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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불로장생을 꿈 꾼 사람들 - 도석인물화전 [스크랩]

Gijuzzang Dream 2009. 12. 17. 13:31

 

 

 

 

 

 

<불로장생을 꿈 꾼 사람들 - 도석인물화전>

 

: 간송미술관 2009년 10월 18일∼11월 1일

 

 

  

 

 

 

                                                         간송미술관 입구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 주제가 《도석인물화》라는 신문기사를 본 날부터 빨리 보고 싶어 발싸심을 했더랬습니다.

지난 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겸재 정선》을 본 이후 인물화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동안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너무 매료되어 있었던 탓일까요?

전시회를 보면서 인물화가로서의 겸재를 재발견했습니다.

특히 겸재가 그린 여인의 모습을 《사공도시품첩》의 <섬농>에서 처음 봤습니다.

물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을 그린 <자연>에서는,

전체를 먹으로 그리고 손톱만한 낚시통만 붉은색으로 칠한 정선의 색채감각에 정선이 다 얼얼했습니다.

그동안 겸재 그림을 상당히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여전히 겸재는 제게 거대한 광맥입니다.

 

기왕 인물화에 관심이 있던 터에 이번 간송전에서는 인물화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인물화전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동안 이런 우연함과 자주 만났습니다.

장승업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하면 사방에서 장승업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김정희를 쓰려고 마음 먹으면 역시 미술관마다 약속이나 한 듯 김정희 특별전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 필연적인 우연과 마주칠 때마다 마치 글을 쓰려는 나를 도와주는 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느끼곤 했습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니까 온 우주가 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줄 알았습니다.

출렁거리는 우주의 에너지를 느끼며 글을 쓰는 순간에는 이 우주에서 오로지 저만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우주는 자신의 태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똑같은 농도로 키워내고 배려하더군요.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듯 생명을 지닌 우리 모두는

똑같이 귀하고 선택받은 존재들이지요. 다만 평소에는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었어요.

제가 글을 쓰려고 하니까 특별히 좋은 전시회가 열린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전시회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고보면 얼마나 많은 우주의 축복과 배려를 무관심 때문에 지나쳐 버렸는지 되새겨봐야겠습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이제부터 간송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도석인물화는 도교와 불교의 신과 인물

 

김홍도, <염불서승>, 모시에 담채, 28.7×20.8cm, 간송미술관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란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스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지칭합니다. 도교의 인물화 소재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신선과 도인을 비롯하여 동왕공, 서왕모, 복희, 여와 등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천도복숭아, 불로초, 사슴, 학, 두꺼비 등 전통적으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길상적인 요소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는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도교의 동방삭을 그린 것이고, <남해관음>은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노승염불>은 불교의 스님을 그린 작품입니다. 김홍도처럼 한 작가가 불교와 도교의 여러 신선과 인물을 그린 사람도 있지만 같은 소재를 여러 작가들이 그린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작가들이 같은 주제를 그린 그림을 비교하면서 감살펴볼까요? 오늘은 불교쪽은 생략하고 도교 쪽 대문만 열어보겠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에 대한 정보만 간단하게 소개할 테니 편하게 감상하세요.

 

 

 

- 도교의 신과 신선들

 

① 마고 선녀와 하선고 

   석경,<마고선녀가 지초를 캐다>, 비단에 채색, 19.0×21.9cm

 

  최우석,<마고선녀가 지초를 캐다>, 비단에 채색, 45.5×141.5cm, 간송미술관

 

 김홍도, <군선도8곡병> 중 일부분, 1776(32세), 종이에 담채, 132.8cm,×575.8cm, 호암미술관 

마고는 후한대 선녀입니다. 18세의 아리따운 미녀인데 서왕모의 생일날에 영지로 술을 빚어 축하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왕모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힘을 지닌 최고의 여신입니다.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과의 스캔들은 워낙 유명해서 그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대번에 간첩으로 의심받았다고 하는군요. 서왕모만큼은 아니지만 마고 선녀도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하는 것을 세 차례나 봤다고 하니 그만하면 어지간히 장수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 성어 속에 담겨 있는 장수(長壽)에 대한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된 여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 발톱 같은 손톱미녀가 약초바구니를 들고 가거나 천도복숭아나 불수, 영지버섯이 든 잔을 들고 가거든 모른 채 마시고 마고선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미인은 잘 삐지거든요.

여자 신선으로는 마고 선녀 이외에 하선고라는 미녀가 한 명 더 있습니다. 그녀는 14, 15세 무렵에 꿈에 나타난 신인이 운모 가루를 먹으라는 계시를 따라 신선이 되었답니다. 그녀는 산꼴짜기에서 따온 과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모습은 약초나 복숭아를 담은 바구니를 든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여인의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의 주인공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마고선녀와 하선고의 모습은 비슷비슷해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더군요.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홍도의 <군선도> 중 마고와 하선고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누가 마고이고 하선고인 지 알아맞춰 보실래요?

