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식민지시대, 지역개발 어떻게 보아야 하나

Gijuzzang Dream 2009. 12. 21. 20:12

 

 

 

 

 

식민지 시대, 지역개발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한상구(근대사 분과)

 


 

1. 

근대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력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전근대의 세계관이나 사상, 종교는 대체로 생산력의 발전에 무관심하거나 어떤 경우는 적대적이기까지 하였다. 전근대는 물질적 풍요 즉 경제적 발전과 이를 위한 경쟁이 가져오는 불평등과 도덕적 타락을 극히 경계하면서 그 대신에 공동체의 안정된 생활의 유지와 영위를 더 중요시 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와 해방 또한 그 댓가로 몰수되는 것이었다.

 

근대는 정치적 해방, 경제적 발전 그리고 동시에 안정된 공동체의 덕목, 어쩌면 상호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속성을 가진 가치들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앞서 애기한대로 근대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근대로의 이행기에 들어선 일제시기 조선 ‘민’들은 위의 근대의 세 과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우리는 대체로 정치적 해방, 즉 민족의 해방 그리고 계급의 해방이란 측면에서 당시의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해온 듯도 하다. 경제적 발전에 대한 ‘민’들의 추향, 그리고 경제적 발전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시기 조선 ‘민’들은 강렬한 발전의 욕구, ‘경제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조선인 사회의 자본축적이 미약하고 식민지하의 제약이 컸던 상태에서 이러한 ‘민’들의 경제의지가 집중되어 투사되고 발산되는 곳은 바로 ‘지역의 발전’, 지역의 경제적 발전 토대의 확보였다.

 

이러한 지역발전(론)을 살펴볼 때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지역발전이 비록 귀결적으로는 자본주의 발전의 혈맥를 뚫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발전의 추구 주체가 지역주민이고 발전의 단위가 지역이기 때문에, 자본의 계급적 무한 확장에 대한 사회적 제어와 통제의 거점을 처음부터 내장하고 있었다는 측면이다. 

 

아울러 이러한 지역발전은 식민지하의 ‘발전’이기 때문에 그것은 식민권력의 기획 또는 제국자본의 침투에 포섭되는 것으로만 보는 것은 무분별한 일면적 과장일 뿐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역발전(론)은 기본적으로 식민체제의 기획과 포섭을 교란하며 지연시키는, 그러면서 정치적 발화점을 매설해가는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2.

조선 ‘민’ 경제적 발전욕구는 안정된 경제력의 자기발전만은 아니었다. 많은 부분에서 발전은 생존의 문제였다. 쉽게 말해서 지역이 발전하지 않으면 개인적 가계, 살고 죽는 생계가 파탄된다는 절박한, 그리고 그 정도로 강박적인 의식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도로 하나가 있고 없음은, 시설과 관청 하나가 있고 없음은 그 지역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표현되었고, 그렇게 ‘사활적’인 만큼 요구와 주장은 강렬했으며 아주 쉽게 집단적 주민행동으로 진전되었다.

 

지역주민가 품고 있던 제반 요구의 정제되고 조직적인 표출방식인 각종 주민대회를 살펴보면, 지역사회의 전반적 기획과 운영, 그에 따른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성격의 대회가 전체 대회 건수 2000여건(리단위 대회 제외)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학교의 설치문제(15%)나 식민행정에 대한 각종 저항, 비판, 요구(24%), 면, 읍지역에서 빈발한 면장 등 관공리에 대한 선임문제(13%)를 모두 능가하는 비율인 것이다.

 

앞에서 일제 총독부는 조선사회에 법과 제도, 시설과 조직을 융단폭격처럼 투하하였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조선의 ‘민’들은 그것을 다만 수용하거나 끌려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투하물들의 효과와 의미, 성격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이용하고 극대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어쩌면 저들 총독부의 기획과 의도, 능력을 넘어 자신들의 기획과 목적, 요구를 만들어갔다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의 ‘민’, 지역주민들이 강력하고 절박하게 요구한 것은 각종 공공재와 자본재의 신속하고 전면적인 배치와 작동이었다. 생산과 유통의 발전에 관련되는 모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대체로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해당하는 것들과 생산유발효과를 당시로서는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었던 각종 관청, 공공기관들이었다.

  

사회간접자본의 정의는 교통, 통신, 수리, 전력, 보건 등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는 공공시설이다. 이 정의 그대로의 것을 일제시기 지역주민들은 벌판의 들불처럼 요구하였다. 교량, 도로, 철도, 항만, 어항, 우편소, 전화국, 전기회사, 전등가설, 병원, 저수지, 방수로, 제방, 방파제, 상수도, 하수도.....  이 중에서 가장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교통과 통신 부분이었다.

 


<그림 1> 사회간접자본(출처 :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교통과 통신은 경제의 핏줄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와 국가, 세계와의 소통, 커뮤니케이션의 통로, 아니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을 통해 지역은 고립되고 자족적이고 어느부분 자폐적인 지역에서 전국으로, 또 그 너머로 나아가 어깨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주체형성의 토대인 것이다.

 

식민지 시기 관청과 각종 기관들은 식민통치의 거점이고 첨병임이 분명하다. 전국 모든 면에 깔려졌던 경찰관 주재소는 폭력적 식민통치가 모든 조선인 삶과 생활에 깊숙이 침투,장악한 것을 상징한다. 조선의 ‘민’들, 지역주민들은 이러한 통치의 톱니바퀴가 파고 들어오는 것에 반발했고 저항했다.

