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태백산맥’ 누가 읽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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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간 20년 만에 200쇄 돌파… 주 독자층 20대 아닌 30대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완간 20년 만에 200쇄 출간(1권 기준)을 돌파했다. <태백산맥>은 1983년 9월부터 <현대문학>에 제1부가 연재되면서 긴긴 장정의 첫 포문을 열었다. 1권 제1판 1쇄가 한길사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엮여 나오고, 1989년 마지막 10권으로 완간됐다. 완간 후 8년 후인 1997년 3월 한국 문학 및 출판 사상 다권본 최초로 100쇄 출간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 200쇄 출간의 기록은 그로부터 12년 만에 이룬 것이다.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좌 · 우 이념의 대립과 분단,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대중의 아픔을 그린 이 소설은 1980년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 민중해방, 민족통일을 외치는 대학생과 지식인들에게 술술 잘 읽히는 역사서 역할을 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분단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면서 좌 · 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기술은 그 자체로 충분히 파격이었으며 이적성 시비로 보혁 세력 간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태백산맥>이 80년대적 상황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일부의 평가가 무색하게, <태백산맥>은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서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1980년대 학생 · 지식인 필독서
1995년부터 <태백산맥>을 독점 출판하고 있는 해냄출판사의 이진숙 편집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주 독자층은 30대 남녀 독자가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980년대만 해도 20대들이 열광한 <태백산맥>을 왜 지금은 30대가 열독하는 것일까.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90년대 학번, 특히 군부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93학번 이후는 어느 정도 민족민주화운동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분위기로 대학생활을 한 세대”라며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사회운동의 분위기가 친일청산이나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문제 등을 핵심으로 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등 과거사 청산운동으로 바뀌면서 과거사의 진실에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 30대에게 일어 이 책을 찾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록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재평가 작업이 21세기 인권 · 환경 문제 등 새로운 가치와 연계하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 주류 흐름으로는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그것이 준 충격은 국민들에게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던 시기”라며 “그런 만큼 해방 이후 좌우 이념대립을 그린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졸업 후 사회 경험이 쌓이면서 역사와 현실에 눈을 뜨고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소설도 찾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다룬 <태백산맥>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분단상황 계속되는 한 관심 끌 것”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지금의 30대는 IMF 외환위기, 무한경쟁 등으로 20대 시기를 우울하게 보냈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가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 등 워낙 역사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좌우 대립과 같은 양상이 벌어지니까 <태백산맥>을 찾아 읽으면서 과거 경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구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있는 데다 현 정부 들어서면서 그 내용에 대해 진보 · 보수 진영 간 갈등이 자꾸 불거지니까 아이들도 관심을 갖고 근현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기술한 <태백산맥>을 읽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쩌면 이는 학창시절 <태백산맥>을 열독한 386세대가 교단에 서면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분석도 있다. 시인 이문재는 “경제논리에 휘둘리던 30대가 오늘날 우리의 위상이 왜 이렇게 됐을지를 고민할 때 이 소설이 좋은 거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재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을 경제논리와 경제가치로만 환원하고 해석하는 소위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었는데,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역할을 국가보다 위에 두고, 국가는 기업이 맨 위에서 활개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면서 “그런 환경에서 실직이나 실패 등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문화가 팽배했고, 이런 사회·경제적 압박에 눌린 30대들이 이 사회가, 이 나라가, 또 민주주의라는 것이 왜 이렇게 허황된 것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근원을 찾아 이 책을 읽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문재는 또 “빨갱이나 좌·우익이라는 말이 여전히 위력을 가진 채 살아 있는 현시대의 부조리의 뿌리가 소설에 잘 묘사돼 있다”면서 “친일청산 문제, 분단 문제 등이 제대로 해결되고 민주주의가 건강했다면 이렇게 우리 국민이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권영민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분단이 지속돼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분단의 단초를 그린 <태백산맥>은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2009 03/10 위클리경향 8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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