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은 보르게세 가문의 빌라를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르게세 가문은 교황 파울루스 5세 등 고위 공직자를 배출한 명문가다. 파울루스 5세의 조카이자 추기경이었던 스치피오네 보르게세(1576∼1633)가 1615년 건축가 플라노미 폰초와 조반니 바산치오에게 빌라를 짓게 했다. 당시 로마의 부유한 가문이면 아주 넓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유행이었다. 가로수 길과 농원, 정자, 조각상, 분수 그리고 가운데 섬이 있는 인공호수까지 만들었다. 스치피오네 추기경이 죽은 지 100년이 지난 후 빌라를 물려받은 마르칸토니오 보르게세 4세는 빌라를 복원하면서 수집품들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여동생 파올라 보나파르트가 보르게세 가문과 결혼함으로서 가문의 소장품들을 강탈당한다. 파산으로 경매에 넘어간 보르게세 가문의 소장품들을 1901년 이탈리아 정부가 사들여 미술관으로 공개했다.
저승 神 하데스의 극적인 납치행각
고대 조각상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고 있는 조각이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다. 이 조각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인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들판에서 납치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했다. 그녀를 보고 반한 저승의 신 하데스가 납치해 아내로 삼았다. 데메테르는 딸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를 한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온 세상에 있는 대지에 가뭄과 기근을 일으켰다. 페르세포네는 저승에서 석류 하나를 먹었기 때문에 저승사람이 되어서 돌아 올 수가 없었다. 저승에서 뭔가를 먹은 사람은 누구든 지상으로 돌아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저승에서 하데스의 아내로 살도록 중재를 했다. 페르세포네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그의 얼굴을 밀고 있다. 페르세포네의 발아래에 있는 개는 저승의 개로서 하데스의 곁을 지키고 있다. 또한 발밑에 있는 두 갈래로 갈라진 창도 하데스를 상징한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Bernini, Giovanni Lorenzo, 1598~1680)는 바로크 시대의 조각가로서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조각상을 많이 남겼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격한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커다란 제스처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보르세게 미술관에서 식물도감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하게 식물을 묘사한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다. 이 작품은 1513∼1516년에 제작되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레다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이 주제로 많은 스케치와 그림으로 남겼지만 이 작품의 원작 소재는 알 수 없다. 제우스와 레다와의 연애 사건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발했고 또 로마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에우로타스 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중에 제우스에 눈에 띄게 된다. 레다의 아름다움에 빠져 버린 제우스는 그녀에게 접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제우스와 사랑을 나눈 레다는 알을 두 개 낳게 된다. 첫 번째 알에서 제우스의 아들인 카스토로와 폴리테우케스가 태어나고 두 번째 알에서 클리타임네스트와 헬레네가 태어난다. 제우스의 아들들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쌍둥이좌가 되고 클리타임네스트는 아가멤논과 결혼을 하고 헬레네는 틴다레오스의 뒤를 이어 스파르타의 왕위에 오르는 메넬라오스의 부인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택했다. 레다는 백조를 안고 있으면서 시선은 쌍둥이 아들에게 보내고 있다. 쌍둥이 아들들은 꽃을 든 채 레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그녀의 포즈와 부드럽고 포동포동한 피부는 그리스 고대 조각 중에 비너스를 연상시키고 있다. 또한 레오나드도 다빈치는 정면을 향해 벗은 레다를 통해 에로티즘을 강조하고 있다. 레다의 포즈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고 있는 식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큰고랭이 속의 이 식물은 꽉 찬 씨 주머니를 터뜨려 씨를 멀리까지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식물을 통해 개체를 번식하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자연의 섭리를 상징했다. 하지만 그는 식물이 의미하고 있는 성적인 의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 작품에서 레다의 독특한 머리 형태로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밀라노 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되고 있다. |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명화산책]
- 2009.10.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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