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더듬어보고(전시)

[국립고궁박물관]「숭례문-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 숭례문 화재1주년

Gijuzzang Dream 2009. 2. 13. 02:39

 

 

 

「숭례문 - 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

 

숭례문 화재 1주년 특별전시회 개최

 

2009년 2월10일~3월 8일, 국립고궁박물관

남지(南池) 출토 청동용두의 귀 등 공개

 

 

문화재청은 2월 10일부터 3월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시회「숭례문 - 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숭례문 화재 1주년을 맞아서 국민과 함께 참화의 교훈을 되새기고

완벽한 복구를 바라는 염원과 희망을 담는 뜻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 전시에는 숭례문에서 지난 1960년대 숭례문 보수 당시 수습된 옛 부재와

화재 피해부재, 고증조사 및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각종 사진과 유물들,

숭례문에 얽힌 옛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과 유물 등 총 80여점이 전시되며

국민들께서 기증해 주신 옛 사진도 일부 포함된다.


전시는, 과거-기억-악몽-되삶-남지(南池) 라는 5가지 테마로 구성되며,

 

「과거」는 역사속의 숭례문을 옛 사진과 기와 등을 통해,

「기억」은 화재 전 숭례문을 고(故) 김대벽 선생 유품사진과

(주)기흥성이 제작한 정밀 모형(1/25 축소)을 통해 선보인다.

「악몽」은 참화 당시 광경과 긴박했던 수습 과정을 사진과 수습부재로 담았으며,

「되삶」은 현재까지 진행된 주요 복구과정과 미래상을 사진 및 설명자료,

발굴 출토유물 등으로 보여준다.
「남지(南池)」는 전시회 안의 작은 특별전이며,

조선시대 은퇴 관료들이 숭례문 남쪽 옛 연못 근처에서 가진 모임을 그린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5호)와,

그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해 온

‘남지 출토 청동용두의 귀(靑銅龍頭의 龜 : 청동으로 된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가 전시된다.

이 '청동용두의 귀'는 1926년 남지 터에 건물을 짓기 위해 지하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번 전시회가 숭례문을 다시 ‘기억’하고 그날의 ‘아쉬움’을 되새기고

우람하게 우뚝 설 ‘내일’의 희망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라며,

특별 공개되는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자

문화재 사랑의 마음을 기르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 1주년인 2월 1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숭례문 복구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

특별한 사전절차 없이 관람이 가능하며

지난해 11월말 공개가 중단된 이후에 공원구역까지 포함하여 새로 설치한 울타리 등

달라진 복구현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담당자 : 숭례문 복구단 정금호, 조상순
전화번호 : 042-481-4861


 

 

전시품 목록

 

 

 특별 대여유물 (2점)

   :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5호 남지기로회도(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점

   : 남지 출토 청동용두의 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점

 

 숭례문 부재 (7점)

   : 한국전통문화학교 보관 숭례문 옛 부재 6점

   : 숭례문 화재피해 부재 1점

 

 발굴 유물 (12점)

   : 조선전기 백자편 등 숭례문 가설덧집 설치지역 발굴유물 12점

 

 정밀 모형 (1점)

   : (주)기흥성 제작 숭례문 1/25 축소 모형 1점

 

 사진 및 기타 자료 (66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 등 숭례문 옛 사진 20매

   : 숭례문 화재 이전 촬영 故 김대벽 사진작가 기증사진 6매

   : 숭례문 화재 및 긴급 수습과정 사진 10매

   : 숭례문 복구과정(준경묘 고유제 등) 사진 10매

   : 수선전도 사진 및 복구계획 개요 자료 등 20매

 

 

   

 

 

일제강점기에 숭례문이 훼손되기 전인 1890년대

서울성곽과 연결되어 있는 숭례문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1883년 제물포에서 조선 최초의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을 설립한

독일인 에드바르트 마이어의 후손들이 간직해오다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에 의해 발견되었다.

 

日本 學習院大學 東洋文化硏究所 소장 자료(1904년 전후)

 

이기석(서울) 기증사진 : 1954년 숭례문 현판 보수 광경

 

숭례문 옛 기와(조선시대)

 

숭례문 홍예문 천정(故 김대벽 사진작가 유품사진)

 

 

 

숭례문 화재 직후 수습 과정 (문화재청 직영보수단)

숭례문 잔존부(1층 지붕) 정밀실측 조사

 

숭례문 가설덧집 설치지역 발굴조사 출토유물

 

 배너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5호 남지기로회도(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1926년 남지(南池)터에서 출토된 '청동용두(靑銅龍頭)의 귀(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동으로 된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을 의미하는데

‘청동용두 귀(龜)’는 등껍질이 회전하여 열리도록 되어 있다. 

