 조절하는 시설부터 갖출 것을 호소했다.
문화재청도 사연댐 수위를 52m로 낮춰 52~56m에 위치하는 암각화가 침수로 훼손되는 일을
최소화하자고 제안했다.
문화재청은 수위를 52m로 낮춘 상태로 1년 동안 사연댐을 운영해 보자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도 문화재청의 한시적 댐 수위 하향 조정방안은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동의하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9월 훼손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무총리실에서 사연댐의 수위를
현재 60m에서 암각화 하단인 52m로 변경해 암각화의 침수를 막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루 4만톤 규모의 소규모 댐을 건설한다는 총리실 조정안이 나왔다.
울산시는 이같은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사연댐 수위를 낮춘다 하더라도 연평균 55일간 암각화가 침수되므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수위 조절에 따른 수질 악화가 우려된다”며 난색이다.
울산시는 그동안 주장해온 ‘터널형 유로 변경안’을 고수한다.
반구대 주변에 둑을 세우고 반구대 앞산에 200m 터널을 뚫어 물 흐름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물길을 바꿔 사연댐의 기능도 유지하면서 울산지역 용수난도 해결하고, 암각화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울산시의 주장은 반구대암각화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무지와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을 반영한다.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중공업 도시 이미지를 벗고 ‘문화도시’로 거듭나려는 울산시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적극적이다.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자는 것은
암각화만을 보존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화 환경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문화재는 원형 유지가 최우선이다. 원형을 변경하거나 훼손하면 가치가 약화된다.
반구대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으려면 주변 공간도 잘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논쟁할 시간이 없다. 일단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놓아야 한다.
울산시는 일단 댐 수위를 낮추고
1년 동안 사연댐을 운영해 보자는 국토부와 문화재청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
만약 이 문제가 울산시에 의해 계속 표류한다면
문화재청은 민족문화의 보존과 보호를 위해 법적 강제성을 부여해야 할 방안에 대해 나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금 암각화가 어느 정도 위험한 상태이며 보존을 위한 최소의 방책이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선사유산은 유일한 것이며 손상되면 원형 복구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문화 민족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다면,
문화의 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긍지이기는커녕 수치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이 알면 뭐라 할 것인가?
[반구대 암각화를 살립시다 -2]
암각화 보전 "수위를 낮춰라"
암각화만이 아니라 주변 공간까지 유지해야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붕괴되고 있다. 암각화에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의 인류가 자연과 싸웠던 실존의 기록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적 문화적 창조적 가치의 원천을 묻는 문명사 연구의 한 방편으로서 경쟁적으로 암각화 연구에 나서고 있다. 암각화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모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열기가 날로 뜨거워져지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 면에 육지 동물과 해양 동물이 조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암각화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유산이다. 그 제작 기법과 형상 전개에서 보이는 국제적 보편성, 또 인접 국가나 북방아시아의 암각화와 비교할 때 드러나는 형상표현과 포치방식의 독자성은 그 가치가 장차 어느 높이에서 평가받아야 할지 기대하게 한다. 어쩌면 이 암각화는 한반도가 수준 높은 문화국가이었음을 오늘도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중요한 ‘역사의 첫 페이지’가 훼손되는 과정을 우리가 대책 없이 그냥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훼손의 정도가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명확하고 오늘도, 우리가 지금 이 문제로 떠드는 시간에도 여전히 심각한 붕괴가 진행되는 중이다. 주관 기관에서는 보존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결정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 상태에 있다. 이 놀라운 사태를 과연 어찌해야 좋은가? 암각화는 원형 보존이 최우선이다. 그것은 제작 당시와 유사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지하듯이 암각화가 새겨진 공간은 공동체의 생존 공간이다. 단순히 그림 자체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영위한 집단의 생활공간까지 원래의 환경을 유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 대곡리 암각화를 바라보면 수위를 낮추어 보존을 위한 여건을 회복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다. 암각화 훼손의 원인으로는 자연풍화, 침수, 침수와 건조의 반복, 결빙과 해동의 반복, 침수에 의한 오염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는 절리면을 중심으로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1971년 보고된 반구대 암각화는 40년이 지난 현재, 128군데에서 박락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좌우측면에 공동화 현상이 심대하다. 