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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 클림트 '키스'/ 실레 '가족'

Gijuzzang Dream 2009. 7. 28. 10:06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

오스트리아 수도 빈(Vienna)의 벨베데레(Belvedere) 궁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은 처음부터 미술관 용도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18세기 전반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빈을 구한 사보이 가문의 오이겐 공의 여름 별장이었다.

바로크식으로 지어진 우아한 벨베데레 궁은

이후 국가에 귀속되면서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벨레데레 궁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상궁과 하궁으로 나눠져 있으며

상궁은 오스트리아 회화, 하궁은 중세와 바로크 회화로 이뤄져 있다.

벨베데레 궁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상궁에 전시되고 있는 오스트리아 황금 시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유럽 미술의 변방이었지만

1900년 형성된 젊은 화가들 중심의 빈 분리파에 의해 독창적으로 꽃피웠다.

후에 빈 분리파는 유럽 미술관 공예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클림트의 <스>

 

벨베데레 궁에서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남녀의 이질적인 성격을 표현


 

 

 

<키스(The Kiss)>

1907~1908, 캔버스에 유채, 180×180 


 

벨베데레 궁에서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The Kiss)>이다.

클림트는 19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빈 분리파의 결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연인들은 절벽 위 꽃밭에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고 있다.

남녀의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금박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주제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연인들이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해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검은 색과 흰색의 직선의 옷은 남성의 힘을, 적색의 타원형 여성의 옷은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조적인 연인들의 옷의 모티브는 남녀의 이질적인 성격을 표현한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여자는 사랑의 감미로움에 빠져 눈을 감고 있다.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키스의 주도권이 남성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남자의 머리에 쓰고 있는 담쟁이 넝쿨은

사티로스(Satyros, 그리스 신화에서 음탕한 장난을 즐겼던 사티로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괴물)를

상징하는데, 이 작품에서 담쟁이 넝쿨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남성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것은 세속적인 후광을 상징하고 있으며

중간에 끊어진 꽃밭은 사랑의 위태로움을 암시한다.

전통적으로 종교화에서 성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금박을 사용하고 있지만

클림트는 부와 남자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금박과 은박을 과도하게 사용했다.

연인들이 포옹하고 있는 자세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의 키가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었다.

클림트는 화면 구성상 인체비례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럽, 비잔틴, 일본 미술의 요소를 절충하여 장식을 극대화시키면서 효과와 상징성을 높인 <키스>는

1906년~1909년에 걸쳐 클림트의 황금스타일의 정점을 가리키고 있는 작품으로서

1908년 쿤스트샤우(Kunst Schau)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클림트는 전통적인 미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 예술을 열었다.

그의 예술세계는 전통적인 역사주의와 현대의 상징주의 회화,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서 있는

독보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실레의 후기 대표작 <가족>


 

 

오스트리아 회회를 대표하는 화가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다.

벨베데레 궁이 소장하고 있는 많은 실레의 작품 중에 <가족(The Family)>은

그의 후기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족(The Family)>

1918년, 캔버스에 유채, 152×162 


 

침대에 앉아 있는 벌거벗은 남자 앞에 여자가 쭈그려 앉아 있고

여자의 다리 사이에 어린 아이가 앉아 있다.

밝게 빛나는 인물과 사실적으로 그려진 어두운 배경이 대조적이다.

단조로운 색상의 배경은 벌거벗고 있는 인물들을 강조하고 있다.

남자 인물은 실레 자신을 모델로 한 것으로 실레는 자기도취 성격이 강해

짧은 생애 동안 100여 점의 엄청난 자화상을 남겼다.

그는 거울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장 열심히 관찰하고 기록했지만

영웅시하거나 경배하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모성과 새로운 삶을 주제로 실레의 자서전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1912년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미성년자를 유혹해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노일렝바흐(Neulengbach)에서 3주 동안 감옥에 갇혔다.

노일렝바흐 사건 이후 실레는 빈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정상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원했다.

실레는 가장 선호했던 작품의 모델이자 4년 동안 동거 했던 발리(Wally)와 헤어지고

1915년 6월, 평범한 가정의 출신의 에디트(Edith)와 서둘러 결혼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18년부터 발생한 에스파냐 독감에 걸려 임신 6개월이었던 에디트가 죽고

그녀를 간병하면서 독감에 감염된 실레는 3일 만에 죽는다.

 

  <에디트 실레의 초상>. 1918년, 종이에 구아슈와 검정 크레용, 545.5×28.2 

 

 

 에곤 실레와 에디트 실레(실레부부) / 1915 / 종이에 구아슈와 연필

 

에디트와의 결혼으로 안정을 찾아 작품의 변화를 겪은 실레는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설렘으로 이 작품에서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공격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인물들의 각각 다른 시선으로 인해 가족의 의미가 사라졌다. 

실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가장 많았지만 클림트의 장식적이고 우아한 표현방식을 쫓아가지는 않았다.

그는 성을 대놓고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던 시대에 솔직하면서도 대담하게 성을 표현했다.

