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소백산 자락길 - 선비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Gijuzzang Dream 2010. 1. 17. 05:06

 

 

 

 

 

 

 소백산 자락길 - 선비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산자락 오솔길 밟는 선비의 발자국 소리가

조선시대에도 모든 양반이 한양에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은 충청이남, 거기에 남자로 태어난 양반이라면 꼭 한 번 밟았을 산이다.

백두대간 허리쯤에 자리한 소백산 이야기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모여들던 선비들은 산속을 휘적휘적 걸어 넘었다.

아직도 까마득한 숲길이고 지금도 옛날처럼 흙길이다.

산 이쪽은 충청북도 단양이고, 산 저쪽은 경상북도 영주다.

주변에 눈에 띄게 높은 산이 없다 보니 해발 1400m의 소백산은 이곳에서 왕이다.

선비와 연관 깊은 두 개 지역에 깊게 뿌리를 박은 산이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보면

선비의 풍채마냥 수려한 기운이 도는 것도 같다.

 

조선시대 풍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남사고 선생은 이곳을 지나가다

‘사람 살리는 산이구나’ 하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까지 하고 지나갔단다.

산허리를 감고 도는 아흔 아홉 굽이 죽령을 넘어 과거를 보러 간 선비들은

이곳에서 장원급제의 영광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에 하루가 가고

길은 영주에서 시작한다. 영주가 어딘지는 몰라도 ‘소수서원’이나 ‘선비촌’ 하면 ‘아, 거기!’ 한다.

마침 1코스의 시작도 소수서원이다. 조선시대 제19대 왕 명종이 친히 이름을 지어준 곳이다.

서원 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1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적송들이 그늘을 만든다.

적송 사이로 절은 없이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보인다. 당간지주란 가까이에 절이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

여기에 있는 당간지주는 숙수사의 것이었다.

지금은 당간지주 너머로 숙수사 대신 죽계천 옆 작은 정자가 보인다.

서원의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하던 경렴정이다.

경렴정에서 죽계천을 바라보면 서원 설립자인 주세붕 선생과 퇴계 이황이 바위 위에 새긴 글자가

나란히 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서원 안은 마치 선비의 방처럼 깔밋하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건물들도 화려함은 없으되 기품은 넘친다.

죽계천과 소수서원

 

문성공묘까지 돌아본 후 선비촌을 거쳐 순흥향교로 향한다.

청다리를 건너 죽계구곡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산기슭에 호젓하게 앉은 순흥향교를 만나게 된다.

한때는 대학자 안향의 영정을 모시던 큰 향교였으나 단종 복위운동으로 마을과 함께 폐지되었다.

후에 자리를 옮겨 다시 세웠으나 예전과 같진 않은 듯,

맞은편에 자리한 소수서원과 비교하면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슬슬 몸이 풀렸으니 죽계구곡을 살피러 올라간다.

다리가 고달픈 만큼 아홉 개의 절경 또한 기가 막힌 곳이라 하니 순흥향교를 나오며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9곡부터 1곡까지 3km, 초암사와 함께 제1곡이 나타난다.

산 아래 안긴 사찰은 아늑하지만 큰 축대와 주춧돌로 얼마나 웅장했던 절이었는지를 짐작만 할 뿐이다.

초암사를 지나 걷기를 5분. 옆으로는 유리알 같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그 흐르는 물소리에 몰아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간혹 발 아래로 이곳이 소백산 자락길인 것을 알리는 노란 리본이 보인다.

소백산자락 마을 길


 

초암사에서 비로사 가는 길은 고개를 들면 하늘대신 초록색 잎사귀들만 가득하다.

사방이 산 냄새 숲 냄새. 인기척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 혼자 걷기에는 살짝 으슥하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비로사에 도착하면 온 몸에 풀내음이 배어 있다.

산중 산사 비로사는 그렇게 여행자를 맞는다.

전란에 휩싸여 옛 건물은 불타 버렸으나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느낌에 옛 산사를 찾은 듯하다.

비로사


 

비로사를 나와 남동쪽으로 길을 잡는다. 삼가리로 내려가는 길.

이쯤 되면 다시 속세로 내려온 신선의 마음처럼 다리가 묵직하다.

2km 정도만 걸어가면 1코스가 끝나고 1코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2코스를 만나게 된다.


사람 자취 적은 곳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은

삼가리에서 3.5km 정도 걸어가면 금계호라 불리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잔잔한 수면에 소백산 자락이 비쳐 보인다. 1979년 이전에는 마을이 있었다 한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이곳에 있던 ‘욱금’이라는 작은 마을은 수몰되었다고 한다.

물가에 바짝 붙으면 마을 그림자가 호수 위로 멍울지는 듯하다. 호수를 지나 작은 마을로 접어든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큰 바위가 절벽처럼 우뚝 서 있는데, 이곳에 금선정이 있다.

정자는 계곡을 굽어보는 모양새다.

작은 호수마냥 고여 있는 계곡물은 한여름 아이들의 놀이터로 인기가 많다.

조선시대 유생들은 이 물에 얼굴을 비추며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이다.

정자를 지나쳐 소백산 자락이 허락한 길을 따라 간다.

