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중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변 여사는 정 회장을 “손님 같은 남편”이라고 했다.
잦은 출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비우고 부부동반으로 출장을 간다 해도
하루 종일 아내를 호텔방에 두고 자기만 바쁘게 돌아다니는 무심한 남편이었다.
남편의 부재를 견디는 변 여사의 유일한 마음 다스리기는 ‘기도’였다.
남편이 현장에 나가 밤을 새울 때, 자신도 밤을 새우며 남편 하는 일이 잘되기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1985년 2월호 ‘여성중앙’ 기사에 소개된 기도문의 일부다.
구구절절 가슴을 따뜻하게 하면서 힘을 주기도 하는 기도문을 인용해본다.
‘주여,
약할 때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 때 자기를 잃지 않는 위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힘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 폭풍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도록 가르쳐주시옵소서.
웃을 줄 아는 동시에 울음을 잃지 않는 힘을,
미래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를 잃지 않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것을 다 주신 다음에
이에 대하여 유머를 알게 하여 인생을 엄숙히 살아감과 동시에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고,
자기 자신을 너무 중대히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개방적인 것이요,
참된 힘은 온유한 힘이라는 것을 명심토록 하여 주시옵소서.’
변 여사는 기도문을 몇 번이고 외고나면
남편이 지구 반대쪽에 가 있을 때라도 집안이 훈훈해져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기도문을 신문지 서너 장 펼친 것만한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놓았을 정도다.
그리고 9남매가 사는 집집마다 기도문을 안방에 걸어놓고 며느리들도 읽게 했다고 한다.
……(생략)
변 여사의 마음은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 회장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자 ‘주간조선’(1992년 12월)에서
‘대선특집 후보 부인이 본 남편’이란 제목으로 대통령후보 아내들의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변 여사는 당시 기고한 글에서
‘남자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것보다 밖에서 남자답게 일을 해야 맛이 나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이런 나를 두고 ‘무간섭의 내조’라고 말하는 것을 어느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다음은 글의 일부다.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분 몰래 어떤 차인지 타보기도 했다. 대견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 생각으로는 ‘과연 될까’하는 일을 많이도 이루었다.
… 조선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신통하게 여겨지는 일이 하나 있다.
옛날 서울의 낙산에 살 때, 하루는 남들처럼 한강에 놀이를 갔었다.
… 그런데 다른 사람들처럼 보트를 타다가 그분의 서툰 노질로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그런 사람이 엄청난 최대의 조선소를 지었다니….
마음먹은 것은 꼭 달성하려는 의지와 일을 시작하면 지칠 줄 모르고 밀어붙이는 힘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분은 일하는 데서도 호랑이 같다.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닥치면 두 눈에서 불꽃같은 것이 튀는 걸 나는 안다.
맥없는 눈초리는 본 적도 없지만 애당초 내가 싫어했다.
… 남들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남편을 옆에서 보면 비결은 간단하다. 부지런함과 검소함이다.
언제나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 시간을 알뜰하게도 쓴다.
혼자서 열심히 공부한 것도 많다. 이런 양반이 정치인이 되어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해선 안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았던 양반이라 나는 정치를 하는 데도 큰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진심은 통하듯 큰 뜻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남편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내의 무한한 신뢰를 받는 남편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내가 보내는 무한대의 존경과 사랑이야말로 남편으로 하여금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는 원천이 아닐까.
…… (생략)
고(故) 변중석 여사는
맏아들 몽필씨가 19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 충격으로 건강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1990년에는 4남인 몽우씨마저 자살로 생을 마치자 더는 버틸 힘을 잃었는지
이듬해 병원에 입원해 임종할 때까지 1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동안 5남인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마저 대북사업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2003년)했으니
변 여사는 생전에 3명의 자식을 먼저 보낸 불행한 어머니였다.
고인은 ‘주간조선’ 1992년 12월10일 ‘대선특집 후보 부인이 본 남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슬픔은 두 아들과 큰며느리를 먼저 보내야 했던 일이다.
그때마다 그분(정 회장)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인과응보야. 결국 돈은 인간의 목적도 행복도 아니야’ 하며 침통해했다"고 적고 있다.
고인은 입원 초기에는 간간이 바깥나들이도 했으나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고혈압에 뇌세포 파괴에 따른 운동장애는 물론 기억력 상실을 앓았다.
말년에는 거의 의식이 없어 2001년 남편 정 회장과 2003년 몽헌 회장 사망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변 여사는 2007년 8월17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남편이 먼저 묻힌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 함께 묻혔다.
1991년 장기입원
2007년 8월 타계(86세)
- 2010.05.01 신동아, [세기의 철녀들] '변중석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부인'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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