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
19세기 독일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다
독인 뮌헨의 위치하고 있는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미술관은
바이에른 공화국 왕 루트비히 1세가 세 번째로 세운 미술관이다.
또한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미술관과 마주보고 있어,
독일 회화 및 유럽의 미술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근대 미술관이다.
루트비히 1세는 글립코테크 미술관에는 고미술을,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은 18세기 이전의 유럽의 걸작 미술품들을,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은 독일 근대 회화를 전시하기 위해 세웠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을 세우게 된 출발점은
루트비히 1세가 레오 폰 클렌체(Leo von Klenze)에게서 기증받은 100여 점의 독일 근대 회화 컬렉션이다.
그 후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은 꾸준하게 수집품들을 늘려 나가고
독일뿐만 아니라 해외의 작품들도 소장하면서,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에 소장품의 뒤지지 않는 미술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독일의 풍속을 묘사한 슈피츠베크의 <가난한 시인>
노이에 피나코테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독일 근대 작품 중에는
독일의 풍속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독일인의 생활을 그림으로 풍자한 작품이
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 1808~1885)의 <가난한 시인(The Penniless Poet)>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인의 삶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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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인, 1839년, 캔버스에 유채, 36×44 |
창문에서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고 있고, 좁은 다락방에서 머리에 나이트캡을 쓴 시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
그 위로 우산이 걸려 있다. 시인 옆에는 몇 권의 책이 놓여 있고,
발 아래에는 커다란 난로가 좁은 다락방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난로 위에는 세수 대야가 놓여 있고 벽에는 외출용 코트가 걸려 있다.
코 끝에 안경을 걸친 시인은 글을 쓰기 위해 왼손에는 종이를 들고 있고,
입술 사이에는 깃털 펜에 물고 있다.
춥고 좁고 어수선한 방에서 시적 영감을 찾고 있던 시인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이를 눌러 죽이고 있다.
천장에 붙어 있는 우산은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연통에 모자가 걸려 있는 난로는 온기가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침대라고 하지만 바닥에 한 장 깔려 있는 매트리스는 그의 빈곤한 삶을 나타내며,
두꺼운 옷을 껴입은 시인의 차림새는 겨울이지만 땔감을 살 수 없을 정도의 가난한 살림을 암시한다.
슈피츠베크의 이 작품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인생을 풍자하고 있는 것은 난로 옆의 원고지 뭉치다.
소재의 희극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그는 불쏘시개용으로 원고치 뭉치를 그려 넣음으로서
예술적 재능이 없는 시인을 코믹하게 풍자하고 있다.
슈피츠베크는 약제상 출신으로 독일 대가들의 작품들을 모방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약제상을 그만두고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렸다.
독일 비더마이어 시대에 화가로 활동하던 슈피츠베크는
19세기 독일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패배한 후 단순한 일상생활을 묘사한 작품들이 높이 평가를 받았던
비더마이어(Biedermeier) 시대였다.
독일 비더마이어 시대에 화가들은 편안함, 안정, 가정생활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슈피츠베크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풍자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호가스(William Hogarth)와 도미에(Honore Daumier)의 영향을 받아,
중산층의 일상을 표현하면서도 희극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 독일의 풍자화가로 불려졌다.
그의 작품은 독일의 장르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슈피츠베크의 작품 대부분을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붕 밑 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시인은 입에 깃털 펜을 물고
오른손으로는 벼룩을 잡으면서 시상에 몰두한다.
창밖으로 옆집 지붕에 소복하게 쌓인 눈이 보인다.
추운 겨울날 온기를 다스릴 땔감도 없이 냉방에 칩거하는 늙은 시인은
조금도 고독하거나 쓸쓸한 느낌이 없다.
머리에 쓴 털모자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잠자리에 들 때 머리에 쓰는 털모자는
19세기 캐리커처 화가들이 즐겨 그렸는데 자유와 해방을 상징한다.
19세기 초 북유럽의 정치판은 한 마디로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잠자리 털모자는 독일 비더마이어(Bieder Meier)시대 소시민의 '밤잠이라도 두 발 뻗고 자게
해 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이자 미쳐서 돌아가는 정치판에 대한 소리없는 저항의 표식이었다.
가난한 시인이 빈곤한 삶 속에서도 자유로운 시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 노성두 미술사학자의 글 中에서
슈피츠베크는 신고전주의(신화적인 주제가 많고, 엄격한 아카데미방식을 따른다)와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에 나타난 비더마이어 양식의 선두주자이다.
