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고창 -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Gijuzzang Dream 2010. 1. 17. 04:50

 

 

 

 

 

 

 고창 -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 길

 

 

 

 

몇 천 년 세월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2,000개 조금 못 미치는 고인돌 덕분에 찾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곧잘 마주친다.

그들은 이곳에 와 고인돌을 보고 못내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호남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도 봐야 하고, 미당의 국화꽃 진동하는 시간들도 맛봐야 하니 말이다.

 

차를 달려 고창으로 들어서면 푸릇푸릇한 기운이 가득하다.

어디서나 여행자를 굽어보는 선운산 덕에 여행길이 든든하다.

산을 바라보며 달리지만 열어놓은 창으로는 서해의 풍요로운 갯내음이 들이친다.

귓가 바람이 미당 서정주를 말해주고 판소리를 들려주는 곳.

여행자는 귀를 열고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고창으로 들어간다.


산등성이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선사의 시간들은

고창 하면 고인돌, 고인돌 하면 고창. 그래서 시작은 고인돌박물관이다.

고인돌에 대해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쌓고 가야 가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고인돌과 아는 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

됐다 싶으면 사람 보는 게 고인돌 보기보다 힘들다는 고인돌유적지로 출발한다.

 

박물관에서 유적지가 훤히 보이지만 느긋하게 한가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10분이 조금 넘는다.

한국판 왕들의 계곡은 산등성이부터 시작이다.

언덕에 발을 들이자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동양최대 고인돌 (자료=한국관광공사)


 

처음 고인돌을 마주치면 바짝 놀라지만,

차차 엄청난 수의 고인돌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 시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하나 둘러보다간 이곳에서 지는 해를 맞이할 터,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오른다.

탐방로를 따라 언덕을 돌고 돌며 풀숲에 앉은 고인돌을 본다.

3km 남짓 되는 고인돌 탐방로 위로는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원평마을로 난 길과 매산재를 지나는 길을 놓고 고민을 한다.

동양최대고인돌을 보려면 조금 더 걷더라도 매산재 길을 선택한다.

숲 속으로 빙 둘러 운곡저수지로 난 길을 걷는다. 저수지가 보이는 길은 호젓하다.

늘 바람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다. 저수지 위로 안개가 맺히는 날엔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 몽환적이다.

길가로 동양최대 고인돌이 불쑥 나타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 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풀이 우거졌어도 그 거대한 시간의 흔적은 흔들림이 없다.

거뭇거뭇한 표면은 비와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3,000년을 이어져 단단한 갑옷 마냥 반질하다.

운곡저수지는 여행자 옆을 마냥 따라온다.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는 탐방로 (자료=한국관광공사)

 

 

용계리 청자도요지가 슬쩍 길 옆으로 나란히 선다. 이곳은 고려 초기 청자를 빚어내던 곳.

고운 흙이 있고 바다가 지척이라 청자를 만들어 개성이나 중국으로 보내기에 좋은 위치이다.

지나치며 바라본 터만 봐도 얼마나 많은 도공이 청자를 만들고 부스며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이 된다.

용계리 청자도요지를 지나 남으로 돌아선다. 운곡저수지를 둘러가는 길이라 물은 계속 여행자를 비춘다.

물 그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원평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고인돌유적지에서 바로 왔으면 한참 전에 지나갔을 곳이지만,

대신 쌓인 시간만큼 묵직한 고인돌과 저수지를 끼고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다.


강둑을 따라 고창의 풍요로움은 소리 내 흐르고

질마재 길 (자료=한국관광공사)

 

아기자기한 시골마을의 길들은 모두가 같은 듯 보여도 걷다 보면 그 맛이 다르다.

원평마을 그리고 계산마을을 지난다.

서로 가까운 마을이지만 원평마을은 호수를, 계산마을은 인천강을 옆에 둔다. 인천강은 고창의 젖줄.

주변 산이나 구릉에서 흘러내린 물들은 이곳으로 녹아들 듯 합쳐져 강줄기를 이룬다.

고창의 복분자도, 풍천장어도 이 물줄기로 자란다.