 

 

②수노인(壽老人)

 

 김명국, <수로가 거북을 끌다>, 종이에 수묵, 52.7×100.5cm 

수노인(壽老人)은 말 그대로 장수를 상징하는 신입니다. 별 중에서는 남극성을 가리키는데 수성(壽星)이라 불리는 남극성을 보면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노인은 8등신이 아니라 ‘3등신’이라 할 정도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큰 짱구입니다. 머리카락이 없어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번쩍번쩍할 정도로 쿨(cool)한 노인이 흰 수염을 휘날리고 있으면 틀림없이 ‘수노인’입니다. 여기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와 소나무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선종화의 대가답게 김명국은 굵은 필선 몇 가닥으로 거북이를 끌고 가는 수노인을 그렸습니다. 수노인 뒤에 마우스처럼 생긴 물건이 거북이입니다. 매우 추상적인 작가였던 것 같습니다. 

 

 윤덕희, <남극노인>, 모시에 수묵, 69.4×160.2cm 

그에 반해 윤덕희가 그린 수노인은 꼼꼼한 성격이 느껴집니다. 좌측에 쓴 글에 의하면 윤덕희의 나이 55세 때인 기미년(1735)에 최영숙의 회갑을 기념하여 그려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수노인이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승업, <추남극노인>, 종이에 채색, 64.1×134.7cm  

장승업의 <추남극노인> 또한 ‘남극성이 보이면 임금께서 오래 사시고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라고 적고 있어 왕에 대한 축수용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춘남극노인>과 쌍을 이루는 이 작품은, 하늘의 별이 빛을 잃어가는 가을 새벽에 오직 남극성만이 붉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른 별들도 모두 빛나고 있었겠지만 유독 남극성만이 눈에 들어왔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금새 눈에 띄는 이치와 통하지 않겠어요?

 

 

③거지의 몸 속에 들어간 철괴

 

 김명국,<철괴>, 종이에 담채, 20.2×29.5cm, 간송미술관                        

가장 도교적인 신선이 바로 철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김명국이 그린 <철괴>를 보면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네요. 언제 빗은 지 알 수 없는 헝클어진 머리에는 헤어밴드를 두르고, 몸에는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입니다. 게다가 한쪽 다리를 절어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손에는 술병을 들고 있군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걸인의 필요 충분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도교의 신선으로 추대되지도 않았겠지요?

이제부터 그의 인생역정을 간단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철괴는 성이 이씨로(그래서 이철괴, 철괴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도에 관심이 많아 산속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자를 만나기 위해 화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철괴는 제자에게, 몸을 이 곳에 두고 가는데 만약 7일동안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몸을 태우라, 고 이릅니다. 육신은 두고 영혼만 슝슝 날아 다닌다는 발상이야말로 가장 도교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영혼이 떠난 스승의 몸을 지키던 제자에게 일이 발생합니다. 늙은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이 온 것입니다. 마음이 급해 진 제자는 7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스승의 시신을 태워버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상상이 되시지요?

철괴의 영혼이 육신이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자기 몸이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할 수 없이 철괴는 굶어죽은 거지의 몸 속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비호감인 거지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괜찮은 몸으로 이사하기 위해 빠져 나오려는 순간 호로병에서 노자가 나와서 한마디 합니다. 진정한 도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있느니라.

 

 

심사정,<철괴>, 비단에 담채, 29.7×20.0cm, 간송미술관   

이 부분이 철괴전의 압권입니다. 또한 그 때문에 훈남인 철괴가 영원히 비호감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서 노자는 금테와 철지팡이를 주고 사라집니다. 그 후 철괴는 외모에 현혹되지 않는 진정한 도인의 상징이 되어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도교의 신선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에게 깨우침을 준 호로병은, 혼백을 분리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물건으로 인식되어 철괴를 그릴 때면 꼭 등장하게 됩니다.  

 

 

 이한철,<철괴>, 종이에 담채, 36.0×25.0cm, 간송미술관 

이제 보니 머리에 두른 것은 헤어밴드가 아니라 노자한테 받은 도의 상징이었네요? 손에 든 병은 술병이 아니라 호로병...에구, 하마터면 귀한 물건을 몰라보고 무식한 소리를 할 뻔 했습니다. 김명국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 저는 또 술병을 그린 줄 알았지요. 철괴를 그린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심사정의 <철괴>가 아주 좋습니다. 함께 감상하시지요. 이한철이 그린 <철괴>에서 동행한 신선은 누구인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눈 어두운 중생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신분증을 확실히 가지고 다니시라나까요. 무명씨 신선님.

 

 

④노자출관(노자가 함곡관을 나가다) 

                                

김홍도, <노자출관>, 종이에 담채, 52.1×97.8cm, 간송미술관 

순서가 조금 바뀌었네요. 도가를 창시한 분을 먼저 소개했어야 하는데 철괴 얘기 다음에 넣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세요, 노자님. 공자와 함께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노자는 득도한 다음 서역으로 떠나기 위해 소를 타고 함곡관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때 함곡관을 지키던 관리가 노자를 알아보고 도에 대해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던 노자가 거듭되는 그의 간청에 마음이 열려 도에 대해 들려준 얘기가 오늘날 전해지는 『도덕경』입니다. 노자는 실존인물이지만 언젠가부터는 도교의 교조로 추앙받으면서 태상노군(太上老君), 원시천존(元始天尊) 등으로 신격화됩니다.

