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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憑依)’를 활용해 희극적
요소를 부각한 연극 ‘설공찬전’.
연극 [설공찬전(이해제 작, 연출)]은
16세기 초 금서(禁書)였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재창작된 작품이다.
이 연극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과 해학을 반영하되 동시대 감각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천박한 유머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을 배꼽 잡게 만든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수작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반해 금서라는 영광스러운 낙인이 찍힌 책들은 물밑으로 유통된다. 조선 중종 당시 불태워진 ‘금서’인 <설공찬전> 역시 <묵재일기>라는 책에 은밀한 형태로 복사돼 있다 500여 년이 지난 뒤 발굴됐다.
1511년(중종 6) 채수(1449~1515)가 지은 <설공찬 환혼전(薛公瓚 還魂傳)>은 당시 왕명에 의한 금서로 지정돼 모두 불태워졌으나 이후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남의 책 뒷면에 써져 내려오던 내용을 발견해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511년(중종 6) 사헌부가 이 이야기를
윤회 화복지설(輪廻 禍福之說), 즉 매우 요망한 것으로 여겨
문자로 베끼거나 언문으로 번역해 읽는 것을 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숙권(魚叔權)의〈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는
이 작품의 이름을〈설공찬환혼전 (薛公瓚還魂傳)〉이라 하고,
주인공 설공찬이 남의 몸을 빌려 몇 달 동안 저승에 머물면서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원한을 자세하게 적은 내용이라고 했다.
국문 필사본은 이문건의〈묵재일기(默齋日記)〉제3책에 적혀 있는 것이
1997년에 발견되었는데, 이 국문본도 13쪽까지만 남아 있다.
이 소설을 발굴한 서경대 이복규 교수(국문학)에 따르면,
이 작품이 금서라는 파란만장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은
유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빙의를 통해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한 저승에서의 경험을 통해 황제와 왕의 권력이 통용되지 않고,
염라대왕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여자들도 학문을 배워야 하고 관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교사관에 반(反)한다.
연극 [설공찬전]은 유교가 조선시대만큼 절대적이지 않은 현대에도
충분히 사회전복적인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유행을 타지 않는 권력의 속성을
블랙유머의 소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재창작됐지만 핵심 주제와 유머 코드는 원작의 것을 살렸다.
저승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원작에서 연극으로 모습을 바꾼 [설공찬전]은
이승에 돌아온 공찬을 통해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을 풍자하고
이를 경고하는 내용으로 다듬어졌다.
풍자 대상은 ‘권세가 밑천’이라고 생각하며 때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소인배의 모습이며, ‘빙의(憑依)’라는 장치를 활용해 희극적인 재미를 맛보게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설공찬(황도연 분)이 자신의 아버지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서른여섯 날의 말미를 얻어 이승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자신의 사촌동생 설공침(정재성 분)의 육체에 깃드는 것이다.
공찬은 살아생전 총명하기로 이름난 수재였는데,
설공침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망나니 중 망나니.
공침의 아버지인 설충수(최재섭 분)는 아들 몸에 귀신이 붙었다는 것을 알고
무당을 데려오지만, 공찬이 자신의 아들 몸에 붙어 관직에 오르겠다는 말을 듣고는
묵인하려 든다.
한편 공찬의 아버지인 설충란(임진순 분)은
모함을 받아 유배 온 대쪽 같은 성격의 충신이다.
충수는 충란의 유배지로 탐관오리에 매관매직을 일삼는 정익로 대감(이장원 분)이 찾아오자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을 활용해 부귀를 누려보고자 ‘로비’를 한다.
여기에 자신의 딸이 왕에게 간택되도록 해달라며 아부하는 오매당 부인(김로사 분)과 떡고물을 얻어먹으려 이들을 돕는 기생(이효진 분)까지 합세한다.
공찬은 이들의 행동을 보다 못해 더는 사촌동생인 듯 ‘연기’하지 못하고
바른말을 하게 되며, 무당을 피해 사람들의 몸을 돌아다닌다.
난리 끝에 그는 저승에 돌아가는데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손수 삼은 짚신을 건네준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은 단어들이 언급되고
연기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이후 빙의(憑依)가 시작되면서 극은 급속도로 리듬을 탄다.
시작과 끝을 제외한 장면에서 설공찬의 존재감은
그의 혼이 들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몫이다.
빙의된 전후의 이중적인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설공찬의 ‘바른말’을 통해 주제를 전달한다.
설공침 역의 정재성은 가히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고,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마음을 담아 진중함을 전달했다.
한편 마지막에 설공침이 병풍 뒤로 사라진 뒤
다시금 병풍이 열리며 그의 얼굴이 보이는 것은
완결성을 느끼게는 하지만 분위기를 깨기도 한다.
악한들은 잘 먹고 잘사는 채로, 선한 인물들은 피해를 본 채로 끝나는 ‘아이러니’는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입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설충란이나 설공찬 같은 사람들은
그냥 입을 닫은 채 빨리 살아버리고 죽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담지 않았으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고전의 결론이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공감대를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