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과 반 고흐의 우상이었던 '농민화가' 장 프랑스와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
그의 그림에는 도시 노동자의 세계가 없다. 초상화와 관능적인 누드화, 종교화를 그렸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평생 순박한 농민을 그렸다.
그것도 먹고 노는 농민이 아니다.
일하는 농민이다.
따라서 농민의 손에는 항상 농사일과 관련된 도구가 들려 있다.
키 망치 삽 물레 쇠스랑 괭이 등을 통해 밀레는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영원히 각인시켜주었다. 하지만 고답적인 현실인식은 그의 예술적 성취에 아쉬운 '찰과상'을 남긴다.
농민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화가
밀레가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에 정착한 것은 1849년이다.
그는 여기서 파악한 농민의 질박한 삶을 그림의 주제로 삼는다.
당시 그림의 일반적인 주제는 신화 속의 인물이나 고대의 영웅들,
위엄과 권위에 찬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밀레는 당돌하게도 남루한 농민을 전면에 내세운다.
살롱의 보수적인 비평가들이 이를 기특하게 봐줄리 없었다.
1957년 '이삭줍기'를 시작으로 무려 10년간이나 악평이 계속되었다.
1958년 '소 먹이는 여자', 1859년 '만종' 등이 혹독한 비난에 시달렸다.
그들은 투박한 인물들의 원시적인 모습이 못마땅했다.
또 농촌의 실상을 그린 그림들이 체제전복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지 불안해했다.
1863년 살롱전에 출품한 '괭이를 든 사람'도 밉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꺼져버린 눈빛으로 바보스럽게 입을 비죽이는 머리통 없는 괴물"(폴 드 생빅토르)
이라며 비평가들은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밀레에게 이 그림은 노동의 고통과 신성함을 확인하는 하나의 기록이었다.
괭이에 담긴 밀레의 취향
들판이 원경으로 낮게 펼쳐져 있다. 무언가 태우는지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를 배경으로 한 농민이 괭이를 짚고 우뚝 서 있다.
예전 같았으면 유명한 인물이 서 있어야 할 자리다.
구부정한 어깨, 푹 꺼진 눈, 말라붙은 입술, 허름한 옷차림.
땅을 경작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쉬는 참이다.
농민의 표정이 어둡다.
눈동자도 초점을 잃었고, 헤 벌어진 입술은 허옇게 말라붙었다.
옷차림도 낡고 뻣뻣하다. 자갈투성이의 땅을 일구며 사는 생활이 실감난다.
지금 개간 중인 땅도 옥토가 아니다. 자갈밭이나 다름없다.
왼쪽에는 억센 가시덤불을 비롯한 잡풀이 가득하다.
오른쪽 발밑에는 개간된 땅이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땅의 척박한 표정은 농부가 치뤘을 노동의 고단함을 강조한다.
밀레는 휴식을 취하는 농민을 그리되, 힘든 표정을 제대로 표현한다.
짙은 명암의 대비 속에 약간 벌어진 입이 노동의 강도를 말해준다.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 같다.
농부는 몸과 마음을 괭이에 싣고 있다.
두 다리의 힘만으로는 서 있기가 힘든 모양이다. 괭이가 목발 같다.
지금 괭이만이 희망이다. 괭이는 손의 연장(延長)이자 도구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증거한다.
그런데 이 괭이가 당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도구일까?
혹시 밀레의 보수적인 취향이 투사된 도구인 것은 아닐까?
당시 밀레의 시각은 19세기 초반에 고정돼 있었다.
그림에 나타난 구태의연한 생산수단과 재래식 연장에는
옛것을 숭배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당시 프랑스의 농촌사회는
경제적인 부흥과 정치적인 개혁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밀레는 농촌의 '변함없는' 모습에 집착했다.
저조한 농업생산율과 인구과잉으로 발생한
농촌의 집단적인 이탈 문제 같은 사회변화를 외면한 채 말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꾸민 듯한 아름다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림에 스며든 개인적인 감상과 낭만이 급변하는 농촌현실과 거리를 두게 한 것이다.
보수주의자의 고답적인 현실인식
일반적으로 밀레는 소외층의 삶을 대변하는 현실 참여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달랐다.
그는 많은 농민을 그렸으면서도 농민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을 삼갔다.
그의 초상화에도 귀족들의 초상은 다수 남아 있는 반면
농민들을 그린 초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밀레의 그림에 등장하는 농민이 익명의 농민들이지,
그가 특별히 친밀감을 가진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밀레의 그림이 낭만적으로 기운 데는
이런 사정도 한몫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밀레가 자신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일하는 농민들의 실상을 기록한 농민화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괭이 같은 생산도구에 반영된 의고적인 취향에도 불구하고.
- 정민영(주) 아트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