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연운(放浪煙雲) - 청명 임창순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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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선생의 작고 10주기를 기념하여, 우리 시대 서예(書藝) · 금석학(金石學) · 서지학(書誌學) · 한문학(漢文學) 등 한국학 전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그의 학예세계를 조명한다. 청명 선생은 작품진위를 판정하고 고증해내는 감식(鑑識) 분야의 대가이자 시대와 사회의 불의에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의 정신과 성정기질이 오롯이 녹아나 온 유묵 70여 점과 감식, 컬렉션, 사진 및 유품 30여 점 등 총 100여 점이 전시된다.
△청명 생애 △시(詩) · 문(文) △초서(草書) △대자서(大字書) △글씨와 사연 △서화감식과 제발문 등 6개 분야에서 12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특히 해인사 백련암 소장 ‘성철스님화상찬’을 비롯해 ‘광개토대왕비초탁’과 ‘임광개토대왕비문’, ‘임회소자서첩’과 ‘관서악부’ 등이 눈길을 끈다. |
‘더 이상 글씨가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 시대 서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원래 서예는 ‘학예일치’의 예술로 글을 쓰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현대 서예가 학문은 빠진 채 글의 조형미만 추구하고 있는데서 나온 비판이다.
그런데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청명 임창순(靑溟 任昌淳, 1914~1999)은 그가 남긴 글과 그의 삶이 꼭 빼닮았다.
그는 학문을 대할 때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지만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자유분방한 삶을 즐긴 ‘자유주의자’였다.
특히 추사 김정희-역매 오경석-위창 오세창의 금석학 계보를 이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디지털영상시대 붓과 손의 가치를 청명을 통해 새롭게 일깨우고 싶었다” 면서 “이번 전시는 글씨를 통해 인간 청명을 이야기하고 청명의 삶을 통해
그의 글씨예술과 학문이 하나가 되었음을 보이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청명은 평생 정착하는 삶보다는 유목민적인 삶을 살았다.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연기나 구름같은 삶을 살았는데,
서예작품에다 낙관으로 ‘방랑연운(放浪煙雲)’을 찍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그는 제도권 학교는 문전에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청명은 해방 직후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중 · 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40세가 된 1954년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1960년 4·19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과감히 떨쳐 일어나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써 가두시위에 나섰으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에서 쫓겨났다.
1963년 서울 종로 수표동에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해 연인원 5000명에 이르는 한학연수생을 배출하다가 1974년에는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지곡정사(芝谷精舍)’를 세웠다.
이번 특별전에는 아들 임세권 교수를 비롯한 유가족이나 제자 등 주변 인사들이 소장해 온
청명의 작품들을 모았다.
청명 친필인 ‘지곡서당(芝谷書堂)’ 현판은 임시로 태동고전연구소에서 뜯어 왔으며
인물화로 유명한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스님 진영은 그의 맏상좌인 원택스님에게서 빌려왔다.
이 진영에 청명이 직접 써 넣은 4언시 22구로 된 발(跋)은 어쩌면 청명의 법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청명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법어에
‘산 밖에 산이 없고, 물 밖에 물이 없네(山外無山, 水外無水)’로 화답하고 있다.
- 2009-04-20 ⓒ 파이낸셜뉴스
" 나는 앞으로 이 건물이 남북의 젊은 학도가 한 자리에 모여 조국의 장래를 함께 의논하는 전당이 되기를 바란다. " - 청명 임창순
지곡서당(芝谷書堂)
시청명임창순선생지별업야(是靑溟任昌淳先生之別業也).
