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의 아테네움 미술관 소장품들
핀란드 민족주의 문화를 대표한다
헬싱키(Helsinki)에 있는 ‘아테네움 미술관(Ateneum Art Museum)’은
핀란드 최대 국립미술관이지만, 유럽의 미술관의 설립 목적과 달리 민족주의가 도화선이 되어 지어졌다.
핀란드는 시베리아 이주민들이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으면서 독립 국가를 꿈꾸었으나,
1807년 나폴레옹과 당시 러시아 황제가 맺은 틸지트 조약(Treaties of Tilsit)에 따라 러시아 속국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지배를 받고 있던 다른 속국과 달리, 핀란드는 독립을 위해 꾸준히 싸웠다.
또한 핀란드인들은 러시아의 속국에서 벗어나기 독자적인 언어와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갔다.
아테네움 미술관은 핀란드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카를 구스타프 에스틀란데르(Carl Gustaf Estlander)가 기획하고,
건물은 헬싱키의 유명한 건축가 테오도르 회이에르(Theodor Höijer)가 설계를 담당해
1887년 개관하게 되었다. 개관 당시 건물을 헬싱키 미술학회와 시각 디자인학회가 나누어 운영하다가,
1990년 핀란드 국립미술관으로 합병되어 건물 전체를 아테네움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테네움 미술관은
당시 헬싱키 시가 최초로 수집한 재정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기증한 18점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18세기 로코코 미술부터 1960년 대 실험적인 미술까지
핀란드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을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다.
레민케이넨의 어머니
핀란드 민족문화의 정수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영향을 받았지만,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문화적 정체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고유의 미술양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띤 핀란드 화가들의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아테네움 미술관에서 핀란드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Akseli Gallen-Kallelan, 1865~1931)의
<레민케이넨의 어머니(Lemminkäinen's Mother)>다.
![]() |
레민케이넨의 어머니 1897년, 캔버스에 유채, 72×94 |
이 작품은 <칼레발라(Kalevala)>의 삽화로 제작되었다.
러시아의 핍박에서 굴하지 않고 핀란드 영광을 기리기 음악을 작곡한 시벨리우스(Sibelius)는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1802~1884)처럼 전래민요로 돌아가자는 카렐리아(Karelia)운동을 펼쳤고,
그 운동에 영향을 받은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는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를 편찬하면서 삽화를 담당했다.
<칼레발라>는 전승문학에 매료되었던 엘리아스 뢴로트가 핀란드 각지를 여행하면서
전승되어 온 전설 · 구비 · 가요를 수집해 1829년부터 1831년까지 서사시 <칸텔레(Kantele)>로 발표했다.
후에 <칸텔레>는 1835년 <칼레발라>로 출판했다가, 1849년 완성되어 핀란드 문학의 금자탑이 되었다.
<칼레발라>는 ‘칼레바의 나라’라는 뜻이지만 나라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으며,
음유시인 베이네뫼이넨(Väinemöinen),
대장장이 일마리넨(Ilmarinen), 연애하는 청년 레민케이넨(Lemminkäinen) 등 3명을 중심으로 한
연작 시편이다. 또한 <칼레발라>의 전신 <칸텔레>는 핀란드 고유의 현악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서사시에서 칸텔레를 창조한 인물이 베이네뫼이넨이다.
<칼레발라>의 내용은 일관되지 않지만
농부, 어부, 포수 등 고대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유럽의 고대 서사시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갈이 깔려 있는 해변에서 벌거벗은 남자가 누워 있고,
노파는 남자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흰색의 천과 바닥의 해골은 남자의 죽음을 암시하며,
노파는 어머니를 나타낸다. 바닥에 있는 촛대는 죽은 자의 영혼을 암시한다.
화면 위 검은색의 바다는 죽음을 상징하며 몇 가닥의 노란색은 죽음의 강을 건너는 영혼의 길을 의미한다.
