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오딧세이] 1세대 간도연구가 김득황박사, 아쉬운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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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어를 한국어로 풀이한 만한(滿韓)사전이 있다.
만주어는 중국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그 만주어를 알기 쉽게 사전을 만든 이가 있다.
그는 또 만주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만주족의 언어>라는
책을 펴냈다.
1995년에 두 번, 각각 200부 한정판으로 발행했다.
그는 간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증정했다. 기자에게 준 만한사전에는 1995년에 초반 200부, 1997년에 중간 300부를 발행했다고 적혀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만주어를 알고 있는 몇 사람 안에 손꼽힌다.
중국에서조차 잊혀져 가는 만주어를 공부한 것도 고향이나
다름없던 간도에 대한 열의였다.
간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만주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주지역 지명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독학으로 만주어를 공부했다.
만주족이 남아 있는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만주어 사전도 펴내 얼마 전 동방사회복지회 이사장인 김득황 박사의 은퇴식이 화제가 됐다. 올해로 94세인 김득황 박사는 1972년부터 올해까지 37년간 부모없는 아동에게 양부모를 찾아줬다.
그동안 그가 입양해준 아이는 모두 6만 명이다.
37년이란 세월만큼이나, 6만 명이라는 숫자만큼이나, 94세라는 나이만큼이나 그의 소식은 화제가 됐다.
이렇게 ‘입양아의 대부’로 널리 알려진 김 박사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만한사전 저자다. 그는 ‘입양아의 대부’이기도 하지만 간도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1세대 간도연구가다.
간도 문제에 대해 사회에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 않을 시기에 그는 꾸준히 간도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1915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김 박사는 어린 시절 만주에서 자랐다. 그래서 어린 시절 놀던 곳이 바로 우리나라 땅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일제 시대 때 백두산 정계비 터를 가본 ‘살아 있는 증인’이다.
그는 당시 백두산을 답사하면서 정계비 터 주변에 놓인 돌울타리(석퇴)를 직접 보았다.
동방사회복지회의 사무실에는 만주지역을 우리 땅으로 표시한 당빌지도가 있었다. 청나라가 18세기 초에 제작한 당빌지도에는 평안도를 뜻하는 영문 표기가 압록강에 걸쳐 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의 간도지역이 조선 땅으로 표기된 것이다.
이 지도를 외국에서 사들인 김 박사는 이 지도에 나타난 국경선을 ‘레지선’이라고 불렀다.
레지 신부가 제작한 지도에 나타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말한다.
18~19세기 외국 지도에는 조선과 청의 국경선이 대부분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 있다.
그중 일부가 레지선을 따르고 있다.
그는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1세대 간도연구가다. 지금 간도연구는 3세대로 넘어왔다. 1세대보다 연구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간도연구는 1990년대에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간도영유권 문제를 일시적으로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가 꾸려졌을 뿐
간도영유권 문제는 일반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연구도 마찬가지로 근근히 맥을 잇고 있는 정도다.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간도 관련 인사들의 부끄러움은 더욱 커져간다.
그가 혼자 만든 만주어 문법책과 만한사전을 보노라면 새삼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94세에 은퇴식을 가진 김 박사의 열정을 가진다면
간도연구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다. hou@kyunghyang.com
- 윤호우 기자 - 2009 06/30 위클리경향 8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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