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만원권

Gijuzzang Dream 2009. 2. 23. 02:00

 

 

 

 

 

■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자리가 왜 이 모양이야?

 

 

 

 

 

새 1만원권 지폐 도안 '오류' 드러나

대표적 별자리 상당수 누락, 밝기에 따른 크기 표시도 왜곡…

한은 관계자 "문제없다" 주장

 

 

한국은행의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유물 왜곡’이었다.

새 1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린 국보 제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의 내용이

원본을 변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주간한국은 1만원권 지폐에 실린 별자리 그림이 원본의 내용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고

전문가인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에게 정밀 판독을 의뢰한 결과

여러 군데에서 상당수의 오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별자리 그림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의 하늘의 별자리를 담은, 우리나라 국보 제228호 천문도이다.

그러나 새 1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린 도안에서는

원본의 내용이 자의적으로 첨삭 및 변조되는 등 왜곡되어 있다.

로그램과 혼천의 논란에 이어, 새 1만원권 지폐 도안과 관련돼 세 번째 드러난 문제점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1만원권 지폐 뒷면, 혼천의의 바탕면에 깔린 별자리 그림이다.

작은 원들과 선분들의 구성형태와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안으로도 원본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폐에는 북두칠성을 위쪽 중앙으로 하여 천체의 별자리 구성도 일부가 그려져 있는데

석각본의 해당 부분과 비교해 보면 ▲각 별자리의 배치와 모양 ▲별자리를 구성하는 각 별의 개수

▲별 간의 거리 ▲각 별의 크기(=밝기) 등에 내용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지폐의 해당 범위 안에 들어있는 별자리 ‘묘수’가 누락된 것을 비롯해,

가장 대표적인 별자리인 28수 상당수가 빠져 있다.

상대적으로 연구가치가 떨어지는 별자리들이 다수 오른 것이다.

 

둘째, 맨오른쪽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사각형 모양의 별자리는

원본에서 그 옆의 ㅅ형 별자리의 남서쪽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

완전히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혼천의의 다리 부근에 있는, 오른쪽 1시 방향 맨끝의 오각형 모양의 별자리는

원본에 있는 동그라미 모양의 별자리를 깎아 변조한 것이다.

 

이를 구성하는 별의 개수도 원본에서는 10개, 지폐 도안에서는 5개로 절반이나 줄였다.

더욱 이것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그려진 지폐 지면의 묘사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최외곽 가장자리에서 자의적으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

 

셋째, 혼천의를 중심으로 맨왼쪽 9시 방향에 위치한 손톱달 모양의 별자리는

원본에서 찾아보면 뚜렷한 ㄱ자형 별자리로 나와 있다.

별자리 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별과 별 사이를 이어주는 각도도 임의로 바꾸어

반원형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이것 역시 원본의 별 개수 7개를 5개로 줄였으며,

연결된 각 별과 별 사이의 거리도 원본의 것보다 더 길거나 더 짧은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넷째, 각 별의 밝기 표시에 대한 왜곡은 특히 큰 실책으로 지적되고 있다.

혼천의를 기준으로 오른쪽 2시 방향에 그려진 마름모꼴 별자리는

원본에 표시된 별의 크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원본에서는 미미한 정도의 밝기, 즉 아주 작은 점으로 표시된 반면,

지폐 도안에서는 북두칠성의 별 밝기와 거의 동급으로 표현되어 있다.

별 크기의 왜곡은 일일이 다 지적할 수 없을 만큼 도안 속의 별자리 대부분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원본에 표시된 각 별의 크기 구분에 따른 정교한 밝기 표시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지닌 최고의 과학적 가치이다. 그것은 우리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중국의 천문도를 베낀 것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새 1만원권 지폐에서 드러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왜곡은

마치 태극기의 모양을 각 괘의 위치나 개수, 배치법을 자의적으로 뜯어고친 뒤

‘약식 모사’라는 명분 아래 국민에게 배포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고등과학원 박 교수는

‘‘천상분야열차지도의 원본을 새로 해석해서 옮겨 그린 그림이 지폐에 실릴 줄은 몰랐다”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천상분야열차지도 도안 오류는

시기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망언 등 한국사에 대한 왜곡 시도하는 현실에서

세계에 자랑할 과학 유물을 우리 스스로 왜곡함으로써 정부의 무신경한 역사의식을 보여줘 충격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국은행 측 자료에 의하면, 2005년 4월 18일 위폐방지를 위한 새 은행권 발행계획이 발표된 후,

같은 해 4월 21일 화폐도안자문위원회 제1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후 지난해 4월 7일까지 거의 매월 한 번씩 총 15차례에 걸쳐 자문회의가 열렸으며

한 달여 뒤인 5월 18일에 새 1만원권 지폐 도안이 공개되었다.

