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다산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 강진, 영암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Gijuzzang Dream 2010. 1. 17. 04:30

 

 

 

 

 

 

 강진, 영암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고속도로 덕분에 4~5시간이면 금세 강진이다. 하지만 200년 전 강진은 지금과 달랐다.

다산은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그때 강진은 한양과 천리만리 떨어진 곳,

월출산이 뒤를 막고 강진만이 앞을 막는 형세가 꼭 섬 같은 곳이었다.

하염없이 강진만에 들고나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손수 장만한 찻잎으로 차를 끓여 마시던

다산에게 강진은 조선 제일의 오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강진을 찾은 여행자들은 말한다. 남도 답사 1번지.

 

동백꽃이 절로 지고, 철새가 당연한 듯 날아드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옛 시구 한 편이다.

강진에서 영암으로 걷는 길은 오랜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이다.


 

강진, 영암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구강포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산이 살았네

구강포. 옛 사람들은 강진만을 그렇게 불렀다. 9개의 하천이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다산수련원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구강포, 지금의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다산초당을 향해 간다.

믿고 의지하던 정조가 죽고 닥친 신유박해, 그리고 황사영 백서사건.

다산의 유배길은 경상도에서 이곳 강진까지 이어진다.

강진에 도착해 몸 뉘일 곳 마땅치 않아 주막집과 제자의 집을 전전하던 다산을 위해

다산의 외가집안 사람들이 내어주었다는 다산초당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마치 다산의 일생처럼 울퉁불퉁하다.

길 양 옆의 소나무, 그 나무들이 뻗은 뿌리들이 꿈틀거리듯 계단처럼 이어진다.

얽히고 설킨 뿌리를 하나씩 밟고 올라가다 보니 정호승 시인이 말한 ‘뿌리의 길’이 떠오른다.

굽이치는 뿌리들은 단단히 땅을 움켜지고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을 지킨다.

다산초당


헉헉거리는 숨 사이로 톡 쏘는 소나무 향을 들이마신다.

숨이 턱 바로 아래까지 차면 다산초당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숲은 우거져 다산의 공간과 바깥세상을 나눈다. 그 안에는 다산의 유배생활이 오롯하다.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하고 책을 집필하며 틈틈이 한양을 그리워하던 그의 시간.

아늑하게 들어앉은 건물들을 지나 천일각에 오르면 강진만이 눈 가득 담긴다.

이곳에서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 간 형을 걱정하고, 남아 있는 가족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강진만을 들고나는 바닷물에 그는 시름을 턴다. 천일각을 뒤로 하고 숲 속을 헤친다.

그 안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이 백련사 가는 길이다. 20분 거리.

백련사 가는길


 

다산은 이 길을 지나 백련사 주지 혜장을 만나러 갔다.

기나긴 유배생활 그와 학문과 사상, 그리고 차를 나눈 친구. 혜장을 만난다는 즐거움으로

가볍게 떨어지는 다산의 발걸음을 좇는다. 좌우로는 오랜 동백나무들이다.

이른 봄이면 떨어진 꽃잎에 바닥까지 붉게 물든다는 백련사 동백숲길이다.

길이 끝나자 축대 위에 도도하게 자리한 백련사보인다.

산사는 고즈넉하고, 주변에는 찻잎 부대끼는 소리만 가득하다.

백련사를 내려오면 황토밭을 사이로 둔 길이 나온다. 밭에는 온갖 푸성귀들이 지천이다.

밭두렁마다 제멋대로 자란 넝쿨을 피해 걷는다. 어느새 산에서 바다로 접어드는 중이다.

바지락, 꼬막, 맛, 게…. 풍요로운 개펄은 수많은 새들을 불러들인다.

갈대숲을 따라 철새 관찰 포인트로 이름난 강진만 철새도래지로 들어서자 3.5km의 제방 길을 따라

요란하게 날갯짓하는 새들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에는 고니가 날아든다.

