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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새로운 화풍의 메카였던 벽오사(碧梧社)

Gijuzzang Dream 2009. 11. 4. 05:33

 

 

 

 

 

 19세기 중엽 새로운 화풍의 메카였던 벽오사(碧梧社)

 

매화서옥도를 중심으로

  

 


한국 화단에서는 19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그림들,

화면의 조형성이 극대화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이는 동시대 문인화에서 사의성이 강조되며 절제미가 추구되던 경향과는 매우 다른

이질적인 것이었다.

조형언어의 이러한 변화는 화가의 내면인식이나 미감과 직결되기 때문에, 새로운 화풍의

등장은 근대를 향한 중인들의 자생적 움직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관, 의관, 화원, 경아전 등 전문 기술직 중인들은

한문학 지식이나 재력이 사대부와 거의 대등하게 되자,

몇몇 중인들이 모여 시나 문장을 짓는 시사(詩社)를 조직하였다.

 

1786년 결성된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는

체계적 운영과 많은 동인들의 참여로 문예 활동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1818년까지 모임이 오래 지속되며

인간으로서의 자아개념이나 주체성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여항문인 조수삼(趙秀三)이 평민과 천민들 가운데 독특한 캐릭터를 다룬

추재기이(秋齋紀異)』는 그러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 뒤를 이어 일섭원시사(日涉園詩社),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 벽오사(碧梧社),

비연시사(裴然詩社), 직하시사(稷下詩社), 육교시사(六橋詩社) 등이 결성되었다.

 

이 가운데 1847년 유최진(柳最鎭)을 맹주로 한 벽오사 동인들은

참신한 근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을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 그러하며, 그는 다른 시사 동인들뿐만 아니라

스승 김정희를 비롯한 사대부와 교유하며 수많은 서적과 서화골동을 가까이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다양한 문예 활동과 예술인식을 기록한 여러 개인 문집에서 확인된다.

특히 1844년 저술한 『호산외기(壺山外記)』는 중인의 관점에서 중인들의 삶을 조명한

최초의 전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조희룡은 학식과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문화인으로

자아개념이나 정체성도 분명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듯 조희룡의 <매화서옥도>에는

그의 완숙한 예술 경지와 조형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그림 1).

당시 남종화풍의 사의적 문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는

돌연변이 내지는 이단아나 다름없었다. 비록 매화서옥이라는 주제는

청나라 문사 오숭량(吳崇梁)의 각별한 매화 사랑과 연계되며 유행하였으나,

화면에 드러난 독특한 조형성만은 그의 완숙한 예술인식의 발로(發露)임에 틀림없다.



 

   

화면 하단에는 매화나무가 창으로 사색에 잠긴 문사가 보이는 초옥을 둘러싸고 있으며,

상단에는 눈 덮인 주산이 그려져 있다.

경물 구성은 서옥도(書屋圖)의 일종이지만,

하단의 매화나무와 주산 정상부에 보이는 격정적 필법은 화면에 한껏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또한 백분을 사용해 눈이 오는 것처럼 표현한 하얀 점들은

매화가 만발해 그 향기가 눈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향설해(香雪海)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점묘법을 연상시키며 작가의 독특한 조형의지가 반영된

하얀 점과 먹 사이로 은근히 드러나는 선염의 초록색은 화면의 장식성을 높여준다.

   

벽오사 동인이었던 전기(田琦 1825-1854)의 작품도 주목된다(그림 2).

그는 자신의 약포인 '이초당(二草堂)'에서 벽오사 동인들과 서화를 창작 감평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 매매를 주선하며 오경석, 김석준, 김수철 등과도 각별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는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하였고,

김정희도 안타까워 할 정도로 서화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특히 그가 1849년에 그린 <계산포무도(溪山抱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사대부가 추구했던 문인화의 요체를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에서

김정희 회화관에 가장 근접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오경석을 위해서 그린 <매화서옥도>는 오른쪽 하단의 발문만 없다면

누구의 작품인지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근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붉은색 지붕의 서옥이 매화에 둘러싸여 있고,