한국은행 발표대로라면, 금융통화위원회의 도안 확정 과정에서 15차례 이상 자문회의가 열렸는데도

도안의 오류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 점에서 한국은행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왜곡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발권국 관계자는

“새 1만원권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은 원본 중 꼭 반영되어야 할 사실만을 담았으며,

디자인 전문가들이 주로 디자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하다보니

원본의 별자리보다 다수 개수를 줄이거나 각도를 조금 바꾸기는 했다”며 원본 수정을 시사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나 원본의 별자리 모양이나 위치, 별의 크기 등을 바꾼 것은 없다”며

“학계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아 확정한 도안이므로 내용상 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 박창범 교수가 지적한 새 1만원권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의 오류

 

1. 별자리의 정확한 구별 기준 없이 무작위로 옮겨져 있다.

지면 해당 부분에 충분한 공간이 있는데도 실리지 않은 묘수(주요 별자리 28수 중 하나)를 비롯해

중요한 별자리들이 다수 빠져 있다.

반면에 과학적으로 별 의미 없는 별자리가 크게 실리는 등 별자리 선별의 원칙이 없다.

 

2. 별자리의 위치가 원본과 다르다.

 

3. 별자리들의 모양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

별자리의 별 개수와 배치, 별 사이의 간격이 원본과 크게 다르다.

 

4.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큰 과학적 가치인 별의 크기(=밝기) 구별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 주간한국, 2007.05.30

 

 

 

 

 

■ 문화유산에 대한 과학적 가치 간과

 

 

새 1만원권 지폐 화폐도안자문위원회는

한국은행과 조폐공사 직원 약 10명과 디자인 전문가 약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과 관련해서는 전공학자 1명이 자문과 감수했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 1명이 도안을 꼼꼼히 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국민들이 매일 보고 사용하는 화폐는 우리나라의 자화상이다.

화폐 도안에 오류가 있다면 우리 자신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꼴이다.

한국은행은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의 문제점을 조사해 오류가 있다면 시정해야 할 것이다.

 

 

"과학성 · 별자리 중요도 무시한 도안"

새 1만원권 지폐 도안 오류 많아… 원본을 새로 해석해 그린 그림에 불과

 

새 1만원권에 그려진 천상열도분야지도 도안의 오류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만났다.

박 교수는 1998년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판독 결과, 총평을 내린다면.

“상당히 부실하다. 별의 크기는 매우 잘못 되어 있고, 별자리 모양과 배치도 잘못되어 있는 것이 많다.”

 

- 천문도를 약식으로 모사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약식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 도안에는 그러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별자리를 선별해서 어떤 것은 생략하고 어떤 것은 살릴지를 정할 때 별자리의 중요도,

즉 28수나 밝은 별자리 순위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선택되어 그려진 특정 별자리 하나 안에서도

이를 구성하는 별들 중 일부가 이유 없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큰 특징인 별 크기 구별도 훨씬 더 정확히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현재 확인된 결과만으로도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인가.

“그렇다. 문제가 되는 수준이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천문도 도안을 지폐에 싣는다는 것은, 전통과학과 현대과학을 망라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학에 대한 국가적인 대우를 국민에게 천명하는 일이므로 과학계로서는 아주 반가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폐들에 실린 예술품 도안과는 다른,

과학문화재로서의 독특한 면을 간과한 것 같다.

과학문화재는 그것이 ‘있다’는 것, 또는 ‘오래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진 ‘과학성’이

함께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은 그 과학성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 새로 발행된 1만원권을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했는데.

“맨처음 봤을 때 도안 속의 북두칠성이 일그러진 것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별자리들이 낯설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주간한국의 의뢰를 받아)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때 내가 낯설게 느낀 이유를 알겠다.”

 

- 당시엔 이 정도로 왜곡이 심한 줄 몰랐나.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문화재를 도안으로 싣는다면 거의 사진 수준에 가까운 정교한 도안이 제작될 줄 알았다.

이렇게 원본을 새로 해석해서 옮겨 그린 그림이 실릴 줄 몰랐다.”

 

-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나.

“나도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과학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 과학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물을 그릴 때는 그 디테일 자체가 꼭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캐리커처처럼 특유의 인상만 제대로 전달하면 될 것이다.

그와 똑같은 인식으로 과학문화재를 대한 것 같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이 디테일이 중요한 문화재를 그릴 때는

특히 그런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미리 조심했었어야 한다고 본다.”

 

-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이와 넓이가 필요하다고 본다.

