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 91주년 3.1절 기념 보신각 타종행사
3월1일 울려퍼지는 보신각 종소리에 담긴 뜻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 되새기는 자리 일제강점기 구국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온 국민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3.1절 기념 타종은 1953년부터 계속돼오고 있다.
올해 91주년을 기념하는 타종행사에는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종로구청장 등 고정인사와 독립운동가 후손, 모범시민 등으로 구성된 총 12명의 타종인사가 참여한다. 타종인사들은 4명씩 3개조로 나누어 각각 열한 번씩 모두 서른세 번의 종을 치게 된다.
타종 인사로는 1942년 비밀결사조직인 흑민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동지 규합에 힘쓰던 중 조직이 노출되면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던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윤규섭 회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고수선 선생의 아들이자 김률근 광복회 감사가 참여한다. 김률근 감사는 일본 교사 배척운동을 전개하고 학생을 동원하여 탑골공원 시위에 참가했으며, 임시정부 명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2년 항일용의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오산학교를 건립했고,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故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 이기대 민족대표 33인유족회부회장도 참가한다.
또한 국내 최고 고지도 전문가로 ‘동해’라고 표기된 지도 3천여 점과 도자기․ 고서적 등 5만여 점을 35년간 수집하여 지도 전문 박물관을 설립한 경희대 김혜정 석좌교수, 국수 등 한식을 주메뉴로 한 음식점을 창업하고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여 자립 및 자활을 지원하고 있는 이옥정 막달레나 공동체 대표도 참여한다.
독립운동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승화하는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린다. '3.1독립운동 만세체험', '문제 풀고 독립만세 옷도 입어보고', '1919개 종이배에 평화 염원 적어 띄우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3.1운동 당시를 체험하며 되새겨볼 수 있다. 강북구에서는 『봉황각 3.1 독립운동 재현행사』가 마련된다. 우이동 봉황각 일원과 구 전역에서 봉화재현과 길놀이, 태극기 거리행진을 하며 그날의 함성과 태극기 물결을 재현한다.
문의 : 문화재과 02) 2171-2586 |
서대문형무소
어찌 잊으랴~ 지하독방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야구 시즌이 되도 전혀 열광하지 않는 A양도, 축구라고는 박지성밖에 모르는 B군도, 온 경기 내내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는 경기가 있다. 한국 국민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보며 응원하는 ‘한일전’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한일전은 어떠한 종목이든 피흘리는 투혼을 발휘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다.
일제시대, 유관순 누나, 독립운동 등의 말들은 고리타분할 뿐 아니라 먼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증오는 일본이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매년 3월 1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우리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하는 날이다. 삼일절을 맞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에 지어져 80여 년 동안 우리 근 · 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자 이에 항거하는 민족독립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일제는 수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그들은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었다. 이 때문에 1912년 9월 3일에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이곳은 서대문형무소(1923년), 경성형무소(1946년), 서울형무소(1950년), 서울교도소(1961년), 서울구치소(1967년) 등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수차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김구, 손병희, 유관순, 안창호, 여운형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을 거쳐 갔으며, 광복 이후에는 10.26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위장 귀순간첩 이수근 등이 여기서 최후를 맞았다.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민족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1992년 8월 15일에 현재의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현재는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생각해 7개 동만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그 중에서 옥사 3개동과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 · 독방 등의 옥중생활실 등이 있다. 이밖에 사형장 옆에 시신을 몰래 버리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복원되어 있다. 시구문은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200m 정도 되는 굴 중 40m만이 복원되었다. 일제는 시신을 이 굴을 통해 뒷산에 버렸다.
▶ 추모의 장 영상실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하기 앞서 이곳의 변천 과정을 소개하고 있으며, 서대문형무소의 상징인 정문, 망루, 옥사, 사형장 등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은 조선광복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신 선열들을 선양하기 위한 기획전과 서대문형무소와 관련한 전시공간이다.
▶체험의 장 초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인은 일본 법규에 복종하든지 죽든지, 그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고 협박하면서 잔혹한 고문과 구타를 했고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온갖 고문을 자행하였다. 고문의 종류들이 전시되어 있다. 애국지사들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후 사형이 집행된 장소다.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조국 자주독립의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애국선열들의 넋이 서려 있는 곳이다.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형장 안과 밖에 똑같은 나무를 같은 시기에 심었는데, 밖에 있는 나무는 크고 울창하게 자란 반면 사형장 안에 있는 나무는 애국지사들의 한이 서려있기 때문인지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지하에는 독방을 설치해 비중이 있는 애국지사들을 수용하여 가혹한 신문과 고문을 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 뒤 1934년 옥사를 고쳐 지으면서 매립하였던 것을 1992년 발굴 복원하였다. 특히 이곳은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신 곳으로 일명 ‘유관순 굴’이라고도 한다. 원형대로 보존하였다. 1907년에 담장을 설치할 때 나무기둥에 함석을 붙였으나, 현재 붉은 벽돌담은 1923년 설치되었다. 담장의 높이는 4.5m, 길이는 1,161m였으나, 지금은 앞면 79m, 뒷면 208m가 남아 있다. 망루는 총 6개소 가운데 2개소만 남아 있고, 높이는 10m다. 잊고 싶은 과거이기도 한 일제시대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걸어왔던 우리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고,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게 한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을 그 안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알아가며(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 이상(李箱=김해경,金海卿) 출생비밀 밝혀졌다 (0) | 2010.03.24 |
---|---|
고구려와 발해 (0) | 2010.03.20 |
새로 밝혀진 우주의 나이 (0) | 2010.02.20 |
생몰년을 알 수 없는 장영실의 미스터리 (0) | 2010.02.20 |
승정원일기는 스토리텔링 소재의 보고 (0) | 2010.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