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인정한 안동립(동아지도 대표)의 독도 지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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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지도를 만들어온 동아지도 안동립(51) 대표는 ‘독도는 국민이 지킨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사람이다.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독도의 자국 영토 편입 100주년을 맞아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우리 국민은 분노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독도 영유권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명쾌한 대책을 내놓은 이가 바로 안 대표다.
그런데 지도 장인인 그도 그때서야 독도가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2개 섬 외에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틀렸다. 훗날 독도를 정밀 조사한 그는 독도의 총 바위섬 수는 102개, 암초 수는 78개라는 것을 밝혀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마땅히 이 바위섬들은 그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태반이 무명(無名)의 섬이고, 나머지는 섬 이름이 자료마다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촛대바위’다. 이 바위는 ‘촛대바위’ 외에도 ‘엄지바위’ ‘기도바위’ ‘보살바위’ ‘성모마리아상’ ‘장군바위’ 등으로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었다. 자료를 만든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던 것. 안 대표는 울릉문화원장을 비롯한 독도 전문가와 독도에 오래 출입한 울릉도 어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바위의 본래 이름이 '촛대바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보찰바위’ ‘지네바위’ ‘춧발바위’
독도에는 또 하나의 '보살바위'가 있었다. 이름 추적에 나선 안 대표는 이 바위의 본래 이름이 ‘보찰바위’ 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보찰은 ‘거북손’이라고도 하는 따개비의 일종. 독도에 자주 출입하던 울릉도 어부들은 보찰이 잔뜩 붙은 이 바위를 보찰바위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와전되면서 '보살바위'로 바뀌었다.
‘지네바위’ 도 비슷한 경우다. 독도에는 지네가 없다. 그런데도 지네바위가 있어 그 사연을 알아보니, 1960년대 ‘이진해’라는 울릉도 주민이 이 바위에 미역을 따 말렸다고 해서 ‘진해바위’로 불리던 게 와전되어 ‘지네바위’가 됐다.
또 독도에 당나귀는 없지만 ‘동키(donkey · 당나귀)바위’ 는 있다. 동도 정상에 주둔한 경찰이 생필품을 위로 올리려고 배가 닿는 곳 바위에 도르래를 설치했는데 이 도르래를 뱃사람들이 ‘동키’라고 부르면서 바위 이름이 ‘동키바위’가 됐다.
동도 남쪽에 있는 ‘춧발바위’ 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현지인은 ‘기준’을 뜻하는 말로 ‘춧’이란 낱말을 썼다. 춧발바위를 넘어 동쪽으로 가면 창망한 동해가 펼쳐지면서 큰 파도가 몰려온다. 이 때문에 무동력선을 몰고 동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독도에서는 오전에는 동풍, 오후에는 서풍이 불어온다. 날씨가 좋아도 춧발바위를 넘어 동쪽으로 가려면 오후에만 항해를 시도해야 한다. 그는 춧발바위의 어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울릉도 주민이 오래전부터 이 섬을 경영해온 사실을 확인했다.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 주간동아, 2009.06.30 692호(p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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