직접적인 제작 과정에서는 해당분야의 몇몇 전문가들을 통해 충분한 기간 동안 깊이 있는 자문과 감수를

거치도록 하고, 그 이후 최종 확정 전에 관련 학계에 있는 (직접 관여하지 않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광범위한 검증절차를 거치는 것이 오류를 걸러내는 데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 같다.”

 

 

●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약 600년 전인 조선 태조 때 제작된 별자리 그림이다.

1394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이를 기념해

천문학자들이 이성계의 명을 받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 1m, 세로 2m의 검은 돌(烏石, 편암) 표면에 1,467개의 별들이 새겨져 있다.

이후 돌이 닳게 되자 숙종이 다시 탁본을 이용해 돌에 천문도를 새겼다.

현재 국내에는 태조 때 만든 국보 제228호 석각본과 숙종 때 복각한 보물 제837호 석각본이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숙종대 석각본은 세종대왕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지난해에 옮겨왔다.

현존 석각본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고구려 시대 원본을 후대에 복제한 것이다.

고구려 때의 '원조 석각본'이 전란에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천문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자리는 1세기경에 관측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의 하늘을 담아낸 천문자료다. 제작 시기의 근거는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자리의 배열이 고구려 고분에 나타난 별자리의 배치와

거의 들어맞는다는 것. 특히 각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 작은 원형 모양의 하얀 점의 크기를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별의 밝기에 따라 점의 크기가 다르다.

별을 표시하는 이 작은 점은, 크기가 클수록 별이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이것 역시 현대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별의 밝기 등급과 일치하는 정도가

당시까지의 세계 천문도들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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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화폐 도안史

 

 

 

 

종교계 · 정권 눈치에 문중 눈치까지

박정희 정권 때 母子도안 수명 25일… 석굴암 불상도안은 발행 전 폐기

 

 

정부가 10만원과 5만원권을 2008년 이후 발행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고액권에 담길 도안 인물을 놓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김구, 장영실, 광개토대왕에다 여성으로서 유관순 등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은행은 일단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창립 이후 화폐 도안과 관련된 논란사를 짚어본다.

 

현재 1만원권 지폐에서 만나는 세종대왕 초상은 1973년에 처음 등장했다.

올해로 34년째 장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1만원권 지폐 앞면에 세종대왕 초상본이 실리기 전, 그 자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당시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의 선정위원회는

1만원권 앞면에는 국보 제24호인 석굴암 본존석가여래좌상을,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을 싣기로 결정한 것.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유산이니만큼 도안 소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내외 공고 절차에다 지폐를 찍어낼 종이까지 수입해 인쇄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문제가 터졌다. 종교계가 집단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기독교 측에서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교계는 불교계대로 ‘신성한 부처님에게 불경죄를 저지르는 처사’라며

마찬가지로 반대했다. 결국 1만원권 도안 원안은 단 한 장도 인쇄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그 후 대안으로 선정된 인물이 세종대왕이었다.

1973년 발행된 1만원권 앞면에는 세종대왕 초상이, 뒷면에는 경복궁 근정전이 실리게 된 속사정이다.

 

 

대통령 얼굴 가운데 실었다가 '괘씸죄'

 

화폐 도안을 둘러싼 비화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많았다.

한국은행이 창립된 날은 1950년 6월 12일. 그리고 13일 뒤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당시에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이 유통되고 있었다.

 

그런데 제조사였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전시 자금을 긴급조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1천환권과 1백환권 제작을 일본에 맡겼다.

전시인 만큼 화폐 도안에 제대로 신경 쓸 여건이 못되었다.

다급한 대로, 1천환권에는 주일대표부에 걸려 있던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를,

1백원권에는 주일대표부가 소장하고 있던 책자에 실린 광화문을 그려 넣었다.

 

지금껏 지폐에 도안된 인물 초상화들이 모두 오른쪽에 배치된 것도 이승만 정부 때부터의 관례다.

 

한때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경호실장과 국회의장 등이 발의해

5백환권 지폐 중앙에 이 전 대통령의 초상을 실은 적이 있었다. 1956년에 발행된 5백환권 지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이 ‘어떻게 내 얼굴을 마음대로 접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내자

곧바로 개정 작업에 들어가 2년 뒤인 58년 8월 초상화가 다시 오른 쪽으로 이동했다.

이른바 ‘중이박 5백환 괘씸죄 사건’이다.

발행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고, 당시 신권 교체 속도가 빨랐던 터라

이 5백환권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때문에 화폐수집가들 사이에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와 함께 지폐의 초상화 도안도 운명을 함께 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지폐 속의 이승만 초상도 동반 하야했다.

