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77. 돌무더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Gijuzzang Dream 2009. 10. 16. 14:08

 

 

 

 

 

 

 

 

 

[간도오딧세이] 돌무더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대동여지도에서 백두산 인근 지역의 부분.

 

 

홍양호의 <백두산고>에는
정계비 인근에 있는 돌무더기(석퇴)에 대한 생생한 표현들이 나타나 있다.

산에 마른 도랑이 있는데 도랑 남쪽 언덕에 돌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혹 10무(1무는 반걸음)에 한 무지가 있거나 혹은 20무에 한 무지씩 있다.
이것이 국경을 정할 때 표식으로 쌓은 돌이라고 한다.
도랑을 따라 서쪽으로 수십무 가고 평지를 따라 꺾어들어
북쪽으로 50~60무 올라가면 도랑이 끝나면서 비석이 있다. (중략)

비석에서 뒤로 돌아 수십무 가면 동서에 또 각기 마른 도랑이 있는데
서쪽은 도탄이라 하여 압록강에 들어가고 동쪽은 토문이라 하여 두만강과 더불어 선성에서 모인다.
목극등이 돌아간 후 문서를 띄우기를
“비석을 세운 다음 토문의 원류를 따라 살피건대 수십리를 가도록 물흔적이 보이지 않고
돌을 따라 더듬어 가서 백리쯤 되여 드디여 큰 강이 드러난다.
여기는 물이 없는 곳이니 어찌 남들이 변방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우리나라가 토문 원류가 끊긴 곳에 흙을 쌓거나 돌을 모아 놓고 목책을 세워서 하류 경계에 정해 놓았다”
등등 하였다.
비석을 세운 곳에서 동쪽으로 30리 떨어져 목책과 흙 둔덕을 설치했다.

홍양호는 1724년에 태어나 1802년에 세상을 떠났다.
1712년 백두산 정계비가 세워진 뒤 얼마 안 된 시기에 그는 백두산을 찾았다.
그는 1777년 함경도 경흥 부사로 좌천됐으며, 이때 북쪽 변방을 답사했다.
 
그의 기록을 보면 돌무더기는 5~10m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정계비에서 돌무더기를 따라 토문강 하류쪽으로 내려가지만
홍양호는 거꾸로 돌무더기에서 정계비쪽을 올라갔다.


목극등 지정한 것보다 남쪽에 있는 물줄기 선택

돌무더기는 <백두산고>에 나타난 것처럼 청나라의 관리인 목극등의 요청으로 쌓았다.
정계비를 세운 목극등은 마른 도랑의 경계가 끝내 못미더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도랑은 두만강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토문강은 북쪽으로 계속 흘러 송화강으로 합류했다.
홍양호 역시 토문강이 두만강으로 합류하는 것으로 알아
<백두산고>에서 두만강으로 흘러간다고 밝혀 놓았다.
17세기 후반의 지리적 정보로는 토문강이 어디로 흘러 나가는지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712년 당시 돌무더기를 쌓을 때 조정에 올린 보고를 보면
토문강이 송화강으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초 목극등이 지정한 곳의 물줄기가 송화강에 합류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관리들은 고민했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백두산 정계비까기 올라갔는데 빈손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목극등이 지정한 곳에 돌무더기를 쌓을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차선이었다.
목극등이 지정한 물줄기보다 남쪽에 있는 물줄기를 택해 그 주위에 돌무더기를 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물줄기 역시 송화강으로 흘렀다.

‘정계비-돌무더기-두만강’이라고 오류를 범한 대표적인 것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정계비에서 석퇴(돌무더기)와 목책이 분계강 상류로 이어져
결국에는 두만강에 합류하고 있다.
이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은 20세기 초반의 근대 지도에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근대지도에서 돌무더기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계비 인근에 위치한 물줄기는 모두 송화강으로 향했다.

-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2009 11/10   위클리경향 8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