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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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 - 뭉그 '절규' / '마돈나'

Gijuzzang Dream 2009. 7. 9. 01:38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뭉크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절규(The Scream)>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유언에 의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뭉크는 전 생애를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살았지만 말년의 28년 동안은 오슬로 근처에서 보냈다.

고향은 뭉크 인생의 중심 무대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

 “내 그림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소묘와 습작들도 전시할 미술관이 필요합니다”라며

유산을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세워지기를 바랐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전 재산과

1천100점의 회화, 4천500점의 수채와 소묘, 1만8천 점의 판화, 6점의 조각을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오슬로 시는 뭉크 사후 2년 후부터 미술관 설립을 추진해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 되는 해에 개관했다.


 

 

<절규, The Scream>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마분지에 유채, 템페라, 파스텔,

1893년, 91×730㎝, Nasjonalgalleriet, Oslo, Norway


 

오슬로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초기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뭉크의 <절규>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 이 작품은 뭉크 미술관의 자랑으로,

<절규>를 보기 위해 오슬로는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뭉크는 이 작품을 유화나 석판화, 동판화 등등 다양한 재료를 써서 50여 점을 남겼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고 다리 난간 위의 인물은 공포에 귀를 막고 있고 있지만

뒤에 있는 인물들은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뭉크는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선으로 절규를 표현했다.

또한 그 뒤에 정상적인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절규하고 있는 인물을 강조했다.

화면 위의 붉은 구름은 마치 하늘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일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

깊은 절망에 인간은 절규하지만 자연은 핏빛 하늘 너머로 메아리를 던질 뿐

아무런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해

“두 친구와 오슬로 교외를 산책 나갔다. 해가 지고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슴 아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에 나는 발길을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죽을 듯이 피로했다. 핏빛과 불의 혓바닥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서 있었다.

그때 난 자연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거대하고 기이한 끝없는 절규를 들었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렀다” 라고 1862년 일기에 썼다.

'절규'의 환영적 체험을 글로 남긴 대목이다. 


뭉크에게 죽음은 그의 예술세계의 기본 색조를 이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출발한다. 5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14살 때에는 사랑했던 누나 역시 폐결핵으로 죽는 것을 경험했다.

따라서 뭉크는 가족들의 건상상태에 민감했는데 32살에 남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으니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모티브가 '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년 시절에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뭉크의 생애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사랑도 순탄치 않았는데, 유부녀와의 첫사랑에선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다음에 만난 다른 연인은 그에게 총을 쏘아 오른손 중지를 날려버렸다.

그래서 뭉크는 죽을 때까지 장갑을 낀 채 사람들에게 한 번도 손가락을 내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뭉크의 작품 세계에는

'절망과 자살,압생트,마약,광기,허무주의,무정부주의,악마주의를 흔쾌히 끌어 안으면서

자기파괴와 도착적 연애를 시작한' 19세기 말의 '세기 말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1년 동안 이어진 <삶의 프리즈>의 사랑 섹션에 속하는 작품이며, 

'목소리'와 '키스' '뱀파이어' '마돈나' '질투'에 이은 섹션의 마지막 작품인데

이를 두고 작가는 "모든 자화상이 얼마간은 영혼의 초상이라고 한다면

<절규>는 가시적인 것들을 최대한 벗겨낸 영혼의 초상'이라면서

"그것은 가시적인 것 이면(裏面)의 이미지요,자신을 응시하는 눈의 뒷면이었다"고 표현한다.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마돈나>

뭉크는 삶의 시기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리는 연작을 제작하는데 그 작품이 <생의 프리즈>다.

뭉크의 경험을 담은 작품 중에 사랑을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이 <마돈나>다.


 

 

<마돈나 Madonna>

1894/95.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1894-1895년,  91×70㎝, Nasjonalgalleriet, Oslo, Norway.


이 작품은 뭉크와 삼각관계였던 연인 다그니 유을이 모델이다.