 

1962년 6월 10일 제3차 통화조치 직전에 발행된 1백환권도 숱한 시비와 루머를 만들어냈던 화제의 화폐다.

이 1백환권 도안에는 한복 차림의 다정한 모습으로 저축통장을 들고 있는 모자(母子)상이 실렸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골몰해있던 상황이라

범국민 저축운동을 전개했다. 저축을 장려하는 상징적인 모델로 평범한 모자(母子)상을 지폐에 도입했다.

한국은행이 국내 지폐 도안에 무명의 인물을 채택한 것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

 

논란은 이 모자의 정체에 관한 것이었다.

그림의 실제 모델이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부인과 아들이며

부하들의 과잉 충성심이 두 모자를 선정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모자가 당시 한국조폐공사에서 근무하던 직원과 그 아들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문제의 1백환권은 발행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폐기되는 비운을 맞았다.

긴급통화조치가 발표되면서 수명이 끝난 것.

국내 화폐 역사상 가장 단명한 지폐로, 화폐수집가들이 구입하기를 선망하는 희귀한 화폐 중 하나다.

 

화폐 도안과 관련 율곡 이이 선생의 ‘두 얼굴’ 소동도 있었다. 1970년대 세간의 도마에 올랐던 일이다.

국내 지폐에 초상화가 실렸던 옛 인물은 모두 3명.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선생으로 ‘이 씨 성의 조선 시대 남자’들이다.

 

외국인이 그린 어색한 율곡선생 초상

 

그중 1972년에 첫 발행된 5천원권의 율곡 선생 초상은

얼굴이 작고 갸름하며, 큰 눈과 오뚝한 코를 가진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서양인의 분위기를 자아내,

마치 외국인이 한국 전통의상을 갖춘 것처럼 어색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국내 기술로는 원판을 만들 수 없어 제작 대행을 의뢰한 영국회사 측에서

자신들과 닮은꼴로 율곡의 초상을 그린 탓이다. 논란 끝에 1977년 두 번째 버전이 나왔다.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표준영정’을 사용해 율곡의 초상과 관련된 ‘인상착의’ 시비는 끝났다.

 

이 씨 문중 사이의 항의 소동도 유명하다.

“진성 이씨(퇴계 문중)가 덕수 이씨(율곡 문중)보다 인구가 더 많은데

왜 화폐가치가 더 낮은 1천원권에 퇴계 선생 인물을 넣었느냐”며

퇴계선생의 후손들이 조폐공사에 항의했다.  

조폐공사 측에서는 ‘1천원권의 사용 빈도가 5천원권보다 많으니 조상을 알리는 데 더 유리할 것’이라고

답해 무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에는 ‘돌사자상 괴담’이 항간에 떠돌았다.

10원짜리 주화에 돌사자상 도안이 새겨져 발행된 것.

그런데 그때에는 무탈했던 주화가 2년이 흐른 뒤 괴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돌사자상을 불상으로 풀이해,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통령 만들기’용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불자였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반면에, 화폐 도안의 덕을 본 이도 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1971년 9월, 당시 정주영 회장은 현대조선소 건립 자금을 빌리기 위해 영국 바클레이 은행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5백환권 지폐를 펴보이며

“우리는 이미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 회장이 차관을 얻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거북선 도안 역시 순풍만을 만난 것은 아니다. 도안 그림이 변경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1966년에 처음 발행된 5백환권에는 거북선 그림 중 깃대는 있으나 돛대가 없었다.

1973년판 발행권에는 깃대와 돛대가 모두 그려진 거북선 그림이 실렸다.

이 때문에 ‘형태가 너무 쉽게 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화폐 도안과 관련된 일화는 외국에서도 많다.

극단적인 예로,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는 지폐 도안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초상을 지폐 도안에 실었다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급히 마부로 변장하고 외국으로 도망치던 중

지폐에 그려진 얼굴로 왕을 알아본 농부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폐든 주화든 화폐에 어느 얼굴을 담을 것인가는

당대에 늘상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책에서 보듯 주화에 담긴 얼굴들은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화폐에 실린 도안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얼굴이자 경제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화폐 도안과 관련한 논란이 일어서는 안 된다.

화폐 도안을 결정할 때 고증에 고증을 거듭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더보기 -

 

천상열차분야지도(한글번역본)와 별자리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295

●천상열차분야지도와 28수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294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구성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293

●천상열차분야지도 - 조선 건국을 담다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030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보 제228호) : http://blog.daum.net/gijuzzang/3908370

●천상열차분야지도 음악 : http://blog.daum.net/gijuzzang/8515762