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벨기에 왕립미술관- 브뤼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크노프 '스핑크스'

Gijuzzang Dream 2009. 9. 23. 14:05

 

 

 

 

 

 

 

 

 벨기에 왕립미술관(Royal Museums of Fine Arts)작품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왕립미술관(Royal Museums of Fine Arts)은

벨기에에서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미술관이다.

유럽의 미술관 역사와 같이 황제에 소장품으로 시작되었지만

미술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나폴레옹에 의해서다.

1794년 나폴레옹 군은 벨기에의 종교 시설에 있는 중요 유물들을 약탈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나폴레옹 영토 확장과 더불어 늘어난 작품들을 루브르가 보관할 수 없게 되자,

1801년 나폴레옹은 브뤼셀을 포함한 15개국에 미술관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브뤼셀은 나폴레옹이 약탈해 간 작품 중 50여 점을 돌려받으면서

루브르 박물관 분관 형식으로 새로운 미술관을 설립한다.

그 이후 황제 소유의 소장품들은 네덜란드 왕 빌헬름 1세의 후원 덕분에 아래

벨기에 시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꾸준히 근현대 미술품들을 수집해

1887년 벨기에 왕립미술관으로 개관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은

왕립 고전 미술관(Museum of Ancient Art)과

지하에 있는 왕립 근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전 미술관에는 15∼19세기에 걸쳐 유럽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플랑드르 화파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플랑드르(Flandre)는 오늘날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일부에 걸쳐 있는 지방으로서,

15세기 무렵부터 교통요지로서 무역이 번창했으며

경제적 풍요로 인해 예술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계층이 등장했다.

 

 

 

 

 

 


시골마을 생활 완벽 모사한

 브뤼겔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Census at Bethlehem)>

 

평범한 화면 속의 요셉과 마리아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The Numbering at Bethlehem>

1566년, 목판에 유채Oil on panel, 115×164 

 Royal Museum of Fine Arts, Antwerp, Belgium 


 

왕립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플랑드르 화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피테르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경∼1569)이다.

 

16세기 북유럽의 대표적인 화가인 브뤼겔은 성서나 고전에서 주제를 취하면서도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혹독한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베들레헴의 인구조사(Census at Bethlehem)>다.

이 작품은 성서에서 주제를 빌려왔지만 시골마을 생활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겨울 붉은 해가 지평선에 걸려 있는 플랑드르 마을 중앙에

예수를 잉태하고 있는 마리아가 나귀에 앉아 있고, 나귀 옆에는 황소 한 마리가 보인다.

마리아가 타고 있는 나귀를 끌고 있는 요셉 앞에 인구조사관이 여인숙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누가복음서 제2장에 등장하듯,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를 명해

모든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향하고 있었다.

 
화면 왼쪽 여인숙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여인숙 입구에 걸린 화환이 당시 여인숙 간판이었다.

여인숙 창 앞에 늘어선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있고

창문 턱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장부에 액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세금 징수원들은 여인숙 같은 곳에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술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 옆에 쌍두 독수리 문양이 그려져 있는 액자가 걸려 있다.

쌍두 독수리 문양은 함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으로

당시 플랑드르 지방의 세금을 걷어 갔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 2세를 상징한다.

한겨울 쌀쌀한 오후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건물에는 불빛조차 보이지를 않는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가난한 생활 때문에

난로 외에는 집안에 불을 피울 수 없어 한방에 모여 살았으며

추위를 피해 되도록 집에서보다 거리나 마을 광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에서 브뤼겔은 당시의 생활을 충실하게 묘사하기 위해

늦은 오후에 아이들이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지치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화면 왼쪽 하단에는 돼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연말 풍습으로 겨울이 시작될 때 돼지를 잡았다.

브뤼겔은 이 작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가 태어날 여인숙 마구간을 향해 가고 있는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다른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성서의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다.

요셉이나 마리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으며

두 인물 역시 크기나 색채에서 화면 속의 평범한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성서가 아니라 당시의 생활이었다.

또한 브뤼겔은 이 작품에서 인구조사보다는 세금 징수원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부과하는 세금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요구받고 있었다.

 

 

 

 

 

 

 

 


상징주의를 주도했던  크노프의 <스핑크스>


 

 

 

 

  

<스핑크스>

1896년, 캔버스에 유채, 50×150 


 

왕립미술관 지하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근현대 미술관에서

벨기에 출신으로 19세기 상징주의를 주도했던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 1858-1921)의

<스핑크스(The Caress)>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이 작품은 크노프의 대표작이다.

 

참고로 1886년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시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의 상징주의 선언이 발표되면서 시작된 상징주의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다채로운 이미지에 반대하고 세련되고 엘리트적인 시각예술을 지향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는 얼굴은 여자이면서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다.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그것을 풀지 못하면 죽였다.

스핑크스의 물음에 유일하게 대답한 사람이 오이디프스다.

