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상, 출생비밀 밝혀졌다
이상(李箱, 1910년 9월 14일 - 1937년 4월 17일)은
한국의 근대 작가이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연구자들 사이에 기록이 엇갈려온 이상(李箱)의 출생기록이 새롭게 복원됐다.
월간 문학사상은 이상 탄생 100주년 특집으로
이상(李箱)의 부친과 백부, 이상의 동생의 제적등본을 토대로
기존의 기록내용과 다른 다시 확인된 이상의 출생기록을 제적등본 원본과 함께 상세히 실었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는 '새 자료로 보는 이상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통해
기존에 나와 있는 김기림이 펴낸 '이상선집'(백양당, 1947)과
임종국에 의해 편집된 고대문학회 편 '이상전집'(태성사, 1956),
이어령편 '이상소설전작집 1'(갑인출판사, 1977), 김윤식의 '이상연구'(문학사상사, 1987)등의
서로 다른 기록들을 제시한 뒤 이번 새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가계도를 새롭게 복원했다.
기존의 자료들에서는
부친의 이름이 김연창 혹은 김영창으로, 조부의 경우에도 김병복 혹은 김석호로 달리 기록돼 있다.
또 이상(李箱)의 출생지도 본적인 경성부 통동 154번지 또는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6호로
각각 다르게 표시돼 있다.
이번 제적등본에 따르면 이상(李箱)의 부친은 김영창(金永昌)이며, 모친은 박씨이다.
김영창은 강릉 김씨 김석호(金錫鎬)의 차남으로 1884년 8월 17일생이다.
궁내부 인쇄소에서 직공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후 이발소를 개업해 생계를 꾸려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창은 그의 형인 김연필(金演弼, 백부)로부터 분가한 것이 아니라
양조부 김학교(金學敎)의 후사로 입양돼 그 가계를 이었다.
원래 이상(李箱)의 부친 김영창은 김연필과 형제지간이다.
이상(李箱)의 조부 김병복은 독자이며 그 윗대는 이상에게 증조부가 되는 김학준이 있다.
그런데 김학준의 아우 김학교는 슬하에 아들을 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봉제사할 후손이 없어
이상(李箱)의 부친 김영창은 김학교의 처인 강씨(김영창의 양조모)가 세상을 떠난 후
대정 2년(1913) 11월3일 호주를 승계해 종증보부의 가계를 잇게 된다.
김영창은 처인 박씨와의 사이에 장남 이상(김해경)과 차남 김운경, 그리고 장녀 김옥희를 두었다.
이상(李箱)은 1910년 8월20일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에서 출생했으며
1937년 4월 17일 12시 25분 동경시 본향구 부사정 1번지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부의원에서 사망했다.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도쿄 니시칸다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향년 만26년 7개월에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이상(李箱)의 혼인사실은 호적상 신고되지 않았으므로 기록된 바 없다.
사망신고는 동거자 변동림에 의해 계출돼 동월 22일 접수됐다.
김옥희는 평북 선천군 심천면 고군영동 713번지 문병준과 1942년 6월5일 혼인신고했으며
동월 29일 제적됐다.
김옥희의 회고 '나의 오빠 이상(李箱)'에 의하면
김운경은 1950년 한국전쟁당시 월북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김운경의 호적은 2008년 말소 처분됐다.
- 2010.03.24 이윤미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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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의 필명에 대해서는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시, 현장의 일본인들이 그를 이씨로 잘못알고
'李さん(이상)'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림에 재주가 뛰어난 이상(李箱)이 디자인한 고교의 졸업 앨범에 이상(李箱)이라는 서명이 있어,
건축기사 근무 이전에 이미 이상(李箱)이란 필명을 쓰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가역반응’,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천재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시인 이상(李箱)’ .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3월 25일부터 4월 8일까지 경기도 파주 교하아트센터에서는 이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인생 한때 시작했던 <제비다방>을 모티브로 한 작품전을 갖는다.
이상의 <제비다방>은 2년여 만에 실패한 사업 중 하나였지만
구본웅, 김유정, 박태원 같은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치열하게 예술을 고민하던 장소였다.
청진동 어딘가에 있었다던 <제비다방>은 지금 위치조차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박태원의 소설, 소설 속 삽화 혹은 낡은 사진으로나마 제비다방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성신여대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여섯명의 작가들은
(김 민, 김정은, 소 무, 이지애, 홍근영, 김도훈, 김지숙)
80년전 그들과 같은 20대 중후반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과 삶을 고민했던 제비다방을
지금 현재로 옮겨와 그들을 추억하고 그때 그들이 나누었던 예술과 삶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한다.
김 민의 작품은 이상과 구보의 이미지를 변형하여 그들의 초상을 입체화 시키고
이상의 시를 모티브로 한 드로잉작품을 선보이며
김정은은 소설 [구보씨의 일일] 속 구보의 여정을 따라 장소들을 연결시켜 패턴화 시키고
궤적을 쌓아 흔적을 현재화시킨다.
소 무는 가면이라는 매개체로 이상, 작가, 구보등과 함께 과거 제비다방의 역할을 하는
현재 작가의 제비다방을 함께 거닐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표현한다.