이는 전체 암각화면을 붕괴로 치닫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사연댐에 우선 저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시설부터 착공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암각화를 물로부터 자유롭게 한 뒤 암각화면에 대한 기초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근거로 암각화의 훼손시기와 원인에 대해 규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울산시는 암각화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감정과 이해관계 그리고 자존심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문화의 세기에 내세울 만한 세계적 유산을 가진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개인 소견을 말하자면, 반구대 문제는 토목 공사를 하여 얻는 이익보다 수위를 낮추었을 때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이 틀림없다. 근시적으로 보면 토건이 보존을 위한 임시대책과 고용을 창출할 수 있어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올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광, 문화의 가치가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은 아니다. 만일 남대문이 소실될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한 전문가라면 어찌 해야 옳을 것인가? 더구나 복구가 가능한 건축물도 아니고 단 한 차례의 붕괴로 영원히 재생될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그런 위기에 처해져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 반구대 암각화가 그런 위기에 처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실 암각화 문제는 물에서 건져내어 환경을 회복시키는 일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런 다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보존을 위한 기본과 기초를 충실히 하지 못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한 대책은 암각화를 중심에 놓고 기본부터 조사 연구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책과 보존을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침수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광 자원화, 문화 원형 개발, 복제의 문제 등이 중요하지만 보존을 위한 기본과 기초를 충실히 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암각화의 연구는 지금부터가 시작일지 모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했을 당시에 찍어놓은 탁본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그림이 떨어져나가거나 뭉게진 부분입니다.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가 반복되면서 돌조각이 얇게 떨어져나가고 수초가 엉기는 등 훼손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구대 현재 상황입니다. 분홍빛으로 원이 그려진 부분을 비교해보시면 얼마나 심각하게 균열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천년을 끄덕없이 견뎌온 암각화가 지난 1965년 댐건설 이후 불과 40년만에 무너져내리기 직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암각화 보존, 문화재청이 나서야 언제까지 문화재가 우리의 이기심때문에 희생되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문화재가 우리의 무지함때문에 희생되어야 합니까! 지자체의 안일한 문화재 보존 대처 속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정치적 줄다리기에 희생되어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며, 화가 치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문화재는 우리 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국보이자, 세계의 문화 유산인 것입니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울산시의 정치 논리에 반구대 암각화가 희생되도록 두고만 볼 것입니까!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문화재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반구대 암각화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것입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관리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가 더 이상 지자체의 정치 논리에 희생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협상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보루이며, 문화의 세기를 감당해 내야하는 우리의 당연한 몫입니다! 비록 근시안적이며 환경과 문화재 파괴라는 막심한 피해를 주더라도, 지역 발전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혹은 권력의 줄다리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문화재를 희생시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를 볼모로 잡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지자체의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일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국보를 지키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제대로 잘 전해주려면,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재가 지자체에 의해 소홀한 관리 속에서, 혹은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차원에서, 문화재청에서 직접 문화재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희생되어야 합니까! 더 이상은 안됩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살립시다 - 5] 이제는 울산 시민이 나서야 할 때 이제는 울산 시민이 나서야 한다.