뭉크는 유명한 ‘뭉크 스캔들(베를린에서 열린 뭉크 개인전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 사건이 여론에 비화되면서 개인전이 폐쇄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을 계기로 베를린에 머물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뭉크는 예술가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고향 후배인 다그니 유을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을 거부하고 건축가와 결혼한다.

그녀와의 사랑 경험은 <질투>, <흡혈귀> 등 작품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베를린에 머무는 3년 동안이 뭉크의 생애 동안 가장 충실한 열매를 맺은 생산적인 시기였다.

동시에 문학적 철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이기도 했다.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하나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마지막으로 체념하는 여인으로 보았다.

뭉크에게 있어서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수태를 하는 여성을 뜻한다.

이러한 뭉크의 여성관의 모티브가 되어 나온 작품이 <마돈나>다.

 

<마돈나>는 '사랑과 개화'라는 주제로 전시되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옷을 벗은 여자의 허리 아래쪽이 형체도 없이 흐르는 색채 속으로 사라지고

오른쪽 팔은 머리 뒤에 있고 왼쪽 팔은 허리 뒤로 묶인 것처럼 두르고 있다.

이런 역동적인 자세는 가슴과 복부를 내밀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작품 속 모자의 강렬한 색은 풍만한 육체와 자유분방한 머리카락의 곡선과 어우러져 있다.
모자보다 큰 후광은 까만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어 색의 대비를 주고 있으며

여자는 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잠들어 있는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뭉크는 여자의 신체 각 부분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화시켜서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뭉크는 이 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을 직접 연결하는 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로 남겼는데

“당신의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고통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삶(生)은 손을 잡고 수천의 죽음과 수천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가

지금도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1903년 <사랑의 개화와 죽음>의 주제로 라이프치히에 전시되었는데

그 이후 뭉크는 다섯 가지 버전으로 제작했다.

말년에 나치가 독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뭉크의 작품을 ‘퇴폐예술’로 낙인 찍어 몰수하지만

뭉크는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7.07 [명화산책] ⓒ ScienceTimes

 

 

 

 

 

 

 뭉크의 <절규> <마돈나> 도난사건

 

 

(1) 1차 도난 - 1994년 2월12일 / 뭉크의 <절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일이던 1994년 2월 12일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도 <절규>가 도단당했다.

작품 <절규>는 세 차례 같은 작품을 더 그려 총 4점의 같은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당한 것은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두 버전이었다.

 

하나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다른 하나는 뭉크 박물관에 있다.

이 중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작품은 1994년 2월 도난당했으나

약 3개월 후 그해 5월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됐으며 당시 3명의 노르웨이인들이 체포됐었다.

당시 노르웨이 정부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로부터 100만달러의 돈을 요구받기도 했다.

당시 도난된 작품은 오슬로 남쪽 65㎞ 떨어진 한 호텔에서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됐다.

 

 

(2) 2차 도난 - 2004년 8월22일 

 

관람객 앞에서 <절규><마돈나> 유유히 뜯어가

한명이 보안요원 위협, 다른 한명이 탈취,  차량으로 도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서 2004년 8월 22일 
세계적인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걸작
<절규(The Scream)>와 <마돈나(Madonna)>가 도난당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1시를 넘긴 시각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뭉크박물관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경찰 관계자는 AP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검은 복면을 한 2명의 무장 괴한이 총기로 박물관 직원을 위협해 벽에 걸린 두 작품(<절규> <마돈나>)을 탈취한 뒤

미리 대기해있던 아우디 A6 승용차를 이용해 도주했다”고 말했다.