큰 덩치를 우아하게 건사하며 물 위를 차고 날아오르는 고니의 모습은 장관이란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니 겨울이면 고니의 자태를 가까이에서 볼 일이다.

 

만을 따라 북으로 올라간다. 추자도 멸치젓이 들어오던 남포포구에는 과거의 흥함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비릿한 젓국 냄새가 남아 있다. 남포포구를 돌아 목리마을,

다산이 1년 반 정도 머물렀던 이학래의 집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고 있다.

 

인근 5일장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따라 마을을 금세 지나친다.

장터국밥, 보리밥, 누른 머리고기처럼 토속적인 음식과 어제도 본 사람인 냥 살갑게 대해주는

강진 사람들 덕분에 걸음을 잠시 멈추고 시장에서 쉬어간다.

사의재, 다산 최초 유배지


 

강진군청을 지나 10분 거리, 사의재가 있다. 사의재는 주막에 마련된 다산의 공간.

땅 설고 물 설은 강진 땅은 처음, 하루아침에 내쳐진 신세가 된 다산이 서글픈 마음으로 찾아 든 곳이다.

이곳의 늙은 주모는 다산에게 방을 내주었고, 주모의 외동딸은 다산을 극진히 보살폈다.

다산은 이곳에서 4년을 지냈다. 사람들을 모아 가르치고 글도 쓰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강진에 귀양 오기를 잘 했구나’ 피폐해졌던 다산이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주막집은

지금도 여행자의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주린 배를 채워준다.


서러워 울던 영랑의 모란은 만개하여

사의재에서 나오며 작은 골목길을 돌아올라 김영랑생가를 찾는다.

자박자박 돌담길을 옆에 끼고 걸어 올라간다. 올망졸망 집들이 나타나고 그 골목 끝에 영랑의 생가가 있다.

입구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비가 반긴다.

정성스럽게 모란이며, 마당을 가꿔놓은 모습이 마치 누군가 쭉 살던 곳처럼 정겹다.

봄이면 영랑이 기다리던 모란이 만개하여 아름답단다. 생가 뒤로는 늘씬한 대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뒤로 돌아 밟아온 길을 보니 멀리 강진만까지 들어온다. 영랑의 집 대청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영랑생가와 할미꽃


 

영랑의 생가를 나와 집 뒤쪽에 있는 산길에 접어든다. 이 길은 강진 사람들이 즐겨 걷는 산책로,

목이 마른 사람에게는 반가울 법한 맑은 샘이 자리한다.

콸콸 솟는 샘에서 옛적의 다산도, 지금의 강진 사람들도 목을 축인다.

 

시원한 물, 맑은 바람결에 잠시 쉬다 산허리를 돈다. 고성사라고 하는 작은 절.

강진은 소가 누운 듯한 형상인데, 이 절이 소의 목에 걸린 워낭이란다.

다산은 이곳 보은산방에서 지내며 아들과 함께 「주역」 연구서에 몰두했다.

보은산방 뒤로 난 길에는 이끼가 무성하다. 길을 걷자 발목까지 이끼가 차오른다.

주변으로는 무성한 소나무뿐이다. 소나무가 많아서 솔치라고 했던가. 버섯과 산나물이 지천이다.

운 좋으면 송이를 만날세라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금당마을 백련지가 나타난다.

백련이 피는 7월이면 그 모습이 그윽하다.

이곳을 지나면 작은 학교,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니 달마지마을이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인 작은 시골마을. 예부터 학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으로 집들이 모여 살았다는데,

살고 있는 학의 부위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정해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학의 머리부분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는 학자가 많고,

배 근처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자로 사는 경우가 많았단다.

집 위치를 따져보며 마을길을 걸으니 이쯤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마을을 지나 5km 정도 걸어가면 무위사이다.

유흥준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고 말했던 그곳이다.

해탈문을 지나자 배롱나무가 늘어진다.