숭례문 남지(南池) 터에서 조선우선회사로 추정되는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기초공사를 하던 중

드러난 석실(石室) 내부에 있던 유물로 1926년 5월 발견되었다.

1929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관된 후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었으나

일반인에게 전시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었다.

문화재청은 최근 국립김해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일제강점기 조선문서철'이란 문서를 열람한 후

이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숭례문 현판 글씨를 세로로 쓰고, 숭례문 남쪽에 연못 남지(南池)를 둔 것을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장치라 한다면 이 유물은 음양오행상 ‘물’을 의미하는

북방을 상징하는 현무(玄武)‘로 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설명이다.

  

남지 출토 청동용두의 귀(龜) 안에서 나온 종이 유물

이 청동용두 유물의 몸통 내부에서 팔괘도안이 그려진 지류(紙類)가 함께 발견되었는데

‘火(불)’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 ‘水(물)’를 그렸다.

 

 

- 문화재청, 2009.02.09

 

 

 

 

 

 

 

 

 

 [숭례문 화재 1년] 숭례문 복구 어떻게 되나

 

 

 숭례문 복원에 금강송 10그루 · 기와 2만장  

 

 


숭례문에 불이 붙은 것은 2008년 2월10일 저녁 8시40분쯤이었다.

밤새도록 불길은 계속됐고 사람들은 비탄과 공황 속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숭례문은 푸른색 가림막과 철제 비계에 둘러싸인 채 말이 없었다.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 그대로’라고 적힌 가림막 안은 여전히 폐허에 가까웠다.

지난해 말 1차 발굴조사를 마친 뒤 지하벙커를 철거하느라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고,

1층과 2층 사이 문루와 기둥에는 그을린 흔적이 여전했다.


숭례문 복원 작업은 시민들 눈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이지는 않아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경복궁 부재보관소에서, 삼척 준경묘에서, 강릉 목재소에서,

여기저기에서 쉼없이 이뤄지고 있다.

생채기에 새살 돋듯, 겨울 얼음장 아래에서 봄물이 흐르듯

차츰 제 모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치욕을 기념하는 2월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삼은 문화재청은

2월1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민들에게 현장을 공개하기로 했다.


● 5년동안 250억원 들여 3단계 복구 작업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를 위해 전담 행정조직인 ‘숭례문 복구단’을 꾸렸다.

복구 기간은 5년을 잡았다. 총예산은 250억원을 책정했다. 수습 예산 29억원은 별도다.

복구 작업은 3단계로 계획됐고,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숭례문 화재 피해 상황 파악과 현장 수습, 복원 계획 수립 중심으로

1단계 작업을 마쳤다. 육축, 문루 등 그을린 흔적이야 여전하지만

덕분에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훼손된 부재를 분석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부재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부재 실측, 고증, 발굴, 설계 중심으로 2단계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계획상 오는 11월까지 설계를 마무리한 뒤

내년 1월부터 3단계로 숭례문 복구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에는 숭례문 누각 해체→조립→완공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복구 일정이 남게 된다.

복구 완료 시점은 2012년 12월이다.

숭례문 석축을 해체하지 않을 경우 시기는 조금 더 당겨질 수도 있다.

문루 복구 작업을 총지휘할 도편수 후보로는 전흥수 · 신응수 · 최기영 대목장이

물망에 올라 있다. 모두 대목장 분야의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이다.

문화재청은 한 사람을 도편수에 임명하기보다

세 대목장을 모두 참여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관건은 부재 재활용과 기와 복원… 발굴조사는 덤

사고 현장에서 알뜰히 챙긴 부재는 손상 정도를 세밀하게 조사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전시 및 교육용 등으로 나눈다. 다행스럽게도 경복궁 부재관리소에 보관된 부재의 상당수는

재사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 3일에는 대들보로 쓰일 키 20m, 지름 70㎝, 수령 100년 이상의

강원도 삼척 준경묘 금강송 10그루가 부재관리소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궁궐용으로 쓰이던 소나무다.