비더마이어(Bieder Meier) 양식은
독일연방의 성립, 3월혁명과 메테르니히 체제하의 7월혁명 등의 복잡한 시기를 거치면서
정치적 반동에 대한 환멸과 소시민적인 자족감이 뒷받침된 비정치적 풍조가
당시 독일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실용적인 면을 추구하는데
귀족, 성직자, 왕족보다는 급부상하고 있는 중간계급과 서민의 모습을
간결하면서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망사르드’라 불리는 지붕의 바로 아랫방이기 때문에 방의 천장은 비스듬한데,
대개 그런 방은 넓지도 안락하지도 않은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으로는 출입문, 그 맞은편에는 커다란 난로, 그 안쪽에는 자그마한 창문이 보인다.
세면도구라고 해봐야 작은 대야뿐이다.
빨랫줄에는 수건 한 장만 걸려 있고, 외투는 벽에 못을 박아 걸어두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옷을 껴입고 있는데 창을 통해 보이는 눈 덮인 지붕들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남자는 나이트 캡까지 쓰고 있다.
오늘날 이 나이트 캡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유용하게 사용했다.
밖은 환한 대낮이지만 이 남자는 침대에 아직 누워 있다. 방안에서는 의자를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남자 위에 있는 우산은 펼쳐져 있는데 그가 끈을 달아 거기에 걸어둔 것으로
비가 오면 천장으로 비가 새기 때문이다.
이 모습에서 그에겐 비가 새는 천장을 고칠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산은 찢어져 있다)
이 남자는 제목을 통해 시인임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손가락을 꼽으며 머릿 속으로 시구의 음절을 세고 있는 듯 시를 구상하고 있다.
(또 다른 해석은 그가 벼룩을 잡기 위해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고 한다)
바닥에는 책들이 쌓여 있고 장화는 한 짝이며, 다른 한 짝은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그가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시를 쓰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물이 새는 천장, 꺼진 난로 등은
물질적인 기호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배경에 지나지 않고 이상화된 가난의 모습으로
시인의 절망이 아니라 가벼운 불편함 정도로 표현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대의 그림의 사명은
종교적, 도덕적 개념을 가르치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있었으나
16, 17세기의 화가들은 무질서한 일상생활에서 관찰한 몇몇 주제들을 매우 유머스럽게 그렸다.
이 그림은 19세기에 와서야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상적인 풍경과 완벽한 이상주의를 잘 결합시킨 데에 있다.
- <내 아이와 함께 읽는 명화이야기>
:저자 프랑수아즈 바르브 갈 지음, 이상해 옮김, 예담출판사 2005
<뮌헨의 비어가든>
뮌헨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리베르만의 그림
독일하면 맥주를 꼽을 수 있는데 맥주를 즐기는 독일인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
막스 리베르만(Max Liebermann, 1847~1933)의 <뮌헨의 비어가든(Munich Beer Garden)>이다.
이 작품은 독일 뮌헨의 양조장 정원에서 맥주 파티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뮌헨은 맥주 축제 옥토버 페스트가 개최될 정도로 맥주로 유명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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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비어가든 1884년, 목판에 유채, 94×68 |
녹음이 짙은 여름날, 울창한 나무 사이에 중절모를 쓴 남자와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 간호사, 군인들은
더위를 피해 나와 나무 그늘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큰 나무 그늘 아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는 물을 먹이고 있다.
화면 오른쪽 양산을 쓴 여자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것에 관심이 없는지
바닥에 떨어진 인형을 줍는 여자 아이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그들의 탁자에 놓여 있는 한 잔의 맥주는 가난한 형편을 나타낸다.
삽과 물통을 든 외출복을 입은 금발의 여자 아이는 언니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서 있다.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야외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나타낸다.
화면 중앙 멀리 오케스트라 지위자가 연주를 하고 있고
악단들은 연주에 여념이 없지만 공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오케스트라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중절모의 남자는 부르주아, 모자를 쓰지 않은 남자는 노동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맥주를 마시는 계층이 다양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맥주를 마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보이지 않는다.
리베르만은 독일 부유한 유태인 출신으로 파리에 유학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독일 인상주의를 선도했던 그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리베르만의 예술에 전환점이 된 이 작품은
뮌헨에 있는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Keller)’라는 맥주 집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리베르만은 이 작품 이후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삼았던 어두운 그림을 그만두고
밝고 경쾌한 색상으로 평범한 독일 사람들의 일상을 담기 시작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명화산책]
- 2009.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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