우리는 오천년 역사를 이어 왔다고 아이들에게 언제나 가르치곤 했다. 그것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여기를 봐라.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오천년 전의 사람이 이렇게 살아 왔다고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 중요한 역사의 근거가 바다 속에 잠겨있다 해도 건져 내어 보존해야 할 판에 땅 위에 숨 쉬고 있는 것 마저 수장 시켜 버렸다. 이것을 이나마 보존 시킨 것은 암각화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자연 울타리 때문이었다. 현재 채워진 물이 울타리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울타리가 무너진 집이 무사하지 않은 것처럼 암각화도 울타리가 무너지고 나면 바로 부서져 내릴 것이다. 죽이고 나서 살리자고, 책임자가 누구였냐고 따지고 그래야 한 단 말인가. 문화는 자긍심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선진국이란 예술과 학문을 발달시켜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를 말한다. 문화를 가벼이 하면서 국민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개발 할 수 있다고 믿는가 한국 역사를 볼모로 물고문하면서 지금도 무너져 내리니 댐을 건설하든 토목 공사를 하든 선택하라며 국무총리실에서 내 놓은 조정안 조차 휴지조각 보듯 하는 울산시의 행위는 상식 밖이다. 이제는 맑은 영혼을 가진 울산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만이 희망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살립시다 - 6] 반구대 암각화 "문화재청에 맡겨라" "문화재청의 암각화 보존대책이 맞다" 문화재청의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한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울산시의 정치 논리와 이해관계와 부딪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방안이 시행될 수 없는 것은,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이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한 문화재를 직접 관리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반구대 암각화’ 문제가 이토록 오랜 세월 해결 되지 못한 채, 수몰되기 일보직전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문화재청의 결정 권한의 한계는 바로 문화재 보호의 한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문화재 담당 부서의 역량과 힘을 키워야 합니다. 정부는 문화재청이 문화재 관리에 대한 역량과 힘을 키우도록 법적인 근거를 보강하고, 문화재청이 제대로 문화재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권한을 확대해주어 문화재 담당 부서의 역량과 힘을 키워야 합니다. 정부는 시급히 문화재를 보호하는 문화재 관련 부서가 튼튼해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문화재청은 학계를 비롯한 각 기관과 함께 회의 끝에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내어 놓았습니다. ※ 문화재청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 ◎ 반구대 암각화 및 주변 경관까지 보존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사연댐 운영 수위를 낮추어 원형을 유지하는 것임. ◎ 문화재청은 암각화 훼손 최소화 및 댐 기능 유지를 위해 국토부에서 검토(‘08.10)한 사연댐 수위조절 방안(60⇒52m, 수문설치) 수용 사연댐 운영 수위를 낮추는 데에 필요한 제반 비용 154억원 모두 문화재청에서 부담키로 하였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문화재청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울산시의 이해관계와 부딪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문화재청의 노력은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지곤 하였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문화재 보존과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부딪혔을 때, 우리의 국보 문화재 보존이 뒤로 밀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정부는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위한 결정 권한을 강화시키고, 문화재 보존을 위한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문화재 담당 부서의 역량과 힘을 키워야 합니다. 문화재 보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은 ‘반구대 암각화’ 사태와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문화대국으로 가야 하는 21세기에, 지금까지의 후진적 문화재 정책과 작고 힘없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능력으로는, ‘남대문’, ‘반구대 암각화’,.... 우리의 국보 문화재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정부의 무관심과 문화재청의 무력함 속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까!! 정부는 문화재청이 문화재 관리와 보존에 관한 일을 제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시급히 이를 시행하여, 문화재청의 문화재 보존을 위한 결정권한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정부는 문화재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반구대, 그 아름다운 유산 대한민국 울산 광역시(과거의 울주군) 대곡리에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는 알려진 바 대로 1971년 12월 25일 성탄절날 발견되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일이라 세상이 떠들썩하게 즐거워하던 날, 대한민국 경남의 한 골짜기에서도 인류가 영원히 누릴 문화유적이 발견된 셈이라 우연하다고 하기엔 남다른 이유가 있을 법한 일이었습니다. 이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로도 불리우고, <반구대 암각화>라고 불리지만 후자가 더 유명합니다. 사실 '반구대'라는 명칭은 포은 정몽주와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고려말의 지조 높은 선비 정몽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만, 그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자객에게 피살당한 사실은 유명하나 이 울주, 더 정확히 말하면 언양까지 귀양왔다는 사실은 그다지 유명한 사실은 아닙니다. 포은 정몽주가 1376년 친명정책을 주장하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반구대가 있는 곳 근처입니다. 그의 귀양살이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이처럼 깊은 산골에 나라에 이름을 울리던 인물이 들어오게 되자 경상도의 유생들은 꽤 흥분하여 그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귀양살이를 하던 시절 정몽주는 작은 서당을 열어 이웃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유생들과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장소가 지금도 서재 형태로 남아 있는데, 그 이름이 '집청정(集淸亭)'이며 암각화를 만나기 직전 굽잇길가에 있습니다.