 

하지만 그들은 다만 그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톱니바퀴들 이용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능동적 대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 그것은 근대의 합리성, 근대적 행정의 합리성이 작동하고 작동해야 하는 범위 내에서였다.

 

거의 모든 지역단위의 행정기관과 공공적 기관, 시설들이 유치와 유지, 확보의 대상이 되었다. 도청, 군청, 면사무소, 재판소, 세무서, 금융조합, 수리조합, 농업창고, 미곡취인소, 미곡검사소, 면화판매소, 해태검사소, 은행지점, 우시장, 약령시, 일반보통 시장, 각종 공립학교, 각종 공장, 심지어 경찰관 주재소, 군부대에 이르기까지...

 

 경찰관 주재소까지 포함한 모든 기관과 시설들이 유치의 대상이 된 것은 그것이 당시에 해당 지역사회에 갖고 있었던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생산유발효과 때문인 것이 많았다. 간단히 말해서 기관 시설이 들어서면 그를 통해 먹고 사는 일자리와 일거리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 기관과 시설의 유치가 갖는 중요성은 위에서 말한 도로와 통신, 동력산업 등 사회간접시설을 지역으로 이끌어들이는 전초기지, 선도거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 있었다. 이 두 가지 점은 21세기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 전남도청이전 등 관청의 이전이 가지고 왔던 엄청난 전국적 지역적 분란, 토공, 주공 등 공공기관의 이전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목을 메는 현상은 일제시기에도 거의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만큼 그런 현상의 이유과 원인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3. 

이상과 같은 기관, 시설의 유치, 유지를 기본으로 하는 지역발전의 욕구는 지역간의 경쟁을 반드시 동반한다. 경쟁은 얼핏 보면 지역간 갈등, 소모적 분란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측면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경쟁을 통한 또는 경쟁을 위한 지역간 결합 그리고 지역내 주민활동의 밀집화라는 적극적 의미도 함께 축적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 의미의 활동은 지역발전의 주체적 기획이라는 지점으로 진전되는 가능성을 확보하고 확대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총독부의 식민통치의 기획과 부딪친다는 사실 또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관청과 시설, 공공재와 자본재의 투하 여하의 결정권은 실질적 대의기관이 없는 식민지 상태에서는 식민권력 총독부의 임의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각 지역은 총독부의 결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동원된다. 유력자를 통한 로비(!), 기부금의 확보, 지역간 연대, 지역내 여론 수렴의 고도화, 이 모든 것을 위한 ‘주민대표기관’의 조직이 수행된다.

 

그리고 여차즉 하면, 즉 총독부의 결정이 지역에 불리하거나 지역을 제외하려는 것 같으면 진정청원에서 항의로, 로비에서 다중적 시위로 바꾸어 대어들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결국 총독부의 결정이 지역을 피해갔다면 다시 그 목적물에 대한 대체물, 대상(代償)물을 찾아 다시 로비, 조직, 항의의 일련 과정을 펼쳐간다.

 


<그림 2> 일제시대 총독부 주변 모습(출처 : http://www.cha.go.kr)

 

이 와중에서 면사무소 위치 하나의 상대적 절대적 합리성을 가지고 주민 전체가 지난한 논란을 거듭한다. 도로 보수의 합리성이 논의된다. 신설된 도로와 철도의 노선의 합리성이 연구된다. 이러한 합리성의 추구에서부터 총독부가 위치지워 ‘주는’ 면사무소, 총독부가 놓아 ‘주는’ 도로노선의 합리성에서부터 총독부가 설치해야 ‘할’ 면사무소의 위치, 총독부가 계획해야 ‘할’ 도로노선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기획’이 개시된다.

 

음성군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음성에서 진천, 이천, 괴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노선이 거론되고, 상주에서 통영까지, 마산에서 목포까지, 서울에서 삼천포까지의 철도노선이 주장되며, 강원북부의 함남 이속이 검토되고, 나진항, 청진항, 성진항의 활성화에 대한 주장이 제기된다.

 

이러한 구상의 확장성, 종합성은 다만 이러한 예와 같이 군, 도, 전국의 단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면단위의 구상 또한 이와 같은 확장성과 종합성의 기반에서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활동에서는 위에서 밝힌대로 일종의 로비, 관청과의 교섭이 일단 처음에는 중요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교섭에 나서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면장, 면협의원, 도평의원, 중추원의 의원, 지주, 재산가와 같은 유력자의 비중이 다른 사안들(학교설립이나 식민행정에 대한 비판이나 요구와 같은)에서보다 높다.

 

그리고 군연합, 부 지역 등 큰 경제력을 아우르는 지역 사안에서는 일본인의 참여도 상대적으로 높게 보인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이러한 지역발전 활동 또는 지역발전의 구상이 본질적으로 그들, 즉 유력자, 재산가, 자산가, 자본의 이해를 선제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느냐일 것이다. 이것은 곧 유력자, 자본, 나아가 식민자본의 지역 주민과 맺고 있는 관계성, 구조성에 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좀 요점을 비켜가는 대답이겠지만, 적어도 결집된 형태로 표현된 주민대회에서 지역발전에 관한 요구가 팽배했던 지역단위는 전체 건수의 80%에 이르는 읍, 면 단위였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읍면지역에서 유력자들은 유지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 곧 지역 ‘민’의 의지와 욕구, 구상의 범위에 강하게 제어되어 있는, 적어도 상호 제어하는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역발전의 구상이 그들 유력자의 구상이었다고 인식하는 것은 일면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 필진 : 한상구/ 등록일 : 2009-11-01

- 한국역사연구회, 세번째 인문학강좌 제4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