죽은 자에 대한 비탄함을 보여주고 있는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의 이 작품은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아, 음산하면서도 장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는 핀란드 순수 미술에 앞장섰던 화가로서,
독일 표현주의 미술가 단체 브뤼겔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원시주의의 영향을 받아 대담한 윤곽선과 강렬한 색채를 강조한 단순한 양식으로
핀란드 고유의 문화를 표현했다.
서사시<Kalevala>의 내용 중에서 “Lemminkäinen”
<칼라벨라(Kalevala)>는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에서 탄생한 영웅 서사시이다.
베이네뫼이넨을 비롯한 용사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묻혀있었으나 <칼라벨라>는 19세기 중엽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운동이 고조된 시기에 재발견되어 이를 소재로 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유려한 음악과 더불어 핀란드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게르만의 신화와 달리 <칼레발라>는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이야기로서 그 그전에는 폭력에 대한 부정이 존재한다. 베이네모이넨 등의 영웅은 근본적으로 전쟁이 아닌 노래와 지혜의 힘을 빌려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전쟁(‘산포’를 둘러싼 싸움과 같이)은 승자에게도 희생을 강요하는 공허한 것이다.
전쟁에 의해 영광보다는 더 많은 비극이 초래된 이 시대에 <칼라발라>이야기가 재발견된 의의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Lemminkäinen Suite
시벨리우스의 4편의 교향시
<Kalevala>에 쓰인 레민케이넨(Lemminkäinen)의 모험 순서와 일치한다.
그러나 시벨리우스(Jean Sibelius)가 후에 2번째 곡과 3번째 곡의 순서를 바꾸었다.
1)레민케이넨(Lemminkäinen)과 소녀 - Kalevala 11장
2)투오넬라의 레민케이넨 - 13장
3)투오넬라의 백조 -12장
4)레민케이넨의 귀환 - 14-15장
Lemminkäinen 의 신화내용
Ahti 섬에 사는 Lempi 에게는 아들 Lemminkäinen 이 있었다. 그는 먼 곶(cape) 끝에서 헌신적인 어머니와 함께 높은 신분의 아들로 자랐는데 모든 면에서 능력이 뛰어나고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제멋대로인데다 방탕한 습성이 있었다.
한편 큐리키(kyllikki)는 상류층 처녀로 ‘섬의 꽃’으로 불릴 만큼 미모가 뛰어났다.(Saari 라는 섬에 살고 있다 했는데, Saari 는 핀란드어로 island 라는 뜻). 그녀는 태양신의 아들도, 달신의 아들도, 별신의 아들고 거들떠보지 않았고 Viroland, Ingerland에서 온 구혼자의 청혼도 모두 다 거절하였다. Lemminkäinen 은 ‘섬의 꽃’에게 구혼하기로 작정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지체 높은 Kyllikki 를 데려올 수 없을 것이고 그곳의 처녀들이 너를 조롱할 것이며, Kyllikki 를 데려오게 되면 모든 구혼자들이 전쟁을 일으켜 공격하게 될 것이라며 아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Lemminkäinen 은 자기 가문이 그다지 높지 않지만 자신의 잘생긴 외모로 다른 단점들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며 어머니의 만류를 흘려듣고 말을 타고 섬으로 떠났다.
어머니의 말대로 섬의 모든 처녀들은 Lemminkäinen 을 조롱하였다. 그는 낮에는 목동으로 일하고 밤마다 처녀들과 즐기면서 처녀들의 조롱을 잠재웠으나 단 한 명, ‘섬의 꽃’ Kyllikki 는 Lemminkäinen 처럼 무뢰하고 야비한 남자를 원하지 않으며 자신의 높은 지위와 자신의 미모에 걸맞은, Lemminkäinen 보다 훨씬 잘 생긴 청년을 원한다고 말했다.
반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저녁 넓은 목초지에서 Kyllikki 가 마을처녀들과 춤을 추고 있을 때 갑자기 말을 타고 있는 건장하고 무모한 Lemminkäinen 이 그녀를 낚아채었다. 그는 마을 처녀들에게 Kyllikki 를 납치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면서 어기게 되면 구혼자들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섬을 떠났다. 납치된 Kyllikki 는 풀어달라고 저항했으나 Lemminkäinen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는 왜 그토록 깊은 슬픔에 잠겨있습니까?