건조과정을 거쳐 숭례문의 대들보와 추녀를 만드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90% 이상 훼손된 기와를 제작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복원에 필요한 기와는 모두 2만 2465장이다.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전통기와 제작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강하려면 손으로 만드는 전통공법이 필요하다.

무형문화재 한형준 제와장(製瓦匠)이 맡을 전망이다.

부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의 성과도 소중하다.

2012년까지 계속될 발굴 작업은 1차 조사 결과, 숭례문 동서 성벽 기초부를 확인했다.

또한 이달 중순부터 시작되는 2차 조사에서는 성벽 바깥 부분을 발굴한다.

2009-02-09 서울신문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세상에서 가장 슬픈 특종 : SBS 카메라기자 55인

 

 

기자에게 특종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세상에 알렸다는 특종!

그것을 위해 카메라기자들은 12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뛰는지도 모른다.

기자들에겐, 특종은 3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상이 업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설(說) 아닌 설이 있다.

그만큼 실력 못지않게 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내게도 그런 특종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특종은 슬프디 슬픈 것이었다.

2008년 설 명절의 끝자락에 주간 근무와 야근이 같이 걸렸다.

다행히 연휴 중간에는 근무가 없었기 때문에 고향에 다녀와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다.

연휴 마지막 날에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나겠느냐며 뉴스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급히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숭례문 일대 어딘가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불이 낫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역 방면에서 숭례문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 어, 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려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며,

그래도 그나마 연기만 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현장 화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댔다.

연기가 잠잠해질 즈음 숭례문 안쪽으로 소방관들이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진화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이미 얼어서 미끄러워진 계단을 올라가 숭례문 내부 모습을 촬영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흘러가더니 이제 곧 불길이 잡힐 듯 보였다. 연기도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기가 정말 다행이라며, 이후 어떤 그림을 추가로 취재해야 좋을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연기가 다시 점점 심해지더니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숭례문 현판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붕 내부에 있던 불길을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숭례문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을 보존하기 위해 결국 떼어내기로 결정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작업하는 소방관들과 현판을 주시했다. 작업을 한 지 오래지 않아 크레인이 좌우로 움직이며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숭례문 현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반인들의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의경들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떨어진 현판을 쳐다봤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레코딩 불빛이 들어온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보면서도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숭례문>이라고 쓰여진 국보 1호의 현판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내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그때는 그 장면이 특종인지도 몰랐다.

얼마 후부터 시뻘건 불길이 2층 누각 틈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날름거리는 뱀의 혀 같았다.

흰 연기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곽에서 취재를 하느라 정확한 진화 상황을 그때그때 알 수는 없었지만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숭례문 지붕의 구조를 자벼히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많은 물을 뿌려대는데도 안쪽의 불길이 잡히지 않는 모습에 처음에는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 많은 소방관들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마음 졸이며 그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센 불길은 숭례문 2층 누각을 집어삼켰다.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게 정말 현실의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는 걸까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한참을 타던 숭례문은 결국 한 귀퉁이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을 떼어낸 숭례문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뿐 아니라 그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악몽 같은 밤을 보내고 전소된 모습으로 비참한 아침을 맞는 숭례문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난밤 내내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내 마음은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고자 하는 카메라기자의 의무감으로 꽉 차 있었지만,

너무나 소중한 그래서 당연히 여겼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아쉬움과 허무함은

무척이나 컸다. 게다가 현장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길이 숭례문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회사에 들어가니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순간을 찍은 나의 촬영 화면이 특종이란다.

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목숨 거는 바로 그 특종 말이다.

다들 우왕좌왕하다보니 다른 언론사들은 아무도 찍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을까.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이 슬픔은 무엇일까.

특종이 왜 이렇게 나를 슬프게 하는 걸까.

우리가 하는 일, 즉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다.

대형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현장에서도

카메라기자는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취재원과 카메라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재난 지역에선 구조보다 촬영이 먼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손수건을 건네주기보다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 게 바로 우리의 일이다.

그래서 마음이 굳세야 하고, 때론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서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에

나는 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숭례문은 아쉽게 떠나보냈지만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곁에서 기록할 수 있어서

국보 1호를 잃은 슬픔이 조금은 위로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땅바닥에 떨어지던 그 슬픈 특종의 순간을 나는, 내 카메라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2009-02-10, 신동환

- 예스24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지우지 못할 기억

 

숭례문에는 끊임없는 인파가 몰렸고 여론의 질책은 몹시 따가웠다.