이 작품에서 스핑크스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나른한 표정으로 남자의 뺨에 얼굴을 대고 있고,

유혹에 넘어간 남자는 상체가 스핑크스에게 기울어져 있다.

남자는 한 손에 창을 들고 있지만 장식적으로 그려진 창은 남자가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핑크스의 꼬리가 들려 있는 것은 성적 쾌락을 암시하고 있지만

가슴을 더듬고 있는 사나운 앞발톱은 남자를 죽음에 몰아넣은 스핑크스를 본질을 상징한다.

크노프의 이 작품은 신화에서 주제를 빌려왔지만 스핑크스를 팜므파탈(Femme Fatale)로 표현했다.

그는 우아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벨기에 상징주의 화가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 1858-1921)

 

페르낭 크노프는 행정관 집안의 아들로 브뤼주(Bruges)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브뤼셀의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이 학교에서 바리에 르 멜러리(Xavier Mellery)선생으로부터

'미술이란 사람이나 사물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말에 감동되어

법학공부를 그만두고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크노프의 <예술(애무 또는 스핑크스)>는

한 남자가 몸은 표범같은데 사람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와 볼을 맞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킹크스는 여자의 머리에 남자의 몸과 날개를 가진 괴물이다.

사실 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되었으며,

파라오(Pharaoh)의 무덤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남성이었다.

그것이 19세기 유럽에 등장하면서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를 가진 매혹적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크노프가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것은

당시 '가톨릭 장미 십자단(1890)'의 창설자이며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죠세핀 페라당(Josephin Peladan, 1858-1918)의 <스핑크스의 땅(1900)>이라는 저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페라당은 그 저술에서

 "예술의 시작은 괴물로부터 시작된다.....

그 괴물은 사람의 머리, 여인의 유방, 사자의 신체를 지녔다.

즉 이 의미는 사고, 정감, 본능으로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다."

라는 예술에 대한 개념을 형태화한 것이 스핑크스이다.

 

이렇게 페라당의 예술에 대한 개념을 작품화한 것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크노프의 작품이다.

그가 이 작품명을 <예술(애무 또는 스핑크스)>라고 애매하게 정한 것은

화가 자신도 페라당의 주장에 충실하려다 보니 다소 망설임이 있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명을 번역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애무' 또는 '스핑크스의 애무' 등

여러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그것은 이 작품의 발상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크노프는 한 걸음 더나아가 남자를 유혹하는 도발적인 스핑크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스핑크스를 파괴적인 힘을 지닌 불가사의한 요부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변신시킨 셈이다.

남자의 벗은 상반신을 앞발로 감싸며 관자놀이에 자신의 뺨을 비비는 음험한 스핑크스는

19세기 말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에로틱한 욕망이 빚어낸 환상적인 도착(倒錯)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의 근본적인 취지는

'예술은 괴물로부터 시작되고 ... 사람의 머리, 여인의 유방, 사자의 신체와 같은 것,

즉 사고, 정감, 본능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에 충실하면서도

스핑크스에 변형을 주어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 문국진, 고려대명예교수

 

 

 

이 그림은 19세기 소설가 조세핀 페라당의 희곡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 실린 내용을

페르낭 크노프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재현한 것이다.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의 뼘에 얼굴을 부비면서 황홀경에 빠져 있다.

사랑에 빠진 괴물은 오이디푸스를 공격하는 대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긴꼬리를 흔들면서

남자를 애무한다. 이 스핑크스는 특이하게도 사자가 아닌 치타의 몸체를 지녔다.

그러나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이 묘사한 것처럼 여성의 얼굴에 동장과 자세도 여성적이다.

그런데 저 스핑크스로 변신한 영웅중의 영웅인 오이디푸스가

여성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화가는 그림에서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을 전복했다.

여자는 맹수가 되어 남자를 위협하고 남자는 그녀의 성적 노리개가 된 것이다.

 

한편 평생토록 여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화가 뭉크도

여자의 잔인한 속성을 '스핑크스'에 비유해 표현했다.

뭉크가 '스핑크스=여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불행한 연애를 경험하면서

여성은 곧 파멸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 : 에드바르드 뭉크 <여자의 세 시기(스핑크스)> 1894년.

 

뭉크는 그림을 통해 여자는 남자에게 기쁨과 희망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팜므 파탈>, 이명옥, 시공아트, 2009. p83-87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 2009. 09.22 ⓒ ScienceTimes

 

 
 
 
 
 
 
 
 
 
 
 
 
 
 
 
 
 
 
 
더보기


브뤼겔(Pieter the Elder Bruegel)의 그림들 / <계절> 연작 外


피터 브뤼겔 作 - 네덜란드 속담(원제: 푸른 망토, 세상살이의 어리석음)

    : http://blog.daum.net/gijuzzang/1463930

 

 

피터 브뤼겔 作 - 눈 속의 사냥꾼(January) :  http://blog.daum.net/gijuzzang/1717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