 

뭉크박물관의 홍보 책임자 요룬 크리스토퍼슨은

“범인들은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았고 그것들을 벽에서 떼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에 경보시스템이 있었고, 범인들이 작품을 떼어내는 순간 경보가 울렸다”면서

“박물관 보안요원들은 총을 가진 강도들로부터 관람객을 보호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작품을 떼어내자마자 박물관 밖에 세워둔 차량을 이용해 도주했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프랑스의 라디오 프로듀서 프랑수아 카스탕은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이 박물관에는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는 점”이라면서

“(범인들이) 벽에 걸린 작품을 지탱해준 철사를 세게 잡아당기니까 끊어졌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처음에는 테러리스트들의 출현으로 알고 불안에 떨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탈취 과정에서 폭행 등 불상사는 없었다.

 

작품 <절규>는 노르웨이의 대표적 표현주의(expressionism) 화가인 뭉크(1863~1944)의 대표작으로 1893년 만 30세 때 제작됐으며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과 공포를 리얼하게 나타낸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노르웨이 당국은 이 작품이 워낙 유명해 암시장에서 거래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작가 뭉크는 5세 때 어머니를, 14세 때 누나를 잃었으며,
폐질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간의 생과 사,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미술 작품에 표현했다.
작품 <절규>와 관련, 뭉크는 “2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하면서
탈진 상태를 느꼈고, 검푸른 피요르드와 하늘 위로 혀와 같은 불꽃이 있었다”며
작품 제작의 배경을 밝힌 적이 있다.

독일에 있는 그의 작품은 1937년 퇴폐예술이라 하여 나치스에 의해 몰수되기도 했다.

뭉크는 만년에 독일에서 은둔생활을 하다 81세에 숨졌다.

- 2004.08.23

 

 

(3) 2차 도난 <절규> <마돈나> 회수 - 2006년 8월31일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걸작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된 지

2년 만에 회수됐다고 오슬로 경찰이 밝혔다. 

지난 2004년 8월22일 오슬로 소재 뭉크 미술관에서 복면 무장괴한 2명에게 도난된 이들 그림들이

2년 만에 경찰작전을 통해 회수됐으며 그림들의 상태는 예상보다 양호하다고 발표했다.

회수된 작품 가운데 한 작품에는 해진 곳이 있으며

다른 작품은 테두리에 미미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오슬로 시의회 관계자가 전했다.

 

스텐스루드는 그러나 그림의 자세한 회수 경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당장 언론에 공개하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에는 3명의 용의자들이 뭉크의 그림 도난과 관련해 4~8년형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그림들의 행방은 파악되지 않았으며 이에 오슬로시 당국이

200만 크로네(약 3억원)의 보상금을 내거는 등 국제적인 회수작업이 진행돼왔다.

이베르 스텐스루드 경찰 수사책임자는

“성공적인 작전을 통해 오늘 오후 그림들이 우리 수중에 들어왔다”면서

노르웨이 경찰이 지난 2년간 그림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림의 회수와 관련해 어떠한 보상도 지불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남은 것은 전문가들이 그림들의 진위 여부를 판명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 그림들이 진품인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5억 크로네(7천900만 달러)로 추정되는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걸작으로 꼽혀왔고 <마돈나>는 이보다 낮은 가격인 1억 크로네(1천580만 달러) 상당이다.

- 오슬로 AP=연합뉴스 / 2006.09.01

 

 

(4) 명화의 도난 

 

명화의 도난사건은 1911년 루브르에서 사라졌던 다빈치의 <모나리자>,

네 차례나 도난과 회수를 반복한 렘브란트의 그림 <제이콥 3세 드 게인>,

무려 3억달러어치의 그림을 훔쳐가 버렸던 1990년 보스턴 이사벨라가드너미술관 도난사건 등이

있었다.

 

“피카소 551점, 고흐 43점, 렘브란트 174점, 르누아르 209점…

예술범죄는 거대하고 한창 번성 중인 사업이다.

인터폴은 예술계 암흑가에서 매년 40억~60억 달러에 달하는 예술품들이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마약과 불법 무기에 이어 세번째다.”

타임 지는 <모나리자>, 가드너미술관, 2004년 <절규> 도난사건을

‘지난 100년간 세상을 뒤흔든 세기의 범죄 25건’ 선정시 포함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