하루속히 숭례문을 국민 앞에 돌려드려야 한다는 지상과제 앞에 직원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숭례문이 입은 손상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홍예문과 하부석축이 온전하고 문루도 1층 대부분이 남아있어서 국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숭례문 현판은 거의 원상태로 수습된 것이다.

자책감에 젖어있을 틈도 없이 남아있는 구조물의 추가 붕괴를 방지하고 쏟아져 내린 잔해들을

안전하게 수습하는 한편, 숭례문 복구를 위한 청사진도 마련해야 했다.

 

문화재청 책임으로 복구 추진

 
긴박한 화재 수습이 막바지에 달하던 지난해 5월 20일,

화재 100일을 맞아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문화재 분야 석학들의 자문과 회의를 거쳐서,

숭례문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기존 부재를 재활용하고

일제가 변형한 부분도 바로잡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만큼 더 복구기간이 늘어나게 되어 걱정이 많았지만, 5년이라는 사업기간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격려를 주시기도 했기에 큰 힘이 되었다.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부재를 최대한 사용해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 유지

둘째, 일제에 의해 훼철된 좌우측 성곽과 원래의 지반(현재보다 1.6m 아래) 복원

셋째, 중요무형문화재 등 최고 기량의 기술자가 참여

넷째, 학계 등 원로 전문가로 복구 자문단 운영

다섯째, 예산·기술지원·공사시행을 문화재청이 담당(국가직영)하는 것 등을 기본원칙으로 하였다.

 

복구사업을 국가직영으로 하는 것은, 숭례문 보존관리를 지방자치단체(서울시 중구청)가 맡고 있으나 완벽한 복구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부가 책임을 지고 복구하겠다는 의지이며 그에 따라 복구사업비도 국고에서 투입하고 있다.

사업기간은 2008~2012년으로 5년이며,

수습단계, 조사 및 설계단계, 복구공사단계 등 3단계로 추진된다.

수습단계는 지난해 5월 숭례문 수습부재를 경복궁내 부재보관소로 이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사 및 설계단계는 지난해 6월부터 2009년까지 1년 7개월간이며,

숭례문 현판 복구, 발굴조사, 수습부재 분류, 소요부재 산출, 복구설계도 작성 등이 추진되고 있다. 

복구공사단계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이며,

문루 해체 및 복구, 육축 보수 및 좌우성벽 복원, 문루 단청, 주변 환경정비를 거쳐 준공하게 된다.

 

이 같은 일정은 발굴조사에서 특별한 사정이 발생될 경우 다소 조정될 수도 있으나,

효율적인 공사 운영으로 소모적인 공기 지연은 없도록 할 것이다.

투여될 사업비는 약 250억 원 규모로 추정하며,

재활용 가능한 부재 수량과 전시관 건립주체 결정 등에 따라 변동이 있을 것이다.

 

복구 준비과정 차질 없이 진행

 
현재 숭례문 복구사업은 발굴조사, 수습부재조사, 잔존구조물 분석, 고증조사, 설계도서 작성 등과

같은 복구 준비단계에 있으며, 당초 계획한 바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후기 숭례문 앞뒤에 깔았던 박석 도로와

옛 지반을 확인하였고,

숭례문 현판은 양녕대군 사당인 지덕사(至德祠)에서 제공해 주신 탁본을 토대로 과거 한국전쟁 이후 잘못 수리된 부분까지 바로잡아 이번 3월말이면 수리가 끝난다.

 

또 숭례문 복구에 쓰일 큰 나무 10그루도 삼척 준경묘역에서 베어 경복궁 목재보관소에 옮겨 놓았으며 앞으로 2년 여간 자연건조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과학기술과 인문지식을 모두 동원하는 조사연구들을 토대로 금년 말까지는 복구공사에 착수할 설계도서가 만들어 질 것이다.

 

설계도서 작성과정에는 재활용 목부재의 범위, 홍예문 등 육축 해체 필요 여부, 좌우 성곽의 복원방법, 육축 기단부의 노출방안, 첨단방재시스템 적용방안 등과 같이 다소 어렵고 신중히 판단할 과제들이 따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문화재 분야 석학과 여러 전문가들이 충실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년에 복구공사가 착수된 이후에도 문루를 해체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될 수도 있다.