이지애의 작품은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시대에 쓰인 물건들을
다시 새로운 매체로 재구성함으로써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홍근영은 이상과 제비다방의 마담이었던 금홍과의 스캔들을 모티브로한 에로티시즘적인 드로잉과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김도훈은 이상이 죽기 전 발언했던 것을 초점으로 그를 기리는 작품을 표현하며
김지숙은 먼지 쌓인 상자속의 짐처럼 현실에서 정리되어버린 이상의 제비다방을
나무를 이용하여 작품화 한다.
과거에는 다방이라는 공간에서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과 삶을 논하곤 했다.
하지만 현재의 예술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개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예전보다 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짐에 따라
오히려 예술가들의 공동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 많이 사라졌다.
- 파주시청의 보도자료 2010.03.24
천재 시인 이상(李箱) 탄생 100주년 맞아
미공개 사진 · 육필원고 등 공개
천재시인 이상(1910∼1937)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한눈에 보여주는 다수의 미공개 사진이 공개됐다.
9월 10일 <2010 李箱의 房 - 육필원고 · 사진전>을 개막하는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은
문학평론가 이어령씨가 평생 수집한 이상의 미공개 사진과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 여사(1916∼2004)와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등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울 희귀 자료를 전격 공개했다. 강인숙 관장은 이어령씨의 부인이다.
공개된 사진들은 이상의 어머니 박세창 여사를 비롯,
보성고등학교와 경성공고 시절의 이상을 망라하고 있다.
촬영 장소도 파고다공원과 남산 약수터, 세검정 옛터 등으로 다양해
마치 이상의 감춰진 앨범을 보는 듯하다.
사진들 가운데는 이상이 1934년 친구 김해림의 혼인식에 들러리로 참석한 모습과
1924년 경성공고 2학년 때 남한산성으로 원족을 간 한국 학생들만의 야유회,
그리고 경성공고 교련 시간에 장총을 들고 있는 모습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경성공고 재학 당시 연극반으로 활동했던 이상은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으로
동창생 오석환(한국희관사장)과 원용석(전 경제기획원 장관)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1960년대부터 서지학자를 직접 고용하여 뒷골목 고물상까지 뒤지게 해서
이상의 육필 원고들을 수집했으며 이번에 공개하는 사진들은 대부분 원용석씨의 앨범에서 찾아낸
것으로 이미 고증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령씨는 수집 과정에서 이상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12월12일>을 발굴, 공개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뉴욕에서 일시 귀국했던 이상의 前 부인 변동림 여사(이름을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김환기 화백과 재혼)가 1987년 이어령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변 여사는 같은 해 11월 14일자 편지에서
"이어령 선생. 동봉하는 사진들 보시면 한용진 조각가의 작품을 짐작하실 줄 압니다.
그리고 에스키스를 보시면 문학비가 어떻게 조형될 것을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대석 사면 중 전면에 '문학비', 후면 또는 양 측면에 선생의 생각하시는 '이상' 글들을 넣어주십시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납니다" 라고 적었다.
강 관장은 "이 편지는 김향안 여사가 이어령 선생에게 이상의 문학비에 대한 것을 부탁하기 위해 쓴 것으로 디자인과 레이아웃에 대한 것까지 직접 챙겼으면서도 그녀는 문학비 제막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면서 "(결혼 후 몇 달 만에 도쿄로 떠난) 이상에 대한 노여움과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를 구분할 줄
알았던 것처럼 환기의 아내로서의 설 자리도 깔끔하게 지키면서 이 일을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조각가 한용진씨는 1986년 6월 변 여사의 주문대로 문학비를 설계했으며
이에 따라 1987년 12월 높이 3m50㎝, 둘레 앞 1m, 둘레 옆 2m50㎝의 크기의 문학비가
서울 방이동 보성고교 교정에 세워졌다.
전시회에서는 1980년대 뉴욕에서 2년 동안 체류했던 문정희 시인이 직접 김향안 여사를 만난
짧은 소회도 공개된다. 문씨는 "그해 여름, 뉴욕 소호에서 만난 그녀는 차갑고 도도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살았다는 시떼섬의 추억과 퐁피두의 전시를 꿰뚫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 줄 몰랐어.'
영어와 프랑스어가 능한 그녀의 한국말은 더 아름다웠다"고 적었다.
강 관장은 "이상은 카프카처럼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너무나 짧게 살다가 목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난해한 문학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아야만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은
지금 한국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인문학관은 9월11일부터 11월 6일까지 매주 토요일 2시,
이상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강좌를 마련했다.
(9/11 이어령, 9/18 권영민, 9/25 강인숙, 10/2 윤후명, 10/9 최 윤,
10/16 강인숙, 10/23 하성란, 10/30 박상우, 11/6 김인숙)
- 2010.09.02 ⓒ 국민일보
**** 영인문학관 : 서울 종로구 평창동 499-3 (02-379-3182)
: 전시기간(오전 10:30 - 오후 5:00), 월요일 휴관
: 전시기간 이외(오전 10:30 - 오후 5:00), 토,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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