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중국의 영토논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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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의 한 교수가 몇 년 전 한국의 간도연구가에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의 제자가 간도와 관련된 영토 문제를 다루는 박사논문을 쓰려고 하니
한국 책을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백두산 정계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중국의 기록을 훨씬 능가한다.
때문에 중국에서 영토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우리나라 기록을 더 참조해야 할 형편이다.
숙종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정사에는 정계에 관한 기록이 자세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 문집에서도 정계 당시의 상황이 잘 기록돼 있다.
역관 김지남은 <북정록>에 정계가 이뤄지던 과정을 거의 매일같이 기록했다.
이때 함께 갔던 김지남의 아들 김경문은 홍세태에게 당시의 상황을 전해줘
홍세태는 <백두산기>를 남겼다.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업무를 했던 접반사 박권은 <북정일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들 자료 외에도 김지남 · 김경문 부자가 쓴 <통문관지>라는 외교자료집과
<동문휘고>라는 외교자료집에서 당시 외교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중국은 <청사고>와 <길림통지>에 겨우 몇 줄로 백두산 정계를 기록해 놓았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기록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런 기록의 우위는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데 우리나라에 훨씬 더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줬다.
중국은 우리나라 기록을 통해 반론을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1712년 백두산 정계에서 압도적인 기록의 우위를 보인 우리나라는 1885년과 1887년의 국경회담(감계담판)에서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
감계사인 이중하는 <백두산 일기> <토문감계> <문답기>
<조회담초> <감계사문답> <감계사교섭보고서> 등의 기록으로 감계 당시의 상황을 낱낱이 기록했다.
이때 기록한 문서들을 정리해 <감계사등록>이라는 자료집을 만들었다.
1885년과 1887년 청나라와 국경회담을
했던 감계사 이중하.
조선이 남긴 간도 기록이 훨씬 많아
일본은 우리나라를 넘보면서 사실상 만주를 노렸다.
도쿄제국대 법학과 졸업생으로 변호사였던 시노다는 총독부 관리로 간도에 대한 자료를 정리했다.
그의 목표는 조선의 땅이었던 간도를 일본제국의 땅으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대한 기록을 정리해 <백두산 정계비>라는 책을 1938년 발간했다.
그의 기록을 보면 일본 특유의 꼼꼼한 기록정신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가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간도에 대해 연구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해방 이후 간도 연구는 주로 시노다의 저서에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끄럽게도 간도영유권 주장은 그가 펼친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그의 연구는 철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노다가 책을 쓴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간도 연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했다.
역사 분야에서 간도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정치학·법학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고구려·발해 같은 고대 역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
간도에 관한 연구는 늘 주장하던 이론에서 맴돌 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사이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차근차근 영토에 관한 연구를 쌓아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조선이 남겨놓은 기록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만 남아 있는 것은 ‘순발력’뿐이다.
정계비를 세울 당시 조선 관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재치 있게 모면하는 데는 재주를 지녔다.
중국이 영토 논리를 개발하고 세운 후 우리나라는 어떻게 맞설까.
간도협약 체결 100년이 된 올해 어느 누구도 간도를 기억하려 들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과 어떤 논리로 싸워야 할까?
그때에는 결국 또 ‘뛰어난 순발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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