노자와 관련된 그림은 특히 함곡관을 배경으로 한 이 장면이 많이 그려집니다. 소를 탄 노인이 손에 책을 들고 있거나 성문을 뒤로 한 채 어떤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면 반갑게 달려가서 아는 체 하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노자일 테니까요. 이번 간송전에서 <노자출관>은 정선과 김홍도의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특히 정선의 <노자출관>은 거의 비슷한 구도의 작품이 왜관수도원 소장품 중에도 들어 있으니 비교해서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송 작품에서 담백한 수묵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왜관수도원 소장품에서는 강렬한 채색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 <청우출관>, 비단에 담채, 24.6×23.0cm, 왜관수도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9월 8일부터 《겸재 정선》전을 하고 있는데 왜관수도원 소장품 정선 화첩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화첩이라 전체 그림을 다 전시할 수가 없어 일주일마다 화첩을 넘겨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저도 실물은 처음 보기 때문에 매 주마다 가서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하는 생각. 역시 작품은 실물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도판으로 보는 것은 그저 그림의 그림자만 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이틀 전에 갔더니 <연광정>을 전시하고 있더군요. 도판으로 볼 때는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구도나 필치 등 그림을 풀어내는 솜씨가 조선 제일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 했습니다. 인물과 산수를 그리는 솜씨가 어찌나 정교하던지 함께 구경하던 지인이 정선을 ‘진짜 쪼잔한 인간’이라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저런 치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냐는 거예요. 저라면 날마다 쪼잔한 인간이 되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연광정>같은 작품만 그릴 수 있다면요. 정말 쪼잔해지고 싶습니다.

 

다음 주부터 11월 2일까지는 <고산방학>을, 11월 3일부터 8일까지는 <노자출관>편이 펼쳐집니다.

간송 전이 11월 1일까지니까 간송에 다녀오신 다음, 며칠 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⑤유해

 

 심사정, <해섬자희>, 비단에 담채, 15.6×22.8cm, 간송미술관

 

 이수민,  <해섬자>, 종이에 담채, 24.3×15.4cm, 간송미술관 

10세기경 중국의 후량에 살았던 선인 유해와 두꺼비에 관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그림 만나는 날> 코너의 1번에 올려 놓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유해와 두꺼비를 그린 그림 중에서 심사정의 <해섬자희:해섬자가 혼자 놀다>야말로 빼 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림은, 유해가 자신을 세상 어디든 지 데려다주는 두꺼비를 끈에 금전을 묶어 낚아 올리고 있습니다. 더풀더풀한 머리카락에 누더기같은 옷, 그리고 맨발. 금테와 호리병과 지팡이같은 주민증은 없지만 마치 철괴를 그린 듯 이미지가 겹칩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중에서 가장 많은 도석인물화를 남긴 심사정답게 선배들의 작품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한 듯, 거칠고 선기(禪氣)가 느껴지는 맛이 김명국의 선종화를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심사정의 <해섬자희>를 보고 이한철이 <철괴>를 그릴 때 유해를 함께 그린 것은 아닐까요? 이한철(1808-1880)이 심사정(1707-1769)보다 백 여년 뒤의 후배이니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괜히 이한철의 <철괴>를 보면서 무명씨라고 놀렸네요. 이렇게 미운털이 박혔으니 아프더라도 철괴의 도움을 받기는 틀린 것 같군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하더니 제가 꼭 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수민의 <해섬자>에 등장하는 신선들이 금새 파악이 되네요. 철괴와 유해. 이제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겠어요. 죄송해요 철괴님.

그런데 유해는 어떻게 해서 신선이 되었을까요? 그의 스승인 여동빈을 만나보겠습니다.

 

 

⑥검의 신선 여동빈

 

김홍도,<협사수심: 의협심이 많은 사람이 마음을 닦다>,종이에 담채, 13.0×22.4cm, 간송미술관  

머리에 도인들이 쓰는 화양건을 쓰고 소요복이라는 편안한 옷을 입고 보검을 들고 있는 남자. 그가 바로 여동빈입니다. 당나라 때 실존했던 인물인 여동빈은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일만어에 이르는 문장을 읽을 정도로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은 용을 닮았고 눈은 봉황과 비슷했다고 하니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여의치 않아 20세부터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다 겨우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여산의 현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산에 놀러가서 종리권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무상과 권력무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여동빈에게 종리권은 뜬구름같은 관리생활을 버리고 영생의 도를 구하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악귀를 쫓아낼 수 있는 천둔검법과 용호금단이라는 불로장생의 약 제조법을 전수해 줍니다. 그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현지사를 그만두고 수행에 전념하여 훌륭한 신선이 되었습니다. 금단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고 양자강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둔검으로 요괴를 해치웠습니다. 그의 검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평범한 검의 의미에서 마음속에 들끓는 탐욕스러움과 어리석음과 성내는 마음을 자르는 심검(心劍)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마음의 번뇌까지 끊어주는 검이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검입니다.