필요할 경우 설계를 보완하면서 공사를 진행해 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숭례문 참화는 한편으로, 그간 목조문화재 방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조문화재가 얼마나 화재에 취약한지, 화재를 예방하지 못하거나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그 결과가 어떠한지, 화재 진압방식은 어떻게 달리해야 하는지 등을 깨닫게 하였다.

그런 각성을 기초로 「목조문화재 방재대책」을 수립하고

관리자용과 소방관용 문화재 방재 매뉴얼을 작성하였다.

또 목조문화재에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자동감지 및 소방 시설을 대폭 보강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도 방화관리자 선정과 소화 및 경보시설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그러나 모든 시스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소유자와 관리단체 자신의 안전 의식이다.

이를 높여가는 일에 보다 중점적으로 힘써 나갈 계획으로 있다.

 

숭례문 화재 1주년, 참화의 교훈을 되새기며

 
문화재청은 금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 1주년을 맞아서, 국민과 함께 참화의 교훈을 되새기고

완벽한 복구를 바라는 염원과 희망을 담는 뜻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고 복구현장을 개방하였다.

 

특별전시회는, 2월 10일부터 3월 8일까지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숭례문 - 기억, 아쉬움 그리고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과거-기억-악몽-되삶-남지(南池) 라는 5가지 테마로 구성되며,

「과거」는 역사속의 숭례문을 옛 사진과 기와 등으로,

「기억」은 화재 전 숭례문을 故 김대벽 선생 유품사진과

(주)기흥성이 제작한 정밀모형(1/25 축소)을 통해 선보인다.

「악몽」은 참화 당시 광경과 긴박했던 수습 과정을 사진과 수습부재로 담았으며,

「되삶」은 현재까지 진행된 주요 복구과정과 미래상을 사진 및 설명자료, 발굴 출토유물 등,

마지막 테마「남지(南池)」는 전시회 안의 작은 특별전이며, 숭례문에 얽힌 옛 문화상을 조명하였다.

 

조선시대 은퇴 관료들이 숭례문 남쪽 옛 연못 근처에서 가진 모임을 그린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5호)'와,

그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해 온

‘남지 출토 청동용두의 귀(靑銅龍頭의 龜 : 청동으로 된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가 전시되고 있다.

이 청동용두의 귀는 1926년 남지 터에 건물을 짓기 위해 지하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것으로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 중요한 유물이다.

몸통에서는 불 火를 물 水로 무수히 둘러 적은 종이 유물이 나와서

이 청동거북을 남지에 넣었던 조상들의 뜻을 짐작케 한다.

 

이번 전시회는 숭례문을 다시 ‘기억’하고 그날의 ‘아쉬움’을 되새기고

우람하게 우뚝 설 ‘내일’의 희망을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고,

특별 공개되는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자 문화재 사랑의 마음을 기르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 확인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한편 2월 10일 1주년 당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숭례문을 일반에 개방하였다.

숭례문은 지난해 8월 15일부터 11월까지 매주 주말 예약관람이 진행되다가

동절기 안전 우려로 관람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6시간 동안의 한시적 개방에 무려 5,800여 명이 다녀갔다.

개방 전부터 백여 m의 줄이 만들어지더니

하루 종일 서울역 지하도 입구까지 3백여 m의 기다림이 줄지 않고 계속되었다.

 

관람하시는 분들은 시종일관 질서정연하면서도 침중한 표정으로 현장을 둘러보셨고,

숭례문복구단 등 직원 60여명은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관람자는 노년과 장년층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잘 차려입고 함께 오신 노부부들도 눈에 띄었다.

오후들어 주부와 아이들이 다소 늘긴 했지만 역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훨씬 많았다.

이날 희망메시지판은 관람자들이 써 붙인 울긋불긋한 종이들로 빼곡하게 찼다.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면서도 다시 우리 앞에 우뚝 설 숭례문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도 숭례문 복구 상황을 수시로 언론을 통해 국민께 알려드리고

금년 5월부터는 매주 주말 현장을 개방하여 안내 설명에 따라 편안하게 관람하실 수 있게 할 계획이다.

- 정금호,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 행정사무관

- 사진,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

- 2009년 3월6일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