여기서부터 몇 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길지, 정감록촌이다.

민간 예언서 <정감록>에는 어떤 국가적 재앙 앞에서도 영향 받지 않을 10개의 지역이 적혀 있다.

그 중 하나가 정감록촌이 있는 금계리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혼란의 시기에 이곳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고 약초를 캐며 살아갔다.

지금은 대부분이 인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정감록촌의 인삼은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깊어 일품으로 친다.

인삼밭 위로 쳐진 까만 천이 너울거리자 산 속에 검푸른 바다가 생긴 듯하다.

땅의 기운이 남다른지, 잠시 쉬고 일어나면 다리에 속도가 붙는다.

소백산 곁으로 길은 계속된다. 끊일 듯 끊일 듯 끊어지지 않은 옛길에 발자국을 남긴다.

희여골이라고 부르는 큰 마을을 지나 능청스러울 정도로 완만한 고개가 나온다.

큰 힘 들이지 않아도 넘을 수 있어 되려 즐겁다.

길은 마냥 걷는 여행자가 심심할세라 이것저것 꺼내놓고 기다린다.

고개를 넘자 희여골보다 작은 마을이 나온다. 샛터다. 슬슬 죽령옛길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풍기온천이 보이는 것이 죽령 초입에 다다른 듯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풍기온천에 몸을 담갔다 가는 것도 좋다.

온천 원수만으로 이뤄진 탕에는 유황도 듬뿍, 불소도 듬뿍 들어있다. 온도는 26~27℃ 정도다.

요즘 어디 가서 온천 원수에 턱까지 담그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온천 앞에서 바라본 죽령은 방금 온천에서 나온 것처럼 멀끔하다.

작은 마을을 지나 죽령으로 다가간다. 옆으로 소백산역이 여행자를 지켜본다. 죽령이 코앞이다


고갯길 감고 도는 옛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여기서부터는 소백산국립공원이다. 높이는 698m지만 아흔 아홉 굽이.

구름도 잠시 쉬었다 간다는 말에 주춤하는 것도 잠시다. 주막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죽령에 오르는 모든 여행자의 쉼터가 되는 곳, 막걸리와 간단한 요깃거리가 있어 기운이 난다.

오솔길로 접어든다. 키 작은 장승들이 길가에 서서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죽령옛길의 시작을 알린다.

오솔길이 끝나면 한 사람이 지나가면 딱 맞은 원조 옛길이다.

나무들이 길을 감싸듯 자라 길동무 삼기 좋다. 길옆으로는 작은 팻말을 세워 옛길을 설명한다.

죽령 정상까지 무수히 많은 팻말이 있어 하나씩 읽다 보면 지칠 틈도 없다.

길옆으로 술집과 떡집, 짚신가게가 늘어서 있던 주막거리 터가 보인다.

죽령주막 올라가는 길

 

어느새 옛길 정상, 죽령이다. 통나무계단을 오를 때마다 하늘에 닿을 듯하다.

울퉁불퉁한 계단은 소백산국립공원 내에서 재해로 쓰러진 나무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계단 하나까지 모두 옛길의 일부인 것. 이곳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불쑥 나타난 여행자뿐이다.

죽령휴게소에서 바짝 긴장한 다리를 쉬게 한다.

 

이정표 너머는 충청북도 단양이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단양 땅이다.
단양을 향해 뻗어 있는 옛길도 올라온 길만큼 고즈넉하다.

길을 따라가니 농가의 사과밭이 산열매처럼 달려 있다.

오를 때보다 쉽게 고개 아래로 내려서면 옛 신라 절터인 보국사지가 나타난다.

4m가 넘는 석불이 마중 나온 듯 여행자를 반긴다. 이제 여정의 끝이다.

죽령천에서 땀으로 젖은 손과 얼굴을 씻고 돌아서면 방금 넘어온 죽령과 마주한다.


소백산자락길 별미

▷ 풍기인삼
: 해발 250m 이상에서 자라는 풍기인삼은 소백산의 유기물 풍부한 토양 덕분에
유효사포닌의 함량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여 먹으면 농도와 향기가 진한 것도 특징.
인삼을 넣어 만든 고추장과 장아찌는 달아난 입맛을 되찾는데 좋으며
아삭하게 겉절이나 백김치로 먹으면 건강에도 최고이다.

▷ 영주한우
: 소백산에서 자란 양질의 풀과 사과를 먹여 키운 고급한우.
살코기 속에 대리석처럼 박혀 있는 지방 덕분에 풍미가 일품이다.
불판 위에 올려 육즙이 고기 표면에 송글송글 맺히면 뒤집어 먹는데,
입에서 사르르 녹아 드는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때
• 영주시청 문화관광사이트 http://tour.yeongju.go.kr
• 단양군청 문화관광사이트 http://tour.dy21.net

관광안내소
숙박과 맛집에 대해 궁금하다면 관광안내소를 이용한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선비촌관광안내소, 054-637-8586
영주역 관광안내소, 054-639-6788
소수서원 관광안내소, 054-639-6259
단양 관광안내소, 043-422-1146




〈경향닷컴,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 2009-12-04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