왜 한숨을 쉬고 애통해 합니까?
그 깊은 슬픔이 무엇 때문인지 말해주오.
근심걱정이랑 모두 날려버려요.
눈물을 닦고 고통을 잠재워요.
나는 소도 있고 양식도 있고 집도 있어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일가친척도 있어요.
평원과 고원에 암소도 있고
습지와 산에는 딸기가 지천으로 깔려있어요.
젖줄 필요가 없는 아주 잘 생겼지만 먹이를 줄 필요가 없는 암소도 있어요.
잘 돌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저녁에는 묶어놓을 필요가 없는
아침이 되면 풀어줄 필요가 없는, 사냥할 필요도 없고, 먹이를 줄 필요도 없는,
소금을 줄 필요도 없고, 물도 줄 필요도 없는 그런 암소가 있어요.
그대는 내가 천한 계급이라고 생각하나요?
신분이 낮은 집안 자손이라고 생각하나요?
내 신분이 염려스러운가요?
영웅이나 귀족처럼 지체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나는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열정의 칼, 용기백배한 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칼과 창은 영웅 집안에서 만들어져
전지전능한 Hiisi에 의해 제련되고 신에 의해 단련되었습니다.
이제 그 위대함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내 종족과 민족의 위대함을 열정적인 내 칼과 함께 용기백배한 내 창과 함께.
- SPO 2009년 2월호
Lemminkäinen 의 말에 Kyllikki 의 마음도 누그러져 그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시는 모험에 나서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이에 Lemminkäinen 도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kyllikki 에게 놀러 다니지 말 것을 맹세하게 한다.
부자인 것처럼 과시했던 Lemminkäinen 의 집은 막상 초라했으나 크게 새로 지을 것이라며 부푼 꿈을 내보였다. 그의 어머니도 kyllikki 를 반겼다.(11장)
얼마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Lemminkäinen 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자 kyllikki 는 맹세를 어기고 마을처녀들과 함께 춤을 추게 된다. 이 사실을 Lemminkäinen 에게 누이가 알리자 매우 화가 난 Lemminkäinen 은 Kyllikki 가 맹세를 어겼으나 자신은 모험을 하러 나가겠다며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어머니와 Kyllikki 는 난장이 대장장이의 용광로에서 큰 불길이 솟아 집을 삼켜버리는 꿈을 꾸었다며 만류하며 반대하지만 Lemminkäinen 은 더 이상 아내를 신뢰할 수 없다며 모험을 떠나버리겠다고 고집부린다. 이에 어머니가 집에 있는 맥주통에 맥주가 꽉 들어차있으니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고 말하지만 Lemminkäinen 은 집의 맥주보다 노로 떠먹는 강물이 더 달콤하다면서 북쪽나라(Lapland) 포욜라로 가서 금과 은을 가져오겠다고 한다. 어머니는 북쪽나라에 가면 거기 사람들이 마법으로 널 쓰러뜨리고 입에 숯덩이를 넣고 머리는 진흙 속에 처박고, 손은 불타는 돌 위 뜨거운 재에 묻어버릴 거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Lemminkäinen 은 옛날 어느 여름밤 북쪽나라 사람들 3명이 자기에게 주술을 건 적이 있는데 판판한 돌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을 눕히고 습지에 질식시켜 죽인다는 등, 디딤나무나 뚝길로 만들어버린다는 등, 진창에 파묻어버린다는 등 온갖 협박을 가했지만 자기가 주문을 외워서 그들을 Tuoni 소용돌이 폭포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어둡고 침침한 포욜라에는 너를 파멸시키는 일이 일어날 거라며 여전히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Kyllikki 는 찬성하게 된다.