옥천 조씨 지평공파의 영당 덕천사에서는 인천 강 위로 춤을 추듯 날아드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두루미를 비추는 인천강은 잔잔하기가 호수와 같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은 평탄하고, 풍경은 고즈넉해 산책 나온 듯 가볍다.

할매바위가 나타난다. 강가에 드리운 커다란 바위.

90도로 강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절벽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성 싶다.

이 바위의 그늘 아래 앉아 강태공들은 인천강의 시간을 낚았다 한다.

씨알 굵은 물고기들이 덥썩덥썩 미끼를 무는 바람에 낚시명당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암벽 등반 고수쯤 되면 고창 할매바위를 지나치기 힘들다.

할매바위 아래 인천강은 이제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말없이 흐른다.

이곳에서 1km 정도 걷자 아산초등학교가 나온다.

할매바위를 정복하려 찾은 외지인들은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텐트를 친다.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한지 자신들의 놀이에 푹 빠져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학교를 돌아 오르는 나지막한 뒷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사람의 모습을 한 바위가

학교를 내려다 본다. 오똑한 콧날과 훤한 이마, 머리 위로 몇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있어

얼핏 보고 지나쳐도 사람 얼굴이다. 이름은 병바위.

술 취한 신선이 집어 던진 병이 거꾸로 세워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병보다는 사람 머리처럼 보인다. 몸을 돌리자 바위 얼굴이 쳐다보는 듯하다.

 

그 길로 내려와 인천강과 사이좋게 길을 간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두어 개 지난다.

강 흐르는 소리조차 고요해 여행자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한숨 돌린다.


미당을 키운 질마재 바람은 곳곳에 머물러

연기마을 입구에서 분청사기요지까지는 금방이다. 경사진 언덕에 추수를 끝낸 논처럼 외로운 터,

과거에는 도공들이 서로의 재주를 겨루며 접시 하나, 대접 하나 손수 만들던 곳이다.

지금은 질마재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쓸쓸한 과거의 흔적을 돌아 나가면 산림경영 숲 쉼터가 나타난다.

 

연기마을 입구에서 다 돌리지 못한 숨을 돌리고 목도 축인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축축한 나무 기운이 묻어난다.

흐르던 땀이 바람에 가시면 몸은 한결 가뿐해진다.

길을 나선 지 얼마 안 돼 ‘소요사 입구’라고 써 놓은 표지판을 만난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걸어가니 소요산에 기댄 듯 앉은 암자가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소요산 자락에 8만 개의 암자가 있었다 한다.

지금은 소요사뿐이다. 산사는 작지만 엄숙해 저절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암자를 나서면 미당이 노래하던 그곳, 질마재다.

바람만 넘는다던 길이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것이,

미당의 '질마재 신화'는 정말 신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고갯마루에 서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시원하다.

산자락에 터를 잡은 올망졸망한 농가들, 그리고 그들이 삶을 일궈 내는 들판이 펼쳐진다.

시야가 좋으면 변산반도도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도 마찬가지로 거칠 것 없는 말끔한 도로.

국화마을로 들어간다. 이름처럼 모든 집 담과 지붕에 국화가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국화를 닮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져 여행자를 반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사람 사는 마을이다.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은 쉼터 하나가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까 마을 안에서는 조심한다.

가을이면 300억 송이의 국화가 국화 그림과 어우러진단다.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눈 앞에 그려질 만하다.

서정주 시인 생가 (자료=한국관광공사)


 

마을 지척에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당 시 문학관 에 들른다.

옛 학교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은 원래 하나였던 듯 잘 어울린다.

미당이 남긴 아름다운 시구가 둘 사이를 끈끈하게 잇는다. 이곳에서 10분이면 미당생가도 볼 수 있다.

미당이 기억하는 옛 추억은 이곳에서 쌓인 것. 마루에 앉아서 미당을 키웠다던 바람과 만난다.

여행자의 8할도 바람으로 채워진다.

좌치나루터는 미당 생가 아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장에 갈 때 들고나던 곳이다.

곳에서 인천강을 건너고 질마재를 넘어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단다.

배가 다니던 분주함은 이제 기억과 흔적으로만 남았다. 인천강을 훌쩍 넘어 바다로, 바다로 걷는다.