(집청정을 옆에서 본 장면입니다.) 정몽주가 귀양왔던 인연은 이 고장을 영남의 명승으로 만들었습니다. 실제 이 대곡천 주변은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먼 옛날 융기했거나 깎여 형성되었을 바위 절벽 아래로 대곡천이 휘감아 흐르며 그 유속을 잠시 늦추기에 개울 양 옆으로 너럭바위들이 널려있어 옛사람들이 풍류를 즐겼음직한 곳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반구대'입니다. 따라서 반구대는 대곡리 암각화가 있는 바위를 포함한 너럭바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강요로 억지로 맺은 불평등한 조약에 분개하여 자결한 문인 송병선 (宋秉璿, 1836~1905)의 『연재집(淵齋集)』을 보면 이곳의 아름다움을 통도사와 함께 나란히 언급한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위 사진은 대곡천 가 구릉입니다. 집청정에서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생부인 장헌세자가 지은 시로, 반구대를 소재로 한 것이 있습니다. 맑은 강 오랜 고을 앞을 거침없이 흐르니 澄江一道古城前 그 강 위로 반구대가 솟아 만 겹 이내 사이에 있구나! 臺出澄江萬疊烟 반구대가 있어 작은 마을 이름이 되었고, 賴有盤龜名小縣 연꽃 닯은 벼랑에는 그림들도 전한다네! 蓮花十丈畫圖傳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卷1 언양 반구대를 읊은 것으로 마지막 여덟 번째 시입니다. 이 시에서 우리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마지막 "그림들도 전한다"고 한 부분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사실, 반구대 주변에는 여러 문인, 풍류객들이 다녀가면서 바위에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 많습니다. 이는 오랜 전통이며 그렇게 새긴 글씨를 특히 각석서라고 하며 경우에 따라 매우 중요한 문화사적 자료로 요긴한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런 글씨를 들먹이지 않고 '그림'을 말했습니다. 그 그림이란 물론, <반구대 암각화>를 가리킵니다.
(사라져가는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입니다.) 사도세자가 바위에 새긴 글씨보다 그림을 언급한 것이 더 특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것 한 가지는 사실로 보입니다. 18세기 사람들은 이곳 반구대를 생각할 때 어느 한 부분만 떼어내어 생각한 것이 아니라 대곡천, 바위절벽, 그 위에 새긴 글씨, 정몽주의 집청정,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 모두를 하나의 유기적 실체로 여긴 사실입니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는 암각화 내용이나 새김, 혹은 갈아내는 기법을 포함하는 회화적 기법은 물론이요 반구대 일대의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에 그 무게중심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그 자리는 신석기 혹은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선택한 자리입니다. 그들은 태양의 위치, 강물의 흐름, 그리고 바위의 상태를 살핀 다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는 이후 우리 모두가 집을 짓거나 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내거나, 사람이 죽어 묻어야 할 때 자리를 고르는 행위와 맥이 닿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삶의 현장이라는 말이지요. 실제로 <반구대 암각화>는 기념적이거나 기원, 주술적 의도를 담은 그림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제의를 지내거나 엄숙한 의례를 여는 장소, 때로는 열정적인 축제를 펼친 무대가 되는 셈입니다. 흔히 말하는 원시종합예술의 무대가 되는 곳이니, 그 종합적 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 장소는 선사시대 한국인들의 예술이 펼쳐지던 무대로서 가치를 양보할 수 없는 곳입니다.
(대곡천은 말없이 흐르지만 이 아름다운 곳에 반구대도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현재, <반구대 암각화>가 사라질 위기에 있습니다. 모래가 눌려 만들어진 바윗돌이니 물에 약한 바위재질일텐데 해마다 몇 달씩 물에 잠겨 불려졌다가 겨울이면 말랐다가 하는 변화를 수십 년째 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쇠도 피로파괴가 있다고 하는데 이 바위도 마찬가지겠지요. 이 암각화가 사라지면 우리는 선사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물려준 삶의 현장을 잃어버리는 셈입니다. 그들이 고르고 골라 엄숙하고 신성한 현장으로 만들어 대를 이어 물려주었던 그곳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됩니다. 후손들은 책으로 본 그곳이 어쩌다 사라지게 되었냐고 우리에게 물을 수 밖에 없을 터인데, 과연 우리는 무슨 말로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이는 단지 우리의 무안함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천 년 문화민족이라 자부하는 우리에게 순식간에 수천 년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는, 참혹한 수치를 안기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구대 암각화> 근처에 전시관을 잘 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것은 '모형'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실 가치를 비교할 수도 없는 가방 하나도 '진짜'와 '짝퉁'을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모형'은 '짝퉁'일 뿐입니다. 전시장은 암각화를 정밀하게 재생하여 실제 크기대로 걸어 놓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그 현장의 느낌은 '절대' 전해주지 못합니다. 이는 제가 직접 가서 느낀 것입니다. 어릴 때 곤충 표본과 실제 살아있는 곤충의 차이라면 설명이 가능할까요? 그러므로 전시관의 암각화 모형으로 만족하라면 이는 너무나 후안무치하고 무지하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요구입니다. 누구도 그렇게 요구할 자격은 없습니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는 그 자리에 제대로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자손들이 우리처럼 직접 그 장소에서 보고 느껴야 합니다. 