Lemminkäinen 은 빗을 쪼개 난로 기둥에 걸어놓고 이 빗이 피로 물들면 자기가 죽은 것이라 생각하라면서 어머니의 반대를 뒤로 한 채 포욜라로 떠났다.
3일째가 되는 날, 그의 눈앞에 포욜라 땅이 나타났다. 가장 북쪽 안마당에 도착한 Lemminkäinen 은 주문을 외워 감시견이 짖지 못하게 하고, 채찍으로 땅을 쳐서 수증기가 일어 안개 속에서 말의 고삐를 풀었다.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보니 집안 구석구석마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집안 아무도 Lemminkäinen 을 눈치 채지 못했다.
Lemminkäinen 이 변장하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포욜라의 노파가 놀라서 “우리에게 매우 사나워서 항상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살코기를 먹고 싶어하는 맹견이 있는데 당신은 어느 종족 누구길래 감시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Lemminkäinen 은 “어머니가 나를 여름밤에 3번, 가을밤에 9번을 씻겼으며 12번 동안 나를 모든 길을 아는 이로, 마법의 대가로 날 준비시켰소”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가 최고의 마법사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마술을 부려 모든 용사들을 매혹시켰으나 단 한 사람, 소치는 악독한 늙은 노인을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이 분개하며 이유를 묻자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분노에 차서 복수심에 불타올라 밖으로 나가버렸다. 투오넬라의 어둠의 강의 소용돌이로 가서 Lemminkäinen 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곳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12장)
무모한 Lemminkäinen 은 포욜라의 노파 Louhi 에게 가장 키 크고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의 딸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노파는 너에겐 이미 부인 kyllikki 가 있으니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찮은 남자에게 딸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스키를 타고 저 멀리 악마의 나라에서 온 Hiisi 의 순록을 쓰러뜨리고 자기 딸을 요구하라고 한다.
Lemminkäinen 에게 창과 활은 있었지만 재빠르게 슬라이딩하는데 필요한 왼쪽 스키와 재빠르게 경사를 내려오는데 필요한 오른쪽 스키가 없어서 Lyyiikki 와 Kaupi 에게 악마의 순록을 잡을 수 있는 제트스키를 만들어달라고 청했다. Kaupi 는 그 순록을 잡아보았자 안이 텅빈 커다란 덩어리밖에 얻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Lemminkäinen 을 조롱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소식을 들은 악마들은 장난을 치기로 한다. 그들은 안이 텅 빈 그루터기로 순록머리를 만들고, 뿔은 갈라진 버드나무, 다리는 바닷가의 나뭇가지로, 정강이뼈는 습지에서 자란 어리나무로, 척추는 울타리로 만들었다. 힘줄은 시든 풀로, 눈은 노란 수건으로, 귀는 백합의 부엽으로, 살은 썩은 나무로, 피부는 가문비 나무껍질로 만들었다. 그리고 Hiisi는 순록에게 명령을 내린다.
“달려라, 악마의 순록이여.
북쪽 땅으로 달려라 고귀한 창조물이여.
Lemminkäinen 의 땀이 마를 정도로 달아 나거라.”
Lemminkäinen 은 Hiisi 의 순록을 계속해서 쫓기 시작했으나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 Lemminkäinen 은 순록을 쫓으려고 Kalma(죽음과 쇠퇴의 여신)의 황야인 Grave Spirit, 그리고 Raima의 땅 뒤쪽 파멸의 문 앞까지, 심지어 Lapland의 황무지 귀퉁이까지 다 돌아다녔다. Lemminkäinen 이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큰 소동이 벌어졌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져 개들은 짖고 아이들은 울고 북쪽나라 여인들은 웃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Lemminkäinen 은 악마의 순록이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다시 속력을 내어 드디어 악마의 순록을 따라잡았다. 단풍나무를 붙잡고 올가미로 순록을 말뚝에 잡아매어 순록의 등에 일격을 가하며 너의 가죽으로 침대보를 만들 것이다 말하자 순록이 화가 나 발길질을 해대며 너의 여인들 모두를 욕보이게 할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리고 묶인 줄을 끊고 울타리를 넘어 멀리 달아나버렸다.