문인이면서 검법에 능한 여동빈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문무를 겸비한 신선으로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홍도의 <협사수심>은 선비이자 검객인 여동빈의 이미지를 감필묘로 훌륭하게 처리했습니다. 전혀 검을 쓰지 않을 것 같은 선비의 이미지.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까지도 감지해낼 수 있는 예리한 촉각. 정중동(靜中動)이란 저런 모습이겠지요?

 

이인상, <검선: 검의 신선>,종이에 담채, 96.7×61.8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여동빈을 그린 작품은 <검선관란: 검선이 물결을 바라보다>가 한 점 더 전시되어 있고, 이인문의 <동정검선: 동정호의 검선>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동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이인상의 <검선>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인상의 <검선>은 평생을 고고하게 살고자 했던 이인상의 이상이 담겨 있는 문기 넘치는 산수인물도입니다. 만약 정선의 <노자출관>을 보러 가시거든 이인상의 <검선>도 함께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아참, 여동빈이 유해와 만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여동빈이 신선이 된 다음에 때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가도 때로는 사라져 버리는 신비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빈이 동전 위에 계란을 열 개나 쌓는 묘기를 부렸답니다. 이것을 본 관리하나가 깜짝 놀라며, ‘앗! 위험한데!’라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 때 여동빈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대 눈에는 이 계란이 위험하게 보일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그대의 지위가 더욱 위태롭게 보이는군.”

 

 이인문,<동정검선: 동정호의 검선>,종이에 담채, 41.5×30.8cm, 간송미술관 

그 말을 듣고 한 소식 한 관리가 유해입니다.

역시 신선이 될 사람들은 평범함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니까요.

여동빈에게 반해 신선이 된 사람으로는 조국구와 한상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실존했던 인물로 조국구는 왕족임에도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은둔해 살았답니다. 그의 신분증은 딱따기인데 언제든지 궁궐을 드나들 수 있는 증서라고 합니다.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술을 좋아한 한상자는 빈 술독에서 술을 만들고 연주 솜씨가 뛰어난 신선입니다. 그의 퉁소 소리를 들으면 사나운 짐승까지도 꼬리를 내리고 순한 눈빛으로 모여들 정도였다니 가히 ‘뮤즈의 신선’이라 할 만합니다.

 

 

⑦동방삭과 장과로와 종리권 

 

  조중묵, <종리>, 종이에 수묵, 29.0×37.7cm, 간송미술관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화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선 중 세 명을 더 보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신선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때로는 이야기의 내용이 허무맹랑하고 과장이 심해 웃음거리로 넘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소망과 바램, 지향점과 이상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신선이 실재한 인물이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는 지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신선의 숫자가 해를 거듭할 수록 많아진 것도 사람들의 갈망과 소망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현재까지 알려진 신선만 해도 500여명이 넘을 만큼 많습니다.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그들을 다 얘기하자면 500여일로도 모자랄 테니 오늘은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든 신선들만 살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살고 있는 여동빈을 꼬드겨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을 버리게 한 사람이 종리권입니다. 종리권은 당대의 실존인물로 눈이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많은 무인(武人)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손에는 파초로 된 부채를 들고 있는데, 이 부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어 살릴 수 있는 신비스런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김홍도, <장과도기: 장과가 거꾸로 타다>, 비단에 담채, 56.6×134.6cm, 간송미술관 

종리권같은 실존인물로 신선이 된 사람으로는 장과로가 있습니다. 그는 흰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하루에도 수백 리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쉴 때에는 나귀를 곱게 접어 종이처럼 얇은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하면 물을 뿌려 나귀를 일으켜 세워 타고 갔다고 합니다. 그는 얼마나 오래 살았던 지 그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당 태종과 당 고종, 측천무후까지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장과로는 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앉아 책을 보고 있거나 박쥐가 함께 그려집니다. 박쥐가 그려진 것은 원래 그가 세상과 함께 생겨난 흰 박쥐의 정령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홍도, <낭원투도: 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종이에 담채, 49.8×102.1cm, 간송미술관 

삼천갑자(1갑자는 60년이니까 18만년)를 살았다는 동방삭도 실존인물입니다. 말솜씨가 뛰어나 그는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 올라가 낭원이라는 복숭아밭에서 선도복숭아를 세 번이나 훔쳐 먹었습니다. 선도복숭아는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년이 지나야 익는다고 하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1천갑자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동방삭을 6천년만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선도 복숭아를 먹은 신선으로 만든 사람들. 그들의 가슴 속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강렬하게 담겨 있었으면 동방삭같은 캐릭터를 창출했을까요? 백 년도 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 6만년을 세 번 정도 살면 만족할까요? 아닐 겁니다. 6만년을 10번을 살게 해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동방삭을 시켜 선도복숭아를 더 훔쳐오게 하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곤륜산의 복숭아나무를 뿌리 채 캐 오라고 시킬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도 양치기소년으로 신선이 된 황초평, 사슴을 몰고 다니며 불로초를 캐는 신선 청오자 등도 여러 작가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수없이 많이 그려진 도교의 신선들을 보니까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희나 여와같은 전설속의 인물도 있지만 여동빈, 청오자, 동방삭, 철괴 등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도교의 단련술을 익혀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어쩌면 우리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생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 꼭 그러고 싶다는 강렬한 염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로장생이란 단어를 보니까 갑자기 서양 신화의 티토노스가 떠오르는군요. 인간의 몸으로 제우스에게 영생을 청할 때 ‘영원한 젊음도 함께’ 달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서 결국은 늙어서 매미가 되었다는 사람입니다. 그에 비하면 동양의 신선들은 참 영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음을 잃고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한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을 젊은 나이에 알았다니 대단합니다. 기왕이면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선도를 그린 도석인물화는 계속 그려질 것입니다.  

