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봉은사 판전(板殿)

Gijuzzang Dream 2010. 2. 7. 07:55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다

 

하늘이 맑은 바다색을 만들어 내는 어느날 오후,

매서운 바람 때문에 옷은 두꺼워지고 머플러로 목을 휘휘 감아야만 나설 수 있는 겨울의 한 가운데서도

시인 문정희, 그녀의 당당한 걸음은 어김없이 봉은사를 향한다.

차를 가지고 갈 필요도, 택시를 탈 필요도 없다.

언제라도 가고 싶은 그곳이기에 그녀는 삶의 공간을 봉은사 가까이로 옮겨두었다.

아련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봉은사와의 만남,

그 첫 만남은 세월이 닦아 놓은 먼 길을 더듬어 여고시절에 놓여있다.

 

그때는 뚝섬에서 배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지금처럼 봉은사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그 시절에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훨씬 더 넓은 경내를 가지고 있었던 봉은사와 그 주변은 많이 달라졌지만 고요함만은 여전했다.

“봉은사보다 높은 현대식 건물들이 너무나 많죠. 하지만 이 일대의 원래 주인은 ‘봉은사’였어요.

이곳에는 천년이 넘은 공기들이 아직도 숨 쉬고 있어요.”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때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녀가 처음 봉은사를 찾은 날, 법당에서는 생을 마감한 어느 여고생을 추모하는 제사가 열렸었다.

온통 꿈으로만 가득했던  시절에 그녀는 이곳에서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지각하기 시작했다.

빚 바랜 기억이지만 봉은사에 올 때면 들추어 보는 추억 한 조각이 되었고,

이제 많은 세월을 보낸 지금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원불멸한 것을 말한다’는 진여문을 지나며 그녀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 그리고 불변의 진리를 찾는 기분으로 봉은사를 들어선다.

여고시절 무섭게만 여겨졌던 진여문을 지키는 사천왕의 모습을 이제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세월이 참으로 빨리 달려왔다.






문정희, 추사를 만나다

 

진여문을 지나 그녀가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여 도착한 곳은 ‘판전(板殿)’ 이었다.

그녀는 ‘판전’ 때문에 봉은사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곳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리고 ‘판전’을 찾는 더 정확한 이유는 ‘판전’의 ‘현판’ 때문이다.

추사의 친필이 담긴 현판은 그녀가 세상살이에 부대낄 때마다 마음을 정화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쓰신 글씨에요.

맑고 순수하면서도 힘이 있죠. 그리고 규격에 맞으면서도 파격적인 면이 함께 있어요.”

 

일주일에 몇 번이고 판전을 보러오는 그녀에게도 판전 현판의 글씨는 매번 감동을 준다.

성품이 대쪽 같았지만 새로운 학문에는 편견 없이 도전했던 추사는

말년에 승복을 입고 봉은사에 들어왔다.

 

판전 앞에서 탄탄한 벼슬길, 험난한 귀양과 유배를 반복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내려놓는 추사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전에 보여 주었던 화려한 글씨를 뒤로 하고

이제 어떤 욕심도 꾸밈도 보이지 않는 묵직한 글씨를 찬찬히 살핀다.

그녀는 이 판전 현판 글씨 앞에 가만히 서서 봉은사 천년의 공기와 함께 자신을 정화하고 있다.

바람이 세찬 가운데 유난히 파랗기만 한 하늘 아래 판전의 현판 글씨는

자연의 모습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생명이 움트는 봄의 봉은사는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이 판전에 어울리는 계절은 겨울이지요.

생명이 내면으로 들어앉고 오히려 정신은 힘차지는 계절이니까요. 그리고 눈이 내리면 무척 아름다워요”

 



 

 

내려놓음과 열정이 만나다

 

현대와 호흡하는 발 빠른 건축물들이 봉은사를 가운데 두고 둘러 싸여 있다.

현대의 건축기술을 서로 뽐내듯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뚝 우뚝 솟아있다.

어떻게 보면 봉은사를 압도하듯 보이지만 봉은사에서 바라다보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발전’의 이름 아래 빠르게 진화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한국인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판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요? 경판이 들어있어요.

경판에는 역사성을 가진 많은 언어들이 새겨있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전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가난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판전 속 경판은 상징처럼 우리에게 남아 있어요.”

 

그녀는 외국의 문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면 봉은사를 보여주곤 한다.

가장 분주한 서울 한복판 어떤 건물의 위용보다도 홀로 느린 숨을 내쉬고 있는 봉은사는

외국의 문인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특히나 서울 한 가운데 존재하는 이 고요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간다고 한다.

 

“세상에서 느끼는 5욕 7정이 고요한 절속에서 다루어지면,

이제 세상으로 가볍게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부터 그녀는 주어진 시간들을 시를 쓰는데 쏟아 붓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얽매이는 시간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더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시인이 되었다. 초연한 추사였지만 판전 현판 글씨에 더 큰 힘이 묻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삶이 외롭고 불행한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불타는 에너지를 부딪쳐 살고자 한다.

 

언제든 그녀의 닐바나(안락함을 뜻하는 불교용어) 봉은사에 가면

나이가 무색할 만큼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 문정희가 판전 현판 앞에 서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정희 /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중학 시절 서울로 상경했다.

1963년 봉은사와의 첫 만남을 통해 죽음에 대해 감지하며 한껏 성장했던 그녀는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고,

2004년 <분수> 라는 시로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 문학 포럼에서 올해의 시인상을 받았다.

2008년엔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정희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등의 십 수권이

넘는 시집을 내었으며 다수의 시가 프랑스어, 히부르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하였던 그녀는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그녀는 봉은사 언덕에서 ‘거침없이 살아라’라고 이야기 하며 한 해의 시작을 힘차게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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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진희 / 사진 · 최재만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1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