비단, 이 암각화가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제쳐두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회화사적 의미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이 암각화가 없다면 우리 그림의 역사는 수천 년을 내려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서깊은 문화민족을 자부하는 우리에겐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겠지요.), 선사시대 조상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 '가치', '참됨'이 오롯이 들어가 있는 이 아름다운 암각화를 그냥 무너지게 두고 볼 일일까요? 그런 '문화적 가치'가 과연 정치적 욕망에 희생되어도 좋을까요?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남에게 미룰 일이 아닙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살리는 일은 단순히 바위그림 하나를 현상유지시키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우리 문화의 깊은 연원을 무지로 메우는 것을 막는, 가치있는 일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살립시다! - 2010.03.29 ~ 04.02 http://opm.wikitree.co.kr/amgak
우리 바다는 '고래'바다
2월 초 새만금 내측수역에서 돌고래의 일종인 상괭이가 200여 마리나 떼죽음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조사 결과 추위 때문에 해수 표면이 얼어붙으면서 호흡을 하지 못해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돌고래는 물고기와 달리 허파 호흡을 하기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호흡을 할 수 없다. 상괭이는 걸프 만과 일본 사이 해역의 얕은 내만에 서식하고 다 자라도 몸길이가 2m를 넘지 않는 작은 돌고래다. 어망 등에 의한 혼획과 환경오염 등으로 자원이 줄어 국제적으로 멸종위기 동식물군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돼 있는 보호종이다. 서해뿐 아니라 남해안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돼 한국 인근에 사는 고래 종류 중 가장 수가 많다. 다른 나라 해역에서는 자원이 줄고 있는데 한국에만 유독 많은 것은 풍부한 먹이 등 서식환경이 상괭이에게 적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구에 걸려 죽는 상괭이만 한 해 200∼300마리 정도 보고되는데 신고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론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구에 걸려 죽은 상괭이의 위를 조사해보면 여러 종류의 물고기와 새우, 낙지 등 다양한 종의 먹이가 발견된다. 모두 서해에 서식하는 어업자원으로 사람과 고래가 수산자원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20여 종은 혼획 또는 좌초되면서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혹등고래, 밍크고래, 참고래, 향고래, 범고래, 참돌고래, 상괭이, 낫돌고래, 큰돌고래, 까치돌고래 등 몸길이가 10m 이상인 대형 고래부터 사람 크기만 한 돌고래에 이르기까지 크기, 모양, 생태가 다양한 고래들이 우리 바다에 득실거린다. 고래는 동해 북부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연안에서 발견되며 겨울에도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만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도로 위에 서서 자태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신승동국여지승람> 등 고서(古書)에 우리 바다가 '경해(鯨海 · 고래 바다)'로 표기돼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밍크고래를 포함한 대형 고래류는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관리대상종이고, 돌고래 등 소형 고래류는 회원국의 권한 아래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IWC의 포획금지선언에 맞춰 1986년 국내 고시를 제정해 모든 고래류의 포획을 금지해 왔으나 혼획으로 잡히는 고래 수가 한 해에 밍크고래 80여 마리를 포함해 600∼700마리 이상이다. 고래는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식문화 전통에 따라 울산을 중심으로 소비돼 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불법포획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고래 자원의 관리를 위해 올해 1월 3일자로 고시를 전면 개정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잡이와 해체 등 고래와 관련된 신석기시대 후반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고래와 관련한 문화를 알리거나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부족했다. 고래는 세계적으로 이용과 보존의 갈등 속에서 많은 이슈를 낳았고 해마다 IWC 회의가 개최되면 포경국과 반(反)포경국 간 대립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고래연구소는 과학적 근거 아래 고래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요즘처럼 기후 변화가 무쌍한 때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위해 다른 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 2011년 03월 02일 동아사이언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문화유산이다.
문화재청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점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는 영남의 명승지 여덟 곳을 각각 칠언 절구 한 수씩 지어 병풍을 만든 것 가운데
고래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괭이는 한국 서해안에만 3만700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괭이는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의 상광어(尙光魚)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한국에 분포하는 고래류는 약 35종에 9만∼10만 마리로 알려져 있고,
남획에 따라 국제적으로 고래 자원이 크게 줄어
우리나라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보듯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이용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문대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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