 

 

 

- 글을 마치면서 

 

처음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불교쪽 그림도 함께 다룰 예정이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를 약속해야겠습니다. 요즘은 글을 짧게 쓰는 것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듯 자꾸 긴 글만 씁니다. 구닥다리같아 이 버릇을 고치려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별로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자료를 찾고 그림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유행에 따르느라 희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첫번째 독자는 바로 저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첫번째 독자가 만족하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전시 작품을 완전히 해부하여 재배열하듯 공부하고 나면 글을 쓰고 싶은 소재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옵니다. 그림만 스캔 떠서 올린다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직접 보고 도록을 사서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미술사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간여유가 있으면(없어도 시간을 내서) 전시장에 다시 가서 작품을 보면 적어도 그 전시 작품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전시회를 볼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입니다.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도 매번 전시장을 찾는 이유입니다. 대충 넘어가도 될 글을 받아쓰기 하듯 길게 쓰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긴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승업의 명작 한 편을 소개하면서 1부를 마치겠습니다. 장승업의 <삼인문년: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는 세 노인이 서로 자기 나이가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얘기를 그린 그림입니다. 한 노인이 먼저 말문을 엽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 지는 모르겠으나 천지를 창조한 반고와 친하게 지냈지. 그렇다면 이 노인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러자 두번째 노인이 말을 받습니다. 바다가 변해 뽕나무밭이 될 때마다 산가지 하나씩을 놓았는데 그 산가지가  열칸 집에 가득하네.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되었다는 얘기는 옛날 노인들이 긴 시간을 얘기할 때 상투적으로 써 먹는 수법입니다. 이 분도 장수하셨군요. 마지막 세 번째 노인도 질 수 없습니다. 내가 말이야.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 버렸는데 그 씨가 벌써 곤륜산 높이만큼 쌓였어. 3천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 복숭아를 얼마나 먹었던 지 그 씨가 곤륜산만 하답니다. 대단하시군요, 어르신들. 행여 이 분들 얘기 듣고 '모두 뻥이야!'하시는 분들 없으시겠지요? 굳이 노인들을 타박하시면 안됩니다. 그 분들은 단지,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상 끝날 때까지 장수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대신 말했을 뿐이니까요. 결국 신선은 시대마다 옷만 갈아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요?

 

 

 

 김건종, <호리건곤: 잔 속 하늘과 땅>, 종이에 담채, 39.0×30.5cm, 간송미술관

 

 

- 불교의 신과 신선들

 

불교의 인물화는 절에서 불상 뒤에 그려진 정통적인 불화가 아닌 선종(禪宗)계통의 인물 등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선종의 조사인 달마대사를 비롯하여 포대화상, 한산과 습득, 관음보살과 나한상입니다. 물론 각 인물의 신분을 입증할 수 있는 지물과 함께 그려집니다.

평생동안 지팡이에 자루를 매달고 다니며 중생이 원하는 물건을 내주었던 포대화상. 스님도 아니면서 속인도 아닌 비승비속의 한산, 습득의 모습도 볼만합니다. 더불어 스님이 좌선하고 염불하고 탁발하는 틈틈이 장기를 두고 이를 잡는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 유교, 불교, 도교의 세 종교를 화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삼소도(三笑圖)’도 도석인물화의 소재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삼소도’에는 유불선의 대표격인 공자, 노자, 석가모니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웃는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김건종의 <호리건곤>도 같은 소재를 그린 그림입니다. 높은 경지에 오른 성인이나 신선들은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기 위해 핏대 올리며 싸우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싸움이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맞붙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옳다는 생각에 핏대 오를 때마다 한번씩 <삼소도>를 떠올려봐야겠습니다.

 

 

⑦달마도해: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다

 

불교 인물화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 ‘달마’입니다. <달마도>는 일필휘지로 그린 김명국의 작품이 유명한데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소림굴에서 면벽수행하고 있는 달마와, 팔을 끊어 자신의 구도심을 보인 혜가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 <혜가단비도>도 화가들이 즐겨 그린 달마 관련 그림입니다. 일본의 셋슈 토오요오의 작품이 볼 만합니다.