芝谷洞天傍古都, 高人隱處養門徒 不關紫陌是非域, 爲避靑雲名利途 案上琴書千載樂, 園中花石四時殊 年前懇乞弁先稿, 今伴契員叩別區
지곡 마을은 옛도성과 가까이 있는데 훌륭한 선비 숨어서 제자들을 가르치네 속세의 시시비비를 관여하지 않고 지위와 명예를 피하려고 온 곳이지 책상 위의 거문고와 책들은 영원한 즐거움 동산 안의 돌과 꽃들은 사시로 변모하지 연전에 선조부님 원고의 서문을 받았는데 오늘은 계원과 함께 별장의 문을 두들겼네. - 작자 : 청계 조면희 1993.10.24.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11. 태동고전연구소(泰東古典硏究所)
1963. 11. 3. 설립자 임창순 소장이 서울 종로구 수표동에 연구소를 개설, 1964. 2. 종로구 당주동에 처음으로 사무실을 임대 이전. 1974. 10. 지곡정사 신축(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11-1 현연구소 위치). 한국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한문장학생 선발 교육(1976. 9 - 1982. 8) 1979. 11. 지곡정사 밑에 강당인 지곡서당을 신축 준공, 1985. 1. 학교법인 일송학원에서 본 연구소의 운영비 및 한문연수원의 장학금을 지원. 1985. 8. 본 연구소의 토지, 건물 및 서적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 1985. 9. 한림대학 부설 태동고전연구소 규정 제정, 운영위원회 구성. 임창순 한림대학 객원교수 임명, 태동고전연구소 소장 발령. (서울=연합뉴스) 사림사(沙林寺) 홍각선사비명(弘覺禪師碑銘). 1971년 임창순이 발(跋)을 썼다. 탁본 · 종이에 먹, 62.4×53.5cm, 개인소장. 2009.4.10 <서예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당(唐) 이백(李白)의 시 '왕우군(王右軍)', 1976년 임창순 작품이다. 종이에 먹, 69×33.7cm, 개인소장. 2009.4.10 <서예박물관 제공 >
(서울=연합뉴스) 임창순이 발(跋)을 쓴 김호석 화(畵) 퇴옹(退翁) 성철(性徹) 진영(眞影). 1995년(발) · 1994년(화), 256×175cm, 종이에 수묵채색, 해인사 백련암 소장. 2009.4.10 <서예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방랑연운 청명 임창순'을 조명하는 특별전. 청명은 애연가였다. 2009.4.10 <서예박물관 제공>
예술의전당 10주기 '임창순 서예전' 안동대 사학과 임세권(61) 교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고아 출신이 아니지만 "대구 가면 대구인 것 같고, 안동 가면 안동인 것 같고, 서울 가면 서울인 듯도 하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전국을 돌아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너무나도 유명한 서예가이자 한학자이며, 한문교육가이기도 했던 그의 선친은 작품에다 '방랑연운'(放浪烟雲)이란 문구를 새긴 낙관을 자주 찍었다. 방랑벽이 마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연기나 구름과 같다 해서 썼을 것이다. 그는 골초였다. 한시도 입에서는 담배가 떠나지 않았지만 85세까지 장수했다.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만에 청명 임창순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4월16일 개막한다. 5월 10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은 청명이 남긴 양대 유산인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와 청명문화재단 공동 주최로 그의 생애와 시ㆍ문(詩文)의 세계를 펼쳐보이게 된다. "그의 면모를 두고 혹자는 원칙주의자라고도 하고, 혹자는 자유주의자라고도 하지만 이 둘을 합친 모습이 청명이라 할 수 있다"면서 "청명이야말로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이자 진정한 한국학의 대부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40세가 된 1954년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써 가두시위에 나섰으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에서 쫓겨났다. 1974년에는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지곡정사'(芝谷精舍)를 세웠다. 청명의 작품들을 모았다. 인물화로 유명한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스님 진영은 그의 맏상좌인 원택스님에게서 대여하기도 했다. "산 밖에 산이 없고, 물 밖에 물이 없네"(山外無山, 水外無水)라고 응수하기도 한다. 청명은 서예사학자이면서, 탁본 수집가이기도 했다. 이런 면모는 1988년 울진봉평비 발견 당시 현장에서 직접 탁본을 하고 글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그의 연구 혼을 그대로 담은 육필원고 등으로 만날 수 있다.
1889년 광서기축본(光緖己丑本)이 오랜만에 전시된다. 특히 광서기축본은 한 · 중 · 일 통틀어 가장 오래되고 기준이 되는 탁본으로 일본이 광개토대왕비를 날조하기 전의 탁본으로, 선생은 이를 통해 일본의 광개토대왕비 위변조설을 입증했다. <광개토왕비 임서(臨書)> <광개토대왕비 탁첩, 광서기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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