어렵게 잡은 순록을 놓친 Lemminkäinen 은 너무 화가 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빠른 창으로 잡겠다며 복수를 다짐하였다.(13장)
Lemminkäinen 이 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Tapio의 집에서 황금색의 빛이 어스름하게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내려가 밝게 빛나는 6번째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누추한 옷을 입은 늙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사냥감의 제공자이며 사냥꾼의 곡식을 지키는 숲의 여인 Mielikki 였다. Lemminkäinen 은 자기가 숲속에 있었을 때 보았던 광경을 이야기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숲 속에 있었을 때 3개의 성을 보았는데 하나는 나무로 만든 것이요, 다른 것은 뼈, 나머지 하나는 돌로 지어졌지요. 성의 벽면에 있는 6개의 황금창에서 옅은 빛이 나오고 있으며, 벽 뒤에 서서 창문 안쪽을 바라보니 그곳엔 주인부부와 그들의 딸 Tellervo, Tapio 사람들이 있었고 금은보화가 가득했습니다. Mielikki 당신도 온갖 금은보화를 걸치고 있었으니 이제 초라한 옷일랑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드레스로 갈아입으십시오”라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악마의 순록을 잡으려고 돌아다녔으나 허탕만 쳤던 자신의 신세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사냥감을 잡도록 도와달라며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Tapio 집의 주인이여, 회색 턱수염을 가진 존경하는 숲의 황금왕이여.
숲의 여인인 Mimerkki, 사냥감의 제공자인 Matron, 푸른 하늘색 망토를 입은 덤불의 아내여.
붉은 스타킹을 신은 습지의 여인이여, 이리로 와서 금은보화를 교환하러 오시오.
내 금과 은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가져와 달빛의 나이만큼 오래되었고 햇빛만큼 오래되었소.”
그들은 악마의 순록을 추적했고 은신처에서 끌어내어 가수(Lemminkäinen)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몰았다.
Lemminkäinen 은 올가미로 순록의 어깨와 목을 감아 다리를 걷어차지 못하게 하고 사냥감을 잡게해 준 이들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나서 포욜라의 노파에게로 가서 딸을 자기의 신부감으로 달라고 한다. 그러나 노파는 한 가지 조건을 말하는데 그것은 Hiisi 의 말에 고삐를 매달고 오라는 것. 그는 황금고삐와 은으로 장식한 밧줄을 가지고 Hiisi 의 말을 잡으러 떠나 산 정상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황금색 갈기를 가진 Hiisi 의 말이 보였다. 눈썹에는 불꽃이 일고 털에는 불길이 솟고, 갈기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Ukko 신에게 기도하여 철로 된 우박과 꽁꽁 언 진눈깨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말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악마의 나라의 훌륭한 말이여. 황금의 주둥이를 벌리고 너의 은으로 된 머리를 이 황금고삐에 밀어 넣어라. 너를 절대 과하게 다루지 않고 심하게 몰고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까다로운 내 장모가 있는 저쪽 포욜라로 너를 데리고 가는 것뿐이다. 내가 너를 때리더라도 그건 명주실이거나 아주 부드러운 실일 것이다.”
결국 Lemminkäinen 은 Hiisi 의 말에 고삐를 채우는데 성공했다.
그는 포욜라의 노파에게 가서 이제 딸을 신부감으로 내놓으라고 하자 노파는 또 하나 더 조건을 단다. 어두운 죽음의 강 Tuonela 강(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강)의 백조를 단 한 발의 화살로 쏘아 죽이라는 것.