왼쪽에는 거문고로 생각되는 악기를 든 문사가 서옥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다리 위를 건너고

있다. 간략한 경물 묘사나 먹, 흰색, 붉은색, 초록색의 적절한 조화는 보는 이의 시선을

즐겁게 한다. 더불어 눈송이처럼 표현된 점묘법의 매화꽃에 의해 장식적 효과가 배가될 뿐만

아니라 환상적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조희룡의 작품과 비교해 주제나 구성은 유사하지만,

만발한 매화꽃을 대할 때의 감흥을 표현한 듯한 참신한 색채감각은 전무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독특한 개성적 표현은 조희룡이

‘매화서옥 그림은 반드시 전기에게 보여 고증을 받아야만 묘(妙)하게 된다’라고 했던

문맥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벽오사 동인은 아니지만

전기와 가까웠던 김수철(金秀哲)의 <계산적적도(溪山寂寂圖)>가 있다(그림 3).

그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지만 산수나 화훼를 그릴 때 대상의 요점만을 간략한 필선과 채색

선염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이색화파(異色畵派)로 분류되고 있다.

김수철은 1849년 6월과 7월에 걸쳐 벽오사의 유숙, 전기, 유재소 등과 함께

김정희에게 세 차례나 그림 감평을 받았던 것에서 그들과의 교유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 매매를 중개했던 전기와는 각별한 사이였으며,

조형적 유사성을 보이는 김수철의 <계산적적도>는 그러한 정황을 뒷받침해준다.

 

이 작품은 전기의 <매화서옥도>를 세로로 긴 화면에 경물의 좌우만을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그림 4, 5).

화면 왼쪽에는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에서 붉은 옷의 문사가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쪽 하단에는 지팡이를 든 푸른 옷의 문사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만개한 매화 표현에서

전기는 백분으로 장식적 효과를 극대화한 반면,

김수철은 나뭇가지 주변에 담채의 선염과 몇몇 먹점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김수철의 작품은 조형구성이나 표현법에서 ‘매화서옥도’라 명명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이들은 서화골동을 가까이 하며 감상, 평가, 창작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작품 속 서재의 주인공은 작가이며,

자신만의 이상세계에 몰입했던 최고의 순간을 시각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점의 산수화는

19세기 중엽 유행했던 사의적 문인화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조형언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주목되고 있다.

 

공통점은 첫 번째, 필묵에서 당대 문인화는 절제미를 추구했던 것과 달리

순간의 즉흥적 감성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상의 간결한 표현에서 비롯된 평면적 효과와

붉은색이나 파란색 등을 포인트로 활용해 장식성을 강조한 것이다.

세 번째, 백색 호분과 먹을 사용해 만개한 매화를 낭만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끝으로 작가들이 모두 벽오사와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여항문인화가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세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독특한 조형언어는

19세기 중엽 벽오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인들의 자아개념이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창작과정에 반영되며 나타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당대의 사의적 문인화에 근간을 둔 것은 틀림없지만,

작가들의 개성적 예술인식이 마침내 독특한 조형기법으로 시각화되며

새로운 화풍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참신한 근대적 화풍이 대표적 시대 경향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단절된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는 중인들이 사대부 문화를 근간으로 문화인의 지위에 도달한 순간,

사대부 문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의지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김지선, 「又峰 趙熙龍의 梅花圖」,『미술사연구』 21, 2007.

성혜영, 「19세기의 중인문화와 고람 전기의 작품세계」,『미술사연구』 14, 2000.

손정희, 「19세기 벽오사 동인들의 회화세계」,『미술사연구』 17, 2003.

홍선표, 「朝鮮 末期 閭巷文人들의 繪畵活動과 創作性向」,『朝鮮時代繪畵史論』, 문예출판사, 1999.

홍성윤, 「又峰 趙熙龍의 繪畵觀」,『미술사연구』 21, 2007.

 

- 최경현,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9-11-02

 

 

  

더보기


조희룡이 만든 중인 문학동인 ‘벽오사’  : http://blog.daum.net/gijuzzang/2869004


겸재 정선의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 : http://blog.daum.net/gijuzzang/8515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