이번 간송전에서는 축연의 <달마대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금강산 유점사 화승이었던 축연이 그린 <달마대사>는 아무런 배경 없이 댓잎자리 위에 앉아 수행하는 달마의 모습이 간결하게 그려졌습니다.

 

축연, <달마대사>, 비단에 수묵, 28.5×33.8cm, 간송미술관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으나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습니다. 520년경에 전법을 위해 중국 양나라로 왔으나 공덕을 과시하려는 무제를 피해 숭산 소림사에 건너가 9년 동안 면벽수도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후 달마대사의 선법은 2대 혜가스님한테 전해졌고 달마대사의 모습은 수행자의 표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마대사의 얼굴은 서역 출신답게 검은 피부와 부리부리한 눈, 큰 코와 덥수룩한 수염 등 이국적인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달마와 관련된 그림 중에서 화가들이 가장 많이 사랑했던 주제는 <달마도해>일 것입니다. 갈대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는 고사를 그린 <달마도해>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랫동안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양자강을 건넜기 때문에 그림 제목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달마도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강’이라는 좁은 틀이 ‘바다’에 가 닿아 <달마도해>가 되었습니다.

 

 심사정, <달마도해>, 종이에 수묵, 27.6×35.9cm, 간송미술관 

 

김홍도, <절로도해>, 종이에 담채, 58.3×105.5cm, 간송미술관 

 

 조석진, <달마도해>, 비단에 채색, 40.7×154.0cm, 간송미술관 

 

 김은호, <달마도해>, 비단에 채색, 19.6×32.5cm, 간송미술관 

 

정언신, <달마도해>, 종이에 담채, 47.5×124.0cm, 간송미술관 

이번 간송전에서도 역시 <달마도해>가 많이 나왔습니다. 심사정, 김홍도, 이수민, 조석진, 유숙, 김은호 등 많은 작가들이 달마를 그렸습니다. 같은 인물을 그렸기 때문에 비교해서 보시면 각 작가들의 개성이 느껴져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달마대사를 조선 사람으로 그린 김홍도의 작품과 중국 화가 정언신의 작품을 비교해 보시면 비슷하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한국과 중국의 미감 차이가 아닐까요?

 

 

⑧ 좌수도해: 앉아 졸면서 바다를 건너다

 

달마도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달마의 모습을 어린 아이가 졸고 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킨 <선동도해>까지 그려졌습니다. 심사정, 김홍도, 이수민, 유숙 등 이 번 전시회에 출품된 <선동도해>만 해도 여러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심사정의 <선동도해>는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거품이 일고 있는 바다 위에서 갈대 위에 쪼그리고 앉은 어린 아이가 살풋 잠이 들었습니다. 무섭지도 않을까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갈대 위에 앉아 있기만 하면 아무리 깊은 바닷길이라도 건널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편안하게 자는 걸까요. 아니면 인생은 어차피 어린아이가 홀로 망망대해를 건너 가듯 혼자 가야 된다는 고독한 진리를 얘기하는 걸까요. 무릎을 세우고 잠든 어린아이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만약 내게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갈 그 무엇이 있다면 풍랑 속에서도 잠들 수 있는 저 어린아이처럼 넉넉한 믿음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심사정, <선동도해>, 종이에 담채, 27.3×22.5cm, 간송미술관 

심사정의 <선동도해>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어린아이의 숨결소리가 들린다면 김홍도와 이수민의 <좌수도해>는 밤중에 듣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금새라도 빠뜨릴 듯 시퍼런 물결이 보는 사람을 자꾸 불안하게 합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저 아이를 깨워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저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물에 빠지지 않고 육지에 도달한다 해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찾아 들면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또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은 아닐 지.

 

  김홍도, <좌수도해>, 종이에 담채, 38.4×26.6cm, 간송미술관

 

 이수민, <좌수도해>, 종이에 담채, 26.0×20.5cm, 간송미술관 

<선동도해>는 아니지만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힌트를 얻었을 법한 작품이 유숙의 <오수삼매>입니다. 유숙은 바다니 갈대니 하는 소품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고 오직 잠 든 스님의 모습만 그렸습니다. 만약 잠에 빠진 아이가 그려진 <선동도해>가 빠지고 <달마도해>와 이 작품만 있다면 두 작품상의 연관관계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작품은 시대와 작가에 따라 변형되고 새롭게 창조됩니다. 때론 그 원형이 무엇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주가 심한 작품도 많습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변장한 작품의 원류를 찾아가는 작업도 상당히 재미 있습니다. <오수삼매>가 그런 예입니다.

눈썹까지 세밀하게 그린 얼굴과 먹의 농담변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승복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태산 같은 잠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스님은 지금 천지가 파열한다해도 끄덕없을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졸릴 때 눈꺼풀의 무게를 느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잠입니다.

 

  유숙, <오수삼매>, 종이에 담채, 28.0×40.3cm, 간송미술관

 

 

⑨ 포대화상

포대화상은 달마대사만큼 인기가 많았던 분입니다. 지금도 절에 가면 둥근 배를 내밀고 자루를 맨 채 넉넉하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포대화상은 누구일까요?