Lemminkäinen 은 활을 어깨에 메고 죽은 자들의 동굴을 지나 Tuoni 의 어두운 죽음의 강으로 갔다. 그곳은 신성한 소용돌이가 휘감아 도는 곳이었는데 이곳에는 늙은 소몰이꾼 ‘젖은 모자’ 포욜라의 애꾸눈 노인이 Tuoni 강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일전에 Lemminkäinen 에게 모욕을 받고 복수의 칼을 갈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물에 사는 용(물뱀)을 끌어올려 Lemminkäinen의 심장과 간에 독이빨을 박고 왼쪽 겨드랑이를 거쳐 오른쪽 어깨를 관통하도록 찔렀다. 일찍이 그런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던 Lemminkäin 은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며 죽어간다.
아! 쓸모없는 행실!
아! 어리석은 행동!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어머니의 충고를 듣지 않고
이런 무시무시한 불행 앞에서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투오넬라 강에서 물뱀에게 물렸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럴 때 필요한 주술을 어머니에게 배우지 않았구나!
나를 낳으신 어머니, 어린 시절 나를 기르신 어머니, 기도하오니
제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곳
오! 당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 곳.
비나이다. 어머니 바로 여기로 와주세요.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저를 이 고통에서 투오넬라의 이 죽음에서
이 마법의 강과 소용돌이 속에서 구해주소서! - SPO 2009년 3월호
복수에 성공한 늙은 ‘젖은 모자’는 검은 강의 깊은 소용돌이에 Lemminkäinen 의 시체를 던졌고 그의 시체는 죽은 자들의 거처,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잔혹한 Tuoni(죽음의 신)의 아들 ‘피투성이 빨간모자’는 Lemminkäinen 의 몸을 5조각으로 잘라 Tuonela 의 백조를 쏘려던 활과 함께 Tuoni 강에 버렸다. 그것이 모험을 좋아했던 Lemminkäinen 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죽음의 검은 강 깊은 암흑 속으로 죽은 이들의 동굴로 사라졌다.(14장)
한편, Lemminkäinen 의 어머니는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해 안절부절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그가 남기고 간 빗을 살펴보던 Lemminkäinen 의 예쁜 아내 kyllikki 는 어느 날 빗에서 피가 스며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슬픔에 젖어 애통해하며 곧 포욜라로 달려갔다. 포욜라의 노파 Louhi 에게 Lemminkäinen 의 일을 간청하며 물었다. 결국 Tuonela 의 백조를 잡으러 떠났는데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무, 길, 달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모른다며 이리저리 핑계만 댔다. 결국 해에게 물어보니 죽어 Tuonela 의 검은 강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녀는 슬피 울면서 난장이 대장장이 일마리넨(Ilmarinen)에게 가서 길이가 500길(약 915m)이나 되는 구리손잡이에 100길(약 183m)이 되는 철로 된 갈고리가 달린 갈퀴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Ilmarinen 이 만들어준 갈퀴를 가지고 Tuonela 강으로 가 태양에게 기도하여 Tuoni의 힘이 잠시동안 약화되게 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아들의 시신을 건져내기 위해 급류로 가서 갈퀴로 긁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상류의 역류가 흐르는 곳까지 가서 갈퀴로 깊숙이 저으니 겨우 셔츠와 모자, 스타킹만 건져낼 수 있었다. Lemminkäinen 의 어머니는 더 아래, 저승세계의 심해쪽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왼쪽발가락과 약지손가락을 건져냈지만 아직 다른 많은 부분들, 특히 그의 목숨 자체는 되돌릴 수 없었다.
Lemminkäinen 의 어머니가 아들을 다시 살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을 들은 갈까마귀는 죽었다가 다시 살린 사람은 없다며 Lemminkäinen 의 시체를 다시 Tuonela 강에 버리라고 불길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갈퀴질을 해서 손 한쪽과 갈비뼈 반쪽, 그리고 다른 여러 부분을 건져냈다. 갈갈이 찢긴 시체조각을 모아서 마법을 써서 실로 잘 꿰매 예전상태로 몸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Lemminkäinen 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꿀벌들에게 Lemminkäinen 을 고칠 수 있는 연고를 구해오라고 해서 깊은 숲 속에서 초원의 꽃에서도 벌꿀을 모아왔으나 Lemminkäinen 을 살리지는 못했다. 벌들은 3일 밤낮을 날아 더 멀리 9개의 바다를 건너 벌꿀이 가득 있는 가장 좋은 약이 있는 섬에서 연고를 가져왔으나 Lemminkäinen 은 깨어나지 않았다.