철저하게 원근법을 무시하고 손끝의 감각에 충실해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 실레는

“인간은 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한 성에 대한 번민으로 인하여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정도로 성에 대해 집착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년 07월 28일 [명화산책]ⓒ ScienceTimes

 

 

 

실레는 <가족>에서 모성과 새로운 삶이라는 주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룬다.

이 그림은 실레의 후기작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실레라는 미술가의 자서전적 상황, 걸어온 궤적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작품은 실레가 세상을 떠난 해였던 1918년 3월, 분리파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당시의 카탈로그에 인쇄된 작품명을 보면 <웅크리고 앉은 한 쌍의 남녀>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가족>이란 작품명은 실레 자신이 붙인 제목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웅크리고 앉은 한 쌍의 남녀>보다는 <가족>이란 제목이 훨씬 더 적합해 보인다.

<웅크리고 앉은 한 쌍의 남녀>라는 표현에서는 어린아이가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레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남자와

그 아래로 뭔가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아내 에디트다.

또 여자의 다리 사이에는 어린 아기가 엄마의 보호를 받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당시 실레나 아내 에디트에게는 아직 아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당시 에디트가 임신한 것을 확인했던 시점은 그 해 4, 5월경이었다고 하니까

그림 속에 아기는 단지 실레의 상상 속에 존재한 미래의 아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몸짓에서 따뜻한 가족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넓게 팔을 들어올려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아내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며,

여자는 둥그스름하게 팔을 모으고 무릎을 세워 아이를 보호하는 듯하다.

어릴 적, 실레가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사랑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밝게 빛나는 두 어른의 몸과 이불로 덮힌 아이의 머리가 침착하고 어두운 배경색과 대조를 이룬다.

남자와 여자는 알몸이고 아이 역시 벌거벗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자의 발 밑에 있는 침대커버를 몸에 두르고 있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배경을 이루는 면은 여러 색으로 칠해지지 않았다.

이 그림에서 색채는 물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이는 벗은 몸의 묘사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흰색과 노란색, 붉은색과 짙은 갈색 등을 사용했으나 이들 색채는

미리 그려져 있는 사물의 윤곽선 안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볼륨을 창조하는 조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색채는 사라지듯 슬쩍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볼륨감과 생동감까지도 나타낸다.

 

옆으로 늘어진 남자의 왼손 마디마디는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은채 색채적인 가치로서 존재하며,

개별적 개체로서 이 작품의 회화적 가치를 느끼게 하며,

동시에 실레의 마지막 2년동안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보다 사실주의적이며 덜 공격적인 회화언어로서의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컨텐츠의 대두를 뜻하기도 한다.

이 작품이 무사태평이나 기쁨으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전 표현에서 보이던 극단적인 공격성이나 신경질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극단주의가 보다 타협적인 화해무드에게 자리를 양보한 셈이다.

 

극단적인 페이소스가 우수 또는 애수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수는 아무런 대답도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여자와 남자의 치켜 뜬 시선에서만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화면 전체에 우수가 감돌고 있다.

화면구성은 남자에서 여자를 거쳐 아이에 이르면서 점차 둥글어지고

숨기는 듯한 구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제각기 다른 곳으로 향한 시선 때문에

움직임의 연속성이 차단되어 있다. 마치 새로운 탄생에 대한 신뢰와 희망에도 불구하고

실레 자신은 결코 이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18년 10월28일 실레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녀는 임신 6개월째로 접어든 상태였다.

실레의 아내는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에스파냐 독감으로 사망하고,

아내를 간호하던 실레도 감염되어 사흘 뒤 28년 4개월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내가 죽기 하루 전날 실레는 그녀의 얼굴을 검은 초크로 스케치한다.

흩어진 머리카락에 몽롱하게 초점을 잃은 눈, 이미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클림트의 사후 모습에서 느겨지던 평온함은 찾아볼 수 없고,

아직 살아있는 에디트의 표정에서는 애처로운 정서가 감돈다.

화면의 한쪽 귀퉁이에는 '27일 밤 10시'라는 시각이 적혀 있다.

이 스케치가 실레가 남긴 마지막 그림이다.

 

<죽기 직전의 에디트 실레>, 1918, 검정크레용 

 

실레는 아내가 아기를 가졌으며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아내가 죽기 바로 전날에서야 어머니에게 편지로 알렸다.

시종일관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거의 에디트의 사망통지서에 가깝다.

 

 9일 전 에디트가 에스파냐 독감에 걸려 폐렴을 앓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임신 6개월인데 상태는 아주 절망적이며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저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통에 겨운 가뿐 호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레의 아버지는 매독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거부하여 어린시절 그의 집안분위기는 어두웠다.

결국 아버지는 실레가 14살 되던 해 사망하고,

어머니는 실레가 사망할 때까지 생존했지만 지극히 냉정했다.

어릴적 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실레에게 '가족'이란 의미는 남달랐던 것이다.

전체적인 배경의 색조는 어둡지만 초기의 그림과 달리 모델 표정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스하다.

 

(1)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역, 다빈치, 2006년, p 224-234

(2)에곤 실레, 라인하르트 슈타이너 지음, 양영란 역, 마로이네북스,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