짭짤한 소금 기운이 갯벌의 모습과 함께 몸으로 스민다. 10km의 해안선을 따라 널찍한 갯벌이다.

서울 밥상이든, 강원도 밥상이든 그 위에 오르는 바지락은 모두 이곳에서 나올 터.

갯벌을 가로지르며 경운기 한 대가 달리자 갯벌체험 온 아이들이 꺅 소리를 낸다.

하전갯벌 학습체험장에선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혼내는 사람 아무도 없다.

구르고 뛰며 아이들은 갯벌만큼 넓어진다.


 

소금샘 터 (자료=한국관광공사)


 

갯벌을 지나면 백제시대 소금을 채취했다던 곳이다.

이곳은 선운사가 세워지기 전까지 도둑무리들이 살던 곳이었다.

검단선사는 이들이 소금을 만들도록 교화했으며, 교화된 도둑무리들은 만들어진 소금을 절에 보냈다 한다.

소금 굽는 벌막과 소금샘은 그때의 흔적이다.

검단 소금전시관에 들르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산 아래 천오백 년 동안 소리 없이 소금이 여무네

검단소금전시관 가까이 진채선 생가가 있다.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신재효 선생이 사랑했던 제자 진채선.

그녀를 흥선대원군 곁에 두고 고창으로 혼자 돌아온 신재효 선생은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진채선 생가를 뒤로 하고 선운산으로 접어든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암자, 참당암이 나온다.

대웅전 뒤로 꽃무릇이 보인다. 9월이면 붉은 공작꼬리마냥 만개할 꽃무릇이 그려진다.

경내를 둘러본 후 도솔암으로 향한다. 산새 소리와 대나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바닥에 깔린 고운 흙 덕분에 오르막도 쉽사리 오른다.

자박자박 흙을 밟으며 도착하자 시원한 약수가 반긴다. 쉬지 않고 연거푸 한 바가지, 두 바가지를 들이킬 정도로 달고 차다. 도솔암은 마애불상이 유명한 곳이다.

칠송대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두툼한 입술, 살짝 치켜 올라간 눈이 낯설기만 하다.

 손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마애불 앞에서 여행자도 손을 모은다.

미당 문학관에서 본 변산반도 (자료=한국관광공사)


 

도솔암 흙담이 선운사가는 길을 안내한다. 우거진 나무와 돌담, 그리고 흙길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약 3km의 길은 이렇게 이어진다. 산행인지라 당기는 종아리는 어쩔 수 없다.

여유로웠던 숨소리가 한결 거칠어질 때쯤 선운사로 들어선다.

수 백 년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입구에 그늘을 드리운다.

일주문을 지나 황토담이 이어지고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에서 바라본 선운산은 부처의 미소처럼 온화하고 둥글다.

만세루에 앉아 마시는 녹차에 풍경소리가 녹아든다.

이제 여정의 마무리. 선운산관광안내소에서 돌아본 선운산은 여행자에게 그 다음 길을 묻는다.


여행정보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별미
▷ 복분자주
: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선운사 지역의 복분자는 붉은 빛과 단맛이 강해 최상으로 친다.
이 중에서도 1등급 복분자를 모아 저온에서 발효해 향과 영양가를 보존하며 빚은 술이 바로 복분자주이다.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섞인데다 고혈압 예방과 치료에 특효라고 알려지며 인기를 얻고 있다.
▷ 풍천장어
: ‘풍천’이 고창의 어느 지역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풍천장어 하면 고창이다.
풍천장어란 바닷물과 강물이 합쳐지는 곳에서 잡은 장어를 말한다.
탄력이 있어 씹히는 맛이 쫄깃하고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복분자와 함께 고창의 스태미나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때
• 고창군청 문화관광사이트 http://culture.gochang.go.kr

관광안내소
숙박과 맛집에 대해 궁금하다면 관광안내소를 이용한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창읍성관광안내소 063-560-2710
양고살재관광안내소 063-560-2711
선운산관광안내소 063-560-2712
무장현관아와 읍성안내소 063-560-2714
고인돌관광안내소 063-560-2577



-〈경향닷컴,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 2009-12-08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