곧 화려한 단청 하나 없이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지은 가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위사를 보고 나와 왼쪽으로 산 밑을 따라 돌아가면 강진다원이다.

몽글몽글한 차나무가 산 아래부터 펼쳐져 끝을 모른다.

찻잎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초록의 구름을 헤친다.

다산은 월출산 자락에서 나오는 차가 천하에서 두 번째로 좋은 차라고 극찬을 했었는데,

살며시 찻잎을 따서 잎 안에 넣어본다. 떫은맛은 적고 코끝으로 깊은 향만 맴돈다.

입 안에서 찻잎을 굴리며 동쪽으로 걷는다.

초의선사와 다산이 함께 글을 쓰고 차를 나눴다던 백운동을 지난다.

이곳에서는 월출산 맑은 물이 구름으로 피어오른다고 했던가,

찻잎과 함께 동백이 어우러질 때면 그 모습이 기가 막히다.

 

얼마 못 가 나지막한 돌담 사이의 골목길, 월남사 옛터가 덩그러니 나타난다.

절은 어디 가고 3층 석탑만 서서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알린다.

대가람이었다던 월남사의 석재들은 담장에 섞여서 찬란했던 과거를 곱씹는다.

월출산


 

탑 너머로 월출산과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월출산 끝자락에 있는 누릿재를 타고 영암으로 넘어간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지름길,

다산도 이 고개를 넘어 강진 땅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다산은 도봉산을 닮은 월출산의 모습에 서러워 시를 남겼다고 한다.

길은 가파르지 않지만 나무와 풀이 우거져 힘이 든다.

가끔 지나다니는 발길에 만들어진 길의 흔적을 따라 걷고 쉬고를 반복한다.

고갯마루에서 땀을 닦으며 영암의 들판을 내려다본다. 고개를 넘는 사이 여행자는 영암에 서 있다.

내려오는 길도 올라오는 길만큼 우거져 있다. 편백나무 숲에 가려져 하늘 구경이 힘들다.

발만큼 풀을 헤치는 손도 바쁘다. 고개를 내려서면 천황사지 입구.

영암에서 시작하는 월출산 산행의 들머리로 유명한 곳이다.

강진에서 넘다 보니 들머리가 날머리가 되어 버렸다.



발끝을 타고 오르는 월출산의 울림이

천황사지 입구에서부터는 보통 길이 아니다. 웰빙기도로이다.

월출산의 기운을 받으며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걷는 사람 천지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공기가 좋고 경치가 좋다.

산의 80%가 맥반석으로 이루어졌다더니, 그 기운 덕분인지 평소 같으면 쉬자고 졸라댔을 다리도 군소리 없이 움직인다. 이곳에서 성품사지 5층석탑을 지나 기찬랜드에 닿을때까지 명품 트래킹 코스가 이어진다.

기찬랜드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삼림욕장도 있고 기 건강센터도 있어 웰빙족들에게 인기란다.

여름에는 월출산 맥반석 사이로 흘러나온 계곡물을 막아 천연풀장을 만들어 놓는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웰빙기도로를 걸어 올라와 몸을 식히기에 좋은 곳이다.

 

월출산의 시원한 바람을 따라 산을 내려온다.

동네 고샅길을 따라 가니 도선국사가 출가를 했다고 전해지는 도선암지이다.

곁으로는 도갑사가 있다. 도로 양 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운치가 있다.

길가에 붙어 살살 걸어가면 옆으로 구림천 흐르는 소리가 그 분위기를 더한다.

산 깊이 들어앉은 사찰은 아닌지라 일주문을 지나 5분 정도면 경내이다.

석조로 먼저 가서 마른 목을 축인다. 길이 5m, 과거 승려들이 물을 받아 마셨던 거대한 돌 수조는

도갑사가 꽤 번창했던 사찰임을 알려준다. 달게 목을 축이고 조용한 경내를 둘러본다.

