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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국경연구>를 펴낸
서길수 서경대 교수. |
신문의 칼럼에서 자주 인용되는 묘비명이 있다.
유명한 극작가인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간도협약 100주년을 지나면서 정부가 보인 반응을 본다면 이 묘비명이 정확한 표현이 된다.
정부는 간도협약 100주년을 지나면서 간도영유권이나
협약에 대한 입장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국가 예산을 쓰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 역시 마찬가지다.
100주년기념 학술세미나는 시민단체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에서 회원들이
한 푼 두 푼 낸 돈으로 마련됐다.
모든 것이 민간인들이 알아서 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고구려 역사 전문가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올해 5월에 펴낸 <백두산국경연구>(여유당 출판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단락의 제목은 ‘한국의 국경문제 의식과 대응전략'이다.
우리도 국경문제 용의주도하게 대처해야
이런 비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쓰고 있는 관련 단체에서 바로 역사적 영토에 관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해야 하지만 여기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예산이 많기 때문에 엄청난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지만
중국의 역사적 영토에 대한 연구에 대응할 만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소프트웨어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논문의 주제가 되는 조·중 국경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그러나 한마디로 “우리가 이미 하고 있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3년이 다 돼 가는 현 시점까지도 연구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문가와 전문 단체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중국의 용의주도한 국경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된다.
그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이 고구려와 조 · 중 국경 문제에 대해 중국의 서적을 많이 번역해
소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책만 번역할 뿐 한 · 중 국경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한 간도 연구가로부터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고려시대의 공험진·선춘령에 대한 글을 쓴 한 노학자가 잠을 못 이뤘다는 것이다.
노학자의 글을 반박한 중국 학자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한국어로 번역한 이 책에는
중국 학자의 주장을 번역해 놓았을 뿐 노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없었다.
번역서이기에 당연한 결과를 낳았겠지만 국가의 세금을 받고 운영하는 연구기관에서
중국 학자의 논리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한국 학자의 논리는 반박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한국 측에서 종합적인 연구와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중국의 책만 열심히 번역하다 보면
이런 결과는 계속 양산될 것이다.
정부와 정부 기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연구와 논리 개발을 미루고
학자들이 알아서 연구해 주길 바란다면 어떻게 될까. 그저 그들이 열심히 해 주기를 기대해야 할까.
<백두산 국경연구>의 책머리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1990년에 백두산을 처음 접하고 이제 20년이 된다.
그동안 백두산을 30번쯤 올라 다니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수차례 다니면서
언젠가 그 결과를 책으로 내려는 결심을 했는데, 비로소 첫 책을 내게 되었다.
원래는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에 대한 책을 내려고 참 많은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 정도에서 그만 접으려고 한다. 금년 정년퇴직과 함께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많은 학자들이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2009 09/29 위클리경향 8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