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문화를 살리는 손길, 과학기술,
문화유산을 과학의 손길로 보존 · 복원한다
2008년 2월, 화마와 싸우며 견디다 끝내 숭례문의 현판과 누각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보았던 국민이라면 그날의 탄식과 안타까움을 아직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숭례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민족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화재 당시 일부가 훼손됐던 현판은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에 있는 탁본자료와 일제 강점기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등과 비교하며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약 1년간에 걸쳐 복원되었다.
이것이 ‘문화재 보존과학’이다. 즉 문화재 보존과학은 “손상된 문화재를 전통기술과 현대의 발달된 과학 지식과 기술을 응용하여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켜 후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물적, 정신적 가치를 높이고 또한 그 재질을 밝혀 변화나 변질 또는 노화나 붕괴 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나 기술”을 말한다. 첨단과학과 함께 섬세한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인내와 끈기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재 보존 · 복원의 대원칙으로는 아무리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경천사 10층석탑, 삼전도비 등은 이러한 원칙과 신념으로 복원작업에 참여했던 문화유산들이다. 필자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문화재가 어떻게 세심한 고증과 과학적인 기술을 통해 복원되어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들과 함께 숨쉬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외부에 노출된 석조문화재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환경적 요인에 다른 훼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되었던 반달리즘(Vandalism)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기도 한다. 이러한 석조문화재의 오염물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레이저를 이용한 방법, 샌드 블라스터(Sand blaster)를 이용하는 방법 등의 물리적인 제거 방법과 다양한 습포물질과 화학적 작용물질을 혼합한 습포방법 등이 있다. 정교한 조각양식, 목조건축의 정밀한 표현 등 미술사, 건축, 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수작인 만큼 수난의 역사 또한 깊어서 1900년대 초반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우리나라로 반환되는 과정에서 풍화와 환경오염 등 갖은 수난을 겪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에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수리복원한 시멘트 모르타르(cement mortar) 부분이 풍화되면서 탈락이 발생하였다. 시멘트 모르타르가 탈락되면서 원 부재와 동반 탈락되는 경우가 빈번하여 원 부재가 점차 훼손되어 갔다. 특히 산성비,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오염물 증가, 비둘기와 같은 조류 배설물로 인한 부재 표면 산화 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또한 부재 표면의 균열 부분으로 물이 스며들면서 동결융해작용에 의한 구조 불균형이 발생하고 미생물 서식, 잡초 번식 등으로 인해 보존대책이 필요한 상태였다. 해체 및 보존처리는 석탑 해체, 예비조사 및 분석, 정밀 보존처리, 가조립, 최종 보정, 박물관 조립 복원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보존처리가 진행되면서 1960년 복원 당시 내부에 채워졌던 시멘트는 제거되었고 석재 표면에 다수 발생한 흑색 오염층을 제거하기 위해 레이저를 이용한 오염물 제거 방법이 적용되었다. 이는 일본 동경문화재연구소와의 공동연구 결과에 따른 것으로 실험을 거쳐 경천사 10층석탑에 처음 적용하게 되었다. 가능하고 비접촉식이어서 원 부재의 표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염물질도 배출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세정공정이라는 것이다. 오염층의 생성시기가 오래되지 않았거나, 부재의 위치나 주변 환경에 따라 오염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파티나(Patina, 일반적으로 청동녹을 지칭하나 여기서는 대리석 표면에 생성된 퇴화층을 의미함)층이 형성된 오염 부분도 있었다. 오염층의 종류에 따른 반사도의 차이(흑색 오염층 0.1, 파티나층 0.7, 원석층 0.8)를 이용해 원석의 손상 없이 선택적으로 표면 오염층을 증발시켜 제거하였다.
석조문화재의 인위적인 훼손 사례 중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도료에 의한 낙서이다. 이러한 낙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염물을 제거하는데 적합한 용매를 찾아서 석조문화재 표면에 직접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처리 전에 현장에서 용해테스트를 거쳐 선택된 용매에 대한 석조문화재 표면의 영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다각도의 실험연구 결과 비석의 몸체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표면의 도료만 녹여 없앨 수 있는 습포제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짓고 이 방법을 적용하여 보존처리하였다. 도포하여 건조시킨 다음, 건조된 습포제를 제거하고 스팀세척기로 10회 세척처리를 실시하였다. 접착식 습포제 작업 후 남은 페인트는 수용성 습포제(라포나이트 RD+증류수+비이온성 계면활성제)를 반복하여 도포함으로써 페인트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른 처리법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손상된 석조문화재에 대한 보존처리 시에는 각 석조문화재의 원 부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오염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문화재에 직접 처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전에 면밀한 검토와 조사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석조문화재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문화재는 한번 손상되면 다시 원형으로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이다. 문화재가 손상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 · 관리하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무리 관리를 잘 한다 하더라도 환경오염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조금씩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손상된 문화재를 원형으로 보존하고 복원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이다. 하고, 과거에 사용했던 보존 · 복원의 재료도 특성이나 문제점을 개선해 좀 더 안정적이고 적합한 재료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의 조건에서는 가장 적합한 최상의 재료인 것처럼 보여도 50년 또는 100여 년 뒤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재료가 개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실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토개발에 따른 대규모 발굴사업 등을 통해 문화재 보존과학 분야도 많은 발전이 있었고 예전에 비해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보존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많이 부족한 듯하다. 문화재를 원래 상태로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보존과학 분야는 연구 분야나 내용도 다양하고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도 많다. 게다가 지금까지 주로 이루어졌던 손상 문화재의 보존복원 외에도 기존의 문화재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예방하기 위한 예방보존 연구도 필요하다.
- 이규식,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실장 - 2009년 10월 28일 ⓒ ScienceTimes
|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형관측기구 '소간의' 복원 (0) | 2009.11.12 |
---|---|
소설가 조정래 (0) | 2009.11.11 |
무자위=수차(水車)가 조선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까닭 (0) | 2009.11.11 |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 중요민속자료 지정 (0) | 2009.11.04 |
일본의 천연기념물 지정기준 및 보존 활용 체계 (0) | 2009.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