법명이 ‘계차’인 포대는 당나라 말 오대 때 사람인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항상 지팡이 끝에 달린 포대자루 속에 온갖 물건을 가득 담고 다니면서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포대화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포대자루를 가지고 다니는 스님이라는 뜻입니다. 지팡이 끝에 포대자루를 들고 있거나 혹은 둥근 포대자루곁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포대화상은 재물과 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조각상과 그림으로 수없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재물과 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은 끝이 없는 듯 합니다.

 

  김득신, <포대흠신: 포대화상이 기지개를 켜다>, 종이에 담채, 27.2×22.8cm, 간송미술관 

 

 안중식, <환희포대: 즐거운 포대화상>, 비단에 담채, 62.0×139.8cm, 간송미술관 

 

 노수현, <포대화상>, 비단에 담채, 28.0×20.2cm, 간송미술관

 하루 종일 중생들에게 자루 속에 든 물건을 주고 나서 잠시 쉴 때의 넉넉함. 그것은 베풀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평화일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여유입니다. 포대화상의 얼굴은 누가 그리더라도 항상 웃는 모습입니다. 불룩한 배가 포대만큼 부풀어있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넉넉함으로 기억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먼지로 사라질 몸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마음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포대화상님. 당신은 멋진 남자입니다.

 

 

⑩ 호랑이와 스님

 부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인게다 존자는 호랑이를 길들여서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한 생각의 차이로 맹수가 되었지만 짐승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재는 선종화나 문인화의 소재로 크게 환영받았는데 『고씨화보』에도 그 도상이 담겨 있습니다. 정선의 <송암복호:소나무 밑 바위에서 호랑이가 엎드리다>는『고씨화보』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경산수화가답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스님과 호랑이는 물론 소나무까지도 조선적입니다. 소나무 아래에서 스님이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는 그림으로는 서울대 박물관에 소장된 장승업의 작품이 뛰어납니다.

양기성의 <사자와 나한>은 인게다 존자를 그린 것인 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보면 항상 이런 숙제가 남습니다. 전시회에서 돌아와 그 숙제를 푸는 과정이 제게는 공부입니다. 사자는 성스러운 동물로 불화에서 자주 등장하는만큼 여기서는 수행자를 지켜주는 동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들 때까지 비슷한 그림을 자주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김홍도의 <고승기호:고승이 호랑이를 타다>에서는 스님이 호랑이를 길들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호랑이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인게다 존자일까요?

 

  정선, <송남복호>, 종이에 담채, 51.0×31.5cm, 간송미술관 

 

 양기성, <사자나한>, 종이에 수묵, 34.5×28.0cm, 간송미술관 

 

김홍도, <고승기호>, 종이에 담채, 35.7×31.8cm, 간송미술관

 

 

⑪ 수행자 스님

허필이 그린 <나한>을 보면, 소나무 아래 노스님이 향을 피우고 앉아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화보를 참조한 듯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담백한 붓질로 수도자의 생활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최북의 <관수삼매>에서는 종려나무와 태호석이 있는 계곡에서 한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두가 잘 잡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스님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봄날일 수 있겠습니까.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해가 뜨는 날도 있겠지요. 다만 쉬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힘내세요, 스님. 저도 힘내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마칠 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허필, <나한>, 종이에 수묵, 23.2×30.5cm, 간송미술관 

 

 최북, <관수삼매: 물을 보며 삼매에 들다>, 비단에 담채, 11.0×31.6cm, 간송미술관 

지칠만 하니까 역시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김홍도의 작품은 다 좋지만 만약 그의 작품에서 두 작품만 고르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남해관음>과 <염불서승>을 고르겠습니다. <염불서승: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는 수행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는 서쪽에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서방정토라고 합니다.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열 번만 염송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에 귀의했던 김홍도가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발원이 담긴 작품입니다. 두광 바깥을 파르라니 물들인 표현방식도 좋고 구름과 연꽃이 뒤섞인 모습도 좋습니다.  

 

김홍도, <노승염불>, 종이에 담채, 19.7×57.7cm, 간송미술관  

염불로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바램이 담긴 작품이 또 있습니다. <노승염불>입니다. 담묵으로 노스님과 시자를 그린 이 작품은, 잘 그려야 되겠다는 화가의 마지막 욕심마져 비워 낸 작품같습니다. 저도 이런 글 한 편 쓰고 싶은데 아직은 욕심이 덜어지지 않습니다. ‘단원 늙은이’라는 뜻의 ‘단로(檀老)’가 적힌 것으로 봐서 <염불서승>과 마찬가지로 단원 김홍도의 만년작입니다. 제시를 보니 ‘입으로 항하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외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항하는 인도의 겐지스강을 뜻합니다. 겐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외우고 싶은 염불. 그것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⑫ 일상생활 속의 스님

스님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조영석의 <노승헐각: 노승이 다리를 쉬다>와 <노승휴장:노 승이 지팡이를 짚고 가다>, 그리고 이인문의 <나한문슬: 나한이 이를 떨어내다>와 김득신의 <송하기승: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 두는 승려>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고려 시대라면 그려지지 않았겠지요. 고려시대까지 왕의 스승을 하던 스님들은, 조선시대가 되면 사대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천민으로 전락합니다. 자연히 고려시대같이 뛰어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될 수 없었을뿐더러 사대부들의 천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김홍도의 <염불서승>같은 뛰어난 작품보다는 스님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제작된 듯 합니다.

