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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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 르누와르 '관람석'

Gijuzzang Dream 2009. 7. 17. 05:58

 

 

 

 

 

 

 

 마네의 유언장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마네가 추구하던 테마가 종합적으로 드러난 최후 걸작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 갤러리(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University of London)

규모는 작지만 소장품에서 있어서만큼은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품 일부를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톨드 인스티튜드는 사무엘 코톨드, 리 오브 페어럼 자작, 앙투안 세일러 경 등
기증자의 소장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장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무엘 코톨드(Samuel Courtauld, 1876~1947)의 예술품들이다.

사무엘 코톨드는 레이온을 발명해 돈을 벌어 예술품 수집을 했으며

소장품 일부를 1932년 기증했고 사후에 나머지 예술품들을 유증했다.

그의 소장품들의 특징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어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코톨드 인스티튜트 갤러리는 인상주의 중요 작품뿐만 아니라

14세기 중반과 20세기에 걸쳐 유럽의 미술사조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던 두 기증자 덕분에

소장품이 다양하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A Bar at the Folies-Bergere

1881~1882년, 캔버스에 유채, 96×130 


 

코톨드 인스티튜드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이다.

폴리베르제르 술집은 레스토랑과 극장, 주점이 결합된 곳으로

매일 밤 2천여 명의 파리 상류층들이 즐겨 찾던 유흥가다. 그곳은 마네의 말년에 영감을 주었다.

술집의 여급 뒤에 있는 거울은 술집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고 있고

거울을 배경으로 여급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녀 앞 카운터에는 손님에게 팔 와인과 맥주병 그리고 과일 접시가 놓여 있다.

여급 Suzon은 이곳에서 일했으나 마네의 스튜디오의 병들이 놓여있는 테이블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Suzon의 따분한 표정 아래로 슬픔이 보인다.

화려한 전등(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의 새롭고 매우 현대적인 장식)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녀는 멀리 떨어져 보이고 빗나가보인다. 그녀의 두 손은 대리석 Bar를 꼭 잡고 있다.

Barmaid의 좌측에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과 여인의 우측 위에 있는 연한 황토색 옷을 입은 사람은

마네의 친구인 Mery Laurent Jeanne Demarsy이다.

 

프랑스 미술비평가인 Paul Alexis는 이 그림의 여급(Barmaid)을

"카운터에 서 있는 아름답고, 진정 생기있고, 진정 현대적인 여인이다"라고 묘사했다.



화면 왼쪽 상단 술집에 여흥을 제공했던 공중 그네를 타는 곡예사의 다리와 신발이 보인다.

무대 앞 발코니에 앉은 사람들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신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나 여급이나 곡예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마네가 곡예사를 그려 넣은 것은 생각에 잠겨 있는 여급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발코니에 앉아 오페라글라스를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는

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했던 당시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대리석 카운터에 놓여 있는 술병들은 각 계급을 상장하고 있는데

샴페인은 부유한 상류층이 마시던 술이며

삼각형 라벨이 붙어 있는 바스 맥주는 하류층 계급이 즐겨 마시던 술이었다.

맥주와 샴페인을 같이 놓아 둔 것은 폴리베르제르 술집을 찾던 사람들을 나타낸다.
 
거울 속 정장 차림의 신사들과 노동자들, 고급 창녀들과 술병의 의미가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대리석 카운터에 있는 유리잔에 꽂혀 있는 장미는 쉬종의 옷에 꽂혀 있는 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고 있는 여급은 실제로 폴리베르제르에서 일했던 쉬종이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지만 사색에 잠겨 있다.

드레스의 단추는 얼굴에서부터 이어지는 강한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고

발코니와 대리석 카운터는 화면 구성하는 수평선을 만들고 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이 보인다.

거울 밖의 그녀는 공적인 얼굴이며 거울 속의 뒷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암시한 것이다.

남자는 가스통 라투슈로 마네의 동료 화가로서

마네는 폴베르제르의 술집을 스케치 한 후 쉬종과 함께 화실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쉬종과 남자는 실제보다 더 가까이 그려져 있는데

마네가 남자의 위치를 실체로 묘사하지 않은 것은 그림 속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작품은 거울에 비친 모습은 수없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그림자를 그린 것은 거의 없는데

마네의 작품의 특성은 그림자를 보여주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의 세계를 강조한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이 작품은 최후 걸작으로서

마네의 미술적 유언장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데 그가 추구하던 모든 테마가 종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마네는 이 그림을 그린 다음해 사망한다.

마네는 화면 정면에 보이는 여성과 거울 속의 비친 그녀를 멀리 둠으로써 심리적 갈등을 표현헸다.
 

 

 


 

 

 

 르누아르의 <관람석>


 

 

코톨드 인스티튜트 갤러리에서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혹평을 받지 않았던 작품 중 하나가

르누아르의 <관람석>이다.

이 작품은 오페라를 감상하고 있는 남녀를 묘사했는데 19세기 파리 사교계의 중심은 오페라였다.

파리 상류층들은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타났는데

오페라 관람은 신분을 공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관람석> The Theater Box

1874년, 캔버스에 유채, 80×63 


 

화려하게 치장한 남녀는 오페라 극장 특별관람석에 앉아 있다.

여인의 줄무늬 드레스, 진주 목걸이, 실크 장갑은 부유층 여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줄무늬 드레스는 여인의 하얀 피부를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지만 시선은 오페라를 관람하고 있지 않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인이 난간 앞으로 기대고 있었던 것은 당시 특별관람석은 좌석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난간 앞으로 좌석으로 옮겨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으며

남자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특별관람석을 찾았다.

오페라글라스를 위로 치켜들고 있는 남자 역시 오페라를 관람하고 있지는 않고 관객들을 관찰하고 있다.

오페라글라스로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당시 사회적 유희였다.

지금의 오페라극장과 달리 당시에는 극장 전체를 조명으로 환하게 밝혔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Renoir, Pierre-Auguste , 1841∼1919)의 이 작품은

제1회 인상주의 살롱전에 출품되었던 르누아르 초기의 대표작이다.

혹평을 받지 않았던 것은 당시 화풍을 따라 인물들을 세밀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짙은 연지색의 배경 앞에 화사한 옷차림의 남녀가 클로즈업 되었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검정색은 색채화가인 르누아르의 진가가 발휘된 작품으로 꼽힌다.

 

남성모델은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 르누아르이며, 여성은 직업전문모델 니니 로페즈(Nini Lopez)이다.

혹은 '겔 드 레'(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물고기 얼굴')라고 알려졌다.

그녀의 실제 외모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르누아르는 그녀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로 보았다.

니니는 와토(Watteau, Jean-Antoine, 1684-1721) 풍으로 화려하고 우아하게 차려입고

보디스(여성용 조끼)가 짧고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좋아하지만 자신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는 남자의 눈은 오페라글라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렌즈의 힘을 빌려 시력은 좋아졌지만 그 시력으로 무엇을 보는지는 감상자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남자의 보는 방식은 점잖지 못하다. 그는 몸을 뒤로 기댄채 군중을 살피고 있는데

아마도 다른 여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는 같은 객석에 앉아있는 우아한 여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와 달리 여자는 눈매가 매우 뚜렷하고 매력적인 용모를 지니고 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여인을 '창녀'라고 단정지으면서(당시 술집 여급들은 매춘부로 여김) 

진주빛으로 분칠한 뺨과 나른한 욕정에 사로잡힌 눈을 가진,

애교있으면서 공허하고 매혹적이면서도 멍청한 류의 여자라고 여겼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명화산책]

- 2009년 07월 14일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