꿀벌들에게 한번 더 날아올라달라고 부탁하여 9번째 하늘(한때 위대한 창조주 Jumala 가 마법을 썼던 곳) 온갖 만병통치약이 금은 항아리에 담겨있는 저장고에 가서 악마에게 부상당한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꿀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한다. 벌들은 해와 달과 큰곰자리와 북두칠성을 지나 창조주 Jumala 의 저장고에서 꿀과 고약을 가져와 Lemminkäinen 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스레 바르고 깨어나라는 주문을 외우니 그제야 Lemminkäinen 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Lemminkäinen 은 ‘젖은 모자’가 물뱀을 불러내어 자신을 공격하도록 했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들이 북쪽나라 Lapland 의 마법사들보다 주문을 잘 외우지만 ‘용의 증오’를 알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시 살아난 Lemminkäinen 은 북쪽나라 늙은 Lpohi가 딸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나무라며 Jumala 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리지 못했다며 투오넬라(Tuonela)의 백조는 그냥 놔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15장)
이것이 Lemminkäinen 의 첫 번째 모험이야기이다.
이후 2번째 모험에서도 포욜라에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흐가 사랑한 마을을 담은 <오베르의 마을길>
아테네움 미술관은
핀란드 예술가들의 작품 외에 19세기부터 20세기의 해외 작가들의 일부 소장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오베르의 마을길(Rue à Auvers-sur-Oise)>이다.
|
오베르의 마을 길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3×92 |
반 고흐는 1890년 생레미(Saint-Remy)의 정신병원을 떠나
파리에 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났다. 파리에서 동생 가족들과 3일을 보낸 후
가셰 박사(Dr. Gachet)를 만나기 위해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에 도착한다.
반 고흐는 오베르에서 라부(Ravoux) 부부 집에 하숙하면서 가셰 박사 보호를 받게 된다.
오베르에서 반 고흐는 “이곳은 매우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은 요즘 점차 찾아보기가 어려운 초가집이 많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깊이 배어 있는 이곳을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오베르에 대한 인상을 밝혔다.
오베르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한 반 고흐는 그림이 될 만한 소재를 찾아 전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끊임없는 창작열에 시달려 오베르의 밀밭, 교회, 언덕 등을 담은 그림 수십 점을 그렸다.
화면 중앙 붉은색 초가지붕의 집 사이에 길은 초원을 향해 연결되어 있지만,
아랫길은 굽이쳐 흐르는 노란색의 꽃 때문에 사라지고 없어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다.
흰색을 드러내고 있는 하늘이 나지막한 초원을 덮고 있고, 하늘을 향해 나무들은 초록의 춤을 추고 있다.
하늘 중간 군데군데 드러나고 있는 캔버스는 반 고흐가 의도적으로 신속하게 작업했음을 나타낸다.
그는 오베르에서 종종 지칠 때까지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은 그의 삶의 목적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 작품은 말년 작으로 오베르에서 풍경화는 강렬한 색채 사용해
사물을 표현하기보다는 회화의 기본 선, 구성, 색으로 자연주의를 표현했다.
오베르에서 반 고흐는 권총 자살한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명화산책]
- 2009.10.28 ⓒ ScienceTimes
'느끼며(시,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데미술관 - 랭부르 '베리공작의 풍요로운 시절'/ 라파엘로의 '삼미신' (0) | 2009.11.11 |
---|---|
아이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 - 가난한 시인/ 뮌헨의 비어가든 (0) | 2009.11.11 |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 페르세포네의 납치/ 레다와 백조 (0) | 2009.11.11 |
19세기 중엽 새로운 화풍의 메카였던 벽오사(碧梧社) (0) | 2009.11.04 |
<겸재화첩>과 선지훈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0) | 2009.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