사람이 적지만 쓸쓸하다기보다는 고요한 느낌이다. 발자국 소리마저 왕왕 울려 들리는 듯하다.

도갑사를 나와 819번 지방도로로 좌회전, 3km 정도 걸어가면 왕인박사 유적지가 나타난다.

백제시대 바다 건너 일본에 학문과 문화를 전했다던 왕인박사의 자취들이 모여 있다.

문 안쪽으로는 잘 꾸며진 공원의 모습이다.

공원 이곳저곳에 왕인박사의 탄생지부터 사당, 공부하던 곳, 마시던 샘 등이 복원되어 있으며,

복원된 유적마다 옛 이야기가 적힌 팻말이 눈길을 끈다.

유적지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쉬엄쉬엄 걸어야 지치지 않고 여정을 마칠 수 있다.

 

왕인박사의 흔적을 둘러본 후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구림마을로 향한다.

2천2백년이나 된 한옥마을 손으로 쌓은 흙담이,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소박한 남도 고택이 낯설다.

이정표가 드문 대신 담을 따라 걸으면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다.

이곳에는 여행자의 피곤한 몸을 뉘일 수 있는 한옥 민박집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에서 묵든 전통마을에서의 밤은 편안하기만 하다.

〈경향닷컴,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

▷ 강진청자축제 : 강진은 고려 500년 동안 고려청자를 생산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에 지정된 청자의 85%는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강진청자축제는 고려청자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축제.
워크숍과 세미나, 전시회뿐만 아니라 직접 청자를 만들어보는 체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 매년 8월 / 대구면 고려청자도요지 일대 / 061-430-3191~4 / http://www.gangjinfes.or.kr

▷ 영랑문학제 : 영랑의 생가에 모란에 활짝 필 때 열리는 축제이다.
작가들에게 영랑시문학상을 주는 것을 시작으로 시화전, 백일장대회, 시낭송대회, 모란예술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매년 4월 / 영랑생가 / 061-433-3779

▷ 다산제 : 다산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여는 축제이다.
다산이 사랑한 강진의 차 품평회와 다산실학체험, 목판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풍성하다.
• 매년 5월 / 다산유적지 일대 / 061-430-3851

▷ 왕인문화축제 : 일본에 건너가 학문과 문화를 전달한 왕인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왕인의 무덤이 있는 일본의 히라카타와 한일 문화예술단이 참가하여 왕인박사의 도일 의미를 되새긴다.
또한 유적지를 중심으로 백제의상패션쇼, 민속놀이, 퍼레이드 등이 열려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 매년 4월 / 왕인박사유원지 일대 / 061-470-2349 / http://wanginfs.yeongam.go.kr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별미

▷ 한정식
: 강진에서는 백반만 시켜도 기본적으로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오른다.
월출산에서 자란 산채들과 강진만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들이 조화를 이뤄 푸짐한 한 상을 차려낸다.
갯벌에서 잡은 짱뚱어탕, 강진사또가 자랑했다던 대합 등 산해진미가 즐비하다.

▷ 갈낙탕
: 영암은 30여 년 전 갈비낙지탕, 줄여 불러 ‘갈낙탕’을 탄생시킨 고장이다.
전라도 한우와 갯벌의 낙지가 어우러진 갈낙탕은 걸쭉하면서도 고소한 육수와
낙지의 쫄깃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자랑한다.

▷ 양탕
: 강진에서는 소가 아닌 흑염소로 만든 탕을 양탕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흑염소의 뼈를 고아내어 만드는 육수는 맑고 개운하여 깔끔하다.
고기는 쇠고기보다 쫄깃한데, 건져서 초고추장과 들깨가구 섞은 양념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때
• 강진군청 문화관광사이트, http://gangjin.go.kr/tour
• 영암군청 문화관광사이트, http://tour.yeongam.go.kr

- 2009-12-11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