 

 조영석, <노승헐각>, 비단에 담채, 17.2×26.8cm, 간송미술관 

조영석의 <노승헐각>은 노스님이 지팡이를 짚은 채 소나무 등걸에 앉아 쉬고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목에는 염주를 두르고 머리에는 송낙을 쓴 노스님은 먼 길을 걸어온 듯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맑은 담채로 과장없이 풀어낸 조영석의 문인취향이 느껴집니다.

 

 김득신, <송하기승>, 종이에 담채, 27.0×22.4cm, 간송미술관 

그런가하면 김득신의 <송하기승>은 인물만 스님일 뿐이지 완벽한 풍속화입니다. 소나무 아래서 장기 두기에 여념이 없는 스님들의 모습을 풀어내는 방식에서 김홍도의 영향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야묘도추: 병아리를 물고 가는 고양이>처럼 김득신의 풍속화는 대상에 최대한 접근하여 순간적인 장면을 잡아내는 생생함이 담겨 있습니다.

스님의 생활을 다룬 그림으로는 신윤복의 <이승영기: 비구니가 기생을 맞이하다>와 <노상탁발> 그리고 <문종심사: 종소리 들으며 절을 찾아가다> 등이 출품되었습니다. 여인의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주로 그린 신윤복답게 역시 세 작품 모두 화사한 여인들이 주인공입니다.

 

 

신윤복, <노상탁발>, 종이에 담채, 35.6×28.4cm, 간송미술관 

그런데 이쯤해서 과연 ‘도석인물화’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도교의 인물상들은 그 그림이 비록 감상화라 할지라도 그 안에 장수, 다남, 재물, 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인물화는, 절에 걸기 위한 불화가 예배대상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한 반면 도석인물화로 분류되는 나한, 승려 등의 인물상은 순수한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 같습니다. 신윤복의 <노상탁발>이 예배용이나 축수용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⑬ 묘길상

묘길상은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입니다. ‘문수보살’의 다른 이름인 묘길상은 그 높이가 15m로, 얼굴 크기만 3미터에 달하는 거불입니다. 같은 장소를 그린 세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림을 풀어내는 작가의 시각과 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홍도의 작품이 마애불을 향해 절하는 두 스님을 그려서 풍속화의 느낌이 짙다면, 이한철의 마애불은 하단과 옆면을 여백으로 비워두어 마치 높은 벼랑 위에 떠 있는 듯 합니다. 그런가하면 김홍도와 이한철이 서 있던 위치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서 붓을 들면 김은호의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김은호는 묘길상이라는 마애불보다는 그 불상이 놓여진 주변의 가을 풍경에 더 매료된 것 같습니다.  

 

 김홍도, <묘길상>, 종이에 담채, 18.2×23.6cm, 간송미술관

 

 이한철, <묘길상>, 종이에 담채, 28.0×24.6cm, 간송미술관

 

 김은호, <묘길상>, 종이에 담채, 45.2×33.3cm, 간송미술관

 

 

⑭ 호계삼소: 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

드디어 이번 간송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처음에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전시회 동향이 어떠했는 지 간략하게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레포트를 받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라고 했더니 거의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림속의 인물이 누구이며 왜 그렸는지에 대해 거의 알 지 못하더군요. 그만큼 도석인물화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상과 지물을 설명하는 식으로 글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최북의 <호계삼소>입니다. ‘호계의 세 사람 웃음소리’란 뜻인데 유, 불, 선을 대표하는 세 사람이 서로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최북(1738-1786)이 살던 시대에는 유, 불, 선이 동양의 대표적인 종교였으니까 각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종교가 우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요하지 않고 서로 웃고 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세상이 저래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교가 틀리고 정치적인 견해가 틀려도 함께 어울려 웃을 수 있는 세상.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틀려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사회. 나와 다른 색깔로 살아가도 비난하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관계. <호계삼소>가 지향하는 세상이 제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조금만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금새 화를 내고마는 저같은 사람한테 꼭 필요한 그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랫 동안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관용’과 ‘배려’에 대해 고민해보겠습니다.(조정육)

 

 최북, <호계삼소>, 비단에 담채, 21.0×29.7cm, 간송미술관

 

 

  

 

장승업, <삼인문년>, 비단에 채색, 69.0×152.0cm, 간송미술관


 

  정선, <호방>《사공도시품첩》중에서, 1749년, 비단에 엷은 색, 27.8×25.2cm, 국박

 

 

 

 김홍도, <남해관음>, 비단에 담채, 20.6×30.6cm, 간송미술관 

 

  

 정선, <섬농>《사공도시품첩》중에서, 1749년, 비단에 엷은 색, 27.8×25.2cm, 국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